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8·15, 역사적 사죄와 사면복권

[한겨레신문] 2010.08.17자 칼럼 

------------------------------------


8·15, 역사적 사죄와 사면복권

 


한반도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일본 총리 간 나오토는 식민지 지배는 한국인의 뜻에 반하여 이뤄졌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도 사임하기 전에 일본의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 반성할 것은 반성하겠다는 태도를 표명한 바 있다.

자민당 정권도 간간이 전쟁범죄에 대한 조심스런 사죄의 발언을 하곤 했다. 호소카와 전 총리도 1993, 대동아전쟁은 침략전쟁이었고 그로 인해 한국 등 많은 나라들이 고통을 겪은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1995, 무라야마 당시 총리는 통절의 반성이라는 표현으로 역사적 범죄에 대한 사과를 표명하였다.

8·15를 맞는 일본 정부의 풍경은 그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전쟁 문제에 대한 위악적 태도로 전세계로부터 발목 잡히지 않는, 전후에 이룩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성과만으로 전세계를 향해 엉거주춤하지 않고 자부심을 과시하는 새로운 제국의 꿈’, 그것이 그네들의 청산의 정치가 담고 있는 속내일 것이다. ‘새로운 제국의 꿈이라는 게 섬뜩하게 느껴지지만, 일본의 정치는 이렇게 국민에게 낡은 역사를 청산하고 새 시대의 역사의 주역이 될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

그런데 질문 하나가 생각 안으로 끼어든다. 한국 정부는 왜 사죄하지 않는가?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큰 희생을 치른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돌보지 않은 역사의 과오에 대해 왜 정부는 말이 없는가?

피해자라는 자의식은 분명 한국 정부가 사회를 통합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통합에 토대를 두고 빠른 성장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 또한 대일 외교에서 한국은 늘 일본에 큰소리치며 국제정치적 자존성을 확보해왔다. 한국의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다. 일본에 대해 도덕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나쁜 역사의 피해자라는 자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그 피해자를 동포라며 동일시해왔던 우리 사회는 정작 이들에게 아무런 사죄도 표하지 않았고 보상도 거의 없었다. 부끄럽게도 재일조선인의 경우,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심지어 남한 정부는 피해자의 고통을 담보로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경제개발계획의 뿌리자본이 되었음은 모두가 아는 바다.

한국 사회 전반은 그것에 대해 그다지 죄의식이 없다. 아니 사실 자체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정에서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서 역사적 사죄를 표명할 수는 없는가? 그렇게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여는 정치를 선도적으로 보여줄 수는 없는가.

한데 8·15를 맞아 나는 한국 정부가 갖고 있는 가장 큰 관심 하나를 보아야 했다. 바로 사면 복권의 정치. 이른바 광복절 특사는 올해에도 2500명에 달하는 이들에게 사면 복권 감형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이번 특사의 주요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법적 심판을 받고 있는 정치인, 경제인이다. 일반 서민의 경우, 특히 촛불, 용산참사, 쌍용차 쟁의 등으로 구속된 이들의 경우 특사 대상에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광복절 특사는 늘 이런 식이다.

정부가 보기에, 민족과 국민의 미래는 부정을 저질렀다고 법이 판정한 권력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에 달려 있다. 이런 식으로 정부는 우리에게 미래를 선사했다. 번번이 그 미래가 현재가 되었을 때, 시민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정부가 행한 퇴행적 정치의 연대보증인은 시민인 것이다. 그리고 이번 광복절 특사는 우리에게 조만간 그 대가의 혹독함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