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8년 2월22일에 열린 제2회 외국어대학교 법학연구소 종교와 법 센터 학술대회 '기독교와 법'에서 발표된 글을 수정보완해서 [외법논집] 특별호(2018 5)에 기고된 것입니다.


새로 보탤 내용이 있네요. 조금 전 외대 법대 종교와 법 센터 소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2018.04.23), (1) [외법논집] 편집위원회에서 논의한 결과 법학논문이 아니니 게재를 못하게 되었다는 것, (2)대신 센터가 펴낼 단행본에 싣는 걸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글이 학술지에 실리는 것에 탐탁지 않아서 애초에 게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전한 바 있기에, 조심스레 말씀하신 소장님께 아쉬움도 유감도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되었고요. 학술지는 그 분야의 연구업적이 필요한 분이 기고하고, 그 분야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이 그것을 읽고 참고하는 매체일 듯합니다. 그런 관련성이 전혀 없는 제 글이 여기에 실리면 필경 아무도 읽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나름 소중하게 쓴 글인데, 태어나자마자 사망신고하는 것이 아쉬워서 게재를 꺼려했던 것이지요. 아무튼 다행입니다. 센터가 만드는 단행본에 실어도 되느냐는 소장님의 말씀에 기꺼이 동의했습니다. 그러니 위에서 이 글을 [외법논집]에 게재한다는 앞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게 되었음을 밝힙니다. 다른 출처는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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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권력세습과 후발대형교회

신귀족주의적 권력의 종교적 장치에 관하여

 

 

 


 

 

현황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교회세습의 문제적 전형을 보여준 원형적 사례로 충현교회의 담임목사 세습이 꼽힌다.[각주:1] 세습이 단행되던 1997년 김창인은 은퇴한 원로목사임에도 전권을 휘둘러 교인총회인 공동의회를 주도하여, 담임목사 선출 방식을 일반적 관행이던 무기명 투표로 하지 않고 찬반기립의 방식으로 진행함으로써 아들의 담임목사 청빙을 단행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막강한 파워엘리트가 즐비했고 세습 당시 재적 신도수가 35천 명이 넘었으며 2012년 현재 총자산이 2조 원 정도나 될 것으로 추정되는 초대형교회에서 그 모든 것을 법적으로 총괄하는 담임목사가 된다는 것은 거대한 종교권력의 중심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후 이 교회에서 벌어진 사태들은 목사의 혈통적 교회세습의 부정적 양상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편법선거로 담임목사가 된 아들과 원로목사임에도 교회 운영에 손을 떼지 못하는 아버지 간의 반목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사태들이 잇따랐다. 취임한 지 3년도 못된 20001월에 담임목사에 대한 테러사건이 발발했고, 그 혐의로 장로 9명이 불구속 입건되어 경찰의 수사를 받았다. 아들목사는 아버지와 그를 따르던 장로들이 이 사건에 관련되었다고 단정하면서 원로목사에 대한 교회의 지원을 끊었고 장로 8명과 안수집사 5명을 출교시켰다. 그러나 그것으로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내부고발자 없이는 좀처럼 드러날 수 없는 교회재정의 횡령, 유용 사건들이 폭로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교회는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 그 결과 교인은 1/3로 줄었다.

물론 목사의 혈통적 세습을 단행한 것에 대하여 그 교회의 교인들이나 외부로부터 긍정적 평가가 더 많은 경우도 없지 않다. 또 정상적 권력교체가 이루어진 경우라고 해서 교회가 잘 운영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혈통적 세습은 교회 안팎으로부터 정당성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충현교회가 혈통적 교회세습의 문제점을 선행적으로 보여준 이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많은 교회들에서 혈통적 교회세습이 잇따랐다. 특히 주목할 것은 2천 년대부터 많은 중대형교회[각주:2]들에서 혈통적 목사세습이 연이어 단행되었다는 점이다.[각주:3] 물론 혈통적 목사세습은 중대형교회나 초대형교회[각주:4] 현상만은 아니다. 많은 중소형교회들에서도 특히 2천 년대 이후 교회세습이 속출했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이하 세반연’)에 따르면 20171110일 현재 143개 교회가 혈통적 세습을 단행했다.[각주:5] 이는 제보된 것을 조사하여 확인된 것에 한정된 숫자인데, 계속 신고를 받고 있어 그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감리교세습반대운동연대(이하 감세반연’)20171022일에 발표된 보고서[각주:6]에 따르면 감리교회에서만 세습을 실행에 옮긴 교회가 무려 194개나 된다. 또 이 두 단체들의 자료에다 독자적으로 신고를 받아 만든 뉴스앤조이의 세습지도에는 201813일 현재 350개가 포함되었다.[각주:7]

이렇게 세 기관의 리스트에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신고에 의해 접수된 것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 감리교 단체인 감세반연의 경우 세반연보다 세습의 기준을 좀더 폭넓게 적용한 것도 오차를 설명하는 데 있어 참조할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세반연“‘교회세습이란 지역교회와 교회 유관기관에서 혈연에 의해 발생하는 대물림을 지칭한다고 규정하면서, 부자세습과 사위세습, 그리고 변칙세습양태인 교차세습[각주:8], 지교회세습[각주:9], 징검다리세습[각주:10] 등을 다루고 있다.[각주:11] 그런데 감세반연한 교역자가 담임자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혈연 및 이해관계에 있는 또 다른 교역자를 담임자로 세우는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동서에게, 조카에게, 형제간에, 그리고 변칙세습으로 사위교차 세습형태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각주:12]세반연조사에 누락된 경우들이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그런 교회들은 아직 업데이트되는 중이어서 좀더 많이 포착될 것이 분명하다.

숫자 통계가 아직 완성도가 낮은 탓에 엄밀한 추정은 불가능하지만, 교단별로는 감리교단 소속교회가 가장 많다는 점은 개연성이 높다. ‘세반연감세반연의 자료에다 독자적인 정보를 취합한 뉴스앤조이의 결과에 의하면 전체의 50% 이상이 감리교단에 속한다.[각주:13] 지역별로는 거의 70%에 육박하는 세습교회들이 서울인천경기도 등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각주:14] 규모별 추정은 좀더 어렵지만 교인수 100~500명 사이가 43%, 500~1,000명이 26.1%로 제일 많은 것으로 추산되었다. [각주:15]그러나 이 추정치만으로 100~500명 규모의 교회가 세습을 가장 많이 하고 있다는 단순한 가정은 문제가 있다. 이 자료가 유의미하려면 무엇보다도 전체 교회 가운데 이 규모의 교회들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비교해서 살펴야 한다. 뉴스앤조이의 조사결과로만 추정해보면 혈통적 세습이 가장 심각한 곳은, 100~500명 규모의 교회가 아니라, 대형교회로 보인다. 이 조사에서는 재적인원의 범주를 6개로 나누었는데(100명 미만 / 100~500/ 500~1000/ 1000~5000/ 5000~10000/ 10000명 이상), 이중 대형교회들인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에 속하는 교회들 중에도 대형교회들이 일부 포함되었을 것이다.[각주:16]





해서 대형교회 중 혈통적 세습 교회 숫자 추정치를 [+]+[×1/2]로 계산하면 21 혹은 22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세습교회 전체 숫자인 350으로 나누면, 세습교회 중 6% 정도가 대형교회인 셈이다. 2004년에 추산한 전체 교회 중 대형교회의 비율은 1.7%, 880개 정도다.[각주:17] 한데 2004년 전체 교회수는 51,775개소인데, 2011년에는 무려 77,966개소다. 2005년과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의 개신교 신자수가 약 15% 증가한 반면 문화체육관광부의 2004년과 2011년 조사의 개신교 교회수가 무려 50% 이상 증가했다는 것은 전체 교회 대비 대형교회의 비율이 1.7%보다 훨씬 낮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혈통적 세습 현상이 대형교회에서 압도적으로 많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2천 년대 이후 혈통적 교회세습 현상이 만연하기 시작했다. (2) 교회세습이 가장 극심한 곳은 수도권이다. (3) 대형교회가 중소형교회보다 더 세습 현상이 심각하다. (4) 교파별로는 감리교단에서 더 혈통 세습의 문제가 심각하다.

 


해석

 


말했듯이 2천년 어간 이전까지 교회세습은 별로 주목거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1997년 충현교회를 시발점으로 하여 2천 년대 이후 특히 여러 대형교회들에서 세습이 단행되자 개신교계 안팎에서 이 문제는 핫한 이슈가 되었다. 그런데 왜 2천 년대인가? 이것이 첫 번째 논점이다.

우선 혈통적 교회세습을 단행한 교회는 전체 교회 중 0.5% 이하로 추산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힌 개신교 교회는 2011년에 77,966개소다. 여기에는 군소교단들을 제외한 118개 교단의 교회만 포함된다. 그러니 실제 교회수는 좀더 많을 것이다. 또 최근 개신교 교인 수는 증감을 반복하고 있지만, 교회수는 모든 통계에서 거의 예외 없이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러므로 20181월 현재 교회수는 2011년 문광부 집계보다 훨씬 클 것이 분명하다. 한편 혈통적 교회세습을 단행한 교회는 현재까지 최대 350개소다. 교회 세습을 다루는 세 기관이 계속 신고를 받고 있으니 이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명성교회 세습 사태 직후 신고건수가 갑자기 크게 늘은 것을 감안하면[각주:18] 이후에는 증가폭이 줄어들 것이 예측된다. 그런 점에서 35077,966으로 나누어 계산한 0.45% 어간에서 큰 차이는 없을 것 같고, 그것보다 훨씬 높게 잡은 가정치인 0.5%는 아마도 거의 최고 추정치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것은 교회세습이 결코 개신교에서 일반적 현상이 아님을 뜻한다. 그럼에도 세습을 한 교회들이 존재한다. 도대체 어떤 교회들이 세습을 하는가? 김동호 목사는 목사가 힘이 센 교회는 목사가 절대군주처럼 교회에 군림하고 하나님을 빙자하여 제 마음대로 교회를 주무르고 있다. 심지어는 그것을 자식에게 세습까지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각주:19] 즉 목사가 교회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한 경우 그가 의도하면 혈통적 세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근데 그 비율은 0.5%, 2백 명의 1명꼴이 못 된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목사가 교회정치의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한 경우도 있으며, 세습을 하지 않은 99.5% 이상의 교회들 가운데는 세습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음을 시사한다.

김동호는 이 발제글에서 그런 교회를 묘사하기를 장로가 더 힘 센 교회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회를 교회정치의 차원에서만 보면, 목사와 장로 사이의 주도권 경쟁의 장이며 그 싸움에 끼어든 다른 주체는 별로 고려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하나 더 얘기하자면, 힘이 한 편으로 명확하게 기울어지기보다는 양자가 담합한 경우가 있겠다.

여기서 목사 대 장로의 상호견제를 강조하는 교회제도는 장로교 계열[각주:20]의 교회정치제도다. 이것은 당회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으로 나타나는데, 당회는 담임목사와 장로로 구성되어 있는 장로교 계열 교회의 사실상의 최고 정치기구다.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의 상징적 중심인 목사와 사실상의 교회의 고용주인 장로가 당회 안에서 헤게모니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장로교 목사인 김동호의 장로교식 교회정치에 관한 해석은 한국개신교 일반의 현상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장로교 계열 교회의 교인수가 한국개신교 교인의 69%나 되기 때문이다.[각주:21] 그뿐 아니라, 한국의 다른 교단들도 장로교식 장로제도를 부분적으로 혹은 거의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감독제 교회들인 감리교와 성결교, 회중교회 전통의 교회인 침례교, 그리고 카리스마적 리더의 독점적 지배를 강조하는 오순절계열(순복음계열)의 교회도 장로교식 장로제도를 수용하는 등, 많은 교단들이 장로제 제도를 부분적 혹은 전면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는 거의 모든 교단들이 특권적 신자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반영한 결과겠다.

목사의 권력이 더 강한 교회들을 보여주는 두 번째 요소는 담임목사의 교회 재직 기간이 매우 긴 경우다. 파송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감독제 계열의 교회들이든 청빙제도를 강조하는 장로제 계열의 교회들이든 1970년 어간 이전까지는 그 교회의 재직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 이후에는 20년 이상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재직하는 이들이 많았다.[각주:22] 이런 교회들은 대개 담임목사의 자원 독점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교회를 성장시키는 데 성공한 덕이다. 또 거꾸로 목사가 가용자원을 독점하고 그것을 성장에 집중 투여한 결과가 교회성장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도 있다.[각주:23] 그 시대가 자원 독점을 통해 성공을 이룩했던 권위주의 시대였다는 점은 권력의 집중과 성장이 서로 맞물리게 되는 사회적 기반이 되었다.[각주:24]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장기간 재직-자원의 독점-교회 성장의 연결고리가 뚜렷한 교회들에서 더 많이 혈통적 세습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세습의 두 가지 조건에서 우리는 2천 년대인가에 대한 하나의 개연성 있는 답을 얻을 수 있다. 1960~1990년 사이의 시간성, 그러니까 장기간 재직-자원의 독점-교회 성장의 연쇄고리가 일종의 시대정신이자 시대의 문법이던 시기에 그 핵심에 있던 담임목사들이 속속 은퇴하게 된 시기가 바로 2천 년대 전후, 특히 직후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이 소절에서 다루는 두 번째 논점은 교회세습이 수도권에 집중된 이유에 관한 것이다. 위에서 한 교회에서 양적 성공을 이룩한 이들이 그 교회의 권력을 장기간 독점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1960~1990, ‘대성장 시대에 관한 꼭 필요한 논의가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장소성에 관한 것이다. 우선 1953년 이후 서울은 수용능력을 초과하는 인구의 집중화 현상, 즉 과잉도시화(over-urbanization)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 현상은 2000년 어간까지 계속되었다.[각주:25] 이에 대한 국가의 대책은 두 번에 걸친 서울의 공간 확장으로 나타났는데(sub-urbanization), 하나는 이른바 영동지역(영등포 동쪽 지역)의 개발로 서울을 확장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울 외곽의 신도시들을 건설함으로써 광역의 수도권을 만드는 것이었다. ‘영동지역은 훗날 강남 3개구 지역과 강동지역으로 개발되었고, 신도시들 가운데는 강남강동과 인접한 분당신도시와 그 인접지역이 특히 빠르게 발전했다.[각주:26]

이 과정은 대부흥기의 교세 확장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과잉도시화 상황에서 개신교는 급성장을 이룩한다. 즉 조용기는 이농민의 대대적인 신자화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최대의 대형교회가 되었고, 그의 선교방식을 모방한 많은 교회들도 커다란 성장을 이룩했다.[각주:27] 1970년대~1980년대 중반 경에 탄생한 대형교회들은 대개 이러한 이농민의 신자화와 관련이 있다.[각주:28]

그런데 서브어버나이제이션(sub-urbanization)은 일부 교회의 또 다른 성공의 사회적 배경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 경부터 대형교회의 대열에 진입한 교회들은 강남, 강동, 분당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것은 두 번의 걸친 서울의 서브어버나이제이션 과정을 따라 이루어진다. 이중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중반 경 대형교회의 대열에 들어선 교회들에는 강남권에서 지대의 급속한 상승으로 자산이 크게 확대된 이들이 매우 많았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젊었고 대학 이상의 학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좀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새신자들, 곧 타종교인이었거나 비종교인이었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각주:29] 한편 1990년대 후반 경 이후부터는 강남, 강동, 분당 지역에서 대형교회들이 속속 탄생하였는데, 이때 특기할 것은 새신자의 유입보다는 수평이동신자들의 유입이 이들 교회들의 양적 팽창의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중년층이 더 많았고 학력, 사회적 지위, 자산능력 등에서 대단히 위치에 있는 이들이 많았다.[각주:30]

이제 위에서 언급한, 교회세습이 수도권에 위치한 교회들에서 훨씬 더 많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것은 1960년 이후 규모의 성공을 거둔 교회들이 수도권의 인구 집중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계에는 이농자들의 신자화, 둘째 단계에는 강남권으로 이주한 젊은 중산층의 신자화, 그리고 셋째는 강남강동분당의 수평이동 신자들을 정착시킴으로 대형교회들이 탄생했다. 그렇게 성공한 교회의 목사들이 2천 년대 즈음 속속 은퇴할 시기가 되었을 때, 그중 일부 교회들은 혈통적 세습을 단행한 것이다.



1970~1980년대 중반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중반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농민의 신자화

강남으로 이주한 젊은 엘리트

강남강동분당으로 이주한 중년 엘리트

새신자

수평이동신자

선발대형교회 유형

 

 

 

후발대형교회 유형




셋째 논점은 대형교회가 중소형교회보다 더 많이 혈통적 교회세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영기는 한국의 초대형교회 13개의 담임목사들의 리더십을 연구하였는데,[각주:31]카리스마 리더십과 초대형교회로의 양적 성장이 깊은 관계가 있음을 분석하였다. 그의 카리스마 리더십은 베버의 용어를 빌려온 것인데, 그것에 관한 종교적, 영적 설명들을 제외하고 사회학적 속성만으로 재설명하면 교회의 가용자원을 독점한 존재다. 그런 존재가 성장을 위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결과 초대형교회로의 성장이 가능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박종현은 홍영기의 분석을 수용하면서 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들의 1970년 이전과 이후의 담임목사들의 재임기간을 분석한 결과, 흥미롭게도 1970년대 이후 담임목사들의 임기의 장기화 현상이 뚜렷이 확인되었음을 보여준다.[각주:32] 그는 임기에 대해 하나 더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는데, ‘원로목사제도의 발명이다. 한국의 대형교회에서 원로목사는 명예직이 아니라 실권자가 지배력을 연장시키는 장치로 작동되었다는 것이다.[각주:33] 이때 혈통적 교회세습은 원로목사로서 교회권력을 유지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형교회는 목사의 혈통적 세습과 더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논점, 감리교회가 더 많이 교회세습을 한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김동호의 목사가 힘이 더 센 교회라는 말과 홍영기의 카리스마 리더십에 관한 분석, 그리고 박종현의 임기의 장기화’, 이러한 요소가 가장 적합한 교회는 말할 것도 없이 오순절계열의 교회들이다. 그러나 오순절계열의 교회들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20여개의 지교회를, 은혜와진리의교회가 40여개를, 인천순복음교회가 4개를 갖고 있는 등, 권력집중화가 너무 심해서 세습할 만한 교회의 숫자가 별로 없다.[각주:34]

오순절계열의 교단 다음으로, 담임목사에게 강력한 권력을 부여하고 있는 제도를 갖고 있는 교파는 감리교단이다. 앞서 말했듯이 감독제 교회의 대표격인 감리교단은 목사파송 시스템과 교회운영 시스템에서 개별교회의 자율권을 제도적으로 제한하고, 구역회-지방회-연회로 이어지는 피라미드형 교회간 네트워크를 통한 통제력을 제도화함으로써 평신도엘리트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감독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정치제도를 발전시켰다. 하여 교회정치의 핵은 개별교회의 당회가 아니라 연회(감독)와 지방회(감리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로는 한국의 감리교회들에도 장로가 존재하며, 그들은 목사파송이나 교회운영에 사실상 깊이 개입한다. 하여 감리교회들은 제도상으로는 파송제도에 따르지만 실제 운영은 청빙제도와 결합된 채 목사가 교회로 파송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종결정권이 목사들의 제도에 있다는 것은 일단 분쟁이 일어나면 목사에게 훨씬 유리한 제도임을 뜻한다.

한데 감리교단의 대형교회들은 구역회지방회연회로 이어지는 교회정치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것은 이들 교회간 수직적 네트워크가 강한 만큼 개별교회가 내는 교부금이 더 많이 필요한데, 그 비용을 조달할 능력이 보다 많은 힘 센 목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교회의 비중은 훨씬 더 중요하다. 요컨대 대형교회는 교회 내적으로는 목사의 주도권이 더 잘 작동할 수 있고, 외적으로는 교회정치의 통제력에서 보다 자유롭다. 해서 감리교단의 교회들에게서 혈통적 세습이 더 많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대안 개념

 


개신교 외부의 시민단체들이나 매스미디어들은 흔히 혈통적 교회세습이 한국개신교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이 현상은 전체 교회 가운데 0.5%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예외적 현상이다. 게다가 앞으로 그런 교회들은 점점 줄어들 것이 예상된다. 박종현이 분석했듯이[각주:35] 한 교회에서 장기간 재임한 목사들이 한꺼번에 은퇴한 시기가 2천 년 어간에서 그 얼마 후까지였다. 말했듯이 그들은 교회의 가용자원을 독점했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양적 성공을 이룩한 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은퇴하고 있고, 그 후임자들은 선임자보다 학력도 높고 다양한 스펙을 갖추었지만 대개 카리스마 리더십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게다가 양적 성장이라는 성과를 이룩할 가능성은 현저히 줄었다. 또한 교인들의 학력은 점점 상승했고, 사회적 지위도 매우 높은 이들이 많다. 과거 목사가 지역 유지였던 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그리 존경받는 위상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그러므로 목사가 더 힘 센 교회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혈통적 세습을 원한다 하더라도 그것에 성공할 이들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대형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위의 [3]에서 정리한 것처럼, 앞에서 시공간적 변화에 따라 다르게 특성화된 대형교회의 세 범주를 언급했는데, 이중 세 번째 범주는 수평이동한 떠돌이 신자들이 대거 정착함으로써 대형교회에 진입한 교회들을 가리킨다.[각주:36] 이때 수평이동신자는 중년층이 보다 많고 교회에서 주요직분을 경험했던 신자들이 많다. 또 학력이나 사회적 신분, 자산능력도 비교적 높은 층이 많다.[각주:37] 요컨대 이들은 주권의식이 보다 강한 신자들이다. 그들은 교회를 찾아 떠돌아다니면서 여러 목사들의 설교와 교회 프로그램들도 비교검토하고 교회신학적 서적들도 많이 탐독하며 교회 밖의 고급 강좌들을 수강했던 이들이 많다. 그들은 일종의 소비자의 자의식으로 교회를 선택한다.

그러므로 이런 자존성 강한 떠돌이신자들을 유치하고 정착하게 하는 데 성공한 교회들은 그들의 기호에 맞추는 선교전략상의 성공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교회들의 담임목사의 리더십은 어떠할까? 소비자 같은 자의식을 가진 신자들의 기호가 다양한 만큼 목사의 리더십 유형도 단순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처럼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이제 시대착오적임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들 떠돌이 신자들은 자수성가형 성장지상주의와는 달리 문화적인 고품격을 추구하는 귀족형의 소비자적 주체로서 교회를 선택, 소비하고자 한다. 나는 이러한 문화적인 귀족적 종교성을 웰빙신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각주:38] 주지할 것은 이런 신앙은 자산, 신분, 학력 등에서 안정계층에 보다 친화적이라는 점이다.

요컨대 혈통적 교회세습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와 비판은, 내가 보기에는, 그 센세이셔널한 현상에 집착하다 숲의 문제를 읽지 못한 채 썩은 나무만을 찍어내려고 하는 관중규표(管中窺豹)의 오류가 될 수 있다. 그 대나무구멍()의 바깥에는 99.5%가 넘는 교회들에서 담임목사가 혈통적 세습이 아닌 방식으로 임용되고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은 정당한가? 그것은 부당하지 않고 부조리하지 않은가? 그것은 사회적 특권화를 조장하고 공공성을 훼손할 우려가 없는가?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혈통적 교회세습이 아니더라도 권력세습이 횡행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문제제기인 것이다.

정치학자인 새무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최소한 세 번의 정권교체가 있어야 민주주의의 공고화(democratic consolidation)가 일어난다고 말한 것처럼,[각주:39] 교회도 기존의 권력을 전도시키는 담임목사 임용이 적어도 세 번 이상 일어나야 권력세습을 지양하는, 사회적 공공성의 장소로서의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나는 권력세습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있다. ‘세반연에 의하면 지역교회와 교회 유관기관에서 혈연에 의해 발생하는 대물림교회세습이라고 표기했다. 그런 점에서 교회세습은 혈통적 세습에 방점이 찍힌 개념이다. 그런데 나는 권력의 대물림에 방점이 찍힌 용어로서 권력세습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창세기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아담과 이브의 죄의 문제를 공적인 것의 사유화로 봄으로써 ()의 문제를 권력의 반독점이라는 의미로 해석한 바 있다.[각주:40] 즉 권력의 대물림을 해체하려는 신앙적 기조를 안병무는 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공의 장소인가 권력의 장소인가? 혈통적 세습을 단행한 교회든 그렇지 않은 99.5%의 교회든 간에 교회가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바꾸려는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가, 아니면 공적인 것을 사적인 것으로 바꾸고 사적인 것을 전유하는 자들의 대열에 끼어드는 것을 강조하는 신앙운동 참여하고 있는가?

공의 사유화 운동의 장(field), 그런 권위주의적 소통의 공간이 오늘의 교회라면, 성서에 등장하는 유다국의 개혁군주 요시야 왕의 핵심 슬로건인 산당을 폐하라는 말은 바로 오늘의 교회를 향한 비판신학적 어젠다이기도 하다.[각주:41]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1995년 이후의 대형교회들에 주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수평이동을 거듭하던 비평적 신자들과 그들을 유치정착시키려는 교회가 함께 만들어낸 새로운 신앙유형인 웰빙신앙, 권위주의 시대 특유의 카리스마적 리더가 아닌, 탈권위주의적 리더를 선호함에 따라 혈통적 세습이 점점 더 가능하지 않는 교회 유형을 소환해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후발대형교회라는 이념형적 용어로 규정한 바 있다.[각주:42] 즉 후발대형교회에서는 혈통적 교회세습을 불온시하는 프레임이 통용되는 소통의 장이다. 대신 대형교회 유형 가운데 특권적 신자들의 이해가 더 적극적으로 반영된 교회 양식이 바로 후발대형교회라는 것이다. 한데 이 유형의 교회들에선 공을 사유화하려는 권력의 작용은 없는가, 바로 이 점이 나의 관심거리다.

안타깝게도 후발대형교회에서도 목사 임용에 관한 정보는 신자대중에게 거의 소개되지 않았고 목사 임용 과정에도 참여할 통로가 매우 형식적이다. 반면 특권적 엘리트 신자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교회의 인사에 관한 것이든 운영에 관한 것이든 충분한 정보를 전유(appropriation)하고 있고 그 과정을 주도하고 있다. 이렇게 특권적 엘리트 신자와 신자대중 간의 정보의 비대칭성과 참여의 비대칭성은, 그들의 사회적 역할에서도 대체로 비슷하게 나타난다. 즉 대형교회의 특권적 엘리트 신자들은 사회에서도 특권적 시민의 위치를 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회에서처럼 사회에서도 정보와 참여에서 특권적 지위와 역할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자신들의 웰빙적 취향과 행위에 대한 우월감이 특권의 정당화 기재로 작용할 수 있다. 그것은 웰빙적 취향이 특권적 지위의 결과일 수 있다는 사실이 은폐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에서 교회세습이 아닌 권력세습의 관점에서 교회와 권력에 관하여 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문제제기하고자 했다. 그런데 권력세습이 일으키는 사회적 파급력은 행사되는 권력의 크기와 비례한다. 물론 일상의 권력, 미시적 권력, 내면의 권력도 주목할 필요가 있지만, 권력세습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미치는 사회적 파급력의 문제와 보다 긴밀히 얽혀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사회의 특권적 엘리트이자 교회의 특권적 엘리트가 즐비한 대형교회는 이 논의의 가장 중요한 현장이다. 특히 목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보다는 탈권위적 권위의 리더십으로 특성화될 수 있는 후발대형교회는 특권적 목사만이 아니라 특권적 신자를 이야기하는 데 더 적합하다. 이러한 분석틀 위에서 시민의 직접적 참여의 공간을 찾아내고자 하는 직접민주주의적 상상력과 대응하는 신자대중의 직접적 참여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권력세습에 대한 비판적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성서 해석을 논하고 교회 제도를 논하며 신자의 사회적 역할을 논하는 탈권위적 공론장을 형성하고자 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Abstract

 

Succession of Power in Korean Churches’ and ‘Late-stage Mega-churches’:

On Religious Apparatus of the Neo-Aristocratic Group in Megachurches emerged after the mid-1990s

 

 

The recent news articles have suggested that ‘the hereditary succession in Korean churches’ manifests the empowerment of the church in Korean society. This perspective results from the understanding of the phenomenon in terms of the minister-centered power structure of the church. In the case of the megachurches, a senior pastor with charismatic leadership has been in charge for a long period and invested all the available resources of the church into growth; and this charismatic leader often hands the power down to a blood tie. Therefore, the percentage of the hereditary succession in megachurches is relatively higher than that of non-megachurches.

However, the percentage of the churches which succeed power hereditarily is less than 0.5 percent of the entire Korean churches; and its number is likely to diminish gradually in the foreseeable future. In other words, it is obvious that the hereditary succession in Korean churches is an example which indicates the centralized power of Korean churches; but it is not typical but exceptional. Particularly, this atypical manifestation is prominent among the newly emerged megachurches after the mid 1990s.

Therefore, a different approach with a new conceptualization is required to grasp the recent centralized power of Korean churches. It is necessary to recognize the two power groups; not only the power of a senior minister, but also the power of privileged lay elites. These two groups are conflicting and cooperating with each other. The phenomena of the monopoly and oligopoly of power, and the succession came from the relationship between them. By the institutional and discursive mechanism, these two groups prevent the other members from accessing critical information and exclude them from participating in decision making process. This article defines this phenomenon of succession of the monopolized power of the churches as ‘the succession of power in Korean churches.’ One last consideration is that this succession in the churches hinders the social democracy which emphasizes the fair distribution and public function of power.

 

 

 


 

Keyward

 

The Hereditary Succession in Church(교회세습), The Succession of Power in Church(교회의 권력세습), Late-stage Mega-churches(후발대형교회), sub-urbanization of Seoul(서울의 서브어버나이제이션), the privileged ordinary believers(주권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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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덕만, 〈교회세습에 대한 역사신학적 고찰〉(심포지엄 ‘교회세습, 신학으로 조명하다’, 2013)(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문서자료실, http://www.seban.kr/home/index.php?mid=sb_library_document&document_srl=4336&listStyle=viewer&page=2) [본문으로]
  2. ‘대형교회’로 번역된 메가처치(mega-church)는 통상 일요일 대예배에 참석한 성인 교인수가 2천 명 이상의 교회를 지칭한다. 한데 이 글에서 대형교회라고 하지 않고 중・대형교회라고 표기한 것은 조사기관들의 세습교회 규모에 따른 분류항목에 ‘1,000~5,000명’, ‘5,000~10,000명’, 10,000명 이상‘ 등으로 된 탓에 딱히 대형교회라고 단정할 수 없는 교회들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본문으로]
  3. 2001년 감리교단의 초대형교회인 광림교회가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세습했고, 2008년에는 광림교회 김선도의 동생인 김홍도가 담임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금란교회가 아들에게 세습했다. 또 그들의 동생인 김국도가 담임하는 임마누엘교회도 2013년에 아들에게 목사직을 세습했다. 그밖에 강남제일교회(기침・2003), 경향교회(예장고려・2004), 원천교회(예장대신・200), 분당만나교회(감리교・2004), 경신교회(감리교・2005), 대성교회(예장합동・2006), 동현교회(예장합동・2006), 《국민일보》(기하성, 2006), 종암중앙교회(예장개혁・2007), 인천숭의교회(감리교・2008), 계산중앙교회(김리교・2008), 경서교회(예장합동・2010), 대한교회(예장합동・2011), 부천혜린교회(예장합동・2011), 제일성도교회(예장합동・2012), 광명동산교회(예장합동・2012), 왕성교회(예장합동・2012), 성남성결교회(기성・2012), 시은소교회(예장합동・2014), 인천순복음교회(기하성・2015), 안양새중앙교회(예장대신・2017), 명성교회(예장통합・2017) 등등, 수많은 중・대형교회와 초대형교회들에서 혈통적 목사세습이 일어나고 있다. [본문으로]
  4. ‘초대형교회’로 번역된 기가처치(giga-church)는 통상 일요일 대예배에 참석한 성인 교인수가 1만 명 이상의 교회를 지칭한다. 하지만 이하에서는 인용부분을 제외하고는 초대형교회를 따로 분류하지 않고 ‘대형교회’에 포함해서 언급하겠다. [본문으로]
  5. http://www.seban.kr/home/sb_what_map [본문으로]
  6. https://newkmc.modoo.at/?link=3tmk3lo8 [본문으로]
  7. 〈‘세습 지도’ 성복교회・부천성문교회 등 28가 추가〉, 《뉴스앤조이》 (2018.01.03.)[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4202] [본문으로]
  8. 2~3명의 목사가 서로서로 교차하여 아들을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것을 말한다. 해서 쌍방교차세습, 삼각교차세습 등으로 세분되기도 한다. [본문으로]
  9. 본 교회가 지교회(일종의 분점교회)로 세운 교회로 혈통적 세습을 단행하는 것을 말한다. [본문으로]
  10. 아버지에서 아들을 건너 뛰어 손자에게로 가는 세습을 말하거나, 혹은 중간에 명목만 있는 목사를 하나 끼워 넣어 물려주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혹은 후자를 ‘쿠션세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문으로]
  11. http://www.seban.kr/home/sb_what_sesub [본문으로]
  12. 주3)의 자료 참조. [본문으로]
  13. 주6) 참조. 그러나 두 기관이 엄밀하게 기준에 맞게 통계 낸 것이 아닌 데다, 그것을 취합한 《뉴스앤조이》의 결과도, 두 기관의 것을 기준상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취합한 것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본문으로]
  14. 같은 자료 참조. [본문으로]
  15. 같은 자료 참조. [본문으로]
  16. 한국갤럽이 한국인의 종교실태에 대한 5차에 걸린 조사결과 보고서인 《한국인의 종교 1984~2014》에 따르면 주1회 이상 일요일 예배 참석률은 2014년의 경우 80%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한국인 종교·신앙의식 조사’에서는 2017년 일요일 대예배 출석률을 76.7%로 집계했다. 이 조사대로라면 5천 명이 재적인 교회는 대략 3,800~4000명이 주일 예배에 참석한다. 또 1천 명이 재적인 교회는 대략 770~800명이 주일 예배에 참석한다. [본문으로]
  17. 김진호, 〈‘웰빙 우파’와 대형교회―문화적 선진화 현상으로서의 후발대형교회 읽기(소망교회, 온누리교회, 사랑의교회를 중심으로)〉, 제3시대그리스도교 엮음, 《당신들의 신국》(돌베개, 2017), 각주2). [본문으로]
  18. 명성교회가 2017년 11월12일 담임목사의 부자세습을 강행하자 JTBC는 11월14일, 27일, 12월7일 세 차례에 걸쳐 비판적 보도를 하고 무수한 오・오프라인 언론들이 앞다투어 집중보도한다. 이후 이 문제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교회세습에 대한 비판적 담론 프레임이 조성되었다. 이에 《뉴스앤조이》는 12월 말에 교회세습 제보를 받기 시작했고, 1주일 만에 70여건의 제보가 들어왔다고 한다. 최승현, 〈‘세습 지도’ 성복교회·부천성문교회 등 28개 추가〉, 《뉴스앤조이》(2018.01.03.) 참조. [본문으로]
  19. 2017년 11월13일 ‘2017년 미래교회포럼’에서 발제한 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http://reformedjr.com/board05_04/7039) 참조. [본문으로]
  20.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종교현황 자료에 의하면 전체 개신교 교파는 232개이고, 이중 장로교 계열의 교파는 180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문화와종교연구소, 〈한국의 교세 현황(2011)〉(문화체육관광부 2012), 38~47쪽. [본문으로]
  21.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각 2005년도 교단 총회보고서들을 취합하여 정리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개신교 교인 중 장로교 교인수는 전체의 69%, 성결교는 11%, 감리교는 10%, 기독교침례회는 5%, 순복음계열의 교회는 4%, 기타 1%라고 한다.(http://missionmagazine.com/main/php/search_view.php?idx=365) [본문으로]
  22. 박종현, 〈한국 오순절 운동의 영성―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영성과 성장에 대한 시대사적 회고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식》 82(2008.4), 11~12쪽 참조. [본문으로]
  23. 김진호,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주권교인’의 탄생.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3)〉, 《주간경향》 1265호(2018 02 27) 참조. [본문으로]
  24. 위의 박종현의 글, 12쪽. [본문으로]
  25. http://study.zum.com/book/12468 참조. [본문으로]
  26. 이에 대하여는 한종수・계용준・강희웅, 《강남의 탄생―대한민국의 심장도시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미지북스, 2016), 1・4・7장 참조. [본문으로]
  27. 이에 대하여는 나의 책 《시민 K 교회를 나가다―한국개신교의 성공과 실패 그 욕망의 사회학》(현암사 2012), 제1부 5장 참조. [본문으로]
  28. 물론 빌리 그레이엄 부흥회를 포함한 아메리카식 부흥회가 이 시기에 또 다른 신자들의 대대적인 증가를 낳았는데, 이것은 많은 중산층 대중과 젊은층을 교회로 불러들이는 데 기여했다. 같은 책 제1부 6장 참조. [본문으로]
  29. 이광순・이향순, 〈도시의 발달과 도시 선교〉, 《선교와 신학》 10(2002.12); 장형철, 〈도시발전과 초대형 교회건축―서울을 중심으로〉, 《종교와 문화》 26(2014) 참조. [본문으로]
  30. 이에 대하여는 미출간된 나의 책 《월빙우파와 대형교회》(메디치미디어, 근간)을 참조. [본문으로]
  31. 홍영기, 《한국의 초대형교회와 카리스마리더십》 (교회성장연구소, 2001) 참조. [본문으로]
  32. 주18) 참조. [본문으로]
  33. 같은 글, 13쪽. [본문으로]
  34. 실제로 조용기는 《국민일보》를 아들에게 세습했고, 인천순복음교회의 최성규는 아들에게 세습했다. 그리고 은혜와진리의교회의 조용묵은 나이가 70대 중반으로 은퇴시기가 지났음에도 아직 담임목사로 재직하고 있다. [본문으로]
  35. 주28) 참조. [본문으로]
  36. 한국개신교에서 수평이동 신자들의 비율은 대략 45~75% 정도가 된다. 낮은 수치는 한국목회자협의회의 2012년 조사인데, 45.2%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반면 높은 수치는 교회성장연구소의 2003년 조사인데, 76.5%라는 충격적인 결과치를 발표했다. 한국목회자협의회. 《한국기독교 분석 리포트》(도서출판 URD, 2013), 72쪽; 교회성장연구소, 《한국교회 교인들이 말하는 교회 선택의 조건》(교회성장연구소, 2004), 35쪽. 한편 최현종의 조사에 의하면 대형교회의 수평이동 신자의 정착율이 다른 규모의 교회들에 비해 가장 높았다. 최현종, 〈한국개신교의 새신자 구성과 수평이동에 관한 연구〉, 《한국기독교신학논총》 91/1(2014.1), 222쪽. [본문으로]
  37. 최현종의 논문 223~224쪽 참조. [본문으로]
  38. 나의 글 〈‘웰빙우파’와 대형교회―문화적 선진화 현상으로서 후발대형교회 읽기〉 참조. [본문으로]
  39. 새뮤얼 헌팅턴, 《제3의 물결―20세기 후반의 민주화》(인간사랑, 2011), 369쪽. [본문으로]
  40. 안병무, 〈하늘도 땅도 공이다〉, 《신학사상》 53(1986 여름) 참조. [본문으로]
  41. 나의 책 《산당을 폐하라―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들에 대한 정치비평적 성서 읽기》(동연, 2016), 머리글 참조. [본문으로]
  42. 주34)에 인용된 글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