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1.8에 했던 한백교회의 하늘뜻나누기 원고로 만든 것을 수정보완하여 다시 쓴 글로,
[공동선] 2012년 3-4월호에 게재됨.
하늘뜻나누기 원고는 설교 카테고리에서 확인할 수 있음.
그리고 [공동선]의 원고를 수정 보완하여 나의 책 [리부팅 바울]에 수록하였음
----------------------------------------------------------------------------------------------
타인이 되다
〈고린도전서〉 다시 읽기
그리스보의 거실
그날은 빌라의 주인이고 이스라엘계 그리스 사람인 그리스보(Crispus, 〈고린도전서〉 1,14)의 거실에서 모였다. 그 자리에는 존경받는 가이오(Gaius)도 있었고(〈고린도전서〉 1,14), 스데바나와 그의 식솔들(〈고린도전서〉 1,16), 그리고 글로에와 그의 식솔들(〈고린도전서〉 1,11)도 함께 했다. 에라스도(〈디모데후서〉 4,20)가 조금 늦게 허겁지겁 당도하자 그리스보가 일어나 집회의 시작을 선언하고, 요즘 공동체 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걱정이지만 오늘 특별히 중요한 사람들이 많이 모였으니 공동체가 화합할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서 글로에가 일어서서 에베소에 체류하고 있는 바울 사도가 그곳 사람들에게 복음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아울러 교회 내의 분파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도의 가르침을 전하였다(〈고린도전서〉 1,11). 1 바울보다 더 위대한 사도들의 가르침이 바울과 다르다는 주장을 폈던 몇몇 사람들(〈고린도전서〉 1,12~17)은 그 말이 마뜩치 않았지만 모처럼 많은 이들이 모여 화합을 논하는 데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 애써 자제하고 있었다.
실은 그들이 분파를 만들고 서로 상대의 도덕적 흠집들을 들춰내며 헐뜯는 동안 방언하는 여자들(〈고린도전서〉 14장 참조)이 들고 일어나 머리에 쓴 너울을 벗어던지고(〈고린도전서〉 11,13) 남편과의 성관계도 거부한 채 2 사도처럼 말하고 예언을 했다(〈고린도전서〉 11,5). 놀란 남편들과 분파 지도자들은 저 ‘시끄러운’ 여자들을 제어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그녀들은 더욱 큰소리로 방언과 예언을 쏟아냈다.
모든 게 뒤죽박죽되어도 마지막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가정의 질서가 교란되자 남자 지도자들은 위기의식에 빠지게 되었다. 이것이 이날의 회합을 가능하게 했던 이유다.
가이오의 연설이 끝나자 그들은 서로 악수를 하고 기도를 한다. 이어서 식사가 시작되었다. 관행에 따라 모임 장소를 제공한 그리스보가 마련한 식사였다.
정찬이 끝나고 얼마 지나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당도했다. 비교적 부유한 사람이었지만 천막 주문량을 맞추다 보니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지친 몸이었다(〈사도행전〉 18,3). 그이들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몇도 함께 당도했고, 3 그 뒤를 이어 옆의 빌라에 있는 상점 노동자들도 속속 도착했다. 하루 종일의 고된 노동 탓에 몸은 땀에 절어 있었다.
거실을 가득 채웠던 식후의 향긋한 음식 냄새가 그들의 땀 냄새와 뒤얽히면서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이에 몇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며 늦은 사람들에게 이제야 왔느냐고 역성을 낸다. 하인이고 노동자들인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러자 공동체 지도자의 한 사람이자 바울의 가장 절친한 동료이며 고린도의 그리스도 공동체를 만드는 데 혁혁한 공로가 있는 여성 브리스가가 ‘집주인’들의 태도에 버럭 화를 내며 반론을 편다. 주 안에서 주인과 종이 차별이 없다는 가르침은 무어냐고, 어떻게 자기들끼리만 식사를 하고 배고픔과 노동에 지친 사람들을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다시 큰소리가 나고 언쟁이 벌어졌다. 갈등을 조정하고 화해의 자리를 만들고자 했던 주의 만찬 자리는 이렇게 또 다시 싸움판이 되었다. 4
[그림7] 폼페이 인근의 보스코레알레에서 발굴된 1세기말경 로마의 빌라 조감도. 2층짜리 보스코레알레의 빌라는 1세기 당시 로마 빌라의 전형적 양식을 보여준다. 고린도의 예수공동체가 모였던 집도 이런 2층짜리 빌라였을 것이다.
갈등의 축소판
〈고리도전서〉를 통해 본 고린도 시의 그리스도 공동체 내에서 일어난 갈등을 보여주는 한 편의 가상의 이야기다. 〈고린도전서〉에 따르면, 이 갈등은 크게 세 층위를 지닌다. 하나는 공동체 지도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주도권 갈등이다. 그들은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 분파로 나뉘어 서로를 헐뜯고 상대방의 도덕적 흠집들을 폭로하고 있다. 두 번째 갈등 층위는 남편의 아내이기를 포기 혹은 유보하고 발언의 주체로 등장한 여성들로 인해 야기된 갈등이다. 여기서 그녀들은 ‘방언하는 여성들’이다. 방언은 낯선 신적 소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남성과 지배층의 언어질서에서 배제된 이들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전형적인 대안언어 현상이다. 5 셋째는 주인 대 종, 부자 대 가난한 자의 갈등이다. 신분적, 경제적 차별이 엄존하는 사회에서 그러한 계층을 만나게 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이 현실의 차별적 질서와 얽히면서 나타난 갈등이다.
[표5] 〈고린도전서〉 속에 반영된 고린도공동체의 세 가지 갈등 양상
갈등 양상 | 주요 본문 |
공동체 지도자들 간의 갈등: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 1장 |
남편 vs. 아내(특히 방언하는 여자) | 7,1~16; 11,2~16; 14,1~25 |
부자 vs. 가나한 자 | 11,23~34 |
그런데 이것이 고린도 시에 속해 있는 그리스도 공동체만의 고유한 갈등 양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보다는 이 세 가지가 고린도 시 전체의 갈등을 집약해 놓은 것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요컨대 고린도 예수공동체의 문제는 고린도 시가 겪고 있던 문제의 축소판이었다.
고린도 시는 기원전 2세기 중반, 그리스의 아가야(Achaia) 지역의 도시국가들이 연합하여 벌인 반로마 항쟁에서 패배한 뒤 로마에 의해 잔혹하게 파괴된 도시의 하나였다. 두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누리는 피의 달콤함에 한껏 취해 있었다. 로마군을 이끄는 루키우스 뭄미우스(Lucius Mummius)는 기원전 146년 고린도를 잔인하게 약탈했고, 남자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댔으며 무수한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팔아넘겼다.
한 세기가 지나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폐허가 된 이 도시를 재건했다. 동쪽으로는 에게 해를 통해 소아시아와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이오니아 해를 거쳐 이탈리아와 연결되는 독특한 지형이 갖는 경제적 가치 덕이다. 동서가 불과 8 킬로에 불과한 이 항구도시를 이용하지 않으면 멀리 필로폰네소스 반도를 돌아가야 하니 그 비용의 차이가 엄청났다. 카이사르는 이곳에 퇴역군인들과 로마시의 하층민을 이주시켰다. 하여 고린도 시는 데살로니가 못지않게 친 황제적인 새로운 엘리트층이 형성된 도시로 재탄생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와는 달리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고 그 곳에 친 로마적인 새로운 엘리트층이 형성되는 역사는 이 도시의 독특성을 만들어냈다. 한편에선 전쟁의 상흔이 뿌리 깊게 남아 있는데, 다른 한편에선 전쟁의 가해자인 로마에 절대 충성하는 세력이 주로 지배층을 구성하고 있었다. 또한 잔혹하고도 철저한 파괴와 국제도시로의 급속한 재건이라는 거대하고도 신속한 변화가 이 도시의 대로와 소로 구석구석에 아로새겨 있었다. 더욱이 고대도시로서는 유례없을 정도의 빠른 인구변동과 공간적 변화, 그리고 체험의 다층성은 이 도시 거주민들이 얼마나 탈전통화된 체험에 노출되어 있었는지를 시사한다.
이런 도시 사람들은 귀속할 곳이 없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민자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대대로 이곳에서 낳고 자란 사람들일지라도 그이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뀌고 있는 데 어찌 그 태풍 같이 휘몰아치는 변화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는가. 더구나 조상의 전통도, 종교도, 이념도, 통치자의 명령도 영원성을 상실한 사회였다. 사람들의 들썩이는 몸을 위탁할 곳은 없었다.
이는 빠른 산업화를 거친 뒤에 더 맹렬한 속도로 이어지는 정보화 시대의 탈근대 체험에 노출된 오늘 한국사회의 구성원이 느끼는 박탈감과 유사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산업사회와 그것에 연이어 전개되는 탈산업사회적 포스트근대를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안주할 본향이 없다. 박정희 체제의 근대화 프로젝트처럼 집과 길을 모조리 갈아치워야만, 곧 아비의 전통을 해체해야만 ‘우리’라는 주체를 확립할 수 있는 사회였고, 최근 이건희의 말처럼 “마누라 빼고는 모조기 갈아치워라”는 존재 자체의 발본적 쇄신의 메시지에 충실해야만 생존하는 사회였다.
고린도 시의 주민들도, 비록 한국의 현대와 같은 그런 빠른 변화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고대인들의 속도감으로는 현기증을 느낄 정도의 그런 초고속 변화에 노출되었겠다. 귀속할 곳을 상실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기서 바울의 구절 하나를 살펴보자.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고린도전서〉 6,20
여기서 바울은 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말했듯이 고린도 시는 무수한 이민자들로 들끓었다. 제국이 이주시킨 로마의 퇴역군인과 하층민들 외에도, 뱃사람들, 국제무역 종사자들이 무수히 드나들었고, 때로는 이곳을 거점 공간으로 삼기도 했다. 또 이 과정에서 전쟁포로가 되어 노예로 전락했던 이들과 난민으로 유랑하던 이들이 대대적으로 유입되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자유노예’였는데, 그들은 아우구스투스 집권 이후 정복전쟁이 종식되면서 노예 가격이 급상승하자 노예 소유주들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방면한 이들이었다. 신분은 노예인데 소유주가 없는 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마치 유기견과 같은 존재가 되어 처절한 생존의 정글 속에 내던져진 ‘말하는 짐승’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이 도시의 하층 노동시장으로 대대적으로 유입되었는데, 고린도처럼 빠른 속도의 변화를 거듭하는 도시에는 특히 많은 이들이 유입되었다.
혈통으로도 피부색으로도 언어로도, 어느 하나 동질감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로 들끓고 있는 도시. 이곳에선 공권력의 폭력뿐 아니라, 별의별 인연을 통해 형성된 수많은 공동체들의 박 터지는 경쟁에 의한 폭력이 난무했다. 도시라는 전체 체제는 안정된 듯 보이지만, 사람들 개개인이 느끼는 상황은 힘의 원리만이 지배하는 지극히 불안정한 정글사회,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사적결속체를 만들었고, 자유노예나 난민 등 하층민들은 그 결속체의 변두리에라도 귀속하고자 노력했다.
이런 고린도의 사회적 환경에서 이스라엘계 디아스포라 결속체의 일원이 된 사람들 중, 소수종파로 모이기 시작한 그리스도 공동체의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 서신의 수신자들을 일종의 ‘노예’로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소유주가 하느님이다. 하느님이 그이들을 값을 치루고 샀다는 것이다. 자유노예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 말이 누구보다도 절절하게, 일종의 ‘은혜’로 체감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만이 아니라 이 도시 사람이라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몸을 위탁할 곳이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모두가 절감하고 있었겠다. 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모두들 자기 몸으로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시오.’
어떡해서든 정글 속에서 생존할 축복을 얻은 이들에게 고린도라는 도시는 기회의 장소이기도 했다. 계층적 질서가 교란되어 있는 상황에서 날로 급성장하고 있는 사회적 상황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를 축적하고 좋은 교육을 받고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은 진취적인 사회적 운동들이 출몰할 수 있는 여건이기도 했다. 전통의 가치는 많은 이들이 안주하는 ‘안보의 장소’가 되었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을 옥죄는 ‘배제의 장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통의 가치가 무력해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기를 옥죄는 질서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었고, 그런 활동에 삶을 투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여 앞에서 언급한 고린도의 그리스도 공동체가 겪고 있던 세 가지 범주의 갈등 양상은 고린도 시의 갈등 양상이기도 했다. 고린도의 교회의 문제는 곧 고린도 시 전체의 문제이기도 했고, 그런 점에서 바울이 이야기한 그리스도 공동체에 대한 권고는 곧 고린도 시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바울식의 해답이라고 할 수도 있다.
타인이 되자
내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에 접한 바울이 공동체에 보낸 장문의 서신이 바로 〈고린도전서〉다. 9,16~27은 이 서신 전체에서 제시된 바울식 대안의 응결체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 그리하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내용인즉슨,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율법주의자든 이스라엘 율법을 모르는 사람이든, 자신은 바로 그 사람 각자처럼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우고, 유대인이기도하고 이방이기도 하며, 율법주의자이기도 하고 율법의 문외한이기도 한 사람, 그가 접한 사람 각각의 얼굴로 그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27절)는 표현은 그가 〈빌립보서〉에서 말한 그리스도의 모습과 겹친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2,6~8)
타인이 됨으로써 그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다는 그리스도의 진리, 바로 그것이다. 즉 이것은 ‘살림의 진리’다. 살림, 곧 죽임 반대편의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압도하는 근본적 진리, 세상의 모든 현상을 압도하는 놀라운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비우는 것, 오히려 그런 진리에 대한 확신을 버리고 단지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타자의 모습으로 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지할 것은 이것은 제국의 질서의 정반대에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제국’은 타자를 정복하고 약탈하여 비워버리고 그 속에 자기를, 자기에 대한 선망을 채워버리는 체제다. 바로 고린도 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체제는 ‘타자 살해’의 질서다. 하여 제국의 질서 속에서 타자들은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나아가 존재가 박탈됨으로써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자가 된다.
민중신학은 이러한 존재가 사라진 자, ‘비존재가 된 존재’, 비존재가 됨으로써만 존재라고 인정되는 자를 ‘민중’이라고 불렀다. 땅과 집과 조상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여 무허가 주택, 곧 주택으로 ‘인정되지 않는 집에 거주’하는 자가 된 도시 이주자는 ‘기본권이 갈가리 난도질’되면서 극한적 저임금의 노동자로서의 ‘존재’가 되어버린다. ‘떠나고’ ‘인정되지 않는 집에 살고’ ‘기본권을 난도질되는’ 자, 곧 존재의 자리를 박탈당하는 자가 됨으로써 그이들은 그 사회 속에 배치될 곳을 갖게 되는 자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민중신학은 민중이라고 부른 것이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이러한 귀속성을 받탈당한 비존재적 존재성을 ‘유실된 말’에서 보았다. ‘한’은 유실된 말, 곧 말의 성격을 잃어버린 소리 혹은 흔적이다. 하여 한의 소리, 그 말이 유실된 소리에서 소리의 내력을 발견하는 것, 즉 그것이 바로 민중신학적 살림의 공동체의 과제인 것이다.
-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모든 편지들은 에베소에 체류하고 있을 때 쓰였다. [본문으로]
- 〈고린도전서〉 11,2~16은 결혼한 여자들이 머리에 써야하는 너울을 벗어버리는 현상이 고린도의 그리스도 공동체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바울은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논리가 궁색하지만,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결혼한 여자는 머리에 너울을 써야 하며, 공동체 내에서 예언이든 강론이든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말이다.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남녀간의 질서 해체가 공동체 전체의 통합을 깨뜨리고 있다는 공동체 남성 지도자들의 우려를 대변한 것이겠다. 한편 7,1~16에는 아내들이 성적 금욕을 거부하는 현상이 암시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는 바울 자신이 평소 성적 금욕을 권장해왔음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즉 고린도의 예수 공동체의 일부 여성들이 신앙에 대한 열정이 넘쳐서 결혼한 여성임을 표시하는 너울을 벗어던지고 남편과의 성관계까지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에 바울은 대단히 방어적인 수습의 말을 해야 했다. 자신이 그토록 권장했던 금욕조차도 남편이든 아내든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며 서로 협의하면서 하라고 말한다. [본문으로]
- 〈고린도전서〉 16,19에 따르면 브리스가-아굴라 부부는 ‘집주인’이었고, 그이들의 집은 공동체의 회합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는 그이들이 천막제조노동자라기보다는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천막제조업체의 경영자임을 암시한다. [본문으로]
- 〈고린도전서〉 11,23~34에는 고린도의 그리스도 공동체는 모임마다 성찬나눔과 공동식사를 함께 했던 것 같다. 순서는 ‘빵의 축사→공동식사→잔의 축사’ 형식이었던 것 같다. 한데 모임에 참석하는 이들이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일로 인해 갈등이 벌어지자 집회에서 공동식사를 제외하라는 가르침을 준다. 이것은 다양한 계층이 모임을 공유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본문으로]
- 종교현상학적으로 방언은 주류언어에서 소외된 이들에게서 더 현저히 나타나는 탈언어적 종교언어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종교언어는 종교적 영역에서 주류담론의 권력독점을 견제하는 대안언어의 역할을 한다. 즉 방언을 하는 이는, 비록 학력이나 신분이나 성별에서 열등한 존재위치를 갖고 있더라도, 종교공동체에서 특권적 위상을 획득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방언은 특히 여성의 종교언어 현상이며, 그 여성에게 종교엘리트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본문으로]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구화 시대 보편적 복지동맹의 가능성과 ‘작은교회’ (0) | 2012.07.19 |
---|---|
정교분리 신학에는 복음이 없다 (수정보완본) (0) | 2012.04.13 |
TV는 나의 몸 (0) | 2012.04.12 |
낯설음에 대한 은폐된 폭력, 어떻게 성찰할 것인가 (0) | 2012.02.13 |
타인이 되다 (0) | 2012.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