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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오늘 한국에서 예수에게 솔직하다는 것은

[동아일보] 2003년 6월23일자 책읽기 세상보기 코너에 실린 서평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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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에서 예수에게 솔직하다는 것은

 

 

최근 한국 기독교는 위기에 처해 있다. 올 초에 두 차례에 걸쳐 있었던 시청 집회나 지난해의 예수는 신화다출간을 둘러싼 기독교계의 반발 사태는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대해 기독교계 내에서는 대단히 소란스러웠지만, 대중매체는 거의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다. 최근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만나고 싶어 하지도, 그들로부터 뭔가를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부정적 결합이기는 하지만, 198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교회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와 궁합이 가장 잘 맞는 시민사회의 일원이었다. “잘 살아보자라는 표어로 상징되는 한국 근대의 시민종교가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향해 돌진하는(rust-to) 근대화의 문화 현상을 가리킨다면, 기독교 신앙의 승리주의는 한국의 돌진적 근대의 쌍생아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잘 살고 싶다는 한국 대중의 무의식적 선망의 구조에 기독교는 매우 친화적으로 연계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교회가 이제는 대중의 혐오의 대상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것은 1990년대 이후의 한국의 사회 문화적 변동과 무관하지 않다. 돌진적 근대화 담론이 퇴색하고, 사회관계의 수평적 차원에 대한 요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민주화의 문제가 오늘날 한국 근대 담론의 중요한 요소로 개입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를 향한 대중의 혐오감의 배후에는 교회가 사회 전반의 민주화에 역행하는 존재라는 이미지가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이가 있다면, 그에게 나는 예수에게 솔직히(1996;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를 소개하고 싶다. 저자인 로버트 펑크는 예수의 특징적인 언술 형식인 비유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다. 그리고 최근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예수에 관한 역사적 연구를 주도하는 인물이다. 그것은 특히 그가 최근의 예수 연구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연구 포럼인 예수 세미나의 창시자이자, 이 연구 집단의 지휘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예수 세미나의 동료이자 연구사적으로 이 분야 최고 문제작의 하나로 꼽히는 역사적 예수지중해 지역의 한 유대인 농부의 생애(1991; 한국기독교연구소, 2000)를 저술한 장 도미닉 크로싼은 펑크의 가장 중요한 동료의자, 펑크가 구축한 새로운 연구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의 하나였다.

펑크는 이 책에서 오늘날 예수에게 솔직하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를 묻고 있다. 이는 예수에게 솔직할 수 없게 하는 오늘날의 신앙 상황을 전제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러한 장애물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면서 하나하나 제거해나간다. 비로소 예수가 누구였으며, 어떤 일을 벌였는지가 드러난다. 예수는 종교 제도 속에 박제된 우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한복판에서 고통의 구조, 그 거짓 지혜와 일전을 벌인 전복적인 지혜의 예언자였다.

그런데 우상파괴자였던 예수를 교회는 또 하나의 우상으로 변질시켰다. 그것은 지배적인 교회가 예수에게 솔직하기보다는 예수라는 상품을 마케팅해온 결과였다. 그리하여 시대의 고통을 야기하는 권위 구조를 향한 예수의 폭발력은 지배 문화 속에 순화되어(domesticated) 버렸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 책은 대단히 대중적이다. 동시에 매우 고급의 정보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늘 우리의 맥락에서 예수의 의미를 묻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런데 이 책이 예수에게 솔직하다는 것의 의미를 미국적 문화 상황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독자는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에서 예수에게 솔직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펑크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대답해야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