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그이가 우리에게 복수를 한다 - 〈아신전〉과 〈창세기〉 2~3장, 교차 읽기

[공동선] 161 (2021.11+12)에 실린 글

----------------------------------------

그이가 우리에게 복수를 한다

아신전창세기2~3, 교차 읽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2,17

 

 

 

 

세종대왕 시절 압록강과 두만강 라인을 따라 북방경계를 구축하기 위해 압록강 상류지역의 사군과 두만강 하류지역의

육진을 설치하였다. 한데 얼마 되지 않아 사군에주둔한 부대들은 곧 철수하였고, 좀더 내륙으로 물러선 곳에 다시 군영을 설치했다. 군기지만 철수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민간인도 철수시켰다. 해서 그곳을 폐사군(廢四郡)이라 불렀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는 곳이 된 것이다.

강을 방어선 삼아 여진족을 막아보겠다는 요량이었지만 험준한 계곡 한 가운데 자리잡아 고립된 압록상 상류의 네 요새를 연결하는 방어선을 유지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해서 네 개 군영에서 후퇴한, 내륙의 방어선을 새롭게 구축해야 했다. 하지만 조선은 이곳에 여진이 들어와 살게 하지도 않았다.

한편 조선이 사군과 육진을 설치할 때 그 이남에 살된 여진부락들의 주민 다수는 조선의 통제 하에 살게 되었고, 조선은 그들을 성저야인이라고 부르면서 성밖에 거하는 그들을 백정 같은 천민으로 편입시켰다. 이들 성저야인도 사군 지역에서 퇴거하여 후방에 다시 구축된 진 주변에 살게 되었다.

폐사군은 참 흥미로운 곳이다. 여진과 조선이 명료한 선을 경계로 대치하기보다는 일종의 평화지대(peace-zone)를 설정하여 갈등을 완충하는 역할을 했다. ‘(line)은 이편과 저편을 명확하게 가르는 경계다. 사군과 육진 프로젝트가 그런 강의 기획이다. 한데 그 기획은 반만 성공했다. 사군은 진을 폐하고 물러서야 했던 것이다. 한편 (zone)은 이편에도 속하지 않고 저편에도 속하지 않는, 해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는 자가 없으니 그곳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땅인 것이다. 요컨대 폐사군은 일종의 조선시대의 DMZ 같은 것이었다.

내셔널리즘의 상처가 되는 역사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국사교육에서는 폐사군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용어가 우리에게 익숙하게 된 것은 넷플릭스 영화 아신전덕이다. 좀비 드라마인 킹덤 시리즈시즌 12가 넷플릭스에서 역대급의 세계적 흥행에 성공한 뒤, 시즌 3이 공개되기 전, 12의 배경 설정을 위해 스페셜 에피소드 편으로 만들어진 것이 영화 아신전이다.

위에서 말한 폐사군의 한 곳이 아신전의 핵심 소재가 되는 장소다. 그곳에 폐허가 되어 잡풀로 뒤범벅된 국시당 터가 있었다. 지역 수호신을 모시는 서낭단 혹은 선황단을 그곳 함경도와 평안북도 지역에선 국시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거의 무너져 조각난 벽에 누군가 어떤 식물 그림과 문구를 새겨놓았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풀, 대가가 따를 것이다.” 이 풀이 생사초. ‘킹덤시리즈에서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괴식물, 바로 그것이다. 폐사군 지역에서 자라는 일종의 퀴어 식물이다.

당시는 명나라가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던 시대다. 명이 은을 도량형으로 하는 화폐로 거래를 표준화하자 수도 남경은 동아시아 최대시장으로 부상했다. 한데 이곳의 최고 교역품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 조선의 인삼이었다. 당시까지는 인삼 재배기술이 개발되지 않은 때였으니 산삼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경제적 활황으로 풍요를 누리던 이들에게 오래전부터 죽지 않는 풀로 각광받아온 산삼의 소비가 급증한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된 폐사군 지역은 곧 산삼의 보고로 알려지게 되었다. 호랑이 같은 야수가 들끓었고, 조선의 병사들이 순찰을 돌면서 인적을 통제했다. 또 조선이나 여진에서 살 수 없게 된 범법자들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많은 심마니들이 목숨을 걸고 잠입해 들어왔다. 산삼을 구하기 위해서다. 성저야인 마을의 소녀 아신도 병들어 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심마니처럼 산삼을 구하려 그곳에 들어갔다.

아무의 땅도 아니니 이들 삼마니들이 산삼을 캐는 건 법적으로 문제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상거래를 국가가 주도했던 조선 관리의 시각에선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왕께 진상하는 것이 아닌 일체의 상거래는 원칙상 불법이었고, 하여 새로운 조선군영인 추파진의 총사령관(병마절도사)은 임금에게 바쳐야 할 것을 도둑질했다는 이유로 여진의 심마니들 수십 명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사태는 그리 간단치 않았다. 강 건너 압록강 지류인 파저강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여진 부족은 당시 가장 강력한 건주여진의 추장 누루하치의 영향권 아래 있는 족속이었다. 영화에선 그들의 극강의 전투력을, 거란 전성시대의 국가였던 요나라의 기록으로 알려진 여진 군대 1만이 모이면 천하에 당할 자가 없다는 말을 조선 관료의 입으로 수차례 표현하고 있다. 그런 공포스런 집단과 대처하고 있음에도 국제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왕에게 뇌물 바치는 데만 관심이 있던 추파진 총사령관과는 달리, 수색대장(첨절제사)인 민치록은 파저강의 여진을 자극하지 않으려 계략을 세운다. 여진 심마니 학살 사건을 호랑이 사건으로 봉합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계략은 금새 들통나버렸다. 민치록은 두 번째 계략을 세우는데, 성저야인의 소행이라는 정보를 파저강 여진족에게 흘린다. 이에 여진족은 조선의 추파진 부근의 성저야인 부락을 불태웠고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했다. 필시 교전이 벌어졌을 때 조선뿐 아니라 여진도 적잖은 피해가 있을 것을 감안한 안전한 보복행위일 것이다. 이로써 성저야인 부락은 남녀노소 모두 집단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조선 수비대의 방조 하에.

단 한 명의 소녀가 그 참화에서 벗어났다. 폐사군 지역에 잠입해 들어가 산삼을 찾고 있던 소녀만이 살아남았다. 그녀의 이름이 바로 아신이다. 킹덤 시리즈 전체를 증오와 복수의 테러리즘으로 물들게 했던 악의 화신 아신이 바로 그녀다. 복수심에 가득 찬 소녀 아신은 조선의 수색대장 민치록에게 부족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민치록은 그녀를 진영 안의 돼지우리에서 기거하도록 허락한다. 돼지우리의 아신은 조선의 병사들에게 강간을 당하기까지 했지만, 복수심 하나로 견뎌냈고 수련했다. 그리고 수색대장은 시도때도 없이 그녀를 파저강의 여진부락에 잠입시켜 정탐하게 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그녀가 파저강 여진 부락에서 사지가 잘린 채 죽음보다 더 고통스런 생명을 유지하고 있던 아비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가족과 이웃이 학살당한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다. 이제 그녀의 복수가 시작된다. 조선의 추파진 병사들과 파저강 여진 부락의 병사들 모두 학살당했다. 아니 서로가 서로를 살육했다. 이때 그녀가 사용한 학살의 도구가 바로 생사초. 폐사군 지역에서 자라는 기묘한 식물, 죽은 자를 살리는 식물이다. 하지만 경고문구처럼 그 풀은 죽은 자를 살리지만 그렇게 살아난 이들도 단순히 산 자가 된 것이 아니다. 죽은 자이면서 산 자다. 바로 좀비다. 대가를 치룬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폐사군과 생사초는 닮았다. 아니 어떤 조건에서 둘은 하나처럼 된다. 폐사군은 여진 땅도 조선 땅도 아니다. 생사초를 먹은 이는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니다. 그 둘은 모호한 경계에 위치한다. 경계의 이편과 저편이 각기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세계에서 폐사군은 어느 편도 옳은지 아닌지를 결정하지 않도록 하는 장소였다. 그래서 전쟁의 완충지대이며 평화지대인 것이다. 그런 장소인 한, 그곳에 찾아온 이들은 명약인 산삼을 구할 가능성에 열려 있다. 이럴 때 폐사군은 살리는 풀인 산삼과 닮은꿀이다. 한데 독점과 살육과 복수의 프레임에 갇혀버릴 때 폐사군과 생사초는 하나처럼 된다.

그곳에 추파위 사령관이 조선의 질서를 강요했다. 조선이 그곳에 독점권 지위를 추구한 것이다. 공적인 것이 사유화된 것이다. 그 결과 벌어진 비극에 대해 조선 군영의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책임은 조선 영역에서 천민으로 살고 있던 여진 유민 부락에게 떠넘겨졌다. 물론 학살의 직접적 책임자는 파저강의 여진족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건을 유도한 이는 조선의 추파진 군영의 수색대장이었다.

안병무 선생은 창세기2~3장의 에덴 설화를 기존의 해석과는 전혀 다른 독법을 제시한다. 에덴은 생명과 평화의 땅이다. 그곳에서 강줄기가 사방으로 흐르고 많은 동식물이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다.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엄명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것을 먹고 말았다.

안병무 선생은 그것을 공공의 것을 사유화한 계기적 사건으로 읽어냈다. 공공의 것인데, 거기에 선악의 질서를 부여하고 가치판단을 하는 관념이 끼어들어왔다. 당연히 악을 응징하고 선에 보상을 주는 질서가 구축되었다. 공존이 아닌, 위계의 체계가 그곳을 구축하는 질서로 작동하게 된다. 결국 누군가 지배하는 자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선생은 그것을 공의 사유화라고 규정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이제 죽음 앞에 선 자가 된다. 그리고 평생 고통에 시달리는 자가 되었다. 또한 모든 존재는 서로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관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선과 악을 통제함으로써 공을 사유화하려는 욕구는 결국 모두에게 죽음 같은 재앙을 초래한 것이다. 살았으나 산 것이 아닌, 좀비처럼 욕망의 몸짓만 살아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폐사군을, 그 평화지대를 조선이 독점하려 하자 전쟁의 위기가 닥쳐왔다. 여기까지 아신전은 성서의 에덴 설화와 유사한 논법을 취하고 있다. 한데 이후의 사태에 대해 영화는, 섣불리 해피앤딩으로 봉합하려 했던 성서와는 달리, 비극의 연쇄를 진저리치도록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전쟁을 회피하려 했던 조선과 여진은 분노할 대상으로 지목된 제3자에게 모든 위기를 떠넘겨 버렸다. 그렇게 평화는 조금 더 지속되었다. 물론 그런 평화의 제물로 지목된 약자에게 혹독한 재앙을 떠넘긴 채 말이다.

한데 늘 그렇듯이 살아남은 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양자를 향해 복수극을 편다. 산삼이 아닌, 생사초라는 재앙의 풀이 모두를 감염시켰다. 감염된 자들은 죽었으나 살아나고, 그 생존의 욕구를 위해 누군가를 죽이고, 그렇게 죽은 이는 다시 살아나 욕구에 따라 또 다른 이를 죽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좀비들의 세계가 된 것이다.

아신전은 세계를 그런 저주의 세상 속으로 내몰아 버린 아신이 악마적 존재가 된 그 출발점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정두영이고 유영철이며 강호순이다. 또 그녀는 빈 라덴이기도 알 케에다이며 보코하람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녀는 에블라 바이러스이고 메르스이며 코로나19이기도 하다. 그녀는 파괴하는 자이고 파멸시키는 자다. 그녀로 인해 그 주위의 세계는 위기에 빠져버렸다. 그녀의 악마성은 세계를 위기로 몰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세계가 만들어낸 악마다. 그녀는 허구적 선과 악의 질서가 만들어낸 희생양이다. 잘못에 대해 어느 세력도 사과하지 않는 가운데 희생양으로 지목되어 야만적 칼날에 난도질되어 살아갈 권리와 행복할 권리가 모조리 파괴된 자다. 그런 자가 죽지 않고 응징하게 된 것, 그것이 아신의 존재성이다.

폐사군은 오늘도 끊임없이 이곳저곳에 만들어지고 있다. 누구도 독점적 권위를 행사할 수 없는 장소들이 끊임없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분쟁의 중간지대, 그 여백의 장소다. 그곳을 공유의 공간으로 지켜내고 확대해 나가는 것, 그것은 폐허가 된 에덴을 다시 만드는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