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 58(2019)에 실린 글. 원고 분량이 초과해서 잡지에 기고할 때 잘라냈던 일부분이 첨가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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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거라

냉전적 동아시아 레짐 해체기의 국내외적 갈등과 증오를 넘어서

 

 

 

성서 텍스트 읽기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다.” 성서의 평화주의를 상징하는 구절로 알려진 텍스트다. 성서에는 이 문구가 두 번 나온다. 이사야서2,4미가서4,3이 그것이다. 그 외에 이 구절과 정반대의 내용을 담은 문구도 하나 있다. 요엘서4,10(개신교 성서본에는 3,10)에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어라.”고 한다. 이것은 훨씬 후대의 것으로, 원래의 것에 대한 패러디다.

요엘서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끝내고, 이사야서미가서의 문구만 주목해 보자. 두 예언자는 모두 기원전 8세기 유다국에서 활동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다는 말은 그들의 시대에 널리 회자되던 정치적 슬로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사야와 미가는 이 슬로건을 각기 자기의 관점에서 재활용했다. 우선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기 위해 이 문구를 담은 두 예언서의 텍스트를 들여다보자.


공동이사야서첫째 단의 민족나라들, 둘째 단의 나라백성들혹은 민족들로 옮겨야 마땅하다. 하지만 나라민족/백성이 문맥상 차이가 없으니 두 본문의 첫째 단은 같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 점에서 넷째 단도 마찬가지다.아래 도표는 이 텍스트의 내용을 비교한 것이다. 인용한 성서는 공동번역 개정판(이하 공동)이고 괄호 속에 넣은 영어단어들은 New International Version(이하 NIV)의 표현들이다. 공동의 번역이 히브리어 성서와 다소 다르게 된 것이 있어서, 원본에 좀더 충실한 NIV의 단어를 병기하였다.

하지만 둘째와 셋째 단에서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둘째 단에서 이사야서나라백성들/민족들로 옮겨야 하지만, 어떻게 옮기든 별 차이는 없다. 그들은 전란으로 온통 혼란에 빠진 시리아-팔레스티나의 모든 나라들/백성들을 가리킨다. 또한 여기에는 가해국과 그 나라에서 차출된 병사들도 포함될 것이다. 미가서는 그 가해국을 강대국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셋째 단에서 나라마다로 번역된 ‘they’가 지시하는 대상은 누구일까. 이사야서나라마다, 말할 것도 없이, ‘(가해국이든 피해국이든) 전란에 휩싸여 있는 모든 나라들/백성들이다. 그런데 미가서는 답이 간단명료하지 않다. they’가 첫째 단의 백성들을 가리킬 수도 있고 둘째 단의 강대국들(가해국들)일 수도 있다. 그 답을 발견하기 위해 당대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았던 두 예언자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역사 읽기, 8세기 유다국의 두 예언자들

그 당시의 강대국을 대표하는 나라는 아시리아와 이집트로, 동시대 국제정치상 절대강자였다. 아시리아가 팽창주의 정책을 펴며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휩쓸었고 이집트를 향해 서쪽으로 진군해가자, 그 경로에 있던 시리아-팔레스티나 권역 국가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휩싸였고, 이 권역의 패권국가였던 아람국(기원전 732)과 이스라엘국(기원전 722)이 명운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군소국들은 힘의 균형이 무너지며 서로 분쟁에 빠졌다.

군소국들 내부로 들어가면 사정은 더 복잡해진다. 이스라엘국과 아람국이 멸망하면서 대량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중 상당수가 군소국들의 땅으로 유입되었다. 게다가 아시리아가 지역경제를 글로벌경제와 통합하는 일종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몇몇 군소국들에겐 경제발전의 계기가 된다. 유다국과 블레셋국, 그리고 페니키아국이 대표적 성공 사례다. 유다국은 올리브와 포도 산지로 유명해졌다. 유다와 인접해 있고 도로와 항구 등 교통기간설비가 잘 발달되어 있던 블레셋은 포도주와 올리브오일의 주요 가공생산지가 되었다. 페니키아는 이것들로 지중해 전역을 누비며 무역을 했다. 이 세 나라는 경제적인 공동운명체가 되었다. 하지만 블레셋과 유다는 오래전부터 철천지원수였다.

유다국은 이 시기에 국가다운 국가로 발돋움했다. 그 과정에서 사회는 복잡해졌고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여러 정파들이 치열한 정쟁을 벌였고, 하층대중도 정치세력화되어 그 갈등에 개입했다.

그런 시대가 바로 기원전 8세기다. 세기 초 유다 왕 아마지야는 반란자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그의 아들 우찌야는 재위 후반기를 궁중에 유폐되어 살았다.(1) 우찌야의 손자인 아하스 왕은 궁내 모반사건을 겪어야 했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개혁을 주도하여 선왕인 아하스와 다른 정치를 폈으며, 그의 아들 므나쎄 왕은 부친의 개혁정책을 말살시키는 정치를 이끌었다. 그가 사망하자 장자 아닌 아들 아몬이 군주로 옹립되었는데, 2년이 못가서 정변이 일어났고 왕은 살해당했다. 이에 암하아레츠(2)라는 지방의 농민세력이, 특히 쉐펠라 지방의 정치화된 농민세력이 들고 일어나 아몬을 살해한 반도들을 제압하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옹립했다. 이처럼 8세기 내내 유다국은 내적으로 정쟁과 모반으로 점철되었다.

이제 성서 본문으로 돌아가 보자. 미가서셋째 단의 ‘they’는 누구일까. 칼과 창을 농기구로 만들 주체가 강대국 백성이라면 그 시대 유다국 내외에서 일어난 무수한 갈등과 폭력, 전투 등에 의해 피해를 입은 대중은 평화의 주체도 대상도 아니다. 그러니 이는 논리상 부적절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일까.

이 물음에 다가가기 위해 이사야와 미가에게 주목해 보자. 이사야는 신탁(oracle)을 전하는 왕실 예언자로서, 왕과 독대하여 왕명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할 만큼 특권적 위상을 지녔다. 그의 메시지의 수신자는 왕과 중앙귀족을 비롯한 예루살렘의 시민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향해 이사야가 무기를 농기구로 만들 때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사야가 아하스 왕에게 간언했던 한 사건을 떠올린다. 아람국과 이스라엘국이 아시리아의 티글랏 빌레셀 3(Tiglath-pileser III)에 대항하는 시리아-팔레스티나 연합군을 조직하고자 나섰는데 아하스의 유다국은 이에 반대했다. 이에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이 유다를 공격하였고, 서쪽의 블레셋, 남쪽의 에돔도 유다국에 대한 약탈을 벌였다. 예루살렘을 제외한 전 국토가 유린되었다. 적군에 포위된 도성 안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합군 동조세력이 모반을 도모하기까지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때 이사야는 왕에게 간언한다. 흔들리지 말라고, 야훼께서 지켜줄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사야의 무기를 농기구로 만들 때가 도래했다는 말은 유다국 내의 여러 정치세력을 향한 것이었을 법하다. 지금은 정쟁을 그만두고 단합하자고 말이다.

미가는 전혀 다른 캐릭터의 인물이다. 그는 모레셋갓(Moresheth-gath) 출신의 예언자다. 블레셋 도시국가인 갓에 부속된 모레셋이라는 시골 마을 출신이라는 얘기겠다. 갓은 한때 블레셋을 대표했던 강력한 도시국가였다. 골리앗은 갓의 전성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 장수다. 이 도시는 유다 산지와 블레셋 지역 사이의 평야지대인 쉐펠라의 서쪽에 위치하였다. 쉐펠라는 유다와 블레셋 사이의 비옥한 곡창지대라는 점에서 늘 영토분쟁의 핵이었는데, 미가 당시에는 블레셋의 종주권이 무너지고 유다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시리아로 인해 혼란에 휩싸이던 시절, 영토분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블레셋국과 유다국 백성들은 서로를 파멸시키는 전투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다면 바로 이런 두 국가의 영토분쟁이 벌어지는 한복판에서 무기를 농기구로 바꾸라는 미가의 외침, 그 주요 대상은 쉐펠라 지역에서 서로를 향해 증오를 퍼붓고 있던 두 나라의 백성들일 것이다.

 

21세기 한국과 일본, 냉전체제에서 탈냉전체제로

일제 전범기업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이 소송이 시작된 것은 1997년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였다. 하지만 2003년 일본최고재판소에서 원고 패소로 최종 확정되었다. 이에 피해자들은 2005년부터 한국 법원에 소송을 다시 제기했고, 우여곡절 끝에 201810월에 원소 승소로 최종판결이 난 것이다.

이 판결이 최근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의 직접적 원인임을 익히 알려진 바다. 신일본제철 주주총회가 지불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일본 정부가 나서서 경제보복의 칼을 빼 들은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자국 기업들의 막심한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또 처음부터 보복의 강도가 너무 큰 것이어서 퇴로를 찾기도 어려운 이상한 조치였다.

강상중 도쿄대학 명예교수는 아베 정권의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이 판결이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문제제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아베 정권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라는 애기다. 일본회의의 정체를 쓴 아오키 오사무 교수는 일본 최대의 극우 로비단체인 일본회의가 쇼와 시대로의 회귀를 궁극적 지향점으로 추구하는 집단임을 분석해냄으로써, 이 단체의 정치적 구현체인 아베 정권이 이 판결에 왜 그토록 강력한 반응을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한데 이런 분석의 연장선에는 냉전적 동아시아(East Asia as a Cold War)라는 정치적 레짐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 북한에도 이 레짐의 수호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중국과 대만과 러시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냉전적 증오를 통해 각 나라의 근대를 주도한 세력이다. 하여 이웃을 적으로 만들고 그 적에 대한 증오를 통해 체제를 형성유지하는 질서를 정치학에서는 적대적 공존(hostile coexistence)이라고 불러왔다.

이 명칭에서 시사되듯, 각 국가들과 국민들 간에는 서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증오가 자리잡고 있고, 역사해석을 포함한 기억의 정치가 그것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해 주고 있다. 또한 영토분쟁, 해상과 공중 영유권 분쟁 등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냉전적 규율체제가 장기간 지속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경제 블록이 되었다.

한데 문제는 이러한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공 과정에서 국제분업체계가 깊고 넓게 상호간 연결망을 구축해 놓았다는 데 있다. 더욱이 인적물적 교류가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으며, 여행산업과 스포츠산업, 엔터테인먼트산업의 비약적 발전으로 낡은 증오와 적대의 감정을 희석시키는 친밀성의 감정연대가 점점 깊게 형성되고 있다. 그것은 냉전적 동아시아라는 해묵은 레짐이 해체과정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 중국은, 중국판 글로벌라이제이션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계획의 일환으로 자본재생산 가능성이 굉장히 높음에도 상대적 저발전 상태에 있는 동북지역 발전전략을 강력히 추진하려 한다. 러시아도 같은 맥락에서 극동개발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 중이다.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금융자본도 동아시아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데 이런 변화의 중심에 한국과 북한이 있다. ‘냉전적 동아시아의 증오 레짐의 태풍의 눈이 바로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하여 박근혜의 통일대박주장의 중심에는 동아시아 이니셔티브론이 있었고, 문재인 정부의 평화프로세스의 중심에도 한반도 운전자론이 자리잡고 있다. 냉전에서 탈냉전으로의 동아시아적 전환은 한국이 중심이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했듯이 동아시아는 여전히 냉전적 규율체계가 주도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강대국들인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한국을 향한 경제전쟁을 도발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정부는 탈냉전적 동아시아를 추구하는 변화의 운전자가 되고자 하는 반면, 일본정부는 냉전적 동아시아를 여전히 수호하려는 정부라는 사실이다. 즉 최근 한국과 일본의 경제전쟁은 동아시아의 미래를 둘러싼 가치전쟁의 축소판인 것이다.

한편 그러한 가치전쟁은 한국사회 내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집권당은 탈냉전적 동아시아로의 변화를 추동하는 과정에서 낡은 질서를 개혁하려 하는데, 보수적 야당들은 냉전적 동아시아를 수호하기 위해 증오의 정치를 끊임없이 호출한다. 이때 극우파 개신교 세력은 이러한 냉전적 동아시아 지지세력으로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는 시민사회 범주에 속한다.

 

21세기 한국에서 외치다, ‘무기여 잘 있거라’

지금 한국을 중심으로 해서 동아시아에는 격렬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맞서 싸우고 있고, 한국과 일본도 전투에 돌입했다. 북한은 미국과 비핵화 대화에 돌입했지만 연일 누군가를 향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이때 그 누군가란 비핵화 협상 중인 미국일 수도 있고, 한국이나 일본일 수도 있으며, 북한 내부의 군부 강경세력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 모두일 수도 있다.

한국 내에서도 갈등은 타협점 없이 고조되어 있다. 냉전에서 탈냉전으로의 체제전환을 둘러싼 갈등이다. 그 전환을 지연시키려는 쪽과 가속화하려는 쪽의 갈등이다. 해서 이 갈등은 타협이 쉽지 않다.

일 경제전쟁을 좀더 보자. 일본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에 돌입하면서 자국 기업들이 피해를 입더라도 한국에게 치명적 피해를 주어야 하는 방식의 전투를 선택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빌어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였는데, 키워드는 평화경제였다. 적에게 치명적 피해를 주어 굴복시켜야만 끝나는 전쟁이 아니라, 이웃이 아니었던 대상을 새로운 이웃으로 만듦으로써 그것이 일으키는 새로운 경제동력을 통해 일본을 앞지르겠다는, 반전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경제학이다. 한데 이것이 낭만적 상상이 아닌 것은, 오늘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질서는 까지도 이웃으로 만듦으로써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자본의 운동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슬로건은 평화경제의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미가의 예언처럼, 그 평화는 가해자들끼리 무기를 내려놓고 벌이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첨단무기로 벌이는 새로운 개념의 학살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작은 이들끼리 삶의 현장에서 서로 응징하는 전쟁이 아닌, 상생의 평화여야 한다. 그것은 모든 존재의 생명권이 소중하게 존중되는 평화인 것이다.

 

[미주]

(1) 표면적 이유는 그가 나병에 걸렸다는 것인데, 왕당파가 반대파에 의해 제압당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2) 암하아레츠는 땅의 백성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인데 공동번역성서는 이들을 지방민으로 번역했다. 성서 밖의 문헌들을 종합해보면 그들은 지방의 농민 일반을 지칭하는데, 특히 지방 호족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지만 성서에는 열왕기〉 〈역대기〉 〈예레미야서〉 〈느헤미야기〉 〈에제키엘서등에 나오는데, 이중 신명기개혁파와 연관이 있는 문서인 열왕기예레미야기에서는 지방의 개혁적 농민세력을 가리킬 때 쓰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들을, 적어도 요시야 개혁운동 참여한 암하아레츠는 정치세력화된 진보적 농민운동 세력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