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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사탄의 탄생’, 역사적 성찰의 종교성

한백교회 2010.01.10자 하늘뜻나누기 원고를 수정보완하여, [공동선] 2018 09+10에 게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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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탄생’, 역사적 성찰의 종교성

 

 

 

악마 하면 가장 먼저 어떤 이름이 떠오를까? 존 밀턴(John Milton)실락원을 인상 깊게 읽은 이들은 루시퍼(Lucifer)라고 말할 것이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파우스트에 나오는 낭만적 악마 메피스토펠리스(Mephistopheles)를 연상하는 이들은 아마도 꽤 독서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성서의 예수 설화에 종종 등장하는 바알세불(Beelzebul)도 있다. 혹은 디아블로(diablo)라고 소리치는 소년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컴퓨터게임 가운데 디아블로라는 게 있다. 아마도 성서에 사용된 그리스어인 디아볼로스(diabolos―〈마태복음4,1 )에서 유래한 용어겠다. 바울이 쓴 서신들 가운데서 단 한번만 쓰인 벨리알(beliar―〈고린도후서6,15)을 떠올리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한편 악마의 이미지는 퇴색했지만 붉은 악마의 영어이름을 떠올리는 이들은 데불(devil)이라고 말하겠다. ‘데블은 아마도 최근 가장 많이 알려진 용어가 아닐까.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유명한 악마는 바로 사탄이다.

사탄은 악마 가운데 우두머리악마로 알려져 있고, 그 힘의 파괴력은 종종 하느님과 맞설 만큼 혹은 압도할 만큼 가공할 존재로 묘사되곤 한다. 사탄을 표현하고자 했던 무수한 작가들은 가장 음흉하고 가장 흉측하며 가장 파괴적인 모습으로 그려낸다. 아마도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묘사된 사탄의 이미지는 이와 같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그로테스크한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사탄에 관한 이러한 괴기스럽고 포악스런 느낌이 대중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던 시기는, 놀랍게도 성서 시대가 아니라, 11세기 유럽이었다. 사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을 담고 있는 제1성서(구약성서)에서는 아직 그런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실은 제1성서의 39개 문서들 가운데 사탄이 등장하는 문서는 단 세 개에 불과하다. 역대기상1, 스가랴서2, 그리고 욥기11회 등장하는 것이 전부다. 요컨대 제1성서 시대에 사탄은 아직 그렇게 유명한 존재가 아니었다. 참고로 제2성서의 경우엔 조금 더 활발하다. 12개 문서에 35회나 등장한다. 그 용례를 살피면 악 중의 악’, ‘우두머리 악마같은 뉘앙스가 상당히 정착된 느낌을 준다. 그런데, 뒤에서 좀더 얘기하겠지만, 1성서 문서들에 나오는 사탄의 용례는 아직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제1성서에서 사탄이 등장하는 세 개의 문서들도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후대적 산물이다. 기원전 13~11세기의 부족동맹 시대에는 문서는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제1성서의 문서들 중에는 이 시대의 구술적 기억들이 보존된 것도 있고, 군주시대에 이르면 현존하지 않더라도 문서로서의 흔적이 성서 텍스트 속에 들어 있기도 하다. 한데 이 세 문서들은 제1성서 속에 반영된 기억들 중에서 매우 후대의 산물들이다. 과거의 연구들은 이 문서들이 제작된 시기를 기원전 6세기 말, 그러니까 페르시아 식민지 초기까지 앞당겨 생각하기도 했지만, 최근의 많은 학자들은 역대기스가랴서가 만들어진 시기를 훨씬 더 후대로 내려 대략 기원전 4~3세기경으로 추정하며, 욥기도 거의 동시대 혹은 조금 후대의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즉 페르시아 식민지 말기에 이 문서들이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보다도 더 후대인 헬레니즘 시대 초기(기원전 3세기)까지 내려잡는 견해에 동감한다. 첫째로, 문서 편찬이란 비용이 꽤 많이 드는 작업인데 기원전 4~3세기 팔레스티나, 특히 이 문서들과 관련된 지방인 유대아는 역대기 같은 방대한 규모의 문서 편찬을 할 만큼의 발전된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다. 유대아 지방에서 그런 경제력이 갖추어진 시기는 기원전 3세기다. 둘째로 역대기의 치밀한 연대적 정리가 어느 정도 완비되었을 법한 시대는 성전체제나 서기관 시스템이 상당히 발전한 시대, 곧 헬레니즘 제국 중 프톨레마이어스 제국 식민지 시대와 더 잘 부합한다. 즉 전기 헬레니즘 시대다. 셋째, 스가랴서1~8장의 기억은 페르시아 초기의 기억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앞당길 수 있지만, 묵시적 텍스트인 9~14장의 배경은 사회의 번영과 대중의 절망이 교차하는 시대를 반영하는데 이에 적합한 시기는 헬레니즘 시대 전후기(기원전 3~2세기)를 아우른다. 넷째, 욥기는 민간서기관들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이들 민간서기관들이 급증한 시기는 헬레니즘 시대였다.

헬레니즘 시대는 알렉산드로스가 팔레스티나를 정복한 기원전 4세기 말경부터 유대족속의 자주적 민족국가인 하스몬 왕조가 건국된 기원전 2세기 중반까지를 가리킨다. 그런데 헬레니즘 시대 가운데 프톨레마이오스의 왕국이 경제, 문화적으로 지중해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기원전 3세기경에 지중해 전반에 걸쳐 매우 많은 문헌들이 제작되었고, 특히 전통귀족이 아닌 신흥소자산가층 작가의 문헌작업이 전에 없이 활발해졌다. 바로 그 시기에 귀족과 종교엘리트 집단의 이른바 궁중지혜가 대중화되고, 대중의 촌락지혜가 촌락과 씨족의 범위를 넘어 보다 보편적 지혜의 지평으로 확대해석 되는 문헌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지혜문학. 그런 점에서 매우 수준 높은 지혜문학에 속하는 욥기도 이 시기에 태동한 것이라고 보는 게 아마도 가장 개연성이 있을 것이다.

또한 욥기보다 조금 더 후대(아마도 기원전 2세기경)의 외경 문서인 에녹1희년서같은, 일종의 환상문학에는 사탄이나 벨리알같은 다른 악마에 대한 묘사가 좀더 빈번이 나오며, 그 역할도 훨씬 체계적으로 그려져 있다. 반면 욥기는 아직 사탄 개념이 이들 경외전 문서들보다 덜 체계화되어 있다. 하여 좀 지나친 단순화라고 할 수 있지만, 어쩌면 헬레니즘 전기인 기원전 3세기의 문서라고 볼 수도 있겠다. 또 아직 사탄이라는 용어가 그리 흔하게 사용되지 않던 역대기스가랴서와 동시대거나 조금 후대의 문서일 수도 있다.


산문 부분

운문 부분

산문 부분

1,1~2,13

3,1~42,6

42,6~17


이제 욥기얘기를 좀더 해보자.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운문 형식의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산문 형식의 부분이다. ‘운문부는 3,1부터 42,6까지로, 욥기의 거의 대부분의 분량을 이루고 있고, 지혜장르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현대의 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이 제1성서 문서들 가운데 욥기에 대해 특별히 열광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운문부에 대한 해석 때문이다. 반면 산문부는 서론(1,1~2,10)과 결론(42,7~17) 형식으로 덧붙여 있는 짧은 텍스트인데, 이 서론과 결론이 덧붙여짐으로써 욥기권선징악(勸善懲惡)을 주제로 하는 통속소설이 되었다. 반면 후대에 덧붙여져 통속소설이 되기 전, 어떤 민간서기관에 의해 저술된 고품격의 풍자문학 성격을 지닌 운문으로 된 문서는, 권선징악의 통속적 가치가 구현되지 않는 현실, 즉 의인이 고통을 당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헬레니즘 시대 팔레스티나의 이런 철학적 풍자문학을 일컬어 학자들은 지혜문학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이러한 지혜문학의 난해하고 깊은 사유를 담은 텍스트의 앞과 뒤에 산문부가 결합됨으로써 이 문서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을 것이다.

한데 사탄은 산문부의 서론에서만 나온다. 32개 절 가운데 11차례나 등장한다. 즉 여기서 사탄은, 욥기1,6 “하느님의 아들들이 와서 주님 앞에 섰는데 사탄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과 더불어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하느님이 주관하는 회의에 배석하고 있다. 이 문서보다 조금 후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에녹1, 비록 사탄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 않지만, ‘추방된 타락천사의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는 반면, 욥기, 추방당한 타락천사가 아니라, 하느님 옆에 배석하여 일종의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좋은 관계를 훼방 놓는존재로 나온다. 한편 동시대 혹은 조금 앞선 시기를 반영하는 제1성서 문서인 역대기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도록 부추기는(way·yā·seṯ) , 그리고 스가랴서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소의 재건주역인 여호수아(예수아) 사제를 하느님에게 기소하는(lə·śiṭ·nōw) 로 사탄이 등장한다.

 

사탄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일어나서, 다윗을 부추겨,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게 하였다.

―〈역대기상21,1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 주시는데, 내가 보니, 여호수아 대제사장이 주님의 천사 앞에 서 있고, 그의 오른쪽에는 그를 고소하는 사탄이 서 있었다.

―〈스가랴서3,1

 

부추기는 자기소하는 자든 다윗/여호수아와 하느님 사이의 순치관계를 훼방 놓고 있다는 점에서 욥기훼방 놓는 자용례와 유사한 함의를 갖는다.

정리하자면 사탄은 헬레니즘 시대 식민지 이스라엘 사회에서 탄생한 악의 상징으로, 1성서에서는 신의 천사로 신의 어전에서 신과 사람 사이를 훼방 놓고 있는데, 좀더 후기의 경외전에서는 추방당한 타락천사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제2성서(신약성서)에 오면 그이는 악마의 괴수라는, 전형적 악마의 이미지로 악마성과 그 권능이 점점 강화되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

얼마 전 새롭게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어떤 이는 사탄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해 내게 물었다. 이때 그가 상상하는 사탄은 유황불이 타오르는 지옥을 관장하는 악마의 괴수이고, 그 자가 그리스도인이 된 자기 내면으로 파고들어와 유혹에 빠지게 만드는 존재다. 다윗을 부추겨인구조사를 실시하게 하거나(역대기상21,1), 이스카리옷 유다에게 들어가예수를 배신하게 한 사탄(루가복음22,3)처럼 성서의 여러 구절들에서 사탄은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 유혹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2,13사탄의 왕좌라는 표현(“나는 네가 어디에 거주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 곳은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이다.”)에서 보듯 그자가 악마의 괴수라는 이미지는 제2성서 시대에 빠르게 대중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었다. 요컨대 내게 물은 그 사람의 가진 사탄에 관한 상식은, 2성서 시대의 일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이미 공유되고 있던 생각과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그러한 사탄의 이미지는 식민지 시대 이후 점차로 형성된 이스라엘 인들의 상상작용이다. 그 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형되면서 확정되어 갔던 역사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악마의 괴수이자 미혹자인 사탄은 후대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오늘 살펴본 것처럼 제1성서 시대 후기에 탄생한 역사적 상상체로서 사탄이 인간의 내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상상력을 담아내고 있다. ‘이 내면에 있다는 문제의식이 사탄의 존재로서 표현된 것이다. 그것은 악과의 싸움의 장이 인간의 내면이기도 하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곧 사탄은 내적 성찰의 필요에서 발명된 상상물이다.

한데 성서 시대 이후의 역사에서 사탄의 상상력은 전혀 다른 용도로 변용되곤 했다. 가령 중세 해체기와 근대 형성기 유럽과 미국에서 그리스도인이 자행한 가장 참혹한 범죄인 마녀학살은 을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찾아내려 했던 결과였다.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저지른 무수한 잘못들 가운데 한 유형은 바로 이런 마녀학살과 비슷한 형식으로 사탄을 전유한 결과다. 외부의 누군가를 사탄으로 낙인찍고 그이를 향해 온갖 잔인함을 자행했던 것이다.

오늘 한국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 중 일부도 그런 방식의 사탄론에 빠져 있다. 아무개를 빨갱이로 낙인찍음으로써 그이를 사탄과 동일시하여 사탄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그이에게 반인륜범죄를 자행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성소수자나 무슬림 등을 사탄으로 규정지으려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사탄의 상상력은 그들을 성찰하게 하지 않는다. 아니 도리어 퇴행적으로 만들고 반인권적 범죄의 가해자가 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