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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포스트근대적 보수주의로의 파괴적 날개짓

격월간 [참여불교](2008. 2. 통권 44호) 특집1_2008년 종교트랜드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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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근대적 보수주의로의 파괴적 날개짓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시사하는 시대적 변화의 징후를 읽어내는 것은 오늘 우리사회의 큰 숙제가 되었다. 그것은 지난 1987년 이후 20년간 지속되던 하나의 사회적 추세가 맞닥뜨린 전환의 상황으로 작금의 현상을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한 문제의식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한국개신교를 진단해보려는 시도다.

지난 126일 방영된 문화방송의 시사다큐 뉴스후에서는 개신교의 초대형교회와 그 목회자들의 면세가 과연 타당한가에 관한 일종의 고발형식의 프로를 방영했다. 기독교가 대단히 강력한 사회적 압력단체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매스미디어가 기독교를 문제시하는 것은, 특히 기독교의 가장 막강한 권력집단인 초대형교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것은 매우 엄밀한 증거와 상당한 사회적 설득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방송계의 불문율이다.

물론 이런 사태는 그리 낯설지 않다. 최근 개신교회의 추문에 관한 사회적 의제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비난과 개선 요구가 빗발쳤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한국교회, 특히 대형교회에서 진지한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징후는 잘 보이지 않고 반대로 시민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절 누려왔던 특권을 지속시키려는 다른 방법을 찾는 데 전력하고 있는 양상이 보다 뚜렷하게 포착된다. 다른 양상이란, 이미 적지 아니 지적된 바,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로 대표되는 사회적 권력화 현상이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한국교회는 한국의 근대국가가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권력화된 사회적 집단이었다는 점이다. 이미 미 군정기에 상당수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통역관 등으로 해방정국의 정치적 재편구도에 개입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것은 제1공화국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이후 한국 정부를 구성하는 인적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는 주된 계기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해방정국이나 한국전쟁이라는 예외상황을 제외하면, 한국교회의 신앙은 공공연한 정치개입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경향을 띠었다. 서구 근대국가 형성기의 특수한 사정이 반영된, 이른바 정교분리 신앙이 재맥락화되지 않은 채 강령적으로 이식된 결과다. 더욱이 이러한 한국교회의 신앙적 심성구조는 최초의 근대적 국가 형성에 영향을 미쳐 정교분리의 법적 제도화가 마련되어 교회와 국가의 연동체계가 갖추어졌다.

이때 교회와 국가를 아우르는 정교분리의 제도화는 교회가 현존하는 국가체제의 도전세력으로 등장하지 않고 또 비공식적으로 국가의 정책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존속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국가로부터 일정한 권력 자원을 할당받는 특혜구조로 이어진다. 하여 전 인구의 5%도 미치지 못 하는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과잉권력의 상황에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특권 구조는 1960년대 이후 압축적 성장 시대를 맞이하여 국가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 특히 이농집단의 광범위한 도시 유입의 상황에서, 교회는 이주민들을 대대적으로 수용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규모에 있어서도 한국 최대 종교 세력의 하나로 부상하게 된다. 이때 정교분리의 신앙은 이주민들이 체험한 모순적 심성구조가 안착할 수 있는 교회적 자원으로 작동하였다. 이주민들은 더 이상 굶주리지 않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산업화의 대열에 열정적으로 동참하여, 자신의 존재론적 준거 공간(準據空間, referential space)인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로의 이주를 감행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체험한 자본주의적 도시 공간은 지극히 야만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이렇게 자본주의에 친화적이면서 공포심에 가득한 모순적인 심성은 압축적 발전을 추동하는 국가와 동조적이면서도 동시에 피안적인 공간으로 자리잡은 정교분리의 장소로서의 교회에 안착하기에 용이한 양상을 띠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사람들에게 한편으로는 근대화의 상징처럼 이해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박한 현실에서 위안을 주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내막이야 어떠하든, 당시의 교회는 대체로 호감 가는 곳으로서 사회적으로 인지되는 경향이 있었다. 한데 이러한 교회의 자부심은 민주화 시대를 경유하면서 급반전의 상황에 직면했다. 교회는 제국주의적 식민주의가 활개치는 공간이고 권위주의 시대의 부조리함이 여과되지 않은 채 통용되는 공간이며, 그러한 맥락에서 형성된 한국적 보수주의가 판치는 공간으로 간주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은 한국 민주화의 시대를 신앙적 위기의 시대, 반동의 시대로 인식하였던 듯하다. 바로 이러한 문제인식이 교회로 하여금 특단의 대응전략을 취하게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정치세력화인 것이다. 물론 권위주의적 시대의 압축적 성장과 친화적인 감각을 지양하고 민주화 시대의 감각과 걸맞는 신앙적 심성이 필요하다는 내부의 개혁 요구가 없지 않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의 추세는 정치세력화를 통한 권력게임에 더욱 몰입하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정치세력화의 전략을 택한 데는 한국교회의 다수파인 원리주의적 기독교가 늘 준거로 삼아온 미국의 원리주의적 기독교를 모방한 결과다. 이를 위해서는 정교분리적인 소극적이고 음성적인 정치개입을 포기하고 공공연한 정치적 세력으로 재편되는 형태로의 제도적 변화를 필요로 한다. 미국교회가 1980년대 초부터 이러한 형식의 신앙적 제도화를 본격화하였다면, 한국교회는 2천년대 이후 이러한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교회의 정치세력화는 새로운 형식의 사회적 권력화를 시사한다.

자 이제, 좀더 직접적으로 2008년 한국개신교의 트랜드를 이야기해야겠다. 말했듯이 전반적으로 한국교회는 정치세력화의 행보를 더욱 적극적으로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한국교회의 시대적 부조응의 위기를 계기적으로 드러냈던 민주화 세력의 정부를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시키고 보다 자신들과 친화적인 정부를 등장시키는 데 중대한 일조를 했다는 자만심이 이와 같은 사회 권력화의 행보에 촉매역할을 할 것이 예측된다.

그런데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만은 않다. 초대형교회들의 신앙문화적 심성이 이미 어느 정도 내적으로 분화된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근대화가 권위주의적 압축성장의 시대에서 민주화와 지구화가 중첩되면서 나타나는 다른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압축성장 시대에 대형화에 성공한 교회들이 이농자들을 흡수하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였고, 거기에는 한편으로는 자본 친화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으로부터의 피안공간을 내포한 이중적 신앙문화가 제도화되는 과정이 수반되었다.

한데 한국의 근대화가 개발의 지역적 차등화를 통해 수행되는 과정에서 대형교회들이 속속 강남권으로 이주하였고, 또 강남권에서 새로 부상한 교회들이 등장하였다. 이들 강남권에서 새롭게 신앙문화의 재편이 시도되는데, 대체로 이주민의 존재론적 불안보다는 성공한 사회 안정계층의 적극적인 심성이 격려 고무되는 신앙문화가 강조되는 경향을 지닌다. 이것을 다시 두 가지 경향으로 대별되는 양상을 지니는데, 하나는 품격 있는 중상류층의 심성을 반영한 이른바 명품신앙의 문화가 강조되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중상류층의 보수적인 문화적 자유주의를 반영하는 신앙이 강조되는 경향이다. 나는 이러한 최근의 두 경향을 통틀어 후발대형교회적 신앙문화로서 명명한 바 있는데, 이들 후발대형교회들은 최근의 정치세력화에 동조하면서도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다소 뒤쳐져 있는 듯이 보인다. 그보다는 기독교NGO를 통해 시민사회와의 소통에 좀더 적극적인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들은 문화적 보수주의 기조를 띠고 사회적 소통에 임하고 있다.

요약하면 최근 개신교회는 한국의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선발대형교회가 보다 정치세력화를 통해 자신의 신앙적 입장을 사회적으로 관철시키려는 데 앞장서고 있다면, 후발대형교회는 시민사회와의 접촉면을 넓히면서 보수주의를 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 흐름은,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갈등적이기보다는 연대망을 형성하며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언급할 것은, 이런 흐름은 양적으로 한국교회를 대변하고 있지만, 작지만 의미 있는 또 다른 흐름이 이런 기독교의 지배적인 추세에 저항하면서, 초기 예수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사회세력이 권력게임에 몰두하고 있을 때 작은이들의 고통과 함께 하면서 해방의 신앙전통을 형성한 것처럼, 이런 전통을 계승하는 시도들 또한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