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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나누기(설교)

‘전능한 신’은 없다

이 글은 2017년 12월3일에 했던 한백교회 하늘뜻 나누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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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한 신은 없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품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이사야서53,4

 

 

19세기 말 이후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처음엔 조선엔 종교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전도 뚜렷한 예배당도 없었고, 이렇다 할 성직자도 보이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삶을 규제하는 종교제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의아해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조선인들의 독특한 종교성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됩니다. 조선에는 세 개의 종교, 즉 유교, 불교, 샤머니즘이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선교사들이 더욱 놀랐던 것은 이 종교들이 각기 서로 경쟁하고 다른 것을 멸절시키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서로 혼합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즉 모든 조선인들의 심성에는 이 세 종교들이 뒤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서양에서 16세기 초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운동은 중세유럽이 근대유럽으로 전환되는 역사의 첫 번째 계기였습니다. 그 전환의 핵심은 국경입니다. 중세유럽은 수많은 종족들이 가톨릭이라는 제국종교를 매개로 하여 결속된 거대하고 느슨한 사회적 연결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운동은 가톨릭에 저항했던 여러 종교운동들이 독립적인 프로테스탄트 종파들로 성립되어 가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프로테스탄트 종파들은 그 종파들의 후견자인 각 지역의 정치세력을 국가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하여 국가와 국가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국가가 국경으로 분할된 세속적 체제이듯, 국가교회는 국경으로 분할된 종교적 체제로 발전해 갑니다.

그렇게 수백 년이 지나면서 서양인들은 종교가 국경을 가지고 있다는 건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확신으로 무장한 서양의 선교사들의 눈에 비추인 조선은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국경의 종교를 만드는 장치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전도, 예배당도, 성직자도, 종교제도도 부재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겨우 조선 고유의 종교성을 인정하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국경이 없는 종교들이 사람들이 내면에서까지 뒤섞여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샤머니즘을 그들은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어 했습니다. 그것은 기복주의에 사로잡힌 대중의 우상숭배 신앙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특히 조선의 그리스도교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 서북주의 신앙의 관점에선 조선인에게서 가장 우선적으로 척결해야 할 폐습이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을 지배한 신앙양식은 근본주의였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는 근본주의자들을 가장 히스테리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과연 우리에게 종교는 어떤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을까요? 개신교는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개신교 신자 총수는 기껏해야 전 인구의 20%가 못 됩니다. 게다가 개신교를 신뢰하는 이들은 겨우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비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최소한 절반 이상의 개신교 신자들조차 자신의 종교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신교 신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신앙을 다른 종교와 섞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추산으로는 850~950만 정도가 개신교 신자인데 이중 종교간 국경에 상관없는 이들의 총수는 150만 명을 넘지 않습니다. 16~18% 이하의 개신교 신자들만이 19세기 말 조선인들과 같은 혼합주의적 종교성을 갖고 있습니다.

, 그러면 대다수 개신교신자들의 신앙에서 하느님은 어떤 분일까요? 그들은 하느님을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런 신관을 가장 힘주어 주장하는 이들은 근본주의자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 혼란이 있습니다. 무소부재를 힘주어 주장하는 이들이 왜 열심히 전도를 할까요? ‘무소부재불신지옥은 어떻게 어울릴까요?

실은 무소부재’ ‘전지전능이라는 신관은 근본주의자들 고유의 신앙이 아닙니다. 이런 신 이해는 세속적 지배자의 권력이 모든 영역을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만연해진 기술적 낙관주의가 농염해진 19세기 이후에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신적 상상력을 압도한 생각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단초들이 없지 않았지만 마치 아우를 살해한 사실을 신에게 속이려 한 카인 이야기처럼, 아직 그런 신관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지배할 만큼 일상적이지 못했지요.

19세기 말 빅토리아 여왕 치하의 영국은 그런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한 권력에 가장 가까운 제국이었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슬로건은 신에 지배력의 무한한 확장을 예시해 주었습니다. 훗날 푸코에 의해 내면까지 지배하는 권력의 모델로 평가받은 제레미 벤담의 감옥 설계도인 판옵티콘도 바로 그 시대의 산물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무소부재, 전지전능한 신 이해가 모든 이들의 심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19세기 이후 서양 근대의 권력에 대한 생각의 질서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근본주의는 이러한 19세기적 서양근대에 대한 절망의 기조 위에서 탄생합니다. 19세기적 서양이 엄청난 파괴와 살육을 야기하고 말았다는 절망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새로운 비판적 사유들과 신념을 낳았는데, 그중 하나가 근본주의라는 것입니다. 한데 근본주의가 비판한 서양근대의 요체는 권력의 전능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문제시한 것은 다원주의였습니다. 모든 것을 근본이라고 그들이 주장하는 원리에 소급하되, 그 소급된 원리를 통제하려는 전능한 권력에 대한 믿음은 더 열렬히 추구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근본주의자들은 다양성을 포용하지 않는 무소부재, 전지전능한 신을 추구합니다. 하여 조선의 서북주의적 근본주의자들은 조선인들의 혼합주의적인 신 이해를 우상숭배라고 배척하고, 그것을 강력하게 실현시킬 수 있는 무소부재 전지전능한 신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신의 정치를 대행한 강력한 체제를 동조하게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대해 더 이야기할 수 있게 됩니다. 비단 개신교인들만 무소부재 전지전능한 신관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독교의 신을 말하든 다른 신을 말하든, 신적 존재는 무소부재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했듯이, 이런 신관이 근본주의 특유의 신앙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지배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19세기적 근대주의의 전형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앞으로 돌아가 봅시다. 19세기 말 조선인 대다수가 혼합주의적 신앙심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오늘의 한국인들은 거의 모두가 국경을 가진 종교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국인들 대다수는,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혼합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오늘 한국인들이 기독교를 통해 근대주의를 수용한 결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 주류세력인 서북주의적 근본주의를 경유해서 근대주의가 발달한 결과 근본주의적 전능한 신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배타적이면서 제국적인 질서에 더 친숙한 이들이 많은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짚을 것은 무소부재 전지전능한 신이 성서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서에는 다양한 신 이해들이 등장하는데, 전능한 신 해석은 대개 식민지 시대 제국의 종교 표상을 빌어서 그 이미지를 역전시켜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등장합니다. 이때 이런 신 해석을 수용하는 이스라엘 대중은 야훼가 자신들의 세계 안에서 무소부재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세계의 바깥, 곧 미지의 종말론적 시공간 속의 신, 하여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끝끝내는 그런 능력을 발휘한 신을 염원하는 것입니다.

한편 오늘의 본문처럼 고통당하는 자들, 그런 이들을 대신해서 고통당하는 지도자, 그런 부조리한 질서를 용인하는, 아니 그런 질서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신에 대한 고백도 성서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신앙을 후대에 그리스도파는 부조리한 질서를 용인하는 신이라는 관점을 넘어서 그런 부조리한 질서에 의해 죽임당하는 신으로 재해석합니다. 신은 악한 체제에 의해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고통당하하다 그들을 대신해서 죽임당하는 존재라고 말입니다.

전능한 신이 성서에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데 반해,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고통을 겪다 죽임당하는 신은 매우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의 죽음이라는 성서적 신 이해는 오늘날 매우 자주 신학적 문제틀로 재활용되고 있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유대인 작가 엘리 비젤(Elie Wiesel)은 신은 아우슈비츠의 교수대에 매달려 죽었다고 말했고, 독일의 비판적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십자가에 달려 죽은 하느님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문명비판적 신학자 토머스 알타이저(Thomas J.J. Altizer)는 초월적 신의 압제, 그러한 신에 기댄 자본주의적 체제의 압제를 해체하기 위해 신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무능력한 신과 민중은 서로 구원을 갈구하고 있는데, 신과 민중이 서로를 구원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말입니다. 한편 그 사건 바깥의 비민중은 그 사건을 증언함으로써 그 사건이 일원이 된다고 말입니다.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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