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항아리 출판사에서 2012년 8월 6일 출간된 책 [우파의 불만 - 새로운 우파의 출현과 불안한 징후들](이택광 박권일 외)에 게재된 저의 글입니다. 책에는 수정된 제목으로 수록되었고, 인텨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7350066&start=slayer
기독교 우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_(우파의 불만) 게재 원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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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우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한국 기독교 우파, 그 내부가 수상하다
최근 소망교회에서 목사간의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부목사가 담임목사에게 폭행을 가했다는 것이다. 시시비비를 떠나, 교회에서 부교역자가 담임교역자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교계의 일반 상식에서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교회에서 일어났던 숱한 폭력들 가운데 이런 일은 거의 없다. 담임교역자와 부교역자의 권위는 거의 하늘과 땅의 관계라고 할 만큼 격차가 크다. 혹여 담임교역자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더라도 그이에게 폭력을 쓴 부교역자의 경력은 치명적이다. 그런 이를 채용할 교회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가해자인 부교역자는 일종의 자살행위를 한 셈이다. 그럼에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교회 소식에 정통한 이들에게 문의해 봤지만, 사건의 진상은 철저히 봉쇄되어 있다. 최근 문화방송의 <PD수첩>에서 이 소재를 취재하는 도중 담당 PD가 타부서로 이전 발령이 내려졌다고 하니, 이 사태는 단순히 힘 있는 교회가 자신의 치부를 숨기려고 하는 차원을 넘어서 정권 차원의 보안 사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현재로선 증거도 증인도 찾아볼 수 없고 소문만 무성하다. 갈등 당사자인 두 목사를 각기 잘 아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며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절대로 그럴 법하지 않은 사람들이 냉정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면, 이 폭력 사태는 정상적인 판단력이 마비된, 극한적 상태에서 벌어진 우발적 사태일 수 있겠다. 그런데 시선을 두 사람의 사적인 분노조절의 문제를 넘어서 그 맥락의 차원, 구조적 차원으로 돌리면 의외의 논점을 해석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세간에 알려져 있듯이, 현 담임목사와 전 담임목사(원로목사) 간의 갈등에서 이 사건이 비롯되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한국교회에서 전, 현직 목사간의 갈등이 여러 문제를 낳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더욱이 전 담임목사가 원로목사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한데 바로 이 흔한 일이 소망교회에서 일어났을 때, 그것은 더 이상 평범한 사실이 아니다. 왜냐면 그 속에는 한국 기독교 우파의 형성과 분화, 그리고 내적 갈등에 관한 해석의 실마리가 담겨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소망교회 폭력 사태를 실마리로 해서, 최근 한국 기독교 우파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해석해 내는 데 초점이 있다.
대성장, 그리고 메가처치의 탄생
먼저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폭발적 성장을 구가하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1965년부터 1990년 사이에 한국개신교의 교인 증가율은 5년 단위로 계산할 때 20~40%나 되었고, 특히 1966~1970년에는 무려 252.8%나 증가하는 놀라운 기록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적 팽창은 대도시, 특히 서울에서 압도적으로 나타났는데, 정부 주도의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광범위한 이농민들을 대대적으로 흡수하고, 군선교의 특혜, 그리고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로 대표되는) 대규모 선교대회 등으로 많은 개종자들이 교회로 유입됨으로써 이 전대미문의 대성장은 가능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러한 가파른 성장 과정에서 한국판 메가처치들(mega-churches)이 탄생하여 그 현상을 주도하였다는 점에 있다. 메가처치란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대부흥 현상 1을 설명하면서 나온 개념으로, 소비자본주의적 테크널리지를 적극 활용하여 신앙의 시장화를 극대화시킴으로써 단기간에 급성장한 교회로, 2 매주 주일예배의 참석자가 2천 명 이상 되는 교회를 지칭하는 용어다. 이러한 창의적인 성공을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주역은 담임목회자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있다. 그이들의 개성 넘치는 목회 방식이 교인들의 종교제도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교회가 추구하는 선교 마케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열렬한 행동가들을 양산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데 미국의 메가처치에 관한 논의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사실은 교세의 성장이 전반적인 현상이 아니라 소수의 급성장한 교회들, 즉 메가처치로 부상한 교회들에 편중된 성장이라는 점이다. 하여 메가처치의 등장은 규모에 있어 교회 간 격차가 더욱 심화되는 현상과 맞물린다.
한국에서도 대부흥기에, 교세의 전반적인 증가가 있기는 했어도, 대형교회 몇몇이 그러한 성장을 주도했다. 이 시기에 수많은 작은 교회들이 설립되었지만, 재정적 자립에 성공하지 못한 ‘미자립교회’의 비율이 전체의 70~80%에 이르며,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교회들이 ‘작은 교회’라는 주체와 그에 걸맞는 형식과 내용을 추구하지 못하고 대형교회가 되는 허망한 꿈만 쫓는다. 하여 대형교회를 선망하며 그 신앙의 내용과 형식을 단순 모방하는 데 치우쳐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거의 모든 교회들은 규모에 관계없이 ‘대형교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진짜 대형교회들은 놀라운 양적 성장을 이룩하며, 개신교 교인의 총량적 증가를 사실상 주도했다. 3
또한 적어도 이 시기에 대개의 대형교회들은, 아직 소비자본주의적 테크널리지를 체험하지 못한 시기였음에도, 4 기술만능주의를 신앙화하고, 나아가 ‘신앙을 시장화’함으로써 폭발적인 양적 성공을 이룩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에 태동한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미국의 메가처치와 닮았다. 무엇보다도 빠른 성장, 담임목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 등에서도 메가처치로서의 특성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한국판 메가처치들이 가장 열광적으로 추구한 가치는 ‘성공’이다. 조용기의 ‘삼박자 구원론’은 바로 그러한 성공지상주의의 결정판이다. 세계의 국지전 가운데 인적, 사회적 자원을 밑바닥까지 모조리 붕괴시켜버린 가장 치명적인 파괴의 전쟁을 치룬 뒤, ‘전후’의 한국인들에게 제일 먼저 닥쳐온 것은 병들어버린 몸과 영혼의 고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삶이 밑바닥까지 거덜난 많은 사람들이 나운몽이 이끄는 기도원 부흥집회로 몰려왔다. 여기서 그의 격정적인 예배의 하이라이트는 병의 치료에 있었다. 그의 기도원운동은, 명상과 침묵기도와는 다른, 몸과 영혼의 바닥까지 드러낼 정도로 광기를 뿜어내는 한국적인 부흥회의 효시가 되었다. 주류교회들이 이단시하는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나운몽의 기도원 부흥집회는 대중들에게 선풍적인 열광을 불러 일으켰고, 그의 길을 따르는 많은 부흥사들이 등장했다.
조용기도 바로 그런 사람의 하나다. 하지만 그가 직면한 대중의 상흔은 ‘전후’의 그것이 아니라 군사정권에 의해 강력하게 추진된 산업화로 인한 고통과 관련된다. 국가는 빠른 산업화를 위해 광범위한 이농현상을 촉발시켰지만, 이들 이농민들은 국가의 총량적 성장을 위한 도구이고 희생물일 뿐이었다. 국가의 보호 없이 방치된 채, 성장의 소모품이 된 사람들은 숱한 질병에 시달렸다. 산업재해와 영향실조, 방역의 미비로 인한 질병, 만연한 폭력 등으로, 혹독한 노동의 현장인 일터와 척박한 무허가 판자촌, 그 낯선 공간에서 그들의 몸과 영혼이 병들어버린 것이다. 부흥사 조용기의 예배는 바로 이들의 몸을, 영혼을 옭아매는 악령의 사슬을 풀어주는 구마의식이었다. 조용기와 그의 장모인 최자실이 이끄는 부흥 집회에서는 숱한 병치료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나운몽이 그랬듯이 조용기도 병의 치료를 신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가장 결정적인 징표라고 주장했다.
이 시기는 사회적으로 ‘전후’의 트라우마가 성장을 위한 전 사회적인 열정으로 전화되어 불타오르던 시기다. 국가는 성장의 결과에 대한 판타지를 국민에게 각인시킴으로써 성장을 위한 사회적 총동원체제를 가능하게 했다. 사회는 빠르게 성장에 몰입되고 있었다. 바로 이 시기에 조용기도 신앙을 성장담론과 밀착시킴으로써 대부흥의 고속엔진을 장착하였다. 그것은 곧 자기와 가족, 그리고 교회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열망이었다. 이것 역시 신의 결정적인 축복의 징표였다. 이렇게 건강과 재산, 그리고 영혼의 구원이 하나의 패키지로 선사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조용기의 저 유명한 ‘삼박자 구원론’이다.
한편 이 시기에는 이농자들 외에도 다른 많은 이들, 특히 도시의 중산층 혹은 중산층이라는 자의식을 가진 이들의 교회 유입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빌리 그레이엄 등이 주도한 대형 부흥집회다. 조용기가 나운몽의 계보를 잇는 한국식의 부흥사의 상징이었다면, 빌리 그레이엄은 동시대 미국을 대표하는 부흥사였다. 조용기의 부흥회가 사람들의 몸속에 잔류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을 밑바닦까지 온통 들추어냄으로써, 그것으로 질병을 치유하는 동력을 생성시키는 광염을 뿜어내는 집회였다면, 빌리 그레이엄의 부흥집회는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절제된 찬송과 강연을 통해 감각의 공명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대중에게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되도록 초대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집회의 형식이다.
거의 일년 내내 도시 곳곳에 방사된, 당시로선 흔치 않던 올칼라의 세련된 포스터로 사전 홍보가 대대적으로 수행되었다. 기타와 전자악기가 동원된 팝송풍의 복음성가는 감정을 폭발적으로 분출하기보다는 다소 절제되어 음미할 수 있는 음악으로 대중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간다. 이것은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를 때와는 다른, 모던 감각과 신앙이 결합된 느낌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경음악단의 여러 악기가 진하게 배경을 깔면서 몸속 내면의 감정을 다 쏟아내듯 부르는 일본식 가요풍의 노래보다 통기타 하나와 흥얼대듯 읍조리는 절제된 미국식 포크송 풍의 노래가 새로운 청년문화로 열렬하게 확산되던 바로 그때, 빌리 그렘이엄 부흥회의 복음성가는 많은 젊은층의 대중을 하나의 모던체험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흥사의 강연이 이어진다. 영어다. 물론 통역자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번역된 말에 앞서 영어로 그 소리를 듣는다.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 기독교 복음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나라, 그 말로 설교를 듣는다. 사람들은 마치 예수가 애초부터 영어로 말했을 것 같은 느낌으로 그 집회의 분위기에 자신의 선망을 섞는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부흥사는 사람들을 눈감게 하고, 신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신의 초청에 응하라고 설득한다. 먼저 손을 들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게 한다. 그 사이에 노래가 들어가고, 가벼운 율동에 참여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으로 나오도록 한다.
이 과정은 천국의 백성이 되는 초대라기보다는 미국 시민이 되는 초대처럼 느껴진다. 아니 그 둘은 사실상 혼융되어 있다. 미국 같은 부유한 나라가 되고픈 꿈, 그런 나라의 일원이 되고픈 꿈, 그것이 종교적 개종의 행위와 결합되도록 기획된 집회, 여기에 많은 중산층 대중은 교회로 몰려들었다.
한국판 메가처치 탄생 내력에 관해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이른바 ‘강남 교회’의 탄생에 관한 내력이다. 1966년부터 정부 주도로 시작된 강남권 개발 사업이 엄청난 반향과 투기를 불러일으키면서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한다. 특히 1969년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개통되고, 그 이듬해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며, 1972년 영동 신시가지(지금의 서초구, 강남구 지역)가 조성됨에 따라 이 지역의 인구는 1973년 인구 5만 명에서 1978년에는 4배가 넘는 21만 명이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대의 상승인데, 압구정동 지역은 1963년에서 1979년 사이에 875배, 신사동은 1000배 상승하였다는 점이다. 하여 이 지역 이주자들의 재산은 초고속으로 증식했고, 타지역과의 격차는 그만큼 현저하게 벌어졌다.
바로 이곳, 영동 지구 가운데서 가장 노른자위인 압구정-신사동 지역으로 1978년 광림교회가 이주해 들어왔으며, 이 전 해에 소망교회가 창립되었다. 이 두 교회는 대표적인 강남 교회들로, 이 지역에 이주해온 중산층을 대거 흡수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빠른 속도로 메가처치 대열에 들어섰다.
특히 이들 강남 교회들은 전 교인에 걸쳐 비교적 고르게 중상위계층이 분포되었고, 학력 수준도 전반적으로 높았으며 전문직 종사자도 매우 많았다. 성공에 대한 자의식이 가장 높은 이들로 채워진 교회였던 것이다. 즉 이들의 신앙은 성공주의와 특권주의가 비상하게 결합된 양상을 띠었다.
성공주의와 독재자의 영성
이들 세 유형의 한국판 메가처치에서 공통된 것은 성공에 대한 꿈이 신앙과 일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공은 신의 축복이며, 그것을 위해 삶 전체를 투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과제였다. 이때 성공은 교회의 성공과 병행하는 것이거나 하위의 것이어야 했다. ‘성공을 위한 총동원체제’라는 삶의 태도는 당시 국가가 국민에게 주입하려 했던 심성의 핵심 내용이었다. 물론 여기서도 국가의 성공이 국민의 성공보다 선행한다. 교회와 국가는 이렇게 병행하는 성공관으로 서로를 보완하고 있었다. 순복음교회의 ‘새마음운동’이 바로 그렇다. 낡은 것을 청산하고, 성공을 위해 매진할 수 있는 마음가짐에 관한 신앙운동이다. 얼마 후 그것은 국가 차원의 버전으로 번안된 ‘새마을운동’으로 나타났다. 5 이렇게 성공을 위한 삶의 총동원체제는 (국가의) 국민과 (교회의) 성도, 이 두 주체가 공유하는 자의식의 핵심이었다.
여기에 미국에서 수입된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의 효과가 덧붙여진다. 미국의 번영신학은 1960년대 후반, 소비사회로 한창 변모하던 대도시에서 백인 남성 중산층의 성공주의 신앙을 신학적으로 담론화한 것이다. 조용기는 1970년대 후반 경 미국의 대표적인 메가처치 목회자인 크리스털교회(Crystal Church)의 목사 로버트 슐러(Robert A. Schuller) 등과 접촉하기 시작하는데, 조용기에게 슐러의 ‘적극적 사고’는 낡은 사고를 새것으로 대체하자는 새마음운동 슬로건의 구체적 심성이 무엇인지를 적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슐러의 적극적 사고를 수용한 조용기의 삼박자구원 신앙은 중대한 변화를 수반한다. 즉 성공주의 신앙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그를 대표했던 병치료의 기적이 일상에 비일상이 끼어드는 현상이라면, 적극적 사고는 일상에 일상을 끼워 넣음으로써, 새마음운동을 신앙운동이자 생활운동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고, 이것은 저소득, 저학력, 여성 중심의 신앙운동을 성공한 남성 중산층의 신앙운동으로 확장하는 효과가 있었다. 즉 ‘신앙의 중산층화’가 실현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위의 세 유형 중에서 조용기와 한국형 부흥사들만의 현상은 아니다. 조용기 식 부흥운동보다 더 중산층적 신앙현상인 다른 두 유형에서 이것은 더욱 현저했다. 당시 한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배치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이해했다. ‘생각의 중산층화’는 교회의 신앙이 주체화하고 있던 ‘신앙의 중산층화’와 맞물린 현상이다. 자기를 현재의 자신의 상황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거기에서 삶의 목표를 낙관적으로 잡아 매진하는 적극적 사고의 신앙으로, 자신의 성공과 동일시 내지는 우선시하는 교회의 성공에 열정을 다한다. 이렇게 해서 교인들의 열정을 동원함으로써 교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데 이렇게 교회의 성공을 위한 교인들의 총동원을 이끈 것은 무엇보다도 목회자의 카리스마적 능력이었다. 한국판 메가처치를 이룩한 목회자의 리더십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6 이들 카리스마 넘치는 목회자들과 교회의 빠른 성장은 불가분의 연관성이 있다. 또한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고 은퇴할 때까지, 대략 1960,70년대 어간에서 2천년대까지 30,40년간 한 교회에서 목회할 수 있었고 은퇴하였으며, 대개 은퇴한 이후에도 ‘원로목사’로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이렇게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장기간 유지하는 것과 교회가 메가처치로서 대형화되는 것은 긴밀한 관계가 있다. 7
목회자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장기간 같은 효력을 내지 않는다. 하여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이럴 땐 종종 온갖 권력 자원을 독점하고, 의결과정을 생략한 채 자원을 활용하는 독재적인 일상화된 권력이 제도화되곤 한다. 8 이렇게 하여 권력 독점이 장기화되면, 교회의 모든 제도운용 시스템은 그이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특히 내밀한 인적 네트워크와 재정운영의 압도적 독점능력이 그의 권력의 핵심이다. 그가 임명한 장로들 중 일부가 그런 ‘측근 집단’(inner circle)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며, 그들에 의해 재정은 극도로 불투명하게 운영된다.
그러다보니, 그가 은퇴를 해도 교회는 권력 교체에 어려움을 겪는다. 여전히 권력 자원은 그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강한 관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30,40년 간 목회해온 담임목사가 은퇴했을 때 그런 이들이 목회했던 교회는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하여 부자세습이라는 악습이 횡행하게 된 것이고, 은퇴한 목사는 ‘원로목사’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막후권력을 쥐고 교회를 쥐락펴락하는 관행도 생겼다.
알다시피 이렇게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장기간 권력을 독점하고, 이것이 성공주의와 결합되는 현상은 당시 군부 권위주의 체제의 정치 양식과 유사하다. 세속권력과 교회권력은 이렇게 서로 닮은 모습으로 그 시대의 지배체제를 구축하였다. 한국사회의 우파는 이렇게 형성되었다. 반민주적이고 권력 독점적이며, 성공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 몰두하는 집단적 심성이 당시 우파 세력이 공유하는 내적 논리였다.
그런데 소망교회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소망교회다. 이 교회는 1977년 창립할 때부터 줄곧 적극적으로 성장 중심의 교회를 추구하였고 그렇게 메가처치의 대열에 들어섰음에도, 몇 가지 점에서는 다른 한국판 메가처치들과는 뚜렷이 다른, 이 교회만의 독특한 양식을 견고히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거의 모든 교회들의 예배 풍경은 다소 소란스럽다. 특히 한국판 메가처치들은 목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두드러진 만큼, 그이들을 중심으로 교인들과 고조된 감정을 교환하며 소란스럽게 예배마당을 펼친다. 한데 소망교회의 본당 예배는 카리스마적 담임목사의 열정적인 설교 9 외에는 헛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목사의 말에 맞장구하는 전형적 추임새인 ‘아멘’ 소리도 없다. 교회 창립 이래 변함없는 엄숙한 분위기다. 또한 목사의 설교는 대형교회들 가운데 가장 지적이라 할 만큼, 현란한 지식이 펼쳐진다. 지적인 설교와 감정을 고조시키지 않고 설교를 청취하는 교인, 이것이 이 교회의 예배 풍경이다.
신앙행위에서 절제의 미학을 과시하는 또 다른 예로 흑백 2도 인쇄의 수수한 주보가 있다. 그러한 디자인과 형식은 기본적으로 창립 이래 변함없다. 많은 교회들의 경우, 주보는 색조화장으로 잘 치장된 교회의 얼굴이다. 실재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묘사된 교회당 그림과 올칼라의 세련된 디자인, 그 속에는 그 교회의 드러냄의 욕구가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소망교회의 주보는 드러냄보다는 감춤의 미학이 과시적으로 전시된다.
이와 유사한 것이 결혼예식이다. 결혼예식은 (가톨릭에서는 7대 성사의 하나지만) 개신교 예전에선 성사/성례전(Sacrament)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개의 교회들은 개신교의 성례전인 성만찬과 세례 예식보다도 결혼예식이 교인을 통합하는 데 훨씬 큰 효과가 있다는 점을 주지하고 있다. 결혼 자체가 교회의 마케팅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임은 의심의 여지없다. 1967년 순복음교회가 창간한 월간지 《신앙계》에는 오래 전 ‘중보기도’라는 이름의 코너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기도를 부탁하는 독자들의 편지 수 백 편이 게재되었다. 한데 이중 대다수는 결혼에 관한 중보기도 부탁편지였다. 오늘날 대형교회들의 청년부와 대학부는 중요한 결혼시장의 하나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교회는 청년들의 배우자를 구하려는 욕구를 신앙과 결합시키는 각종 프로그램을 고안, 운영한다. 또한 교회 청년들의 부모세대인 권사, 장로들은 자식의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해 청년부, 대학부를 예의 주시하며, 청년들은 이들 권사, 장로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기를 규율한다. 하여 결혼예식은 어느 교회든 중요한 행사이고, 그만큼 화려하고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로 이벤트적 기획을 가미하여 수행하곤 한다.
한편 소망교회는 오래전부터 특급 결혼시장으로 공공연히 평가받아왔는데, 이 교회의 결혼예식은 놀라우리만치 수수하고 전형적이다. 주례전담목사를 두고 최대한 많은 신청자의 결혼예식을 수행하는 다른 대형교회들과는 달리, 소망교회는 담임목사가 직접 집례하는 예식을 오직 한 주에 두 차례, 토요일에만 수행한다. 결혼하는 당사자가 어떤 배경의 사람이든 똑 같은,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순서지를 사용하며, 예식의 과정도 이벤트적 요소나 화려함이란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절제되어 있다. 또 목사의 집례 멘트 하나하나도, 심지어는 조사까지 완전히 일치할 만큼 지극히 성례전스럽다.
하나 더 이야기하면, 대형교회마다 홈페이지에 빠짐없이 포함되어 있는 ‘중보기도’ 메뉴에 올라온 글을 보면, 비록 익명으로 되어 있지만 놀라우리만치 비밀스러운 얘기들이 적지 아니 등장한다. 한국개신교 신자들은 수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를 공개하라는 끊임없는 요구에 직면한다. 한데 드러냄은 언제나 상향적이다. 신 앞에 자기를 공개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인 것처럼, 목사 앞에 신자들도 자기를 공개하며, 신앙적 선임자에게 후임자도 자기를 공개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임을 가르치는 경구들이 넘쳐난다. 반대로 알려는 욕구는 하향적으로 작용한다. 신앙의 성숙 단계, 영적 단계를 계층화하여, 신앙적 하위자의 내면을 해독하고, 그 속에 있는 불온한 것을 색출하는 과제가 상위자의 필수과제인 것이다.
한데 소망교회 홈페이지의 중보기도 게시판에 들어가면,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입에 발린 말들로 가득하다. 이 교회에 20년 이상 출석했던 두 명의 교인들과 각각 별도로 수행한 인터뷰에서 나는 이와 유사한 신앙 양태를 읽어낼 수 있었는데, 한 사람은 자기의 개인적 신상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가 이 교회를 다니게 하는 이유였다고 말했고, 다른 한 사람은 일터에서 우연히 같은 교회 교인인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그이와 교회에 대해서 혹은 상대방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을 포함해서 소망교회 교인들은 대체로 귀속의식이 상당히 강했고, 그것은 자신의 교회에 대한 자부심에서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같은 교회의 교인들에 대해 서로 알려 하지 않았고, 자신을 공개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교회의 특징적인 것 하나는 엄격한 시간감과 프로그램의 최소주의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주일 대예배는 오전 11시 30분 정시에 시작해서 12시 40분에 거의 오차 없이 끝난다. 이런 엄밀한 시간관은 교회 창립 이래 일관되게 지켜왔다고 한다. 이것은 예배 이후 프로그램의 최소화와 맞물리면서 교회가 가족의 만남을 주선하는 장소로 작동하는 조건이 된다.
거의 모든 교회들은 주일 내내 프로그램들로 가득하다. 또한 평일 프로그램도 꽉 짜여 있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연령별, 거주지별, 직능별, 관심별로 여기저기 흩어지기 마련이다. 하여 교회의 신앙 제도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교인가족들은 집에서 같이 나와서 서로 따로따로 활동하다 밤늦게 집에서야 만난다. 아니 녹초가 된 몸으로 들어간 집은 단지 잠자는 공간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교회를 ‘주 안에서 맺어진 새로운 가족’이라는 공동체주의적 이념의 제도적 틀이 된다. 반면 소망교회는 예배 후에 단위가족을 넘어서 확대가족의 만남이 이뤄지는 장이 된다. 그것은 예배 시간을 포함해서 최소화된 프로그램들의 시간이 엄격하게 지켜졌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소망교회는 감정의 절제나 욕망의 절제, 검약함을 과시적으로 전시한다. 또한 공동체 구성원 하나하나에 대해서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자기를 들춰 보이려 하기보다는 각자의 여백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강조하는, 요컨대 공동체주의적이기보다는 개인주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주의는 가족주의와 순접(順接)한다. 거시적인 신앙적 기조가 반공, 친미적이고 성공 지상주의적이며 보수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한국판 메가처치들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미시적인 차원에서 이 교회의 분위기는 독특하다.
청년층에서 장년층까지 비교적 이 교회의 신앙 방식에 깊게 동화되어 있던 이들 몇 명을 인터뷰하였는데,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교회에 대한 자신의 만족감의 첫 번째 요소를 ‘안정감’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들의 ‘안정감’이라는 표현과, 위에서 해석한바 절제, 검약, 개인주의적, 가족적 특성을 연결하면 이 교회적 신앙의 사회적 함의를 읽어내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귀족주의와 소망교회
소망교회가 입지한 압구정동 지역은 1990년대 이후 한국적 모던체험이 집약된 공간의 하나다. 이른바 소비사회적 모더니티가 지역적으로 특성화된 공간의 하나다.
“압구정의 풍경은 지하철 플랫폼 계단부터 지상연결계단 끝까지 거의 여백 없이 펼쳐진 성형광고의 파노라마로 시작된다. 끝없는 재건축, 리모델링 등으로 거리며 건물이며 간판이며 10년, 아니 1년이면 모조리 성형하는 공간은 그곳을 지나는 사람의 육체까지 리모델링한다. 시끄러운 시장 같은 분위기가 지양된 고상하고 깔끔한 느낌의 압구정 도심은 밤이 되면 새로운 거리로 변모한다. 즐비하게 늘어선 바(Bar)의 몽환적 네온사인은 낮의 깔끔함을 퇴폐적 판타지의 공간으로 전환시킨다. 낮의 공간과 밤의 공간은 마치 회전식 연극무대의 세트처럼 변모하고, 그곳을 채우는 무수한 성형인간들이 도로를, 바 주위를 서성인다.” 10
그런데 ‘엔틱’스러우면서도 모던적이고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밤낮이 다르고, 시간의 지속성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공간, 이것이 압구정의 정취라면, 그 한 가운데 위치한 소망교회는 변화를 부정하는 듯한, 시간의 지속성과 불변성을 과시적으로 강조하는 신앙제도를 발전시켰다.
이것은 다른 대형교회들이 총천연색 색깔의 화려한 주보와 각종 전자악기와 댄스가 서로 얽힌 동적인 예배 문화를 지향하면서 끊임없이 발 빠른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소망교회는 이러한 변화 지향성보다는 전통의 친숙함과 안정감에 기반을 둔 제도화를 추구한 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망교회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압축적 근대화'(condensed modernization)를 이룩한 한국사회는 ‘1997년 이후’ 더욱 빠름의 시간성에 귀속되고 있다. 이러한 과속성의 사회(society of speedity)로 치닫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성공한 이들 중 일부는 이중적 행태를 보인다. 한편에서는 과속성의 체제에 누구보다도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그 과속성에서 후퇴하여 빠름보다는 느림을, 양보다는 질을, 성과보다는 성숙을 강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즉 전방지역에서는 누구보다도 속도에 미친 전쟁광처럼 행동하지만, 후방지역에서는 이른바 중상위 계층적 웰빙 취향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때 이러한 웰빙 취향의 공간인 후방지역은 개인적 취향과 가족적 여가를 주요 무대로 하고 있다.
최근 중상위 계층적 소비패턴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이른바 ‘보보스형 소비’는 그러한 징후를 보여준다. 보보스(Bobos)는 ‘부르주아 보헤미안’(Bourgeios Bohemian)의 약어로 20세기 말, 과도한 소비사회로 치닫고 있는 미국 사회적 지배문화의 천박성을 지양하고 웰빙적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신귀족주의적 라이프스타일을 지칭한다. 이러한 보보스형 인간은 과시적이기보다는 검약하고 실용적이며, 소란스럽고 집단주의적인 행태보다는 개인주의적 조용함을 추구하며, 공적인 삶에서 실패하지 않았음에도 ‘노동중독’(work-holic)적 생활태도보다는 가족주의적이고 일상적 삶의 여유를 향유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소비패턴을 연구한 한 논문은 한국의 중상위 계층에서 최근 그러한 보보스형 소비성향이 포착되고 있음을 밝힌바 있다. 11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의 대두와 연결시켜보면 의미심장한 변화를, 적어도 그 일부를 추론할 수 있다. MB정부의 등장 맥락에서 선거의 중요한 슬로건의 하나가 ‘선진화’였다는 사실 말이다. 한국정치의 구태성을 보수주의 내부에서 개혁하겠다는 주장이겠다. 이른바 박세일 식 뉴라이트 담론이다. 그것이 MB 정부 내에서 얼마나 진정성을 담은 것인지는 의심스럽지만, 유념할 것은 그러한 슬로건이 대선 당시에 시민사회에서 먹혀들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정치의 웰빙화를 열망하는 시민사회적 바람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사회에서 ‘웰빙’ 담론은 주로 먹거리에 관한 관심을 주요 무대로 하여 발전하였지만, 나아가 보다 포괄적인 생활습관과 사적, 공적 관계 양식에까지 다양하게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는 문화적 담론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웰빙적 문화 취향은 보편적인 함의를 지니는 듯하면서도 실상은 계층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12 즉 웰빙은 ‘중산층 신사화’(gentrification of middle-class) 현상이다. 요컨대 박세일 식 정치의 웰빙화 담론인 선진화론의 배경에는 최근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중산층 신사화 현상으로서의 웰빙 문화가 있다.
한데 정치담론으로서 선진화론은 MB 정부 자신에 의해서 기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MB 정부의 정치가,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는 익숙한 말에서 드러나듯,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포스트민주화의 정치를 구현하려 하기보다는 퇴행적인 복수의 정치에 치중한 탓이겠다. 하지만 보수주의적 시민사회 내부에서는 정치의 선진화론과 같은 문화의 선진화를 선호하는 중상위 계층의 폭넓은 삶의 스타일이 확산하고 있었다는 점이 이 글이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삶의 스타일이 소비 패턴을 넘어서 공공적 영역에까지 확산하고 있는 징후를, 정치영역의 선진화 담론 외에 대형교회의 한 양상에서 포착하고자 했다. 그것을 나는 ‘후발대형교회’라는 이념형적 가설을 통해서 다룬 바 있는데, 13 소망교회가 그러한 이념형적 모델을 특징적으로 보여준 한 사례로 해석하고 있다.
앞에서 요약한 것처럼 절제, 검약, 개인주의적, 가족적 특성은 보보스적 삶의 패턴과 정확히 부합한다. 그리고 소망교회 교인들이 그 교회를 선호하는 1순위의 가치가 ‘안정감’이라고 한 것은 중산층적 웰빙 취향의 사회적 함의를 보여준다.
‘무에서 유를 창출’했던 압축적 성장 시대의 주역들이 빠른 성공주의에 열광했다면, ‘의미 있는 유’를 향유하려는 선진화 시대의 제2, 제3세대의 중상위 계층은 도전보다는 안정을, 성공보다는 성숙을 추구했다. 소망교회는, 그 교회가 추구했던 신앙제도는, 원래부터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그러한 중상위 계층적 웰빙 취향의 신앙화의 한 양상으로서 해석되었고, 그것을 선호하는 많은 이들의 의해 새로운 신앙제도로서 소비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해석은 소망교회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양상은 다르지만 여러 교회들, 특히 몇몇 메가처치들이 시도하고 있는 것들에서도 유추되며, 또한 최근 기독교계 일각에서 폭넓게 회자되고 있는 ‘청부론’이나 ‘풍요의 신학’ 등과 같은 담론 현상에서도 엿볼 수 있다. 14이 논점들의 공통된 함의는 ‘부’는 아등바등해서 이룩해야할 가치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이고, 그 주어진 부를 어떻게 깨끗하고 정직하게 활용할 것인가를 신앙윤리화하려는 데 있다. 위에서 말했던, 후발대형교회라는 나의 이념형적 모델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해석을 전제하고 있다.
소망교회는 최근 한국교회의 이러한 개혁의 흐름에 운동적으로 포섭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이 교회의 교인들은 과하게 개인적이고 가족주의적이다. 자기네 교인들의 신상에 대해서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고,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운동의 선봉에 서고 싶어 하는 것은 더더욱 관심이 아니다. 하지만 이 교회의 신앙제도와 다수 교인들의 성향 속에는 그러한 개혁의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과 신앙제도적 취향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소망교회는 아직
이제 글을 마무리하면서 처음의 논점으로 돌아가야겠다. 소망교회에서 일어난 폭력사태는 단지 한 교회에서 일어난 갈등의 차원을 넘어서는 해석의 실마리라고 했다.
이제까지 논한 것처럼 소망교회는 포스트민주화 시대, 혹은 소비사회적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한국사회의 변동 맥락에서 중상위 계층적 웰빙 취향의 보수주의 등장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그런데 또한 소망교회는 보수주의, 친미주의, 반공주의, 성공주의, 그리고 권위주의적 성향이라는 점에서 다른 메가처치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최근 벌어진 소망교회의 담임목사와 부목사 간의 폭력사태는, 내가 보기에는 바로 이 두 다른 양상이 충돌을 일으키는 지점에 정확하게 포개져 있다.
말했듯이 이 폭력사태의 배후에는 현 담임목사와 전 담임목사이자 원로목사, 이들 두 지도자의 갈등이 놓여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다. 사실은 그러한 갈등이 구조적 배후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전 담임목사이자 원로목사는 교회를 창립할 때부터 한국의 대표적인 메가처치가 될 때까지 이 교회를 이끌었던 카리스마적 지도자다. 앞에서 설명한 이 교회의 신앙제도적 특징의 대부분은 바로 그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심지어 퇴임한 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막강한 막후권력을 행사한다. 그를 승계한 이는 8년 동안 신임장로를 거의 임명하지 못했다. 그것은 교회 운영에서 자율권을 가질 권력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담임목사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은, 대개 그렇듯이, 권력 남용이 잦았다. 재정운영의 불투명성이 특히 문제적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에 관한 정보들은 그가 대단한 자금동원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속설과 엮인다. 그러한 자금력의 대부분은 교회의 공식적 재정에서 자의적으로 전용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것을 알 길은 없다. 또한 비공식적 자금 형성도 문제적임은 의심의 여지없다. 그리고 그러한 자금운용상의 편법은 도처에서 이 교회의 웰빙적, 선진화적 신앙제도적 양상과 충돌한다.
현 담임목사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전직 대학교수답게 학자스럽고 계몽적 교사에 가까운 리더십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교회의 조용하고 느리며 신사적이고 검약함에 더 어울린다. 반면 전 담임목사는 교회 제도의 많은 부분에서 검약함을 과시적으로 드러냈음에도 한국에서 두 대밖에 없는 스포츠카를 몰고 많은 비자금을 쥐락펴락하는 이중성을 숨기지 못했다. 요컨대 전 담임목사는 소망교회의 웰빙취향의 신앙제도를 창조하였고 그런 신앙 패턴을 고집스럽게 운영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이룩한 장본임에도 동시에 그 자신은 구태적인 독재자형 지도자다. 반면 현 담임목사는 독재자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나 본성상 독재자에 어울리지 않는다.
실은 소망교회 자체가 그렇다. 수만 명의 교인을 보유한 교회다. 그리고 이 교회에서 공식적인 발언의 주역은 담임목사 혼자다. 이 교회는 다른 교회보다 더욱 예전 중심적이며, 그런 점에서 더욱 안정감이 강화된다. 또한 결혼예식에서 보듯 예전을 담임목사 혼자 집례하며, 예배에서 보듯 혼자 말한다. 다른 참여는 극도로 제한적이다. 그런 점에서 예전 중심적 종단인 가톨릭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예전 중심성이 관철되는 방식은,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시간의 산물인 제도에 의존하고 있는 가톨릭과는 달리, 독재자적인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해 창안된 것이다. 하여 소망교회의 모델은 교회에 무관심한 신자 대중을 전제로 할 때만 성립할 수 있다. 가령, 사랑의교회 같은 열정적 신자층이 많은 교회와는 다른 신앙문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 소망교회의 신자층은 그런 요소가 강하다.
문제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영원히 교회를 통합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는 은퇴해야 했고, 그를 절대 지지하는 아들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후임자를 외부에서 초청해왔다는 데 있다. 비록 원로목사로 군림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여전히 갖고 있지만 말이다. 후임자는 성향상 지극히 소망교회스럽다. 하지만 동시에 소망교회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체제에 어울리지 않는 이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 소망교회의 갈등의 배경이 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교회에서 세상을 시끄럽게 할 만큼 엄청난 폭력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정작 교인들은 너무나 소망교회답게 무덤덤하다.
어쩌면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갈등이, 그 모순적 구조가 점차 개선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웰빙 신앙이 제도화되는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교인들이 더 이상 무관심한 방관자이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화를 추동하는 데 관여했던 시민적 주체처럼, 자존적 주체로서의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소망교회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이 교회의 보수주의가 한국기독교나 한국사회의 보수주의의 변화를 선도하는 하나의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런데 글을 마감하면서 그런 상상에 우울해지는 것은, 소망교회를 포함한 후발대형교회적 신앙 제도와 담론 속에는 ‘실패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배려가 없는 우파가 자신의 문화와 담론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새로운 괴물’, 그 흉물스러움이 은폐된, ‘파멸적인 유혹’과 맞붙어 싸워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
- 18세기 중반 경에 일어난 제1차 대부흥운동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일어난 제2차 대부흥운동 이후, 여기서 말한 ‘새로운 대부흥운동’은 1960년대 말 이후 미국의 대형 교단인 남침례교를 비롯해서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 그리고 몰몬교 등에서 나타난 급속한 성장 현상을 말한다. [본문으로]
- 이 시기에 등장한 교회성장학은 일종의 교회의 선교 마케팅에 관한 테크널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문으로]
- 대형교회의 이러한 성장 추세는 한국 개신교의 성장률이 둔화된 1990년대 이후, 특히 감소되고 있는 2천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본문으로]
- 소비자본주의가 아직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전후세대가 20대에 들어서는 1970년대에 팝송을 부르는 청년층이 통기타를 치며 등장할 무렵, 교회에서도 청년층의 신앙문화가 널리 확산되었다. 기타는 전체집회에서 부르는 집단적 찬송문화를 개별로 혹은 소집단에서 부르는 복음송(gospel song) 문화로 이행하게 하는 주요 매체가 되었다. 나는 여기서 교회의 일원이 아닌 개별자로서의 신앙인이라는 새로운 종교적 주체의 탄생이 등장하는 계기를 본다. 점차 신앙은 공동체의 집단적이고 윤리적인 고백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사적인 즐거움을 향유하는 영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1980년대 중반 이후 서서히 드럼, 전자악기 등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서 신앙집회는, 소비자본주의적 즐거움과 신앙을 결합시켜 소비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일부 대형교회를 제외하고는 발전된 소비자본주의적 테크널리지의 활용이 제한적이다. [본문으로]
- 조용기는 자신의 책 《3차원의 인생을 지배하는 4차원의 영성》 (교회성장연구소, 2004)에서 자신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농촌 재건을 위한 방안으로 건의한 ‘새마음운동’을 김현욱 내무장관이 종교 편향성의 혐의를 피하기 위해 변형시킨 것이 ‘새마을운동’이라는 야사를 소개하였다. [본문으로]
- 홍영기, 《4차원의 리더십―성공하는 영적 지도자의 7가지 비밀》 (교회성장연구소, 2007). [본문으로]
- 실제로 메가처치의 경우를 제외하면 목회자의 사역 형태는 순회사역인 경우가 훨씬 많다. 교인이나 목회자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 목회자 자신을 위해서나 교인을 위해서,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더 나은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본문으로]
- 조용기 연구자인 홍영기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제도화에서 조용기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일상화를 해석해낸다. 그의 글 〈영산과 카리스마 리더십〉, 《성령과 신학》 19(2003.5). [본문으로]
- 이런 풍모는, 1977년 소망교회를 설립하고 2003년 은퇴하여 원로목사에 취임한 곽선희 목사의 모습이다. 반면 그를 승계하여 2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김지철은 학자적 풍모가 강하며, 카리스마적 리더십보다는 합리적 리더십을 더 강하게 풍긴다. [본문으로]
- 이 단락은 나의 글 〈‘웰빙 우파’와 대형교회―문화적 선진화 현상으로서의 후발대형교회〉 (한국보수주의의 형성과 그리스도교 포럼 제1차 연구발표회 자료집. 2011.4.25), 8쪽을 인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 장의 내용은 이 글에 의존하고 있다. [본문으로]
- 이해연 김문영 박광희, 〈신귀족성향 소비문화계층에 관한 고찰―보보스(Bobos)와 포쉬(POSH)를 중심으로〉, 《대한가정학회지》 42/8(2004) 참조. [본문으로]
- 김석수는 현대의 웰빙 문화가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놀이가 아니라 또 하나의 권력놀이, 최소한 문화계급의 돌이가 되고 있다”고 본다. 김석수, 〈현대 웰빙 문화의 발생 원인에 대한 분석과 미래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모색―몸 이미지 무의식 개념을 중심으로〉, 《동서사상》 1(2006 8), 137쪽. [본문으로]
- 주10)에서 인용한 나의 글 참조. [본문으로]
- 나의 글 〈‘풍요의 신학’, 어디까지 가능한가?〉(대화문화아카데미 ‘성서의 역설적 쟁점’ 자료집 2008.12.6.) 참조(http://owal.tistory.com/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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