종교유민화 시대, 그 기로에서

칼럼 2018.09.08 11:09 posted by 망원올빼미

[경향신문] 2018년 9월8일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칼럼원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9072103015&code=990100#replyArea


------------------------------


종교유민화 시대, 그 기로에서

 

최근 대한불교조계종 종단주도세력의 권력남용, 부정부패, 부도덕한 행태 등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시민사회에 널리 알려지면서 불교에 대한 사회적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 개신교에선 명성교회의 담임목사 세습 문제가 대중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 시민사회가 개신교에 대해 낙인찍은 무수한 사회적 적폐의 목록에 또 하나의 항목이 얹혀졌다. 비교적 좋은 이미지로 대중에게 비추어졌던 가톨릭도 최근 가톨릭계 사업장들에서 비리, 배임, 성폭행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그 문제점들이 세간에 점점 폭넓게 회자되고 있다. 한국 종교인들의 98퍼센트를 상회하는 이들을 신자로 둔 세 종단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이런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연일 좋지 않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개신교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두 종단도 간간이 더 이상 숨기지 못한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그때마다 신자 대중의 상처와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에 어떤 이들은 적극적인 종단 개혁운동에 참여했다. 또 어떤 이들은 종단 내 다른 종교기관들을 수차례 옮겨 다니며 종교에서 얻어야할, 그러나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던 진리를 찾고자 애썼다. 나아가, 불자나 가톨릭 신자들처럼,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덜한 종교인들은 진리를 찾아 떠나는 종교적 여행길에서 훨씬 쉽게 다른 종단을 넘나들었다. 개신교 신자들은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기가 훨씬 어렵지만, 9백만 명 내외의 신자들 중 6~7백만 명이 교회를 옮겨 다녔고 그중 거의 2백만 명 정도가 종교를 넘나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종단 내부의 불당이나 성당, 그리고 교회들을 옮겨 다니거나 아예 종교의 경계를 넘나드는 종교유민현상이 종교의 부조리함이라는 이유와 연결되어 심화된 것은 대략 1990년대 이후다. 특히 이것은 개신교에서 두드러졌다.

1990년대 이후 실망신자의 종교유민화현상이 심화된 것은 세 종단이 이 시기에 더 부조리해졌기 때문은 아니다. 이전보다는 어떤 점에서는 조금, 또 어떤 점에서는 매우 건전해졌다. 물론 더 후퇴한 것도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1990년대 이후 문제점들이 더 많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자 대중의 종교에 대한 비판의식이 크게 향상된 것과 관련이 있다. ‘1987년 체제의 등장과 함께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도가 크게 높아진 신자 대중의 시선에 자신들의 종교는 너무 지체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앞섰다. 시민사회의 변화에 비해 지체된 제도뿐만 아니라 지체된 인식그리고 지체된 언어에 대해 신자 대중이 실망하게 된 것이다.

그 무렵 실망신자들 사이에서 대통령도 직선제로 뽑게 된 시대에 자신의 종교를 선택하는 주권을 못 가질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더욱 강화시킨 건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진행된 소비사회로의 변화다. 정치의 민주화는 시민을 선거 때만 선택의 주체가 되게 하지만, 소비사회는 매순간 수없이 많은 선택의 주권자 체험을 하게 한다. 이제 선택에 대한 주권의식은 시민이라면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그러한 선택을 위해 엄청난 데이터를 정보공간에 뿜어내도록 유도했다.

실망신자들도 이러한 정보공간에서 종교들에 관한, 종교들이 제시하는 진리와 그 여정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그들이 검색해낸 정보의 복수성은 그들의 종교적 진리의 도정에서 첫 번째 과제가 바로 선택이 되게 했다. 그들은 이제 종교들에 관한 무수한 것들을 선택하는 종교소비자가 되었다.

해서 종교유민 현상은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되었다. 어떤 이들은 쇼핑중독 증세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들 유민들을 유치하기 위한 종교기관들의 피 튀기는 경쟁 과정에서, 종교적 진리를 탐구하는 것보다 종교적 상품이 주는 달달한 체험에만 탐닉하는 이들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종교를 넘나들면서 특정 종교 전통이 내포한 배타성이나 한계를 발견하고 동시에 그 전통이 내장한 영적 깊이도 해독하곤 했다. 자기의 종교에 집착함으로써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한 발 물러서서 보니 보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종교와 그 종교의 정착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부정적인 영향이라면 종교유민들을 유혹하는 표층적 종교상품을 제작하는 것이 종교 컨텐츠 형성의 전부인 것처럼 만들었다는 것이고, 긍정적인 영향이라면 바깥의 시선에 열린 종교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여 실망신자의 종교유민화 현상은 오늘 우리시대의 종교가 직면한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것은 종교와 그 종교의 정착자들, 그리고 종교유민들을 퇴행하게도 하고 성숙하게도 한다. 우리는 그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