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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정당성, 분단국가 체제들과 우리의 공모 [반신학의 미소]에 수록------------------------ 정당성, 분단국가 체제들과 우리의 공모 한 아기가 버려졌다. 탯줄 잘라 줄 사람도 없어 태반과 연결된 채 흉측한 것이 길게 아이 배꼽 밖으로 늘어져 있다. 엄마 뱃속에서 묻은 태지(胎脂)가 흙과 뒤범벅이 되어 아기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아무렇게나 내던져져 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부모의 원치 않은 자식, 특히 딸들의 운명이다.지나던 사람 하나가 피투성이로 몸부림하던 아기를 데려다가 키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다. 어느덧 그 아기는 처녀가 된다. 고운 옷을 입고, 아름답게 화장한, 팔찌와 목걸이와 귀고리와 온갖 귀한 장신구로 치장한 그녀의 자태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녀를 데려다 키운 이는 그 모습에 반해서 아내로 맞아들인다. 그.. 더보기
전쟁의 예감, 그리고 순응의 정치학 - ‘두 지구제국 모델’과 미국의 전쟁 네트워크 체계를 중심으로 [감신대] 교지에 게재된 글. 2004년 2월에 완성된 글인데, 게재 일시는 불명.---------------------------------------- 전쟁의 예감, 그리고 순응의 정치학‘두 지구제국 모델’과 미국의 전쟁 네트워크 체계를 중심으로 1 20세기를 마감하기 몇 년 전 한국을 필두로 하여 아시아 동반부 지역의 몇몇 국가들에 갑자기 몰아닥친 외환위기는 그때까지는 말로만 듣던 이른바 ‘지구자본’이라는 것의 실체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어느 사회학자의 표현대로, 초단기간의 무차별 공습이 일체의 저항력을 완전히 파괴해버린 뒤 진주한 정복군 사령부(IMF)가 자신의 방식대로 폐허로부터의 재건을 지휘하는 양상은 영락없는 ‘전쟁’ 바로 그것이었다. ‘지구자본’은 자본주의가 창조해낸 .. 더보기
‘존속(에 대한) 살해’와 ‘존속(에 의한) 폭력’ - 우리의 이 기억은 가족주의적 악을 합리화한다 [맘을림] 5(2004.11)에 실린 글-------------------------------- ‘존속(에 대한) 살해’와 ‘존속(에 의한) 폭력’우리의 이 기억은 가족주의적 악을 합리화한다 추석날 깊은 새벽, 가족과 함께 달을 보며 소원을 빌어본다. 아니 실은 무심코 달만 바라봤다. 뭔가를 빌기엔 중천에 뜬 보름달은 너무 멀다. 달인데도 내려다보는 빛의 강렬함이 눈부셔 마주보기도 벅찬 탓이다. 대화하기보다는 노려보는 자태다. 마음을 나누기보다는 법 집행자 같은 근엄함이 빛난다. 밤까지도 환하게 드러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달의 시선’, 아니 ‘법의 시선’이 문뜩 두렵다. 대화 없는 저 시선의 번뜩임이 부당한 가치를 대표할 경우를 떠올려야 했기 때문이다.집 옥상에서 보이는 추석 야경은 한적하다. 불 켜진.. 더보기
그들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 선발대형교회의 시대가 지나가고 후발대형교회의 시대가 온다면 [우리교육] 2004년에 게재된 것(몇월호인지는 확인 안됨)을 수정보완하여 한백교회 2004년 11월 14일의 하늘뜻나누기 원고로 쓰였고, 이를 다시 수정하여 백찬홍, 최형묵, 김진호 공저의 [무례자 자들의 크리스마스]에 실림.----------------------------------- 그들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선발대형교회의 시대가 지나가고 후발대형교회의 시대가 온다면 강의석 씨에 의해 촉발된, 예배선택권을 둘러싼 논란은 교회가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와 대면하는 데 얼마나 많은 장애를 갖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식민지 시대 이래 한국 교회의 선교는 국가의 양해(諒解)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하였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선교적 성공은 불의한 체제의 ‘협력자’가 되는.. 더보기
상처로부터 출발하는 기억의 신앙사 - 성서는 역사의 기억에 관해 무어라고 말하는가 [성서와 함께](2005 01)에 실린 글----------------------------------------- 상처로부터 출발하는 기억의 신앙사성서는 역사의 기억에 관해 무어라고 말하는가 성전 깊은 곳에서 오래된 법전이 발견되었다. 왕명에 따라 성전 정비 사업에 여념이 없던 대사제 힐기야는 즉각 왕의 최측근인 서기관 사반에게 보고한다. 당연히 그것은 왕에게 전달되었다. 왕은 그 문건 내용에 접하자 옷을 찢는다. 왕이 자신의 어의를 찢는다는 것은 국가적인 비상사태가 벌어진다는 신호다. 왕실과 예루살렘, 그리고 전국 곳곳에 왕명이 전달된다. 바야흐로 대대적인 정풍운동이 시작되었다. 불순한 것을 척결하여 야훼 앞에 부끄럽지 않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상숭배를 척결한다는 이유로 지방 성소들을 훼.. 더보기
절망의 문턱에서 희망을 읽는다 - 신의 화육과 배려의 신앙 [맘울림] (2004 12)에 실린 글------------------------------------- 절망의 문턱에서 희망을 읽는다신의 화육과 배려의 신앙 요즘 한국기독교에 대해 진단해보라는 원고 청탁이 잇따른다. 공적 담론에서 기독교가 이렇게 넘치는 관심을 받아본 기억이 생소하다. 내가 인문-사회과학적 잡지 매체에서 활동하면서 겪은 어려움 중의 하나는 한국 지식사회가 기독교에 대해 대단히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목사직을 가진 자와 한국 사회의 지식담론을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몹시 낯설어했다. 기독교나 신앙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갖고 있었지만, 그들은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했고, 공적 담론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나를 만나면 관계의 서먹함을 매우기 위한 대화술의 소재였을 뿐,.. 더보기
종의 기원,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니힐리즘적 정치학 [반신학의 미소]에 수록된 글----------------------------------- 종의 기원,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니힐리즘적 정치학 찰스 다윈의 기념비적 저술 《종의 기원》은 인류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존재란, (미리 형성된/완성된 ‘어떤 것’이 아니라) ‘진화 과정’을 통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무한히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대한 끊임없는 적응 여부에 의해 존재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존재란 끊임없는 변화 과정 속에서 실재하는 것이며, 그 변화의 계기는 외부 환경과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에 관한 해명은 일찍부터 생물학적 관점을 넘어서 사회를 설명하는 시각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사회도 인간 개체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환경 변화.. 더보기
진아(眞我)・무(無)의 경지에 접근하는 영적 실험 [반신학의 미소]에 수록된 글---------------------- 진아(眞我)・무(無)의 경지에 접근하는 영적 실험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말뜻이 잘 헤아려지지 않는 문구다. 무슨 제목이 이런가, 의아심이 들어 책을 집어들었다. 문학평론가 도정일 선생의 에세이 모음집이었다. 평소 그의 글을 흥미롭게 읽어왔던 데다, 제목이 자극하는 호기심 탓에 손에서 떼어놓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 크지 않은 서점, 두 시간이나 바닥에 주저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자니 서점 주인의 눈치가 사뭇 날카롭다. 하지만 그에게 미안해서라기보다는, 책의 유혹이 너무 강렬해서 참을 수 없는 충동에 구매자가 되고 말았다.마지막에 실린 글은 책의 제목과 같았다. 자연 가장 먼저 나의 눈길을 붙잡았다. 생태환경에 관한 인류의 비뚤.. 더보기
태양의 제국’ - 교회의 권력 세습 욕망, 그리고 정복지상주의자 종교 한백교회 2000년 9월 10일에 했던 하늘뜻 나누기 원고를 수정 보완하여 [반신학의 미소]에 수록된 글-------------------------------------------------------------‘태양의 제국’교회의 권력 세습 욕망, 그리고 정복지상주의자 종교 그가 박사학위를 논문만 남겨둔 채 시골로 내려간 지 이제 10년쯤 된다. 그곳에서 그는 목회를 하는 게 아니라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항상 ‘농부목사’라고 칭한다. 이 말 속에는 아마도 교회를 운영하는 것이 아닌, 땅과 만나고 대화하고 돌보는 데서 목회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던 그의 성찰이 들어있을 게다. 이를 통해 나는 농사에 대한 또 한 가지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땅은 그것 자체만으로서는 생명이 싱싱하고.. 더보기
'우리 안의 식민의식’을 넘어 한백교회 2000년 7월30일 하늘뜻 나누기 원고를 수정 보완해서 [반신학의 미소]에 게재됨.----------------------------------------------------------------------------- '우리 안의 식민의식’을 넘어 한 병사가 군복을 입은 채 프랑스 국기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위대한 조국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다는 듯 비장한 표정이다. 한데 실상 그는 프랑스인이 아니라 알제리인이었다. 바로 프랑스의 식민지 백성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압제자의 국기를 향해 이런 충성심을 표할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신화의 비밀이 있다.이것은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파리 마치》라는 프랑스의 한 잡지 표지에 실린 사진을 가지고 던진 질문과 대답이다. 이후 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