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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위기관리도 발전의 도구인가

[한겨레신문] 2010.09.28자 칼럼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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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도 발전의 도구인가

 

 

사흘 지나 대피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물이 찼던 흔적이 담벼락을 타고 가로로 새겨져 있다. 내 키만큼 잠겼다. 유출된 석유가 물 위에 떠 있던 탓에, 잠겼던 흔적 제일 윗선에 거무스름한 선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 아직 반지하층엔 천장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고, 양수기로 물을 퍼내는 데만 이틀이 걸렸다. 1층인 우리 집은 무릎 높이만큼 물이 들었다. 나무로 된 가구들은 다 버려야 했다. 전기제품, 쇠나 플라스틱 물건들, 책들은 닦아내고 말렸다. 바닥과 벽을 수도 없이 닦고 또 닦았다. 하지만 물에 닿은 벽지나 물건들은 결코 본모습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서야 비로소 집은 잠잘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일이 남았다. 재산 손실이 너무 커 모두들 막막해 보였다. 골목 끝 구멍가게 아들은 휴학을 하고 건설노동자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옷 하청을 하던 가내공장들이 폐업을 했고, 수십 명의 어린 여공들은 다시 살 길을 찾아 어디론가 떠났다.

대학생이던 시절 내 기억에도 그때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학교까지 한 시간 반 거리를 적어도 몇달은 걸어 다녔다. 아르바이트를 몇개 하게 되면서 비로소 차비와 점심, 저녁 밥값이 생겼다. 그렇게 온 식구가 경제적 생존 투쟁을 시작할 무렵 벽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석유가 벽에 스며든 듯했다. 그리고 적어도 10년 넘게 그 악취와 살았다. 내가 겪은 수해의 기억이다. 거의 30년이 되어 가지만 여전히 생생하다. 하루 낮밤의 엄청난 비와 불과 며칠을 머문 물의 흔적은 이렇게 오래도록 깊은 골을 새겨놓았다.

지난 21일 집중호우로 전국 곳곳이 침수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 수해지역을 방문해서 한 말이 구설에 올랐다. “기왕에 그렇게 된 거 마음 편안하게 먹으세요.” 따지고 보면 딱히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위로치고는 고약하다. 더구나 대통령의 말이니 더욱 그렇다. 어찌 들으면 국가가 해줄 것은 별로 없으니 그럭저럭 견뎌보라는 야박한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평생 수해를 겪어볼 것 같지 않은 이들의 사치스런 말이 아닌가. 남의 일인데도 괜히 화가 치민다.

아무튼 아직까지 국가나 사회는 재난당한 이들에 대해 쓸만한 대책을 강구하는 듯이 보이지 않는다. 뉴스에서도 별로 다루지 않았고, 늘 하던 수재의연금 모금 행사도 거의 없다. 수재민의 범위나 정도가 크지 않아서인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의혹은 남는다. 누구 말대로 강남구나 과천시가 침수됐어도 그렇겠나.

살찐 것도 계급 편향성을 지닌다던데, 수해 역시 그렇다. 우리의 국가나 지자체의 수방대책이 계급적 편향성을 띤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재난을 예방하건 감당하건 사회적 정치적 의제를 통해 정부기구를 압박할 능력이 평등하지 않으니 그렇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가나 지자체가 그런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사회적 약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공공적 기능을 책임 맡은 주체로서 마땅한 일이 아닌가. 한데 그 자명한 것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다.

심지어 정부나 지자체들은 수해에 대한 위기관리를 사회발전전략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4대강이 그런 예겠다. 누구를 위한 발전전략인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좋은 뜻으로 보아도 위기관리를 잠재적 피해자인 취약계층의 삶의 현실보다 발전계획 중심으로 정책화한다는 게 과연 공적 주체가 할 일인가. 한데 내 생각에, 대통령이 수재를 당한 대중에게 기왕에 그렇게 된 거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는 현실에서 뭐가 뾰족한 게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