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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종교유민화 시대, 종교인으로 살기

[공동선](2018 11+12)에 실린 글.

'정의 평화를 위한 기독인 연대' 평신도아카데미 제16기 강연원고.

16기 아카데미의 주제는 '중독'이고

다음과 같이 구성됨

   제1강_ 불안의 상품화 / 홍승권(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제2강_ 동물에게 시민권을? / 전의령(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제3강_ 진보는 어떻게 소비되는가? / 이택광(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

   제4강_ 기독교인은 종교쇼핑 중독자? /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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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유민화 시대, 종교인으로 살기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사도행전2,4

 

 

 

 

위기의 늪에 빠진 교회

 

2018106, 시청 근처 성공회성당에서 강의가 있던 날, 그 앞에서 태극기집회가 열렸다. 84차 집회라고 했다. 강의 마치고 어슬렁거리며 시위 광경을 둘러보았다. 시위대 수는 많지 않았지만 스피커 소리는 굉장히 시끄러웠다. 참석자는 예상대로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사람 수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 피켓들과 현수막들을 보니, 또 예상대로 개신교 기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엿보인다. 그중 현수막 하나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공산당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다. 공산당과 협상은 멸망, 멸공진리운동은 승리.” 문구도, 글자체도, 색깔도, 디자인도 촌스럽고 투박할 뿐 아니라 권위적이고 공격적이었다. 과연 태극기스러웠다. 언제부터 태극기가 그런 이미지로 여겨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다.

저런 진부한 주장을 편 이들이 누군가 했더니, 익숙한 명칭이 눈에 띄었다. 승리새일교회와 멸공진리운동본부. 이 단체는 여호와새일교단이라는 개신교 소종파가 설립한 극우단체인데, 2013년에 부산에서 열린 WCC세계대회 때에 극렬한 반대운동으로 존재감을 알린바 있던 바로 그들이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공산당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반드시 망하고 세계평화 시대 온다.” 잠시 잊었던, 진부하리만치 낯익은 표현이다. 1948년 건국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반공을 근본원리로 하는 체제, 즉 반공레짐의 평화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구다. ‘적의 절멸을 전제로 하는 평화.

그런데 최근, 이 반공레짐의 평화론은 그 위상이 크게 실추되었다. 오랫동안 반공규율사회로 국민의 일상과 기억까지 통제해왔던 그 논리가 우리사회에서는 권위주의와 연결되어 있고, 그 주역들은 부패했고 부조리했다. 하여 2016~2017년 촛불운동 이후 그들과 그들의 행태, 그리고 그들이 신주처럼 받들어왔던 반공주의와 절멸적 평화관은 모둠으로 시민사회로부터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여기에는 당연히 개신교도 포함된다. 수많은 비리와 부당한 특혜에 관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반인권적 배타주의, 권력의 독과점과 대물림, 성차별적 문화의 폭력성에 대한 무감각, 지나친 종미(從美)주의 등 개신교의 적폐적 요소들이 집중 조명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개신교의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시민사회에 폭넓게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990년 어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개신교는 한국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선망하던 종교에서 혐오하는 종교로 이미지가 급반전되고 있었다. 그런 이미지 전환은 무엇보다도 30년 간 가파르게 상승을 거듭해왔던 교세 증가율이 급격하게 추락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에 초고속 성장에 맞추어져 있던 제도나 담론은 이러한 저성장의 위기를 감당하지 못해 도처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신학생들이 교회 사역자로 취업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다. 해서 그들은 학생 때부터 인문학적 사유능력을 갖추는 공부보다는 성장주의적 기능학에 몰두했다. 그것은 변화하는 세계를 읽고 해석하는, 그리하여 선교 상황의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의 감퇴를 의미했다.

또 교권을 장악한 일부 대형교회들은 신학의 통제를 강화하여 근본주의적 신앙으로 신학을 검열했다. 하여 신학은 교회에도 사회에도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담론적 무능력 상황에 빠졌고, 신학자는 인문비평적 지식의 장에서 스스로를 퇴출시켰다. 한편 일부 교회들은 1940~50년대 증오에 불타던 시절의 폭력의 추억을 소환하는 행보를 본격화했다. 1989년 출범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그런 증오의 정치 출범의 신호탄이었다. 이러한 퇴행성은 이후 한국개신교를 표상하는 집합적 이미지로 시민사회에 각인되었다.

이런 식의 대응이 저성장의 위기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시민사회의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전환되고, 이것은 교회의 저성장 상황을 야기했다. 이에 대해 교회는 부적절한 퇴행적 대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교회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졌다. 이런 악순환이 시작된 시기가 1990년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도식만으로는 개신교의 위기를 읽는 것은 한계가 있다.

 

실망신자종교유민이 되다

 

사실 이 시대에 교회가 직면한 위기를 읽는 데 더 중요한 점은 기존 신자들의 태도 변화다. 신자들의 충성도 이완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지점에서 포착되지만 목사의 입장에서 가장 아픈 현상은 출석률의 저하와 헌금액의 감소였다.

출석률의 저하는 사실 시대의 변화가 초래한 현실이기도 했다.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레저산업의 비약적 확대, 자동차 보급률의 가파른 상승 등으로 주일성수라는 신앙적 관념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또 다른 이유다. ‘실망신자가 급증한 것이다. 그들은 목사들의 설교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고 교회의 프로그램에 불만을 품게 된 이들이다. 이미 진보적인 성향의 신자들은 1980년대에 치열한 교회개혁 투쟁을 벌인 후 대대적으로 교회에서 철수한 바 있었다. 반면 그때에는 비교적 조용했던 복음주의 성향의 신자들이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종교제도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하게 된 것이다. 복음주의 성향의 신자들의 비중이 진보성향의 신자들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1990년대의 실망신자 현상은 교회로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망신자가 급증하게 된 상황은 한국인들이 경험했던 1990년대라는 시간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우선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게 되는 1987년 개헌 이후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제도화되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국민들은 주권시민이라는 자의식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주권의식이 강화된 시민들에게서 나타난 새로운 감수성의 하나는 카리스마적 독재자 유형의 지도자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런 감수성의 변화로 가장 타격을 받은 존재는 목사였다. 사실 그 이전까지 목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이었다. 대성장기(1960~1990)에 그런 자질은 곳곳에서 상당한 성공을 이룩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초대형교회의 가장 중요한 성장 원인은 담임목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었다.

그런데 그런 리더십 유형이 1990년대에는 더 이상 존경과 신뢰의 표상으로 자리잡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을 잘 듣지도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진단하고 답을 내리는 존재, 개개인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고 교회 전체를 자신의 뜻대로 동원하는 강한 집단주의적 신앙심을 강요하는 존재에 대해 불편해하게 된 것이다. 이런 불편한 인식은 도미노처럼 목사에 대한 여러 가지 부정적 기억들을 재소환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실망으로 표출되었다.

둘째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하여 내구소비재 산업의 비중이 급상승하게 되면서 한국사회는 소비사회로 빠르게 전화되었다는 점이 실망신자 현상의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취향에 대한 주권의식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교회는 이러한 취향의 민주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소비자라는 자의식은 종교도 소비자로서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제 교회는 자신의 기호에 맞추어서 선택하는 곳이 되었다. 즉 실망신자들은 목사와 교회를 선택하는 적극적 행위자로 변화되어 갔다.

셋째로, 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신앙 양식의 변화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우선 온라인 공간이 빠르게 확장되면서 소비자의 자의식을 갖게 된 신자들에게 비교 검토할 교회나 목사들의 정보를 접하는 것이 한결 용이해졌다. 이것은 담임목사의 설교권력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 신자들은 설교를 경청하고 노트하기보다는 비평하는 자가 되어갔고, 이것은 온라인 공간을 떠도는 다른 설교자의 텍스트를 소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교회들을 방문하거나 다른 교회의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데로 이어지곤 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구텐베르크적 종이문자 미디어의 시대가 사그라들고 디지털문자 미디어의 시대가 도래하는 대격변과 관련이 있다. 종이문자는 법전이나 거래명세서처럼 정확한 의미를 확정짓고 보전하는 데 있어 어느 소통매체보다 강력했다. 그런데 디지털문자 미디어는 저장성보다는 유동성이 압도적인 매체다. 가령 사람들은 저자의 의도를 묻고자 책을 읽던 시대가 있었다. 이때 독서자는 저자에 종속된 존재다. 하지만 디지털문자 시대에 독자는 저자의 주장을 알고자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활용할 것을 발췌하고자 독서를 한다. 발췌된 텍스트는 저자의 컨텍스트에서 이탈하여 독서자가 설정한 새로운 컨텍스트 속에 삽입된다. 이렇게 재맥락화된 텍스트는 또 다른 이들에게 발췌될 수 있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원본은 사라지고 무수한 재해석된 텍스트들만 남는다. 그것은 텍스트의 생태학에 있어 중요한 변화를 야기했다. 종이문자 미디어 시대에 텍스트는 원본이라는 고정된 장소를 필요로 했다. 그렇게 의미가 고정된 채 권위를 지니게 된 원본정전(正典)이라고 한다. 근대적 그리스도교, 특히 프로테스탄트가 신앙의 규준으로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처럼 받들던 성서의 정전성이라는 신앙, 그것에 일점일획도 가감첨삭할 수 없다는, 이른바 해석불가의 텍스트성 주장은 이렇게 종이문자 미디어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 가장 강력한 믿음의 요소로 작동했다. 하지만 디지털문자 시대에 텍스트는 고정된 곳에 있으면 생존하지 못한다. 그것은 죽은 언어다.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다른 시간, 다른 장소, 다른 주체(독서자)에게 읽혀질 때에만 그 텍스트는 살아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정전 신앙에 의존한 신앙담론의 위기를 초래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독서와 해석의 주체가 되고자 하고, 목사가 그런 신자의 주체화를 방해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목사는 성서해석의 독점권을 행사하고자 하지만, 과학적 지식과 사회적 합리성으로 무장하고, 사유하고 선택하는 주체라는 자의식으로 무장한 이들은 그런 목사의 해석독점권 주장에 의심을 품는다. 그렇게 실망신자가 된 이는 고정된 장소가 아닌 유동하는 탈장소성이라는 신앙적 문제의식을 강화시켜 갔다. 즉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장으로 이탈할 준비가 된 신자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요컨대 실망신자들은 고착성보다는 유동성이 강화된 신자들이다. 그들은 온오프라인 공간을 떠돌면서 적극적으로 해석을 위한 정보들을 채집한다. 이러한 수요의 증가는 공급의 증가로 이어졌다. 발 빠른 많은 교회들과 목사들은 유동적인 실망신자들에게 솔깃한 설교, 교회제도, 프로그램, 교회 공간양식 등을 나타내는 종교 컨텐츠를 온오프라인 공간의 장에 내놓는다. 이른바 다양한 품종의 종교상품들이 전시되는 것이다. 교회에 관한 소비사회적 담론시장이 크게 확장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종교적 유동성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스텐바이 된 실망신자들을 유혹한다. 하여 실망신자들은 종교유민으로 차차 변화되어 갔다. 교회는 종교유민이 된 신자들을 처벌할 어떠한 제도적 무기도 상실했다. 또 담론적 설득력도 잃어버렸다. 실망신자들의 유랑을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장치들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종교유민을 유치하려 경쟁하는 교회들

 

오늘 한국 개신교의 변동을 읽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실망신자의 종교유민화현상이다. 최근 떠돌이 신자들을 조사한 연구들에 의하면 그들 가운데는 교회활동에 매우 적극적인 경력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또 그들은 실망신자가 되고 종교유민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굉장히 열정적인 신앙적 고민과 공부를 한 이들이다. 또한 그들은 물리적 자본과 상징자본을 두루 갖춘 엘리트 시민이 많았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메가처치의 대열에 들어서게 된 교회들은, 새신자의 대대적인 유입이라는 요소 이상으로, 떠돌이 신자들을 유치안착시킨 교회들이었다. 즉 종교유민들을 정착시킨 교회가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들 성공한 교회들이 종교유민의 취향에 더 잘 부합하는 종교상품을 내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성공의 요소들은 어떤 것들일까. 1990년대 이후 양적 성장을 이룩한 교회들은 압도적으로 강남권(강남, 강동, 분당지역)에 집중되었다는 점이 성공의 비결을 읽어내는 하나의 실마리다. 이 무렵 이 지역으로의 인구이동이 특별히 많았다는 점은 중요한 요소지만, 그럼에도 이 지역의 모든 교회가 양적 팽창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양적 팽창을 이룩한 교회들은 이 지역으로 이주한 이들의 계층적 성격에 더 맞는 교회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결과였다.

1990년대 이후 이 지역의 계층적 성격을 특징짓는 요소 중 하나는, 자수성가형 중상위계층이 아니라, 주로 그런 이들의 자제들로 날 때부터 혹은 어린 시절부터 중상위계층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성공한 교회들 사이에서 대두한 신앙 윤리는 풍요의 획득이 아니라 풍요의 관리를 중요시한다. 가령 조용기의 ‘3박자신앙은 풍요를 윤리학이 아니라 구원론으로 해석했다. 반면 풍요의 관리를 강조하는 풍요의 신학이라는 이름의 최신판 신학의 요목은 윤리학이다.

교회당의 외양은 (변형된) 고딕양식의 획일적이고 수직적인 전통적 건축양식보다는, 백화점과처럼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누구에게나 열려 있을 것 같은, 그리고 일단 진입하면 그 화려함을 전유할 수 있을 것 같은 판타지로 가득한 공간적 이미지를 과시한다. 또 그 안에서 열리는 예배 또한 상투성에서 크게 벗어난 교회들이 많다. 목사는 복장이나 목소리 등으로 성스러움을 강조했던 지난 시대의 상투성에서 벗어나 조명, 사운드, 영상 등을 통해 트랜디한 새로운 성스러움을 대표한다. 또 그는 전통적인 목사의 자리에 붙박여 있는 대신, 신자의 공간과 목사의 공간을 넘나드는 동선의 파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배는 한 편의 공연처럼 스펙터클한 요소들로 가득하고, 음악도 성스러움과 퍼퓰릭한 것이 교차한다. 교회가 내놓는 프로그램들은 어디서도 접할 수 없을 만큼의 양질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매우 훌륭한 부속시설들을 갖춤으로써 종교적 활동뿐 아니라 다양한 기호를 소비할 수 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어디서도 마주칠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영역의 명사나 전문가들을 즐비하다는 점이 주는 유혹이다. 이렇게 성공한 교회들은 끊임없이 이런 요소들을 보강함으로써 여전히 교회 사이를 떠돌고 있는 종교유민들을 정착시키려 쇄신을 거듭하고 있다.

말했듯이 이 시대 성공한 교회들은 주로 강남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 지역성에 부합한 계층적 이해를 더 잘 반영한 결과 이들 교회들은 성장을 이룩했다. 그런 계층성에 맞추어 시대를 해석한 것이다. 요컨대 신자유주의적 경쟁사회에서 성공한 자들의 가치에 친화적인 신앙문화를 잘 표현할수록 그 교회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얘기다.

이렇게 오늘날 성공한 교회들은, 자수성가한 엘리트 특유의 성공지상주의적 문화도 남아 있지만, 태생부터 보유하고 있던 풍요를 품격 있게 잘 관리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제도와 담론을 갖추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 교회들은 신귀족주의적 계층성을 과시한다. 그런 이들이 그런 신앙적 윤리관을 가지고 교회에 모인다. 거기에서 최소한 주 1회 이상의 공식모임과 끼리끼리 모이는 다수의 비공식 모임을 갖는다. 그리고 그런 모임에 수년, 십여 년, 심지어는 수십 년간 참여한다. 한국사회에서 그런 계층의 사람들 수천, 수만 명이 그 특유의 문화를 나누면서 주1회 이상을 수십 년간 계속 안정되게 모이는 다른장소는 없다. 신귀족주의적인 보수주의적 이상으로 뭉친 견고한 공동체, 그것이 바로 최근 성공한 대형교회들이다.

 

종교쇼핑중독자들과 멀티신자

 

이건 판타지다. 최근 급성장한 대형교회는 고급의 백화점과 같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 같지만 모두가 고급 백화점의 고객이 되지 못하듯이, 대형교회는 모두에게 열린 구원공동체 같지만, 그 내부엔 계층을 필터링하는 장치가 신앙문화 곳곳에 세밀하게 스며 있다. 하여 종교유민들 다수는 정착에 실패한다.

물론 정착하지 못한 이들 모두가 계층적 필터링 탓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내몰린 것은 아니다. 쇄신을 거듭해도 여전히 남아 있는 적페들에 실망하기도 하고, 보수주의적인 문화적 배타주의에 실망하기도 한다. 아무튼 실망신자들의 유랑의 원인들은 낡은 보수주의 문화가 강한 교회들에서 훨씬 더 심하지만 새로운 보수주의를 체현하고자 하는 교회들에서도 끊임없이 생성된다.

한데 이 과정에서 일부 종교적 유랑을 하는 신자들은 종교쇼핑중독에 빠져들었다. 교회들마다 종교유민에게 적극적인 유혹의 손길을 내놓지만 정작 정착하고자 해도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그 교회들 내에 적잖다. 또 교회 간을 떠도는 유랑생활이 반복되면서 조직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체화된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또한 비판에 익숙해진 탓에 어디서도 문제점이 더 잘 보이게 된 것도 이유가 된다. 유랑과 정착시도의 실패, 그런 반복된 행동패턴 속에 일부 종교적 유민들은 종교적 진리 자체에 대한 치열한 물음을 유보했다. 그보다는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종교의 달콤한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종교성이라고 오인하는 신앙이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종교적 유랑을 계속하지만, 진리에 대한 진지함이 남아 있다. 또한 그런 유랑의 과정은 종교에 대한 편견을 희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해서 그들은 개신교회뿐 아니라 가톨릭교회, 불교사찰도 방문하며, 이슬람사원이나 무속의 현장들도 찾아간다. 또 다른 종교의 문헌들을 탐독하고 각종 수행법을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나는 이런 이들을 멀티신자(multi-believers)라고 부른 바 있다. 이 용어는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주의적 종교성을 가진, 전통적 그리스도교의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은 여러 종교의 진리들에 대해 열려 있고 그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하여 종교들의 훌륭한 전통들을 존경하고 배우되, 문제점들을 답습하지 않으려 성찰하고자 애쓰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은 정착하기 위해 유랑하는 이들이 아니라 유랑 자체가 종교성이라는 것을 몸에 각인한 이들이다.

각종 종교인구 조사에 따르면 현재 9백만 명 안팎으로 추산되는 한국개신교 신자 가운데 최대 2백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멀티신자로 추정된다. 아마도 그들의 수는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특히 개신교 신자들 중에 멀리신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고, 일부 교회들은 그런 멀티신자성을 반영한 교회로 새로 탄생하기도 했고, 또 더 많은 교회들은 교회 내부에 멀티신자적 기획을 담기도 했다. 가령 교회에서 노자-장자 공부모임을 갖는다든가 다른 교회나 종교기관 연구모임을 만든다든가 혹은 다른 종교 탐방 모임을 만드는 경우가 그렇다. 그것은 교회 내에 멀티신자가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편 출판계도 멀티신자를 가상 독자로 하는 책들을 꽤 많이 출간하고 있다. 교회나 출판계의 이런 적극적인 반응으로 인해 멀티신자의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경계에 있는 종교성은 비종교인으로 분류되었던 이들을 종교인으로 만드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국의 종교인구는 전체의 50% 안팎에서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그중 개신교, 불교, 천주교가 98% 이상을 차지한다. 이렇게 세 종교가 독점하고 있는 종교시장은 이들 메이저종교의 폐쇄성과 기득권정치로 점점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어 서로 경쟁적으로 적극적인 포교에 나서고 있음에도 1990년대 이후 크게 변동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휩쓸린 한국사회의 대중은 대안 없는 절망 속에 빠져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적 희망이다. 그런데 종교인구는 별반 변화가 없는데 점술시장은 비약적으로 증대했고 힐링산업도 어마머하한 성장을 했다. 또 스타정치인이나 연예인스타, 그리고 스포스스타 등에 대한 팬덤이나 촛불집회 같은 유사종교적 행위들 혹은 종교적인 것(the religious)도 크게 늘었다. 이것은 종교가 필요한 사회에서 기성 종교들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좀더 성찰적인 멀티신앙은 기성의 3대 종교인뿐 아니라 종교를 필요로 하는 비종교인들에게 대안적 종교성으로 다가갈 수 있다.

 

종교유민 현상과 공공성

 

그런데 한국 개신교는 실망신자, 종교유민화, 특히 종교쇼핑중독과 멀티신자 현상을 진지하게 주목하지 않았다. 혹은 이런 현상을 뭉뚱그려 다분히 부정적인 전제를 가지고 개념화한다. 하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이런 종교성의 등장은 한국개신교에 어떤 방식으로든 중요한 쇄신의 계기가 되었다.

종교유민이 된 실망신자들을 재정착시킴으로써 성공했던 강남권 대형교회들의 쇄신은 전통적인 대형교회들의 성장지상주의나 적폐의 상당부분을 지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쇄신은 중상위계층 편향성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편 한국교회나 신학자들은 종교쇼핑중독과 멀티신앙의 차이에 대해 깊게 주목하지 않은 탓에, 멀티신앙이 갖는 성찰성과 확장성을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말했듯이 멀티신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열린 종교성은 강남권 대형교회들과는 달리 계층 편향성을 넘어서는 성찰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지만 멀티신앙의 문제점은 많은 경우 내면적 사유에 그치는, 사회적 실천으로 수행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멀티신앙이 실천적 단위들과 접속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다. ‘사회적 영성론은 멀티신자들의 영성(북미에선 멀티신앙 현상을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인이라고 표현했다)이 내포하는 탈제도화된 개인적 영성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민중신학적 영성론이다. 이것은 멀티신앙이 공공적인 실천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담은 신학적 논점이다. 그러려면 멀티신앙은 교회나 사회단체 등 공공적 실천에 참여하는 공동체들과 접속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교회나 사회단체가 멀티신앙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져야 가능하다. 일부 교회들과 사회단체는 그런 멀티신앙에 대해 열린 담론적 장치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멀티신자들의 신앙적 성찰의 문제의식에 답하여 거기에 공공성을 부여하고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 이것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우리사회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대중의 고통이 극대화되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교회로부터 보호는커녕 위로도 받지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대형교회는 중상위계층의 고통에 대해서만 구원이 되는 복음을 만들어냈다. 해서 사회의 다른 어느 곳에서처럼 교회로부터도 외면당한 이들이 그 상실감 속에서 퇴행적으로 정치화된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양상이기도 하다. 이런 퇴행적 정치성을 부추기는 이들에 의해 전 세계에는 극우주의적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있다. 여기서 퇴행적이라고 함은 고통당하는 대중이 그 고통을 대면하지 못하고 다른 대상을 향해 고통을 공격성으로 치환시켜 표출하곤 하기 때문이다. ‘극우주의라고 한 것은, 치환된 공격의 대상이 사회적 약자들인 타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퓰리즘이라고 한 것은 그 공격성을 합법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선동되어 고조된 감정으로 무차별 폭발시키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멸공진리운동본부나, 최근 미디어 시대의 심각한 테러집단으로 알려진 에스더기도운동본부 같은 단체들은 대중의 고통을 퇴행적으로 치환시키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하는 기관들이다. 이러한 분노를 부추기는 기관들의 존재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다.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적폐다. 하지만 동시에 잘못된 자기갱신으로 인해 편견과 배제의 신앙을 조금도 개선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강남권 대형교회들의 쇄신 또한 결과적으로는 더 큰 병폐를 내포한다.

나는 여기서 교회를 성숙하게 할 수 있는 종교유랑 현상을 주목했다. 그들이 종교쇼핑중독에 빠지지 않고, 멀티화된 신앙의 성숙성을 담아내도록 갱신한 교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강남권 대형교회들의 계층 편향성과는 다른, 모두에게 평등하게 축복이 되는 신앙적 실천의 장을 만드는 교회들이 필요한 것이다. 멀티신자들도 참여할 수 있고 비신자들도 공유하는 담론과 실천의 장을 만드는 교회들 말이다.

일단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공공적 종교성을 상상하면서 발견한 신앙적 개념이 바로 성령이었다. 인종적, 성적, 계층적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모두의 소리를 듣고 서로 대화하며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공공적 신앙, 누구에게도 점거되지 않고 모두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들을 수평적으로 연대하게 하는 신앙, 그것을 그들은 성령에 충만하게 되었다(ἐπλήσθησαν Πνεύματος γίου)라고 표현했다. 오늘의 종교성은 이런 성령이라는 상징적 개념을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까. 종교순례자들은 그런 물음으로 오늘도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다. 교회는 그런 물음들에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