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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1운동에 관한 기억, 극우의 실패에 대하여 - 그들이 기억전쟁에서 놓쳐버린 하나, ‘사람’ [창비주간논평](2019 03 06)에 실린 글 --------------------------------------------------- 3.1운동에 관한 기억, 극우의 실패에 대하여 그들이 기억전쟁에서 놓쳐버린 하나, ‘사람’ 탑골공원 뒷길 카페에 앉아 창밖을 몇 시간째 바라본다. 태극기를 든 다소 긴 행렬이 지나가고, 그 방향과 같거나 다르게 움직이는 몇 명 혹은 개별 행인들이 태극기를 손에 쥐고 수없이 오간다. 낯설다. 평소 익숙하게 보였던 이들과는 다른 풍모의 사람들이 적잖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달라졌나? 당혹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서둘러 카페를 나와 그 대열에 다가갔다. 이상하다. 과장된 비장함도, ‘증오’를 부추기는 구호도, 시끄럽게 내지르는 고함도 없다. 소곤소곤 정담을 나.. 더보기
전광훈, 위험한 폭탄이 되고 있다 [월간 인권연대] 2023년 06월호에 실린 글 ------------------------------------------------------ 전광훈, 위험한 폭탄이 되고 있다 공안정국이 본격 시작되고 있다 대통령이 미국 방문길에 나선 날 대통령실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했다. 전광훈 목사의 주장이다. 민노총 세력의 반국가 행위를 막아달라는 것이다. 황당무계하다. 노동절에 있을 시위를 ‘반국가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황당하고, 중차대한 국제외교전을 앞둔 상황에서 시위 걱정하는 대통령실 관계자가 있다는 것도 황당하다. 또 그런 걱정을 검찰도 경찰도, 어떤 공직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일반인에게 ‘막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것도 황당하다. 한데 이런 황당한 주장이 전광훈의 터무니없는 허풍이라고 단언할.. 더보기
증오를 주장하는 이들과 종교를 공유할 것인가 [경향신문] 2020년 11월14일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칼럼. 12월에 마지막 칼럼을 쓰고 [경향신문]과의 인연을 마감할 예정이었는데, 12월 칼럼 무렵 너무 바뻐서 양해를 구하고 쓰는 걸 포기했다. 그러니까 아래 올린 11월14일자 칼럼이 5년간의 인연을 마감하는 글이 되었다. 이런 일은 별로 없었는데, 올해 몇 개 글을 이렇게 포기했으니, 글쟁이의 수명이 끝나간다는 신호인 모양이다. 2021년부터는 제3시대의 '연구기획위원장' 직도 내려놓았고, '목사'라는 타이틀로 부르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좀더 적극적으로 하고자 한다. 하지만 칼럼을 그만 두는 것이 글도 그만 쓰겠다는 생각은 아직 아니다. 다만 점점 낡은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으니, 아직 용기가 없어 글쓰기를 내려놓지는 못하지.. 더보기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경향신문] 2020년 10월17일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칼럼. -------------------------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신자들이 이탈하고 있다. 코로나는 그렇게 마른 풀이 되어버린 교회에 지른 불과 같다. 화염에 휩싸인 교회, 그러나 교단들의 총회에서 지도자들은 딴정만 부린다. 매년 9월 말은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의 총회가 열린다. 거대교단의 경우 총대(총회대의원)가 1천5백 명이 넘고, 그밖의 교단들도 1천 명 안팎이나 된다. 총회는 하루 종일 혹은 이틀간 한 장소에서 벌어진다. 당연히 올해 그런 총회가 열릴 수는 없다. 아니 일부 교단은 강행하려 했다. 하지만 전광훈 사태 이후 악화된 여론 덕에 온라인총회로 열렸다. 시간도 반나절 만에 끝냈다. 각 교단의 총회자료집에 실린 교.. 더보기
코로나 시대, 작은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을까 [경향신문] 2020년 8월15일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글 ----------------------------------------------- 코로나 시대, 작은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을까 작은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는 것은 가장 취약한 장소이기 때문 질병의 공포와 고통에 놓인 이웃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작은 교회의 생존 비결 코로나 확진자의 증가폭이 다시 위험스럽게 상승하고 있다. 이번엔 교회가 집단감염의 원인이다. 특히 수도권의 작은 교회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수천 혹은 수만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가 아닌 것은 천만다행이다. 한데 ‘작은 교회’라는 점이 갖는 의미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집단감염이 일어난 모 교회는 담임목사가 이 교회의 지표환자, 즉 처음 발견된 환자인데, 그가 어.. 더보기
‘마음의 차별금지법’이라도 필요하다 [경향신문] 2020년 6월20일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글 --------------------------------------- ‘마음의 차별금지법’이라도 필요하다 성폭행이나 재산비리 같은 권력형 범죄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소수자 혐오를 공공연히 자행하는 목사들의 종교는 어떻게 처벌할까 장로교에 대해 더 많이 비판적이었지만, 오늘 나는 감리회에 대해 심사가 뒤틀렸다. 며칠 전 읽은 기사 때문이다. 감리교 경기연회에서 젊은 목사 한 사람을 재판에 회부했는데, 그 징계 정도가 대단히 엄중했다. 그에게 부가된 법조항에 의하면 그가 받을 징계는 정직・면직・출교 중 하나다. 출교는 교회법이 가할 수 있는 최고형이며, 면직은 목사직 박탈을 의미한다. 그리고 정직은 일정기간 목사직의 중지를 뜻한다. 도대체.. 더보기
예배의 본질이 대면성에 있다고? [경향신문] 2020.09.12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칼럼 원고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9120300005&code=990100 [사유와 성찰]예배의 본질이 대면성에 있다고? 예배 본질은 대면·비대면 아닌고통받는 사람에게 말을 전하는신의 형식이 어떠해야 하는가그에 관한 ‘고민... news.khan.co.kr 예배의 본질이 대면성에 있다고? 예배의 본질은 대면, 비대면 논란의 문제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의 곁에서 말을 건낼 수 있는 신의 형식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의 산물이다 요한복음 공동체가 직면한 심각한 신앙의 문제는 ‘신의 부재’였다. 삶이 평탄했다면 신의 부재를 그토록 절절하게 체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더보기
교단정치는 교회를 움직이지 못한다 [경향신문] 2020/07.18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칼럼(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180300055&code=990100) -------------------------------- 교단정치는 교회를 움직이지 못한다 차별금지법 제정 국면, 개신교의 반대운동이 조용하다 교단정치 중심부가 추동하는 반대운동의 영토는 고독한 섬이 되고 있다 이번엔 정의당이 발의했다. 한데 정부나 거대정당의 발의했던 과거보다 저항은 강렬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차별금지법 반대 전선의 최전방에는 개신교가 있었다. 이번에도 예외 없다. 한데 다른 종교나 시민사회의 동조가 시원찮다. 실은 개신교도 전에 비해 그리 맹렬하지 않다. 대한예수교.. 더보기
‘용서한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 [경향신문] 2020.05.23자 '사유와성찰' 코너에 실린 글. (신문에 게재된 부분 중 독자로부터 정의연에 대한 나의 비판에 대한 오류를 지적받아 그 부분을 붉은색 글자에 이탤릭 표기를 하였고, 그것에 대한 나의 자기 비판적 코멘트를 보라색으로 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편견을 수정하게 한 정의연 활동에 대한 글에 대해 링크를 걸어놓았습니다.) ------------------------ ‘용서한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 어제 하루 종일 뉴스매체들을 뒤덮은 말은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와 “용서한 것 없다”는 말이었다. 이런 말의 쓰임새 하나는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해야 하는 말이다. 가령 전두환이 광주5.18 희생자들에게, 그리고 n번방 운영자 조주빈이 성착취 피해자에게 해야 할 말이다.. 더보기
포스트코로나 시대 우리가 자성해야 할 것 [경향신문] 2020년 4월25일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칼럼(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242105015&code=990100) ----------------------- 포스트코로나 시대 우리가 자성해야 할 것 처참한 3년간의 전투가 양측의 합의로 중단되었음이 선포된 직후, 남한 사회에는 매우 흥미로운 종교현상이 개신교 언저리에서 일어났다. 1954년 이후 수만 명의 대중이 운집한 부흥집회를 이끈 나운몽과 박태선은, 개신교 주류로부터 ‘이단’ 시비의 휘말렸지만, 한국적 부흥사들의 원조가 되었다. 1970~1980년대 전무후무한 성장을 이룩한 순복음교회의 조용기는 나운몽의 부흥집회를 따라다니면서 부흥사의 꿈을 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