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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고통 공감의 열린 공동체를 향해 - 막달라 마리아와 민중 메시아론 다시 읽기

이 글은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삼인 2006)2부 3장에 수록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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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공감의 열린 공동체를 향해

막달라 마리아와 민중 메시아론 다시 읽기

 

 

 

1

 

끝끝내 쳐다보기만 해!” 루이제 린저의 소설 미리암(현존사, 1988)에 대해 선생은 이렇게 혹평했다. 막달라 마리아[각주:1]의 시선에서 예수 혹은 예수 운동을 읽는 어떤 전범(典範)같은 것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예수를 그녀의 스승일 뿐 아니라 연인으로까지 묘사하는 소설의 구성상의 과감성은 디테일에까지 관철되지는 않았다. 사제지간이라 하더라도 관계는 상호적일 텐데, 하물며 연인 사이가 어떻게 그렇게 한 편에게만 성찰의 계기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서로 주고받는 것이 없이 어떻게 영향을 받기만 한다는 것인가.

그 무렵 선생은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흥미로운 상상을 펼친다. 내 기억으로는 이전의 저술에서 이 여인은 선생에게 그다지 주목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마도 이런 새삼스런 관심은 소설 미리암이 상상력을 자극한 결과일 것이다. 종종 그렇듯이 타인의 사유를 빌어서 원본의 문제의식 너머까지 도달하는 선생의 지적 모험이 엿보인다.[각주:2]

이 책이 출간된 이후인지 이전인지 불확실하지만, 아무튼 그 어간 선생의 설교 한 편이 기억난다.[각주:3] 그 녹음테이프를 복사해서 여러 후배들에게 선물한 일이 기억나고, 어느 선물보다도 소중히 받아들인 그들의 반응이 기억난다.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의 연인으로 말한다는 것만으로도 20대 초중반 경의 청년들에겐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일이지만, 선생의 강조점은 그들이 연인이라는 게 사실이냐는 연예뉴스 식의 초점보다는 연인이기에 그 관계가 어떻게 펼쳐졌느냐에 대한 상상에 있었다. 그리고 그 관계를 묘사하는 데 있어 선생의 견해는 루이제 린저의 해석과 갈린다.

 

나의 사랑하는 분, 그분은 내게 남아돌아 갈 만큼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늘 엄격한 말씀을 들려 주셨다. (중략) 이렇게 하여 나는 평화의 나라에 대한 기다림 그 자체로서 남아 있으며, 이 기다림 외에 다른 그 무엇도 아니다.

루이제 린저, 미리암, 360(책의 마지막 구절)

 

이 구절이 함축하고 있듯이, 미리암은 예수라는 우뚝 선 기둥 같은 존재, 그 불변의 메시아-연인에 기대어 그를 사랑한 여인의 성장담 같은 소설, 아니 저자 자신의 자전적 성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선생은 그 설교에서 십자가를 향한 최후의 도정에서 예수는 사랑하는 그녀의 눈길 때문에 되돌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돌려주소서!’ 거부할 수 없는 신의 소명에 대한 순응이 그의 몸둥이를 휘감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시각각 조여 오는 그 최후의 순간에 이를수록 그의 마음은 산란해진다. 죽지 않을 수는 없으나 죽기는 싫다. 무엇이 그를, 그의 바위 같던 마음을 이토록 모래성으로 만들었을까?

사랑하는 이와 미처 나누지 못한 삶에 대한 미련일까? 적어도 선생은 그런 동요에 휘말린 예수를 상상해낸다. 그녀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아쉽기도 하다. 그래서 자꾸만 되돌아본다.

그녀의 눈초리가 매섭다. 질책 같다. 퍽이나 아팠겠지만 눈물은 발에 향유를 부을 때 이미 다 흘렸다, 그런 모양이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쳐다볼 것이다.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바라다 볼 것이다. 하여 더는 뒤돌아볼 수 없다. 그녀의 응시가 무서워, 아니 안쓰러워 더는 망설일 수 없다.

선생이 상상하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바로 이렇게 막달라 마리아의 응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사랑하는 그녀의 말없는 격려 덕분에 그이는 그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루이제 린저가 막달라 마리아의 성장담에 관심을 갖는다면, 선생은 예수의 성장담을 상상하고 있다. 예수는, 아니 예수 사건은 사랑하는 연인으로 인해 완성되었다는 것이겠다.

한데 그 설교를 들은 누군가가 물었다. “근데 이 얘기가 성서에 근거한 거예요?” 사실은 나도 묻고 싶은 것이었다. 선생은 성서 속의 단서를 주석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 특유의 상상력을 펼치는 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각주:4] 이 설교에선 상상력의 단서가 너무 약한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강한 잔상을 남기는 설교였음에도 뭔가 더 설명을 필요로 했다.

한편 또 하나, 나의 질문거리는 예수의 성장담에 그가 사랑한 한 여인이 있었다는 파격적 주장이 왜 필요한가에 관한 것이다. 소설 미리암이 자극한 상상의 끝이 이러한 주장이겠지만, 그것이 한낱 스캔들 들추기가 아니라면, 적어도 민중신학자로서의 그의 사유의 결 속에 이 얘기가 흡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한 사람의 사상을 논할 때, 그가 한 모든 말이 그 사상과 직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또한 한 사람의 사상이 그 시기 그의 말들 속에 숨겨진 것들을 통해서 구체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그 사람의 사상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내가 아는 한, 민중신학은 그의 사상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선생을 사로잡고 있던 인식의 토대이자 결과였다. 아무튼 내가 이 글에서 논하고 싶은 것은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선생의 상상이 그의 민중신학적 사유의 가장 결정적인 논지에 다가가는 길잡이가 된다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선생의 민중 이해가 그의 민중신학의 기초단위(원자)라고 한다면, 민중 메시아론은 그의 민중 이해의 중핵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이 민중 메시아론을 펼치는 데 있어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한 편의 상상은 하나의 명쾌한 은유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선생의 견해 가운데서 민중 메시아론처럼 오독이 심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러한 오독에 대한 선생의 하나의 바로잡음 작업으로서 그의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상상력이 의의를 지닌다.[각주:5]

마지막으로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녀에 관한 선생의 상상을 다시 언급하고자 한 이유에 관한 것이다. 즉 오늘 우리에게 민중 메시아론이 왜 필요한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민중적 시각에서 볼 때, 오늘의 한국 사회를, ‘민주화의 성공민주주의의 실패라는 두 가지 특징으로서 이해할 때, 즉 민중적 기획과 시민적 기획 간의 이반이 심화되는 현상이 우리 시대의 특징이라고 판단할 때,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선생의 민중 메시아론을 우리 사회의 성찰의 근거로서 제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2

 

그 어간 저술된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선생의 또 다른 텍스트가 갈릴래아의 예수의 여덟째 마당 예수와 여인이다. 이 책은, 머리글에서 얘기하고 있듯이, 많은 부분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것을 총정리하려는 의지의 산물이긴 하지만, 실제적인 작업은 1989년 미국 버클리 대학 강연을 위해 구체화되었다.[각주:6] 모든 저술 작업이 그렇듯, 집필 당시의 집중된 생각들이 글의 구성과 논지에 강력하게 개입하여, 보다 오래된 생각들을 편집교정하는 의식적무의식적 요소로 작동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술 시기가 소설 미리암의 출간 직후이며 앞에서 언급한 그 마리아 설교가 수행되던 어간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나는 갈릴래아의 예수를 선생의 저서 가운데 돋보이는 것으로 평가하는 데는 적지 아니 주저한다. 선생답지 않게 이른바 학술적 담론 형식을 취했음에도, 내용상의 오류가 너무 많다. 선생의 글이 가장 빛날 때는, 주석학적인 논증보다는, 이른바 학술사적 전통에 별반 기대지 않는 파격적인 역사적 상상력, 그 상상력이 주석적 사실 구성의 한계를 거칠게 흔들어놓을 때 발견된다. 그런 점에서 예수에 관한 자신의 가설을 서구 연구자들에게 그들 특유의 언어 양식으로 호소하려는 기획은 역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었다. 게다가 건강상의 심한 압박 속에서, 다른 이의 책을 읽는 것조차 여의치 않고, 심지어는 스스로 글을 쓰는 것이 힘겨워 대필자를 필요로 하던 상황에서 이런 유의 책을 기획한다는 건, 애초부터 무모한 모험을 벌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 논지에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논증을 위해 끌어들인 참고문헌의 인용 등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은 이 책의 학술적 가치를 평가하는 데 오히려 부정적 요인이 되곤 한다. 게다가 문체에 있어서나 용어에 있어서 선생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가필의 흔적이 뚜렷한 부분들이 적지 아니 발견된다는 것도 선생의 사상과 사유 방식을 독해하기 위해 이 책을 활용하는 데 적지 않은 장애 요소가 된다.

한데 이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여덟째 마당 예수와 여인은 책 전체에서 가장 빛날 뿐 아니라 선생의 어느 글에 비해서도 돋보이는 글의 하나라고 판단된다. 특히, 이 글의 다른 내용들은 좀 진부한 느낌이지만, 결론과 연결되는 막달라 마리아에 관련한 대목들은, 감히 평가하건대, 가장 선생다운 상상의 파격이 엿보인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이 책의 문제점들은 이 장(여덟째 마당)과는 그다지 상관없어 보인다. 그리고 앞 절 후반부에서 제기한 마리아 설교에 관한 몇 가지 질문에 대하여 이 장은 비교적 충실한 대답을 갖고 있다.

하여 아래에서는 그 질문들을 염두에 두면서 이 글의 답변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잇고자 한다.

 

마리아 설교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연인이라고 보는 성서 내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그녀와 예수의 관계가 십자가 사건의 완성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했다고 보는 근거가 무엇인가에 관하여 이야기하려면 먼저 향유 부은 여인에 관한 선생 특유의 성서 해석부터 살펴야 한다.

선생은 흥미롭게도 예수의 발 혹은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이 다름 아닌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주장한다. 텍스트 속의 단어의 용례에 주목하여 텍스트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드려내려는 해석 방식인 주석(Kommentar)은 이 두 여인이 동일인물이라는 근거를 마련해주지 않는다. 요컨대 주석학적으로 이런 결론은 논증이 불가능하다물론 반증 또한 불가능하지만. 자연 우리는 두 가지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 주석적으로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이 필요한가, 왜 그러한 해석의 모험이 요청되는가라는 물음이 그 첫 번째다. 그리고 두 번째 물음은, 주석적 뒷받침이 없다면 도대체 그러한 개연성을 발견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이다.

두 번째 물음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그 실마리는 향유 부은 여인 이야기가 수난사의 서장을 장식하는 이야기라는 데서 온다. 향유사건은 예수의 예루살렘 행보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죽음으로 치닫는 격렬한 위기에 관한 이야기의 출발지점에 놓인다. 성전에서 세간의 이목을 끌며 맹활약을 펼치던 초반기의, 가히 승리하는 메시아다운 모습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급반전되어 추락하는 메시아의 이미지로 전환된다.

한데 그 유명하다던 제자들 가운데 누구도 그것을 눈치체지 못했다. 성전 안에서 내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악을 쓰며 환전상의 상점을 때려 부수던 그이의 모습에서 그들은 하느님의 성공을 봤다. 그들도 함께 제법 화려한 책상과 의자, 그곳에 놓인 각종 거룩한 제물과 기물들을 사정없이 둘러엎을 땐 전율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신의 나라는 이제 곧 도래할 것처럼 보였다. 그와 언쟁을 벌인 율사들과 사제귀족들에게 던진 그이의 도발적 발언들은 그들을 대중의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제자들 모두가 들떠 있었다. 그들 모두는 이제 하느님의 심판 사건 이후에만 집착했다. 예루살렘의, 성전의 값진 많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누구도 값진 옷으로 자기를 치장하지 않고 평등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세상, 남의 것 빼앗는 이 없고, 빼앗겨 굶어죽는 이 없는 세상, 매 맞고 옥에 갇혀 신음하는 이들 모두 풀려나고 더 이상 억울하게 옥에 갇히는 일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을 상상하며 그들은 행복에 젖었다.

바로 그런 분위기에서 한 여인이 주님의 발에 값비싼향유를 붓는다. 하느님의 해방구가 임박했다는 확신에 찬 이들에게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들은 그녀를 나무란다. 이제 곧 가진 것 다 가져와서 서로 나눠주고 나눠 갖는 세상이 올 텐데, 이런 낭비를...

흥미롭게도 안병무 선생은 이 대목에서 엉뚱한 질문에 빠진다. 왜 그 사실을 이 여자만 알고 있었지? 예수만 알고 있을 만큼 내밀한 일을, 아직은 그이의 심중에서나 있는 그 일을 미리 알고 있는 여인, 그녀의 정체는 뭐지?

실제로 이 이야기를 가장 심하게 변형시킨 루가복음을 제외한 나머지 세 복음서 모두에서 이 사건 이후 예수는 만찬을 주최하여 자신이 죽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밝힌다. 선생은 여기서 전태일을 상상한 것이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전태일의 유서 중에서

 

그는 죽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온 것이다. 반면 제자들은, 그의 수차에 걸친 예고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식으로 이해했다. 예수만이 그 길이 죽어야 하는 길임을 각인하고 있었다. 한데 그이만이 알았던 것은 아니다. 한 여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정체는?

이러한 선생의 상상력은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복음서들의 묘사를 보면서 계속된다. 향유 부은 여인이 수난사의 서장을 장식하고 있다면, 막달라 마리아는 주가 안장된 그 동굴에 그이가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증언한 인물, 즉 부활사의 서장을 장식한 인물이다. 특히 요한복음의 묘사에서 선생은 예사스럽지 않은 둘의 관계를 상상해낸다.

빈 무덤에서 그녀가 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리가 들린다. “마리아!” 예수의 소리다. 사흘 전에 처절한 고통 속에 죽어간 그이의 목소리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퇴거당한 이의 소리다.

놀란 그녀는 얼떨결에 외친다. “선생님!” 그러자 예수는 말한다. “나를 만지지 말거라.”

요한복음은 상세히 묘사하진 않지만, 비명 같은 외마디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그를 향해 달려간 그녀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생략된 묘사인 그녀의 만지고자 하는 행위를 선생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본다. 주석학은 만진다(ἁπτω)는 단어가 이 복음서에선 오직 여기서만 사용되고 있다는 걸 유념할 것이고, 2성서나 그밖의 그리스어 문헌에서 성()적 관심의 표현으로 전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그이가 안장된 무덤을 제일 먼저 찾아가는 행위를 사랑하는 이의 행위로 해석할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에서 드러난 그녀의 일련의 행동은 다르게 상상하는 것보다 연인의 행위로 상상하는 게 가장 타당성이 있지 않느냐고 보는 것이다.

또한 선생은 루가복음요한복음에서 마르타의 누이로 나오는 마리아라는 여인의 묘사에서 예수와 특별히 가까운 사이의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읽어낸다. 이것은 이 마리아가 요한복음의 빈 무덤 이야기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묘사와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향유 부은 여인도 묘사에 있어서 어떤 연속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결국 선생의 이러한 상상이 개연성이 있다면, ‘향유 부은 익명의 여인=마르타의 누이 마리아=막달라 마리아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각 복음서들의 저술 의도와 상관없이 특별한 전형성을 지닌 인물에 관한 묘사가 도처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그러한 여인이 예수운동에서 실제로 존재했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 첫 번째 물음에 대해 살펴보자. 예수에게 향유 부은 여인이 실은 막달라 마리아였다는 주장, 이것은 선생의 논지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우선 이렇게 동일인물로 볼 때 바로 그녀가 예수가 사랑한 여인이었다는 점이 보다 명료해진다.

그렇다면 그녀는 예수를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이였다. 그에게 가장 깊게 접근한 이였고, 그의 내밀한 의지까지 읽어낼 수 있는 이였다. 하여 죽을 줄 알면서도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죽기로 작정한 그의 최후의 선택을 간파했다. 다른 제자들이 눈치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이가 자기의 죽음을 예고할 때조차 그것을 상징화하고 거창한 사건의 일부로서 해석하고자 할 때, 그녀는 슬픔으로 그것을 대했다. 그가 남몰래 아파하는 것만큼 그녀도 아팠다. 그가 그 임박한 최후를 두려워한 만큼, 그녀도 두려웠다. 그 끔찍한 최후를 바라봐야 하고, 그 처절한 신음을 들어야 한다는 게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그랬듯이 그녀는 알았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아팠지만, 견딜 수 없을 것 같지만, 이겨내야 한다는 걸 말이다. 그의 신앙을 그녀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내린 신의 뜻을 그녀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그녀는 그를 독려한다. 그가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망설일 때 말없이 그의 발에, 머리에 향유를 부음으로 그를 보듬는다. 그 길을, 그 고독한 공포의 길을 가야하는 그에게 그녀의 응시는 마치 그녀의 품처럼 포근했다. 그녀가 없었다면, 그녀의 품과 같은 응시가 없었다면, 어쩌면 십자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선생의 상상에서 십자가 사건은 예수만의 사건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바로 그 사건의 연장에서 빈 무덤 사건이 있다. 사랑하는 이였기에 누구보다 먼저 동굴무덤을 찾았고, 사랑하는 이의 눈물 때문에 그녀에게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사랑하는 이였기에 그를 만지고자 했다. 하지만 부활은 둘만의 관계로 환원될 수 없다. 예수는 그녀의 손길을, 그녀만의 손길을 거절한다. “나를 만지지 말거라!” 둘만의 관계 속으로 환원되지 않는, 바로 타자를 향한 부활임을 선언한다.[각주:7] 마치 그가 사랑하는 그녀 때문에 죽음을 망설일 때, 그녀가 했던 것처럼. 선생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연인인 두 사람이 사랑의 결실을 자기들만의 행복으로 환원시키지 않음으로써 그의 죽음과 부활이 타자의 구원사건이 될 수 있었다고 해석한다.

요약해보자. 그의 메시아 사건은 그가 주도한 사건이 아니라 그들의 관계를 통해 일어났다. 특히 그 사건은 스승과 제자라는 위계화를 피할 수 없는 관계가 아닌, 연인이라는 보다 대등한 관계의 산물이다. 곧 메시아 사건의 뿌리에는 아픔을 공감하는 연인적 관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 연인적 아픔의 공감은 둘만의 행복으로 환원될 수 있었다. 그들의 성찰이 타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으로 확대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여기에 메시아 사건의 결론이 있다. 한 쌍의 연인의 사랑이 짓밟히고 찢기어 죽임당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신과 사람, 신과 존재의 사랑이, 그 구원사건이 결실을 맺는다.

 

3

 

선생은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를 하기 전부터 줄곧 -객 이분법에 기초한 메시아사상을 비판해왔다. 이러한 메시아주의는 신만이 유일한 행위자임을 강변한다. 하지만 실은 신의 행위를 대리하는 이에 의해 신적 행위가 독점되게 하는 장치로 작동해왔다. 물론 이때 신적 대리자는 항상 역사의 승자, 해석을 독점한 자였다. 이에 대한 선생의 주된 비판의 언어가 이른바 민중 메시아론이다. 여기에서 구원은 더 이상 하느님의 독백적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과 민중의 연대의 과정으로 사유해야 한다. 물론 이때 민중은 역사의 승자가 아니다. 지배적 해석에 의해 비존재로 전락한 이들이다. 곧 민중 메시아론은 역사의 패자의 시선에서 본 메시아주의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비판의 해석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데 일반적으로 민중 메시아론은 이데올로기 친화적으로 하느님과 민중 간의 연대를 상상하고 있다는 반비판에 직면해 왔다. 결국 신학을 특정 이데올로기로 환원시키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민중신학자들은 한 편으로는 이데올로기와의 거리를 강변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이데올로기적 선택의 필요성을 주장하곤 했다.

그런데 나는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를 통해 선생은 민중 메시아론에 특별한 함의를 첨부했다고 이해한다. 그것은 신과의 민중적 연대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인식의 공감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아픔을 공감하는 사랑을 경유한 결실이라는 것이다. 만약 전자의 관점에서라면 향유 부은 여인의 행위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게 옳다. 하지만 아픔의 공감은, 이데올로기와 교접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사건의 의미 부여보다는 사건 배후에 놓인 아픔들에 대한 사랑 같은 사적인 감정을 필요로 한다. 바로 여기에 내가 선생의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를 재론한 이유가 있다.

나는 우리 시대의 변화 양상을 주목하면서 선생의 이 논의를 다시 읽는다. 오늘 한국 사회는, ‘타는 목마름으로 남몰래 불러야 하는 민주화의 시대’, 이른바 민주화 결핍의 시대가 아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민주화는 급속한 발전만큼이나 빠르게 변화의 추동력으로 작동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민주화의 과잉은 동시에 민주주의의 결핍을 수반한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 시대의 위기를 본다. 그리고 선생의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를 본다.

선생은 1970년대 민주화 결핍의 시대를 주-객 이분법의 시대로 보았다. 그런 점에서 교회와 당대의 지배체제는 동일한 인식을 공유했다. 신이 ()이고 성도가 ()인 것처럼 국가는 주이고 국민은 객인 시대.

한데 1987년 이후 시작된 민주화의 성공-민주주의 결핍의 시대는 국가-시민사회가 주역을 담당하면서, 끊임없이 비시민의 공간을 창출하고 그들을 국가-시민사회의 메시아 담론의 일부로서 환원시키려 한다. 객은 주가 될 수 없다. 아니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비시민이 주의 역할을 하려 한다면 그들은 배제의 대상이 된다. 반면 스스로가 객임을 인정하면 그들은 사회적 보호의 대상이 된다. 즉 이런 사회에서 비시민은 스스로가 라고 생각할 수 없다. 다르게 말하면, 비시민을 탈주체화함으로써 오늘 우리의 시민 주체성이 구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배담론은 바로 이렇게 형성되고 있다. 어떤 존재를 비시민으로 규정함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왜곡한다. 또 다른 이분법이다. 또 다른 주-객 이분법적 메시아론/구원론이다. 이것은 비시민을 비인간으로 환원시킨다. 하여 우리 시대를 인간-주 대 비인간-이라는 식민주의가 작동하는 이분법의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이를 또 다른 야만의 시대, 교묘하게 은폐된 야만의 시대라고 말한다.

선생은 민중 메시아론을 주장함으로써 이러한 이분법의 체계를 비판한다. 한데 다분히 민중 메시아론은 민주화 세력의 이데올로기적 동맹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었다. 선생 자신도, 이데올로기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견지하면서도, 종종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막달라 마리아 논의는 민중 메시아를 고통의 공감에 기초한 관계의 산물로 해석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할 민중신학적 계기를 제공한다. 실제로 오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과거를 단죄하는 것에 치우친다. 그 단죄된 과거에 의해 해석되어 온 의미를 새롭게 재의미화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성과인 듯이 생각하곤 한다. 반면 선생은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의 공감이 출발점이고 그것이 타자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으로 확대되는 것에서 메시아의 구원을 보는 것이다.

  1. 마리아는 아람어 미리암의 그리스식 이름이고, 막달라는 갈릴래아 호수 남서 해안의 대도시인 티베리아에서 북쪽으로 약 6km 지점에 위치한 제법 큰 어촌 마을이다. 특히 막달라는, 다른 이름인 타리케애(‘소금절임’이라는 뜻)에서 시사되듯, 생선 가공업이 발달하였고, 섬유의 직조와 염색으로 유명했다. [본문으로]
  2. 앞서 본 ‘오클로스론’은 다가와 겐조의 사유에서 빌어온 것이고, 그의 후기 저술에서 종종 등장하는 ‘단’(斷) 개념은 김지하에게서 빌어온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이들의 사유를, 원본이 담지하는 사유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창조적인 재해석의 지평을 열어 놓는다. [본문으로]
  3. 교회에 비치해둔 원본이 파손되면서 이 테이프는 유실되었다. 언젠가 교인들과 후배들에게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십년 이상 지난 과거의 것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이를 찾을 수 없었다. 보관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나의 부주의가 안타깝다. [본문으로]
  4. 선생의 역사적 사유의 자유로움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의 대화술, 그리고 이곳과 저곳을 넘나드는 공간의 대화술에 기반하고 있다고 나는 해석한다. 그리고 이 시공간의 대화술이 바로 그의 사건 이해의 골조를 이룬다. 이것에 대하여는 이 장의 뒷부분에서도 약간 언급할 것이지만 다음 장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본문으로]
  5. 앞 절이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텍스트의 해석에 관한 것이라면, 이 절은 선생의 다른 글들과 이 주장 간의 연결점을 찾아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본문으로]
  6. 이 버클리 강연 원고는 당시 그곳 유학생들이 영문으로 번역했다. 그리고 이 영문 버클리 원고를 약간 손질하여 낸 책이 Jesus of Galilee(2004, CCA)이다. 한편 이 버클리 강연 한글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이 《갈릴래아의 예수》(한국신학연구소, 1990)이다. 나는 Jesus of Galilee를 발간하기 전 교정 작업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이때 내가 교정을 위한 대본으로 사용한 것이 《갈릴래아의 예수》이다. 영문 책이 출간된 후에 내가 지적한 것이 다 반영됐다고 하고(그것을 일일이 확인하지는 못했다) 다른 이들도 다소간의 교정 작업을 하였다고 들었다. 이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 버클리 영문 원고와 《갈릴래아의 예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특히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내용상의 차이를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2004년 출간된 Jesus of Galilee의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부분이 《갈릴래아의 예수》와 내용상 거의 비슷하고, 최종 영문판이 영문 초고를 거의 손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선생의 생각이 구체화된 것은 아마도 버클리 강연 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문으로]
  7. 선생은 엘리자베쓰 몰트만-벤젤의 이와 같은 해석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예수 사건의 주와 객을 전제하고, 막달라 마리아의 성찰을 쌍방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선생은 벤젤의 견해를 자신의 틀 속 넣지 않고 참조할 뿐이다. 그것은 그녀의 가설을 쌍방의 성찰로서의 죽음과 부활의 차원으로 재해석한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