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한 기독교계 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반전, 평화 사상은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 아니던가? 군 계통의 신문이라면 모르겠지만, 기독교계 신문에서 어떻게 이런 유의 기사 제목이 올라올 수 있을까? 그래도 전쟁을 미화하는 기사를 쓰기야 하겠나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제목엔 물음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 어법상 전쟁 옹호 입장임이 분명하다. 필경, 전쟁‘도’ 하느님의 섭리에 속한다는 주장인 듯하다. ‘별 정신 나간 놈 다 있군’ 하는 꼬인 심사로,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제목 바로 위에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성경적 견해”라는 조금 작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옳거니, 이 엉뚱한 제목의 정체는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비판적 견해였던 것이다. 자신들이 이단시하는 종파를 비판하기 위해 전쟁까지도 옹호하고 있다.
지난 2000년 2월 말에 열린 ‘제주 국제 인권 학술 대회’에서 한인섭 교수(서울대 법대)가 처음 거론한 이래, 한겨레21에서 줄기차게 다룸으로써 은폐됐던 사실 하나가 비로소 우리에게 어느 정도 알려지게 되었다. 바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지난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병역 거부자라는 이유로 군 교도소에 수감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잡지에 따르면 2001년 2월 당시 집총 거부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이 1,317명이며, 그들은 모두 예외 없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라고 한다. 이 종파의 한국 지부인 ‘워치타워 성서책자협회’의 주장에 의하면, 1990년대 이후 매년 500명 이상의 청년들이 집총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교도소로 끌려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출소한 이후 병역기피자라는 경력 때문에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숫자는 이보다 몇십 배는 많을 것이다.
이 정도라면 이 문제는 의당 대책을 강구해야할 사회적 의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동안 군사정권 아래서 뿐만 아니라 민간 정부가 들어선 이후까지도 이 사실은 철저히 은폐되어 왔다. 그것은 우선 한국전쟁이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무차별 살육전을 경험한 사회에서 병역 거부 행위를 도저히 양심적 선택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집단적 병리증세가 우리를 지배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미국식 냉전주의를 본국보다 더욱 격정적으로 받아들인, 식민주의적인 극단적 모방 욕망이 전쟁의 기억을 더욱 파행적으로 되새기게 함으로써 병역 거부, 나아가 전쟁 거부의 담론에 대한 은폐의 정치는 한층 강화되었다. 그런 이유로 대다수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국토방위를 위한 필수불가결의 국민적 과제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뿐 아니라, 일체의 예외를 허용치 않는 배타적 원칙주의의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러니 병역 거부는 어떠한 이유로든 이해될 수도, 용납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국민적 집단 심리 아래서 병역 거부자에 대한 ‘상식의 폭력’, 일상 속에서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무의식의 폭력이 절제되지 않고 자행되었다. 물론 정부에 의한 공공연한 배제의 정치가 가혹하게 작동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폭력의 주체로 나설 필요는 없었다. 무관심만으로도 그 가학성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시민사회의 묵인 아래 한 소종파의 반폭력주의적인 종교적 양심은 국가 폭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짓밟혀왔고, 종교와 양심의 자유라는 초실정법적인 요소를 국방의 의무라는 실정법적 요소에 종속시킨 사법부의 반인권적인 군사주의적 판단은 이러한 국가 폭력을 법적으로 정당화시켜왔다. 그리하여 최소한 일만 명 이상의 사람이, 타인에게 상해를 입혔기 때문이 아니라, 상해를 줄 수 있는 일에 동참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에 수감자가 되어야 했고, 이후 공적 활동에 치명적인 제약을 평생 받으며 살아야 했다.
다시 돌아가서 앞서 언급한 신문의 논조를 좀더 살펴보자. 기사에는 이단 종파라는 ‘여호와의 증인’의 이러한 행동에 대한 보수주의적 기독교계의 입장이 소개되어 있다. 그 요지는, 세상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 또한 하느님이 주관하는 것이므로, 거부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오히려 ‘의로운 전쟁’의 수행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 기사와 함께 기획된, 「죄를 징벌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필자인 저명한 히브리성서(구약성서) 학자 모 씨는 히브리성서를 들먹이면서 하느님 편에서의 전쟁은 필요하다는 논증을 하였다.
나는 여기서 실낱같은 가능성마저 포기한 종교의 누추한 얼굴을 보아야 했다. 도대체 어떤 전쟁 치고 명분 없는 전쟁이 있었단 말인가? 모든 전쟁은, 적어도 당사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거룩한 전쟁이 아닌가? 또한 전쟁 중에 추악한 과정으로 뒤범벅되지 않은 전쟁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도대체 죄를 징벌하는 하느님의 거룩한 전쟁이란 무엇인가? ‘죄’라는 게 누구에게나 자명하게 인식될 수나 있는 것인가?
한국전쟁은 하느님의 거룩한 전쟁인가? 그것은 이 땅에서 ‘빨갱이’를 박멸하려는, 하느님의 ‘응징의 전쟁’인가, 아니면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를 축출하려는 ‘인민의 해방 전쟁’인가? 어떤 이가 성실하든 않든, 효녀/효자든 아니든, 이웃에게 어떤 사람이든, ... 등등, 이 모든 다른 요소들은 불문에 붙이고 단지 미국의 이념이나 소련의 이념 중에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심판대에 올라서야 했던 전쟁에서 하느님의 정의는 얼마나 자명한가? 도대체 어느 시선으로 봐야 죄를 징벌하는 대리인과 징벌의 대상인 죄인이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그 히브리성서 학자는 말한다. “생명과 영토, 민족과 국가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인 전쟁은 정당하”다고. 요컨대 그는 침공 이외의 전쟁은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얼핏 보면 타당한 주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자. 과연 방어와 침공은 반대개념인가? 도대체 한편은 방어만 하고 다른 편은 공격만 하는 전쟁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방어를 위한 수비와 방어를 위한 공격, 수비를 위한 방어와 공격을 위한 방어가 무수히 교차되는 것이 실제의 전쟁이 아닌가? 누가 시작했든 상대방이 항복할 때까지 계속 공세를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이 실제의 전쟁 아닌가? 또 그 시작이라는 것이 어느 시점부터 계산한 것인지,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미국의 ‘미사일 방어 전략’(NMD)은 표면상 적의 핵탄두를 요격하는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는 데 초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당한 전쟁 행위에 해당하는가? 한데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윌리엄 하퉁(William D. Hartung)과 마이클 시아로커(Michelle Ciarrocca)에 의하면, “NMD 체제 배치 결정은 미・러 양국 각각 1천 기의 핵탄두 감축을 제의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제안을 수포로 만드는 한편, 중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핵무기 생산을 자극할 수 있다”고 한다. 즉 그것은 방어의 성격보다는 사실상 선제공격의 성격을 띠며, 탈냉전 시대로의 이행에 찬물을 끼얹으며 새로운 냉전질서로 세계를 이끌어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견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통해 그 잔혹한 고통의 역사를 통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해온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와 너무나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지 않은가?
또 9.11테러 사태 이후, 미 대통령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전쟁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를 ‘박멸’하기 위한 미국의 대 아프간 폭격이 시작된 지 불과 일주일 후 《뉴욕타임즈》는 750만 인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아사 위기에 처해 있다는 보도를 했다. 빈 라덴과 부시는 각기 자신들이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도대체 어느 편의 행위가 정당한 전쟁인가? 히브리성서 학자 모씨는 무슨 수로 여기서 정당한 것을 가려낼 수 있다는 말인가?
어느 모로 봐도 국민의 병역 의무라는 것은 국가 존립을 위해 필요한 조건일 뿐 신학적으로 정당성을 갖는 조건일 수는 없다. 교회가 국가의 신하일 수 없다는 얘기는,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권을 국가가 침해할 때, 교회는 인권을 위해 국가에 저항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존립을 인권보다 우선시하는 신학은 더 이상 신학이 아니다. 그것은 군사주의라는 신의 신학이지, 하느님의 신학일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더 이야기하겠다.
기든스(A. Giddens)에 의하면, 근대적 국가의 발전 과정은 역사적으로 ‘전쟁의 산업화’라는 제도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무기 제조 기계 설비 기술과 더불어 사회적 조직화와 교통・통신 기술 등 복합적인 산업화를 수반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화는 국민징병제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국가를 탄생시켰다. 이후 근대사회는 이들 국민국가를 단위로 하는 경쟁으로 점철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국가가 경계(국경) 내의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경계 외부의 사회체제들과 경쟁을 하는 데 있어서, 국민총동원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다. 그것은 사회적 통합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른 결과였지만, 동시에 이러한 필요성은 더욱 발전된 통합의 장치를 낳았다. 아무튼 징병제는 이러한 국민통합의 메커니즘으로서 대단히 효과적인 장치임에 틀림없다.
국민의 핵심적 의무로서의 병역 의무라는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형성・발전하였다. 시민권 개념의 발전에 이러한 병역 의무의 제도화가 내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과거 왕과 귀족의 전쟁 시대에는 병사는 왕이나 귀족의 사병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면, 전 국민을 징병의 대상으로 삼는 근대적 총동원 사회에서는 시민적 참정권이 국민에게 그 대가로 주어졌던 것이다. 요컨대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국민징병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
한데 동시에 국민총동원 체제의 한 수단으로서의 국민징병제가 시민적 참정권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선물을 국민에게 선사한 것처럼, 또한 의도하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국민은 군대적 기준에 의해 규율된다는 것이다. ‘지혜로움’은 군대의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직업군인의 영역인 군 엘리트의 전유물이었고, 국민병사, 나아가 전 국민은 ‘강한 남성’의 이미지로 동화될 것을 끊임없이 요구받았던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신체에 대한 정치를 낳았다. 즉 비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장애인과 허약한 신체를 가진 여자는 불완전한 시민권을 갖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이렇게 ‘군대적 기준’이라는 감시의 시선 아래 전 국민이 스스로를 규율하는 사회, 이러한 규율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나는 ‘군사주의’라고 본다.
아무튼 이러한 국민징병제와 연동된 시민권의 사회, 강한 남자의 관점으로 국민을 규율하는 군사주의 사회는 병역 의무 불이행자에 대해 국가가 시민적 불이익을 가하게 되는 사회적 알리바이가 되었다. 여기에 국민국가 체제에서 병역의 의무가 국가의 인권 침해의 문제로서 이해되어야 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크게 두 차원을 갖는다. 그 하나는 ‘성과 장애’가 불완전한 시민의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는 병역 의무에서 배제된 자에게 가해지는 시민적 불이익의 차원이다. 다른 하나는 병역의 의무를 방기한 자에게 가해지는 시민적 불이익으로서, 종교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가 여기에 위치한다. 이렇게 병역의무의 정치는 소수자를 만들어 냈고, 차별과 배제를 제도화했으며, 이러한 일에 시민권을 볼모로 시민사회를 공범화했다.
전쟁은 적을 파괴하여 무력화함으로써 욕망을 실현하는 기재다. 그런 점에서 인류 문명이 제도화한 경쟁의 수많은 모델 가운데서, 전쟁은 가장 가학적인 수단과 결합된 방식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 신앙은 초기부터 이미 전쟁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전쟁으로서만 구축될 수 있고, 전쟁으로서만 유지되는 아우구스투스의 평화, 로마의 평화에 대해서, 초기의 기독교인은 예수의 평화를 선언했다. 로마의 평화가 적을 힘에 의해 무력화함으로써 이룩된 전쟁 억지의 정치라면, 예수의 평화는 적에 의해 무력화된 이들, 그 칼에 의해 희생당한 이들의 염원 속에서 생성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힘의 남용을 경계하는 전쟁 억지의 정치인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포용하고, 교회가 로마의 패권주의에 동조하는 서기 4세기 이전까지 교회는 이러한 반군사주의적 신앙을 지켜왔다. 수많은 기독교인 병사들이 살생에 대한 거부 때문에 순교했으며, 거의 대부분의 교부들은 로마의 군사주의를 비판하거나 최소한 침묵하였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이후 군인 순교자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며, 교회는 탈영자에 대한 처벌법을 제정하여 황제의 군사주의에 공조했다. 오늘날 교회가 군선교라는 이름하에 군목/군종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전통에 따른 것이지, 기독교 신앙의 기초에 근거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기독교 체제는 평화주의적 신앙의 뿌리를 계승하려 하지 않았다. 오직 소수 종파들만이 그것을 지켜왔던 것이 사실이다. ‘여호와의 증인’만 보더라도, 독일의 주류 기독교가 히틀러를 칭송하던 시절, 그들은 병역 거부로 인해 1만 명 이상이 수감되었고, 이 중에서 사망한 사람이 거의 3천 명에 달한다.
그리고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이러한 차별과 배제의 정치는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교회는 이단시된 종파를 보호하려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치졸하게도 평화주의적 신앙의 전통을 자신들이 지켜오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왜곡된 신앙을 통해 전쟁과 군사주의를 찬양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신학은 반야훼주의(anti-Jahwism) 신학일 뿐이다.
최근 미국은 세계를 신냉전주의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들이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군사적 패권주의는 미국판 전쟁 신학, 즉 반야훼주의 신학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과 미국의 교회들은 폭력을 응징하기 위해, 세계의 평화를 위해 힘의 정치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렇게 로마의 평화는 21세기 벽두부터 ‘미국의 평화’라는 담론으로 강력하게 부활했다. 그러한 군사주의가 전 세계 속에 차별과 배제의 정치를 강화할 것이며, 시민사회 또한 더욱 왜곡시킬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정치사회에서 보수주의가 득세하고 있고, 시민사회에서 자폐적 민족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소수자의 인권이 더욱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군사주의가 퍼뜨리는 테러 없는 평화, 안전한 일상생활이라는 장밋빛 이데올로기에 많은 사람들이 동화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유혹 이야기에서 국가의 신화에 대한 예수의 비판을 간략히 요약해보려 한다. 왜냐면 이 텍스트는 그런 국가의 이데올로기, 메시아주의의 허구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악마는 예수를 이렇게 세 가지로 유혹한다.
(1)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2)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시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 ......” 하고 말하였다.
(3) 악마는 다시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마태복음〉 4,1~11
첫째, 돌을 빵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아마도 빈궁한 이의 식량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신이 받아준다는 것, 그것은 신이 그의 편이라는 뜻이겠다. 즉 신을 독점하는 자가 되라는 유혹인 것이다. 셋째, 세상 권력을 주겠다는 유혹. 만약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가, 신권사회가 실현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마태복음〉은 식량과 종교와 온갖 권력 자원의 독점을 추구하는 국가권력을 빗대고 있다. 그것은, 그러한 독점은, 복음서에 의하면, ‘화려하기까지 하다.’ 즉, 사람들에게 권력 독점은 횡포로서 느껴지기보다는 아름다운 것이고, 선한 것처럼 인식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미국 교회들처럼, 그리고 오늘 우리의 교회들처럼.
이 텍스트 저자는 서기 66~70년에 벌어진 제1차 반로마항쟁 직후의 팔레스티나 인근의 도시에서 형성된 한 이스라엘계 이주민 공동체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폭력이 가장 절정에 달한 시기를 지났지만, 사람들은 아직 그 상흔에 시달리던 시기다. 게다가 지리적 배경은 로마에 의해 동원되어 전쟁터로 내몰렸던 팔레스티나 이북의 인근 지역이다. 그 주민은 남의 나라 전쟁터에 끌려가 죽음을 맞이할 뻔했던 사람들이거나 그들의 가족이었다. 그들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칼날이 누군가를 베었을 때의 그 몸서리치는 상황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동료나 적의 몸에서 터져 나온 핏덩어리가 자신의 몸으로 튀겼을 때의, 아직 채 식지 않은 그 끈끈한 액체의 비린내를 기억에서 도무지 지울 수 없는 이들이었다. 그 무기 부딪치는 소리, 병사들의 함성, 아우성, 비명 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맴돌며 날마다 숙면의 방해를 받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동원한 로마를 향해 분풀이할 만큼 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이스라엘계 사람들은 전쟁의 원인 제공자이자 모든 파괴적 결과를 책임져야 할 존재들이었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가진 지역 주민들에게, 이주노동자로 그 사회의 하층에 편입된 이스라엘계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표출할 공통의 표적, 바로 희생양이었다. 결국 이곳에 이주한 외국인 노동자들인 이스라엘계 사람들에게 이 지역의 삶은 폭력과 증오로 가득한 땅에서 생존을 위해 실타래 하나를 겨우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 처절함 그 자체였다.
이런 운명의 사람들에게 로마는 증오의 대상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로마의 힘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 권력의 화려함에 빗대서 하느님 나라를 상상하곤 했다. 다만 악한 존재가 그 권력을 쥐고 있는 탓에 그들이 자신을 억압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선한 존재가 권력을 장악한다면 상황은 그 정반대가 되리라는 기대를 전제한다. 그리하여 교회는 선한 권력의 주체가 되기를 욕망했던 것이다.
여기서 〈마태복음〉이 말하고자 한 것은, 예수는 권력과 동맹을 맺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에 저항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것은 권력의 정당화, 정치의 미학화를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군사주의를 미학화하는 신학은 결코 예수의 신학이 아니라, 예수에 의해 극복되어야 하는 신학인 것이다.
※ 한백교회 2001.06.24 하늘뜻나누기 원고를 수정 보완하여 나의 책 [예수의 독설]에 실었다.
평택대학교 '생명존중과 인권' 과목의 자료를 찾다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다룬 글로 오래 전의 글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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