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8년 11월3일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칼럼 원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10220520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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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없는 사회에서 

불감의 사목자가 되라 권한다

 


작고 삐쩍 마른 몸집의 그는 코끼리다리 같은 거대한 발에 걷어차여 몇 미터나 떨어진 벽으로 나가떨어졌다. 곧 얼른 일어나 차려 자세로 관등성명을 댄다. 이번엔 두툼하고 큰 손바닥으로 얼굴을 후려친다. 또 한 번 몸둥이는 허공을 가로지른다. 다시 일어나 관등성명. ...... 그렇게 삼십분 가량 무자비한 폭력이 계속되었다.

그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방위병으로 입소했다. 작은 체구, 가는 목소리, 짙은 사투리, 게다가 순진해서 요령이 부족한 그는 부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사투리 쓴다고 맞고, 융통성이 없어 맞고, 대학생이라고 맞고, 군복 태가 안 난다고 맞고......

신병 때부터 하도 구타를 당해서 중대의 제일 상급자가 되었어도 그는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항상 두 발이 동시에 땅에 닫지 않게 뛰어다녔고 지시가 내려오면 누구보다도 먼저 직무를 완수했다.

그날은 하급병 하나가 무단결근하는 바람에 상급자인 그가 대신 매타작을 당했다. 신병으로 그곳에 배치된 지 얼마 안돼서 목격한 장면이다. 그 동안 이런저런 폭력을 직간접으로 경험해 봤지만 저렇게 집채 만한 사람이 소년처럼 작은이를 무자비하게 가격해대는 걸 본 것은 처음이었다.

가끔 나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안하게도 후임병인 내가 그보다 먼저 전역을 했다. 아마도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갈 만큼 힘들었겠지만 그날 그는 내게 형이라고 불렀다. 그 얼마 후 그도 전역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대학 신입생이 되었을 것이다.

과연 그는 보통의 대학생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면 직장생활은 어땠을까. 그런데 가끔 나의 상념 속에 그가 끼어드는 것은 근거 없는 불행한 상상을 통해서다. 그가 받은 폭력이 이후의 삶을 일그러지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는 이상한 복학생이었을 수 있고, 직장에서 왕따 당하는 기괴한 동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았다면, 폭력을 쓰는 남편이나 아빠가 되지는 않았을까.

실은 군대든 학교든 직장이든 아니면 가정이든, 그곳들에서 겪은 폭력적 체험 때문에 삶이 뒤틀린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제법 잦다. 그 경우 그런 이들보다 더욱 불행한 것은 그이들의 가족이다. 그 어긋난 삶은 대를 이어 계속되곤 한다.

최근 국내 웹하드 업계 1위를 달리는 위디스크의 회장 양진호가 저지른 충격적인 가혹행위가 폭로되었다. 보도된 것을 통해 보면 그는 가학적 행위를 즐기는 사람처럼 보인다. ‘진실탐사매체인 셜록이 연이어 그의 비리와 잔혹행위들을 폭로하고 있는데, 그 매체의 주장에 따르면 이미 밝혀진 사실들 외에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례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그런데 공감능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사이코패스 같은 행위로 인해 피해자들의 삶은 뒤틀려버리곤 한다. 폭력은, 가해자의 위력에 저항하거나 회피할 길이 없을 때, 대응이 아닌 다른 방식 혹은 다른 곳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 중에는 위대한 수도자처럼 자신이 겪은 폭력을 타자를 향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좀 더 흔한 현상은, 또 다른 누군가를 증오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때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보다 더 약한 이, 자신의 위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이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더 약한 이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폭력의 연쇄작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폭력의 연쇄작용이 사회 도처에서 발생할 만큼 사회 속에 폭력이 난무하게 되면, 타자를 향한 혐오는 개인을 넘어 집단적 현상이 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낙인찍은 이가 혐오의 대상으로 지목되면 이젠 자신들 각자가 겪은 폭력으로 인해 심리적 내상(트라우마)을 입은 이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저 혐오의 대상을 행해 집중적인 공격을 가하게 된다. 사회 현상으로서의 혐오주의는 이렇게 개개인의 혐오 현상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매우 위험한 상태다. ‘갑질이 난무하고, 권력이 없는 이들까지도 서로 물어뜯고 할퀸다. 그리고 더 무능력한 타자들을 향해 집단적인 공격을 가하기 위해 낙인찍을 대상을 색출하는 메커니즘이 무서우리만큼 활발하다.

이럴 때 의당 종교의 역할이 기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며칠 전 축하차 방문했던 후배의 목사안수식에서 있었던 모 목사의 권면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그는 교회를 개척한 뒤 교인 천 명이 될 때까지성장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권한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사목에 대해서 단 한마디 충고도 없이 말이다.

 

_김진호(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