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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대로’(大路)에서 헤매기 - 2004, 민중신학의 길 찾기 혹은 해체하기

[시대와 민중신학] 8(2004 07 27)에 수록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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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大路)에서 헤매기

2004, 민중신학의 길 찾기 혹은 해체하기

 

 

 

1

 

야훼께서 오신다 / 사막에 길을 내어라 /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 / 벌판에 큰 길을 내어라.”(이사야서40,3) 사막은 불모의 땅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것도, 이동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그런데 그곳을 뚫고 길이 가설된다. 그것은 야훼가 오는 길인데, 바빌로니아로 유배당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한 길이다. 이사야서는 이것을 큰 길’/‘대로라고 표현하고 있다.

실은 대로, 적어도 바빌로니아로 유배당한 이들이 경험한 대로는 제국의 황제가 가고 오는 길이었다. 그것은 적을 물리치기 위해 떠나는 정복의 길이며 물리친 적의 포로를 끌고 되돌아오는 승리의 길이다. 엄청난 인원과 수많은 말, 많은 마차들이 그를 수행하며 최고의 위용을 드러내며 가고 오는 길이다.

이와 같이 대로는 승자에게 허용된 길이며, 작은 길들이 승자의 대로에 통합된다. 물론 다른 정복자가 나타나면 대로는 그를 위해 존재하며 그를 위한 폭력에 기꺼이 동참한다. 그리하여 대로는 그가 누구이든 승리한 자를 위해 가능한 모든 공간을 통합한다. 그리고 통합된 공간들은 대로를 중심으로 시간표가 편성된다. 그것은 승자의 시간이며, 나아가 통합된 모든 길, 모든 공간들이 준수해야 할 표준 시간이다.

역사적으로 근대라는 시공간적 범주는 승자에 의한 이러한 공간과 시간의 통합이 전례 없이 가속화됨으로써 실현된다. 그리하여 근대의 대로에 통합된 세계는 문명이라는 허울 아래 (현재의) 경험이 통합되며 (과거의) 기억이 통합되고 (미래의) 전망/비전이 통합되어 간다. 그리고 소비자본주의적 언어에 포박된 채 수행되는 오늘날의 지구화의 흐름 속에 대로는 정보의 시공간, 무의식의 시공간 등 새로운 시공간들을 만들어내며 그것까지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걷잡을 수 없는 잡식성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유대인들은 그 대로를 따라 제국 바빌로니아로 왔다. 그들에게 그 길은 이 개선행진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비참한 장식물에 불과한 길, 곧 포로의 길이었다.

1930년대의 저 유명한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오전 2시의 종로네거리가는 비 내리고 있어도 사람들은 그곳에 끊임없다. ......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 그들의 걸음걸이에 역시 피로가 있었다. 그들은 결코 위안받지 못한 슬픔, 고달픔을 그대로 지닌 채 그들이 잠시 잊었던 혹은 잊으려 노력하였던 그들의 집으로 그들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처럼 일본 제국에 식민화된 조선의 백성들은 이렇게 대로에서 피로에 지친 채, “결코 위안받지 못한 슬픔을 갖고 헤매고 있었다.

파업 손해배상액이라는 74천만 원의 부채에 포박되어 더 갈 곳이 없던 한 노동자는 무려 4개월 동안 고공의 크레인 속에 스스로를 유배시킨 채 투쟁하다 위로받을 수 없는 현실의 절망 속에서 스스로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12년간의 입시생활을 마칠 무렵의 한 여학생은 수능시험을 치루다 말고 12층 아파트 옥상에서 지상으로 자기 몸을 내동댕이쳐 버렸다. 시험의 실패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폭력을 예감한 그녀는 절망을 헤쳐 나갈 길을 찾지 못한 채 헤매다 결국 이렇게 스스로를 포기하기로 했던 것이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가 성공주의적 미학의 상징인 미국 중산층적 청교도주의, 아메리칸 뷰티죽음의 예감으로 묘사하고 있듯이, 지구화 블랙홀의 시공간에서 현대의 패배자는 승자가 되려고 몸부림치는 자, 그리하여 어느 정도 승자의 포만감을 누리는 자, 승리자 자신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오늘날 대로죽임의 문화/제도’, 곧 우리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아니 더 행복해지기 위해 벌이는 모든 일이 타자를 희생양 삼는 문화/제도이고 나아가 남에게 전가시켰던 재앙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자기 자신을 저주 아래 놓이게 하는 문화/제도인 것이다. 대로가 상징하는 번영과 발전은 기실 승리한 자들의 전리품에 불과하고, 아직 절망적 실패를 맛보지 않은 자들이 승리를 선망하면서 꿈꾸는 가상 전리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장 뽈 싸르뜨르(Jean-Paul Sartre)의 첫 번째 소설 구토(Le Nausee), 어제까지 일상 속에서 무감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수용되던 것들 하나하나에서 구역질을 하는 이상한 생리현상을 이야기한다. 불연 듯 감지된 세계의 낯섦이 몸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리라. 김수영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 내 몸이 아프다(먼 곳에서부터), 1960년 초의 역사의 흐름에 대한 불편함을 자신의 몸에서 기억해낸다.

민중신학은 바로 한국 근대화의 대로에서 몸으로 체감하는 이러한 낯섦불편함에서 새로운 신학적 사유/실천의 모색을 출발하였다. 증언은 한결같이 1970전태일 사건에서 예수 사건과의 계보학적 연계성을 읽어낸 것이 그 시초였음을 고백한다. 대로의 세계에서 벌이는 자기 보존의 게임에서 파괴될 타자의 표적이 되어버렸다는 절망감에 휩싸인 사람들을 증언하기 위해 자기 몸에 불 지른 이의 세상과의 불편함, 오랜 종교제도의 전통 속에서 자살의 불편함을 희석화시킨 죽음의 기억 양식, 의전(儀典)으로 전락한 신학/신앙을 단숨에 해체시켜 버렸던 것이다. 적어도 일단의 신학자들에게는 말이다. 이들의 새로운 신학적 사유/실천의 출발점은 눈물이었다.

민중은 대로에서 눈물을 흘린다. 왜냐면 그들은 살기 좋은 조국 건설의 역군이 아니라 재물/희생양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화의 대로에서 그 한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진 주검같은 존재, 이러한 민중의 발견은 한국 역사, 성서, 신학에서 침묵을 강요당한 주검들에 관한 고통의 수사학으로 형상화된다. 이른바 증언의 신학이라는, 민중신학자 스스로가 붙인 별칭은 대로의 세계에서 실어증에 걸린 민중을 대언(代言)하기가 이 새로운 신학하는 일의 핵심임을 주장한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논점이 제기된다. 앞의 이사야서40장의 해방의 상상력은 되돌아갈 수 없는 길, 불모의 사막으로 가로막힌 길, 절망 이외에는 어떠한 수단도 척살당한 길, 그 곳에 대로가 가설된다고 주장한다. 역설이다. 정복의 길이요 승자의 개선행진의 길이 아니라, 포로로 끌려가 억류되게 하는 길이 아니라, 바로 포로된 자가 풀리고 억눌림에서 해방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민중신학의 증언의 신학이 제기하는 고통의 수사학은 해방의 수사학을 동반했다. 예수가 그랬듯이 민중은 희생자인 동시에 메시아였다는 것이다. 이른바 민중 메시아론이 그것이다.

민중신학 외부에서는 예수는 민중이지만 민중이 곧 예수는 아니다는 표현을 통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해방은 민중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해방은 신의 영역, 곧 절대타자의 영역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민중 우상주의는 파시즘의 언설을 닮았다는 주장이다.

얼핏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이 비판은 신의 타자성 주장이 담고 있는 주인-노예의 언설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비판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의 반론은 정곡을 찌른다. 이른바 서구의 주류 신학들이 공히 그 내적 논리로 주객 도식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학의 타자들에게 은연중 신을 서양-백인-남성적 가치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비판은 민중신학의 해방의 수사학이 서양의 주객도식을 단순 전도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해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주장을 함축한다. “예수와 민중이 더불어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는 오래된 민중신학의 예수 (사건) 읽기에 관한 함축적 언명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중 메시아론에 관한 국내외 신학계의 논란은 몰이해와 편견으로 점철된 해프닝에 불과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민중신학자들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주객도식의 극복 문제는 원론적인 수준의 명제 제시를 넘어 내적 언어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2

 

1980년대의 변화된 담론 상황은 일단의 소장 민중신학자들에게 새로운 신학적 사유의 실험에 뛰어들게 했다. 그것은 특히 급격하게 늘어난 새로운 신학/신앙운동의 주체들인 청년학생층 중심의 기독교사회운동가들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이른바 맑스주의적 민중신학이 탄생하게 된다. 즉 맑스주의를 신학의 내적 언어로 재구성해내는 작업이다. 이때 민중은 계급해방적 주체로 해석되며, 하느님과 민중간의 연대는 계급해방을 고리로 구체화되었다. 성서와 신학의 이러한 재코드화는 물의 신학(material theology/doing-theology)이라고 명명되었다.

이러한 신학 경향은 특히 하느님나라의 육화, 즉 그 물적 실태에 주목하였는바, 주류적 신학이 끊임없이 유보해온 것을 민중신학은 그때마다의 해방적 잠재태의 관점에서 전유하고자 했다. 물론 그 나라의 오늘날의(contemporary) 실현 가능성은 계급해방을 매개고리로 한다고 보았다.

신의 육화로서의 예수라는 담론은 신의 타자성이 세계 일반에 대한 신의 속성이 아니라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신의 불편함의 표현이라고 재해석되었고, 이사야서40장의 귀향하는 노예들에게 선사된 대로가 해방된 민중의 2이사야 버전의 하느님나라의 잠재태인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그 잠재태는 계급해방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는 확신으로 표현되었다. 그것은 증언보다는 변혁을 신학적 사유/실천의 과제로서 부각되게 한다. 그리하여 이 시기 민중신학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담는 변혁의 신학을 제창한다.

이로써 해방의 대로는 더 이상 역설이 아닌, 필연적인 당위적 위상을 지닌다. 나아가 그것은 궁극을 향한 진전된 현재에 관한 전망이다. 즉 진보에 대한 낙관적 믿음이 이 시기 민중신학의 해방의 영성이었던 것이다.

1980년대의 이러한 새로운 경향을 일컬어 2세대 민중신학이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었다. 자연 1970년대적 민중신학 경향은 1세대로서 명명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민중신학을 통시적으로 분류하는 개념적 틀인 세대론(genealogy)이 발전하게 된다.

이것은 통시적인 경향간의 차이와 연계성을 읽는 방식이며, ‘민중신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민중신학 다운설명체계를 보여준다. 요약하자면, 민중신학은 당대(contemporarity)위기의 시각에서 보며, 그것의 감각적 발현인 불편함을 읽기 위해 당대적 위기 이론과 대화하면서 신학 하는 일(doing-theology)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즉 신학이론들이 일반적으로 신학사적인 담론적 맥락과의 대화 과정에서 자신의 이론적 위상을 구성해간 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전혀 새로운 방식의 신학적 사유 양식이라는 점이,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꿰뚫는 연계성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학은 자기 정체성을 담기 위한 방식으로 조직신학을 발전시켰다. 이 방식은 통시적이라기보다는 공시적인 분류학으로, 이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신학적 가치를 설명함으로써 신학들 간의 차이와 연계성을 해석한다. 시공간적 맥락성은 신학담론의 외재적 요소일 뿐이며, 그러한 맥락에 좌우되지 않는 순수한 신학/신앙 체계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일반적 신학들의 공시적인 분류학을 아우르고 있다. 반면 흥미롭게도 민중신학의 세대론은 각 시공간마다 다른 위기 읽기의 지평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신학의 존재 가능성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대론은 민중신학이 내적으로 완성적인 담론이 아닌, ‘시대와의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대화적 특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대론은 민중신학을 다른 신학들과는 구분되는 하나의 새로운 신학운동으로서의 위상을 설명하는 데 탁월한 방식이다. 한데 문제는 이것이 민중신학의 한 흐름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다. 많은 민중신학자들은 1980년대 민중신학의 경향을 2세대라고 명명하는 데 관여했으면서도, 이러한 이름짓기로부터 스스로가 소외된 것에 불평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민중신학이라는 이름 아래 수행되는 작업들 전체를 아우르는 조감도를 그릴 필요가 있다. , 이런 식의 논의는그 이유는 뒤에서 설명하겠지만민중신학이 발명한 새로운 신학하기의 전형에 관한 설명적 특성이 약화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3

 

지향이나 동인적 결속에 국한되지 않는, 민중신학자들 전체를 포괄하는 기구인 한국민중신학회는 정관의 회원 규정에서 신학대학의 교수, 민중신학 연구자, 민중선교지도자, 민중목회자등이 가입 자격을 갖는다고 말한다. 비록 짜임새 있는 규정은 아니지만, 신학 제도권 내부의 연구자(신학대학 교수)와 외부의 연구자(민중신학 연구자)로 나뉘어 있고, 학문적 생산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교회와 그 외부의 활동가들도 민중신학 담론을 생산유통하는 주역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던 현실을 반영하려는 의지가 역력하다. 특히 이 규정 속에는 민중신학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학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신학운동임이 시사되고 있다.

아무튼 이런 방식으로 범주화하면, 민중신학 활동가는 거의 모두가 포괄된다고 할 수 있다. 이 틀에 준해서 민중신학의 계통도를 아래와 같이 그릴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나의 주관이 강하게 드러난 조감도일 뿐이다.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이후

 

 

 

 

 

연구자 영역

(민중신학 제1세대)

 

제도 안

 

제도 안

 

 

 

제도 밖(민중신학 제2세대)

 

제도 밖(민중신학 제3세대)

 

 

활동가 영역

(민중신학 주변의 운동)

 

활동가
(민중신학적 운동의 형성)

 

활동가

(민중신학적 운동의 해체)

 

 


이 표에서 보듯 민중신학의 세대론은 대체로 신학 제도 외부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들의 신학적 입장을 반영한다. 반면 제도 내부의 연구자들은 대체로 영미권이나 독일에서 민중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 제도 내부로 진입하거나 혹은 진입을 준비하는 이들의 신학적 관심과 맞물린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들에게서 민중신학적 연구활동은 대체로 서양의 신학적 전통과의 대화를 통해서 구체화된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신학하는 방법에서 서양 신학의 주된 서술 방식인 공시적 분류 체계에 맞추려는 노력이 두드러진다.[각주:1] 이런 서술 형식에 대한 관심은 내용 구성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가령 민중 메시아론 같은, 서양 신학의 전통과 대화하는 데 결정적인 어려움을 주는 논점들을 폐기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편 민중신학을 서술하는 일은 한국 사회의 위기를 다루는 작업을 동반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도 많은 경우 서양 신학계의 한국에 대한 호기심에 맞추려는 경향이 농후하게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제도 내부의 민중신학 작업은 대체로 특색 없는 연구물을 낳았을 뿐이다. 심지어는 오리엘탈리즘적 색체를 강하게 띤 부정적 성과물에 지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표절이 난무한 불량 연구물들 또한 꽤 있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서양에서 민중신학 같은 정치신학에 대한 관심이 퇴조하는 1990년대 이후에는, 제도권 내부의 민중신학 자체가 괴멸되는 양상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각주:2]

한편 민중신학이 태동하기 전이나 태동 무렵인 1970년대 전후에는 주로 서양의 급진신학적 전통을 참조하면서 발전하던 기독교 사회운동이, 1980년대 이후에는 주로 2030대 청년층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민중신학적 관심에 경도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특히 민중교회운동이나 기독교 노동운동빈민운동, 그리고 기독교 청년운동 등의 영역에서 민중신학과의 대화가 활발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특히 1990년대 이후 기독교사회운동의 급속한 몰락, 그리고 민중교회의 탈민중신학 선언 등, 민중신학적 운동 영역은 급속한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각주:3]

한편 제도권 외부의 민중신학 연구자들은 과격한 교회 비판적 기조를 견지하였고, 비판적 이론들과 제휴하고 기독교사회운동과의 연대에 주력하는 경향을 보다 강하게 띤 반면, 주류의 신학 담론과의 연속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소홀이 하였다. 그것은 신학과 교회의 해체론을 강조하는 반신학적 태도로 이어지며, 그 결과 민중신학의 제도권 외부 영역은 그 내부와의 대화의 공간을 상실하였다. 실제로 최근 많은 민중신학 연구자들은 비기독교적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나는 이상의 조감도를 둘러싼 간략한 비판적 논의에서 민중신학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세대론적 흐름을 통해 살펴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독자들에게 설득하고자 했다. 그것은 민중신학의 신학적 특색을 가장 명료하게 발전시켜온 영역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재 생존한 거의 유일한 민중신학의 활동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는 최근의 한국 사회의 위기 구조의 변동과 맞물려서 민중신학의 제3세대는 어떻게 신학적 담론을 모색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겠다.

 

4

 

여기서 다시 이사야서40장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바빌로니아아 유배된 이스라엘은 얼마 되지 않아서 예언자의 선포처럼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된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조상들이 정착했던 그 곳으로 다시 갈 수 있다는 것은 조상 대대로 전수받은 정체성의 회복을 상징한다. 정착한다는 것, 항상 거기 있을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집의 조건은 인간에게 자기 존재에 대한 의미, 곧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의식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사야서의 예언자가 체험하지 못한 해방 이후의 현실, 예언자가 미쳐 상상할 수 없었던 그 현실은 그가 그토록 꿈꾸어오던 희망의 세상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귀환자 집단은 다시 자기 집을 본거지 삼아 대로를 꿈꾸며 달렸고, 제국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어느 정도 대로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식민화된 이들의 꿈을 절망의 나락 속으로 날려 보냈다.

바로 이 시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의 근거인 신의 이야기로서의 성서를 편찬해낸다. 그리고 한 성서 연구자의 비판적 독설처럼, 이러한 유대의 신의 역사, 유대주의적 상앙사 속에서 야훼는 실패한 팔레스티나 민중의 목소리를 침묵의 강 속에 밀어 넣어 버리고 말았다.[각주:4]

해방은 해방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로의 법칙에 따라 성공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전리품이고, 성공을 선망하는 문화에 순응하는 자에게만 환상으로 남겨진 희망의 선물일 뿐이다. 바로 이와 같은 당혹스러움이 민중신학의 제3세대적 인식의 출발점이다.

3세대 민중신학1980년대의 경험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2세대의 영향망 아래 있다. 그러나 그 경험을 1990년대를 거치면서 다르게 기억해냄으로써 신학하기의 새로운 문제설정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다른 기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우선 1987년 이후의 일련의 흐름을 좌절된 하느님나라의 체험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민중신학의 비판자들이 흔히 오해하듯이, 하느님나라를 세속 권력 구조의 재편으로 동일시한 결과는 전혀 아니다. 그보다는 그 나라를 향한 도정을 목적론적/진화론적으로 이해하였던 신학적 신념의 좌절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목적론적 이해는 선한 우리악한 저들이라는 이분 도식을 통해 악한 저들이 지배하는 이 세계가 점점 지양되어 하느님나라에 근접해 가고 있는가를 물음으로써 역사를 해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단선적 궤도를 설정하면서 각 시점마다 자명한 선한 우리와 하느님간의 동맹을 통해 하느님나라의 그때마다의 잠재태를 설정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신의 독백에서 역사의 전개를 보려했던 전통적인 신학적 주객 이분법을 넘어섰지만, ‘우리와 저들이라는 이분법적 틀 속에 역사의 전개를 환원시키고 있다.[각주:5] 그것은 민중 우상주의의 지양을 신학 논리로 내재화하지 못한, 민중신학의 이론적 위기였다. 1980년대 말의 실패한 하느님나라경험은 민중신학의 실패이기도 했던 것이다.[각주:6]

3세대는 이러한 인식이 우리의 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 세계의 질서가 우리의 몸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우리가 그 질서를 악하다고 비판할 때조차도.

이러한 얘기는 근대성 논의와 관련된다. 근대란 사회의 정당화 메커니즘이 사람들 각자의 몸에 각인되는 사회 제도의 형성과 관련된 개념이다. 근대 국민국가란 사회의 기억을 몸의 기억으로 효과적으로 전이시키는 데 성공적인 제도들을 창출함으로써, -귀족국가의 전근대적 제도화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이러한 근대적인 성공적 제도화의 논리를 합리화라고 한다. 즉 합리화된 사회일수록 몸과 사회의 기억은 더욱 불편하지 않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혁명/변혁의 시대’ 1980년대를 좌절된 하느님나라로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의 몸이 이 세계(의 질서)를 불편해 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목적론적 사유의 실패를 의미한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적어도 잠정적인) 대안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우리가 극복하고자 했던 이 세계의 질서와 닮아 있다는, 아니 적어도 닮을 수 있다는 점을 성찰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 세계를 비판하는 우리의 인식이, 말이, 행동이 우리가 비판해마지 않았던 자들의 그것들과 닮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 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의 1990년대적 성찰은, 마치 김수영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 내 몸이 아프다고 말해 버린 것, 내면화된 악, 우리 몸의 일부가 된 악을 구역질하는 몸의 자정작용을 시인의 감수성이 읽어버린 것과 유비된다.

왜 그런 감수성을 잃어버린 것일까? 민중신학이 한국 근대의 위기를 비합리성의 위기로 보려했던, 그리하여 진정한근대적 합리주의를 복권시키려 했던 역사 인식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이때 민중신학자들이 세계를 보며 느꼈던 낯섦은 비합리성의 현실, 부조리한 현실로 번역된다.

그것은 결국 진보주의적인 근대적 합리성의 진정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욕망을 낳았다. 이러한 앎에의 의지는 건국 이후 한국의 역사를 비루한 것으로 전락시켜버린 진리의 총체적 위기를 대안적 진리에 대한 확신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진실 게임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1980년대의 비판적 담론들 대다수가 가졌던 생각, 이제야 진리를 알았다는 믿음을 민중신학도 공유했다는 것을 뜻한다. 안다는 신념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였다.

그런데 예수는 그러한 정체성을 끊임없이 뒤흔들어 놓는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가 소설 정체성(L'Identité)에서 시사하듯이, 안다는 확신은 지극히 불확실한 모호한 인식에 불과했다. 나아가 예수는 안다는 확신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강변했다. 가령 바리사이들이 율법을 대중화하여 의인과 죄인을 나누려할 때, 자기들은 하느님이 판정할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는 신념이 그 속에 깔려 있다. 예수는 바로 이러한 안다는 믿음과 투쟁한다. 궁극적으로 그는 그들에 의해 구축된 야훼 종교 제도가 앎의 의지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신학의 제3세대가 다시 의제화했던 역사의 예수라는 문제설정은 바로 이러한 앎에의 의지를 해체하려는 탈신학/반신학적 지향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이른바 깊이의 신학’, 즉 내면의 인식의 질서를 민중신학적 비판의 지점으로 전면화하려는 시각을 함축한다.

나아가 몰래카메라로 뒤덮인 세상, 심지어는 내면까지, 아니 전생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몰래카메라의 세상, 그런 세상을 하나의 기준에 의해 모든 것을 묶어보려는 대로주의의 욕구, 그 욕구의 무의식적 정치학을 해체적으로 문제시하는 것, 바로 이것이 민중신학의 제3세대가 명명한 문화정치학적 신학하기의 요체였다.

대로주의의 욕구는 ‘1987년 이후의 체제라는 삶의 구석구석에 펼쳐져 있다. 바로 이것이 1987년의 좌절된 경험의 실체였다. 1987년 체제의 민주화는 합리화된 악이 본격적으로 구조화되는 계기였다는 것이다. 왕이나 귀족에게서, 일인 독재자에게서 시민적 대중에게로 권력을 배분하는 사회적 과정이 민주화를 의미한다면, 이것은 동시에 법적이고 규범적으로 누가 시민인가를 결정하는 사회 제도화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곧 비시민적 존재의 체계적인 배제를 전제한 체제라는 것을 수반한다. 악으로 상징화된 존재, 혹은 무능력자로 상징화된 존재 등은 그러한 비시민의 범주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민주화는, 그 역사의 위대한 과정은 비시민을 보다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사회적 제도화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몸의 질서는 또 다시 야만을 은폐하는, 아니 더욱 교묘하게 은폐하는 장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능력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는 데 있다. 대로로 전 세계가 병합되어 가는 지구화 과정의 오늘날의 세상은 이러한 앎의 의지의 능력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세상은 이라는 기준에 따라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다. 집을 향한 욕망, 자식에 대한 욕망, 어른이 되고 싶다는 욕망, 지식을 획득하고 싶다는 욕망, ......, 이 모든 욕망들이 에 종속된 채 성공과 실패가 갈리고 있는 것이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실업 상태의 조선의 한 지식인은 대로를 헤매고있다. “요사이 구보는 고독을 두려워한다.”는 표현처럼, 대로를 방황하는 자는 자신이 대로에서 목적 없이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포심을 갖는다. 그러한 공포심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면서 말이다.

그런데 예수도 대로를 헤매고 있다. 그는 어느 곳에도 안주할 곳이 없어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하는 자신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의 헤맴은 자발적 헤맴이다. 그는 진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한 곳에 자신의 집을 택해서 다른 집을 파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배회자로 진리들 간의 쟁투 자체와 투쟁을 벌인다.

그가 투쟁하는 그곳에는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민중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아래서 위안 받지 못한 채살고 있는 실패자들인 국민/시민/민중이 살고 있다. 바로 그러한 현실을 은폐하는 대로주의와 예수는 일전을 벌였던 것이다. 그리고 제3세대 민중신학은 이 예수가 오늘도 대로에서 헤매고 있는 이들의 얼굴로 우리와 대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대로에서 길을 잃었다, 아니 스스로 배회하고 있다.

 

 

참고:  이 글의 제목에 대한 배경설


 

pre-modern

modern

post/radical modern

social integration(권력의 내적 차원)

지역공동체

분리

국민국가

통합

지구

통합

system integration(권력의 외적 차원)

도시

국민국가

지구

'대로

이동 - 연계성(관 계) - 관계의/ 확장성

정주 - 이질성(정체성) - 자아/주체의 폐쇄성


위의 에서 보듯 대로는 이동 능력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를 구성하는 차원으로, 통합의 두 차원은 대로를 통한 관계의 확장 능력에 크게 의존한다.

그런데 대로는 이동의 방향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권력의 이동 방향이기도 하다. 한데 2003, 즉 제3세대 민중신학이 자기 자신의 역사를 성찰적으로 조명해보는 시점에서 민중신학은 이러한 대로에서 헤매고 있다. 그것은 민중신학 내부에서는 (대안의)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이라는 관점을 강조하거나 혹은 길의 방향성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다. 아무튼 민중신학은 대로에서 헤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제3세대의 두 경향 가운데, 후자에 편향되어 있음을 밝힌다

  1. 가령, 민중신학의 ‘구원론’, ‘죄론’, ‘교회론’을 구성하려는 논의들 등. [본문으로]
  2. 한국 교회와 신학대학들에서 민중신학은 강력한 제지를 당했다. 반면 세계 신학계나 교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신학으로 민중신학을 높이 평가해왔다. 그런데 제도권 내부의 민중신학이 1980년대 후반 이후 더 이상 창조적인 작업을 생산해내지 못하게 되자, 서양의 신학계나 교회는 민중신학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낮아졌다. 이에 제도권 내부의 민중신학은 존속의 위기를 겪게 된다. [본문으로]
  3. 제2세대 민중신학은 기독교사회운동, 청년운동을 자양분 삼아 전개됐는데, 그러한 운동이 소멸됨에 따라 제2세대 민중신학의 존립은 위기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민중신학 내외부에서 이들에 대한 비판이 활발해졌다. 대개는 별로 의미있는 비판이 아니었지만, 신학적 사유/실천 능력이 소진된 2세대 민중신학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괴멸되어 갔다. 제3세대 민중신학은 이러한 ‘폐허’ 상황에서 출발한다. 이는 마치 독일의 폐허문학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치의 실패로 인해에 폐허가 된 독일 사회, 그러나 더 나아가 폐허 상황은 모든 독일 문학, 독일인 등의 심성 속에 자리 잡은 ‘나치적인 것’으로 인해 모든 존재 자체의 실상이기도 했다. 이에 하인리히 뵐이나 귄터 그라스 등에 의한 나치 청산 작업은 ‘내면의 나치’에 대한 반성적 청산까지도 수반하였다. 민중신학의 제3세대는 이처럼 제2세대 민중신학의 실패를 내면화된 한국 근대화의 대로주의에 대한 비성찰성에서 바라보고 있다. [본문으로]
  4. Keith Whitelam의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참조. [본문으로]
  5. 이것은 하느님나라의 잠재태를 향한 제도 개혁/변혁에 치중하는 신학적 태도로 나타났는데, 일각에는 이것을 ‘비신학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탈신학적 신학’을 주장하는 민중신학에 있어서 그러한 비난은 그야말로 비난을 위한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하느님나라와 기존의 제도간의 긴장을 극도로 과장해서 이해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민중신학이 구상하는 대안 제도를 과도하게/맹목적으로 신뢰하는 태도/인식에서 민중신학의 신학이론적 위기를 읽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민중신학 담론이 ‘비판’보다는 ‘운동’을 중요시한 데서 비롯된 부정적 결과다. 그런 점에서 향후의 과제는 ‘민중신학적 비평’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6. 서구신학의 주객 이분법을 넘어서겠다고 주장한 민중신학의 논점은 ‘우리 대 적’이라는 선-악 이분법을 극복하지 못함으로 인해, 선언적인 주장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