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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전염된 고통, 위태로운 사회

[맘울림](2018.9)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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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된 고통, 위태로운 사회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창세기22,8

 

 

 

 

하느님이 명을 내렸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 번제물로 바쳐라.”(창세기22,2) 뒤늦게 낳은 귀한 외동아들이다. 이 아이를 통해 후손이 크게 번성하여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주겠다는 하느님의 축복, 그 장본인이다.(창세기17,16) 한데 하느님이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한다.

왜 하느님은 마음을 바꾸었을까? 아브라함이 뭔가를 잘못했기 때문일까? 욥의 친구들은 재앙을 당한 욥에게 그렇게 추궁했다. ‘당신이 받은 축복을 하느님이 철회한 것은 당신이 저지른 잘못 탓이오 그러니 하느님께 속죄하시오. 당신이 알든 모르든.’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을 두고 제자들은 그 자신이나 부모 혹은 조상의 죄 탓이 아닌지를 예수에게 물었다.(요한복음9,2) 하지만 이런 식의 생각이 얼마나 부적절한지는 지난 2014년의 세월호 사건에서 여실히 확인되었다. 그 부모에게 혹은 그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다행히 창세기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근데 이 문서의 설명은 더 문제적이다. 하느님이 시험한 것이라고 말이다.(창세기22,1) 여기서 정답은 아들을 죽이더라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겠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여 하느님이 약속한 축복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창세기22,17) 하여 훗날 이 믿음은 세세손손 칭송받게 된다.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다만 이삭에게서 태어난 사람만을 너의 자손이라고 부르겠다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참 자손으로 여겨지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 약속의 말씀은 내년에 내가 다시 올 때쯤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한 것입니다.

―〈로마서9,6~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습니다. 더구나 약속을 받은 그가 그의 외아들을 기꺼이 바치려 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11,17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대가 보는 대로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작용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라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또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렀습니다.

―〈야고보서2,21~23

 

한데 만약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참으로 비정한 아비다. 또 그런 명을 내린 신도 냉정하기 짝이 없다. 요즘이라면 신들의 의회에서 청문회를 열어 그 신과 비정한 아비를 소환,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을 것이다. 하여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아브라함은 신의 소리가 아니라 악마의 소리를 들은 광신도였다고 비판해마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이튿날 아침 짐을 챙겨 나귀에 싣고, 아들과 종 둘을 데리고 길을 떠난다. 사흘을 걸으니 신이 명한 모리아 산이 보인다. 훗날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다고 알려진 바로 그곳이다.(역대기하3,1) 이곳에 그는 종들과 나귀를 두고, 아들 이삭과 둘이서 산에 오른다.

한참을 가다 아들이 묻었다. “아버지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제물은 어디에 있나요?” 어쩌면 내내 궁금했을 테지만 아비의 비장한 모습 때문에 감히 묻지 못한 것이었겠다. 아비는 대답한다. “신이 준비해 놓으셨다.” 이 무뚝뚝한 대답이 그대로 그의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필경 속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었겠다.

아무튼 아비는 아직도 그 말을 아들에게 하지 않았다. 자기 속은 새카맣게 탈지언정, 아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준비할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다. 아비는 그 사흘간 처절한 고뇌의 행보를 하면서도 아들 목숨의 존엄함을 위해서는 끝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신이 지목한 그곳에 도착해서 돌로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준비해온 장작을 펼쳐놓았다. 창세기는 그런 다음 이삭을 묶어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고 담담하게 묘사한다.


Anton Pavlovich Losenko,, Abraham sacrifices his son Isaac(1765)



삭은 아비의 이 갑작스런 행동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을까? 죽음의 준비를 전혀 할 기회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산을 오를 때 장작을 매고 갔다고 하니 아주 어린 아이는 아닐 것 같다. 도망칠 수도 있었겠다. 서기 1세기의 이스라엘계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때 이삭의 나이가 25세였다고 말한다. 만약 그렇다면 늙은 아비를 힘으로 제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해서 아비는 아들을 혼절시킨 뒤 포박하여 제단에 올려놓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아비는 칼을 부여잡고 하늘을 향해 쳐든다. 어쩌면 아들은 공포에 찬 눈으로 아비를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들과 아비는 그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들은 아비를 향해 절규하듯 비명을 내질렀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급히 신이 끼어들어 아비가 아들을 죽이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신이 준비한 다른 제물로 제사는 무사히 드려졌고, 신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다시금 약속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한데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19)은 이렇게 쓰여 있다.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브엘세바 쪽으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았다.” 그런데 도대체 이삭은 어디에 갔을까? 제사 드리러 가는 길에 여러 차례 언급되었던 아들이 돌아가는 길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 구절 때문에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무수한 사상가들과 해석자들은 이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중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실마리 삼아 이삭의 상처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편다. 이삭이 돌아오는 길에 없었던 것은 그가 받은 심한 상처 때문이라고 말이다. 하여 그런 주장을 펴는 한 사상가는 이삭이 이 사건으로 인해 다리를 절었고, 아비에 대한 분노를 평생 지우지 못하며 살았다는 후일담을 상상해낸다.

있을 법한 일이다. 근데 좀 더 상상의 나래를 펴볼 수는 없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는 다른 사람에겐 자신의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는 사람들에게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이 되었을 수 있고, 그의 이상 행동은 주변사람을 심하게 불편하게 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대의 트라우마 연구들을 보면, 무의식에 깊은 상흔이 새겨진 사람들은 자주 공포감과 분노를 조절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주변과의 관계 단절 상황에 놓일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또한 그이로 인해 깊은 상흔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사회학자 다니엘 파이어스타인은 이런 이들을 간접 희생자라고 부르는데, 이 개념은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희생자-가해자의 틀이 사라지고 거의 모든 이들이 희생자가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이삭이 그런 트라우마에 평생 시달리게 되었다면, 그로 인해 부모, 아내, 자식, 이웃, 심지어는 가축들까지 관계의 뒤틀림을 겪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는 이 사건 직후 모친인 사라가 죽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녀의 죽음은 이 사건이 낳은 하나의 부산물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나는 38년 전 5.18의 희생자들을 떠올린다. 군사정권은 그들을 폭도 아니 간첩으로 몰아 소탕함으로써 국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축복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한편 민주정부들은 5.18광주의 숭고한 희생자덕에 민주국가가 이룩된 것이라는 축복의 서사를 만들었다.

이 둘은, 서로 반대 방향의 해석을 가했지만, 희생자와 축복의 조합으로 서사를 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여기서 희생자는 악의 표상이거나 숭고의 표상으로만 묘사될 뿐이다. 그러나 악하지도 숭고하지도 않은 대다수 희생자들의 실제 체험들, 그리고 간접희생자들의 고통들은 여기서 망각되고 있다.

이삭도 그랬다. 성서는 도처에서 아브라함의 순종을 칭송하지만, 그 순간 이삭이 받았을 충격과 배신감, 평생을 좌우했을 상흔, 그리고 그 상흔 때문에 일어난 관계의 단절과 파행, 그로 인한 간접희생자들의 고통은 전혀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 위대한 순종으로 인해 축복이 주어졌다는 바로 그 이야기는 이삭의 상처를 망각하게 했고, 그로 인해 발생했을 모든 고통의 소리들을 침묵하게 했던 것이다.

2005년 말에서 2006년 초에 걸쳐 실시된 5.18 피해자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관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피해자의 절반 가까운 이들이 가벼운 PTSD 증상을 보였는데,(41.6%) 그들의 가족은 그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43.6%) 이것은 심한 병증적 증상을 보이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즉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은 가족에게 더 많이, 더 깊게 전염되었던 것이다. 이 조사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PTSD 증상을 보이는 피해자들과 얽혀 살아야 했던 이웃들, 친구들 등에게도 그런 증상이 나타났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이런 증상이 심한 이들일수록 분노조절의 장애를 겪고 이른바 묻지마 가해의 성향도 강화된다. 즉 간접희생자의 범위는 예상 못하는 데까지 확산되는 것이다.

그런데 5.18 희생자들의 PTSD 연구에 의하면 가난하고 학력이 낮고 몸이 아픈 이들은 PTSD 증상을 나타낼 가능성이 훨씬 더 높게 나타났다. 그러니까 사회의 위태로움은, 아니 위험함은 낮은 계층에서 더 심각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한편 교회는,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1990년대 이후 점점 계층 상승을 하고 있다. 교회 안에는 궁핍이 소거되고 있고 더 많은 자본과 상징자본을 거머쥔 이들로 채워지고 있다. 요컨대 교회는 점점 사회적 결핍의 고통에서 분리된 진공포장된 장소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형교회가 그렇다. 그리고 대형교회를 선망하는 중소형교회들도 그런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 결과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에서 사회적 고통, 저 낮은 곳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관한 문제의식이 사라져가고 있다.

‘5.18’이 일어난 지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을 허송으로 보낸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여기다. 분명 1980년 광주의 고통스런 체험은, 그 세월 동안 치유하지 않고 방치한 결과, 우리가 예측 못한 곳으로까지 트라우마를 확산시켰고 그만큼 사회는 위태롭게 되어가고 있다. 복음에서 우리 스스로가 지워버렸던 고통은 이제 우리 자신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 하여 지금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것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복음이 바로 그런 고통의 전염 현상을 단절하게 하는 신앙적 운동이 될 때, 교회는 비로소 5.18 희생자들 앞에 고개를 들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