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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TV는 나의 몸

[한겨레21] 894호 (2012.01.16)의 '당신의 머스트해브' 코너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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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스트해브   TV는 나의 몸


 

새벽 두시반이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숨 막히게 꽉 짜인 하루다. 어제 아침 눈을 뜨고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메모했다. 무려 15. 잘 나가는 연예인도 아닌데, 작은 임의단체를 맡고 있는 별 볼일 없는 중년 남자가 무슨 할 일이 이렇게 많은지. 오래전에 넘겼던 원고 수정해서 보내는 것, 지난 늦은 새벽까지 마무리했던 칼럼원고 최종검토하고 보내는 것. 회의자료 정리해서 보내는 것, 연구소가 기획하는 프로그램의 필자에게 연락해서 미팅일자 잡는 것 등등.

하루 종일 짬도 없이 일했는데, 8개밖에 못했다. 나머지 7개는 그대로 내일 일로 남겼다. 하루를 쉼 없이 바삐 지냈지만 잔뜩 다음날 숙제로 남겨 두었다. 실은 전날도 그랬고 전전날도 그랬다. 내일도 그럴 것이고, 필경 그 다음날도 그럴 것 같다. 새해를 벽두부터 이렇게 보낸다. 지난해처럼 보내긴 싫었는데... 매일 꾸는 나의 바람은 이런 일과가 중단되는 하루들이 열흘만 계속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새벽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씻었다. 물 한 잔을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TV와 컴퓨터를 켜는 일이다. 그리고 이불을 어깨에 두른다. 그 순서가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

방안이 추워 책상위로 가지 않고 이부자리 앞 앉은뱅이책상에서 모든 일을 한다. 이후 나의 동선은 이 책상 반경 1미터 이내에서 이뤄진다. 앉은뱅이책상과 노트북, 이불, TV, 이 넷은 새벽시간의 나를 지켜주는 사총사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시간에 나의 일은 TV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는 일이다. 공중파 방송은 이미 끝났고, 케이블 영화채널, 오락채널, 뉴스채널, 음악채널, 드라마채널을 마구 오간다. 수십 개를 옮기면서 마음에 끌리는 몇 개를 기억해둔다. 그중에 어느 것에 고정시킬까. 하지만 채널 옮기는 새에 몇 개는 잊었다. 대개는 제일 마지막 혹은 그 직전에 기억한 채널로 고정시킨다. 그새 부팅이 끝났다. 이제 눈길은 컴퓨터로 옮겨간다.

조금 일하면 된다. 어느 날은 더 늦게 자거나 밤을 새고 어느 날은 조금 하다 잠든다. 그 시간 동안 TV는 홀로 뭔가를 한다. 가끔 눈길을 돌리지만, 채널 선택을 할 때와는 딴판으로 여간해서 나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그러다 종종 그 녀석은 잠들 기회를 못 잡는다. 아침까지 철저한 외면 속에서 홀로 방안의 소음을 내며 빛을 반짝거린다.

어느 날은 바쁜 일이 남았어도 TV에 몰입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얼마 후 나의 글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그 글이 화제가 되면 나는 호들갑스럽게 말한다. TV는 나의 지식의 원천이고 영혼의 일부야, 라고. 하지만 나의 골방 TV는 작동 시간에 비해 눈길을 끄는 시간은 지극히 적다.

한데 며칠 전 작동이 멈췄다. 사무실 전화를 집으로 옮기는 서비스를 받고 난 뒤, 왠일인지 TV가 죽었다. 평소 켜두어도 눈길을 사로잡기는커녕 배경음 역할조차 못했다. 심지어 그 반짝거림으로도 존재감을 알리지 못했다. 한데 그 녀석이 죽자 나는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날 나는 알았다. TV는 내 방 사총사 가운데 가장 홀대 당하는 비존재적 존재이지만, 실은 그 존재감은 내 몸의 일부였기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