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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사회

[신들의 사회1] 한국 근대의 신은 우리들의 영혼에서 퇴거하고 있다(김진호의 신들의 사회1)

[한겨레21] 828호(2010.09.14)에 연속기획인 <김진호의 신들의 사회(1)>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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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신들의 사회_1

 

한국 근대의 신은 우리들의 영혼에서 퇴거하고 있다

 

 

 

 

 

 

 

2005 인구센서스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2005년 인구센서스를 보며 어느 목사가 한 말이다. 자신이 개신교신자라고 말한 사람들의 수가 지난 10년 전보다 14만여 명 줄었다. 1.4%에 불과한 소폭의 감소로 호들갑스럽게 위기론을 펴는 것은, 그가 이 결과를 중대한 변화의 한 징후로 보기 때문이겠다.

전투적 복음주의자인 그와는 다르지만 나 또한 이 결과를 예의주시한다. 잠시 2005 인구센서스의 다른 결과를 보자. 개신교의 소폭 감소 외에, 불교 신자는 조금 늘었고, 가톨릭은 거의 배나 증가했다.

그런데 가톨릭 측의 일부 논자들은 이 증가와 함께 고려해야 할 사안으로 주일 미사 참석률이 극히 저조하다는 점을 말한다. 전체 교적자의 25% 안팎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불교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알다시피 불교 신자의 사찰 활동은 개신교 신자에 비해 매우 적다. 게다가 불교 신자는 다른 종단의 신앙 활동에도 참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것은 가톨릭이나 불교가 배타적인 충성도를 강조하지 않는 신앙 태도 및 제도 운용 양식과 관련이 있다.

반면 개신교 신자는 신앙제도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 거의 모든 신자들이 한 주에 한번 이상 교회 집회에 참석하고, 매일 나가는 이도 적지 않으며, 교회 밖의 공식 비공식 신앙집회에 대한 참석률도 매우 높다. 또 장례식이나 결혼식 같은 가족사의 중요한 행사를 기독교식으로 치루고자 하는 독점의식도 현저히 강하다. 한편 기부금의 액수도, 다른 종단이나 시민단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다.

즉 개신교 신앙은 다른 종단들에 비해 매우 강한 정체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폐쇄적이며 배타적이다. 나는 바로 이 점이 근대한국사회와 매우 어울리는 종교의 요소라고 본다. 즉 한국의 개신교는 한국근대와 가장 어울리는 종교제도로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개신교 신자들이 줄고 있다는 것, 그런 징후를 암시하는 2005 인구센서스의 한 결과, 바로 이 점이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근대와 종교, 고아의식과 신앙

 

이러한 최근의 종교인구의 변동, 그것이 함의하는 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한국근대와 종교에 관해 조금 더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더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논의는 이 연재글이 몇 차례 진행된 이후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근대체험은 매우 빠르고 격렬한 변동들, 그 속에 놓인 격동적인 삶과 더불어 있다. 식민지, 전쟁, 개발독재, 그리고 민주화, 소비사회화, 지구화의 기묘한 결합이 낳은, 분출하는 욕망과 시장만능의 사회 등, 불과 한 세기도 못되는 시기에 이 모든 사건들이 압축적으로 휘몰아쳐 지나갔다.

한데 이 격동의 시간들이 남긴 집단적 상흔 속에 공통되게 나타나는 징후가 있다. 이른바 ‘고아의식’이 그것이다. 격렬한 고통의 시간이 지난 뒤 그것이 남긴 상흔 속에 살아야 하는 다음 세대는 과거를 증오하고 그 (과거) 시간들이 남겨둔 잔해들, 폐습처럼 남은 문화, 그리고 그 시간에 살아남은 자들 또는 그 시간의 부역자들을 청산하자는 구호와 운동에 동원되었다. 이른바 아비를 부정한 아들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그 주체화의 성격과 내용은 달라도, 이렇게 점철된 ‘고아들의 이야기’가 바로 한국근대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고아들의 사회’는 전통이 생각과 행동의 준거가 되지 못한다. ‘고아’라는 정체성은 전통으로부터 자신을 근절시키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여 그들에게 남은 것은 스스로 노력해서 자신을 이루는 것, 이른바 ‘자수성가’에 있다. 다르게 얘기하면 무일푼에서 성공하는 것, 뿌리로부터 스스로를 근절시킨 채 오직 성공을 위해 모든 삶을 투여하는 것. 필경 그 계속되는 역경의 시간들 속에서 정신줄 놓지 않고 살아남아 후손들에게 그럴싸한 유산을 남겨놓았다고 자부하게 된, 한국근대를 살아간 이들의 자화상 속에는 이 ‘자발적 고아의식’이라는 정체성이 놓여있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적 근대성과 가장 부합하는 종교는 단연 개신교다. ‘전통의 근절’이야말로 어떤 종단도 갖지 못한 개신교적 신앙의 핵심에 속한다. 한국교회들은 교인들의 강한 충성심을 유지하기 위해 전통 문화와의 단절을 강력하게 제도화했다. 또한 개신교가 다른 어떤 종단과도 명확하게 구별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성장주의’다. 신의 축복은 세속적인 성공과 직결되며, 성령은 그러한 성공의 신앙적 도구에 다름 아니다. 하여 교회는 양적 성장을 위해 가용자원을 총동원하는 식의 신앙적 담론제도를 발전시켰고, 크든 작든 거의 모든 교회들은 마음속에 대형교회를 품고 있는 의식의 제도를 일상화했다. 요컨대 개신교야말로 한국근대를 함께 한, 아니 어쩌면 한국근대가 그렇게 형성되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종교였다. 개신교는 다름 아닌 이른바 ‘고아들의 종교’였던 것이다. 이렇게 개신교는 한국근대의 자발적 고아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 했다. 하지만 고아들의 자기 확인을 넘어 자기초월의 체험으로 이끄는 성찰의 종교는 아니었다.

 

근대적 신의 몰락

 

그런데 2005 인구센서스가 징후적으로 보여주듯 한국의 시민사회는 개신교로부터 철수를 시작했다.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시간에 맞추어진 각종의 종교제도들이 문제가 되어 되돌아온다. 신학교를 나온 이들은 부임할 교회가 없어 전전긍긍한다. 많은 교회들은 적자예산으로 고심하고 있으며, 몇배 뻥튀기된 건물을 증축한 교회들은 부도를 맞곤 했다. 게다가 10대, 20대, 30대, 40대 연령층에서는 모두 평균 감소율보다 더 높은 감소율을 보였다. 한때 교회를 선망의 공간으로 바라보았던 연령층의 사람들이 가장 두드러지게 교회를 떠나고 있다.

외부에서의 시선도 따갑다. 면세, 목회자 세습 등 오랫동안 묵인되어온 관행들, 폐습들이 문제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부적합한 태도라는 비평이 잇따랐다. 또한 개신교식 포교의 무례함에 대한 공식 비공식적인 비판이 속출했고, 거리전도자들과, 기도원⋅정신요양소 등 기독교 사회시설의 운용상 문제들을 다루는 보도프로그램들이 대중매체를 타고 시민사회에 폭로되었다. 심지어는 기독교계 사립학교들에서 벌어지는 종교교육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 그리고 재정 불투명성에 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한국사회의 수구집단으로 정치세력화를 도모했던 기독교 지도층들의 행보는 정치적 행위자로서 지나치게 서툴렀다. 이에 대해 방송, 신문, 잡지, 학술지 등 많은 대중적, 전문적 매체들이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다루었으며, 대다수는 부정적인 기조를 담았다.

어떤 목회자는 교회 밖에서 자신이 목사임을 밝히기가 꺼려졌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그만큼 교회는, 그리고 개신교 성직자들과 신자들은 적지 아니 위축되었다. 또한 냉담자층에 속하는 많은 이들은 개신교 신앙을 철회하기 시작했다. 일부 대형교회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독교 단위들은 이런 이탈의 행렬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체감하고 있었다. 그런 차에 2005 인구센서스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한국근대를 표상하는 종교 현상으로서 개신교는 이렇게 위기에 처했다. 교회 밖에 개신교 신앙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은 이제 그 신에 대한 경외감을 철회했다. 그리고 그러한 신의 위선을, 신의 권위주의적 이미지를 비판하는 저서들을 열광적으로 독서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 근대를 함께 했고 한국적 근대의 메커니즘을 추동했던 신은 몰락하고 있다.

 

시대착오들

 

개신교 교회의 위기론이 시작될 무렵, 하지만 아직 그 성장세가 둔화되는 징후가 밖에서는 그리 잘 포착되지 않던 시절, 그러니까 1990년대 초중반경, 신흥종교들은 물론이고 불교나 가톨릭까지도 개신교를 모방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 무렵 개신교의 각 교단 내에서는 위기론에 대한 문제제기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불교는 다양한 성격의 법회를 활성화시켜 신도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사찰로 불러 모았고, 나아가 도심 곳곳에 포교원을 세워 사람들의 생활터 가까이로 한층 다가왔다. 한데 문제는 그것을 구현하는 아이템에 있다. 가령 ‘학업원만성취를 위한 삼천배 철야정진법회’에서 보듯 많은 법회들은 우리사회의 성공주의에 기생하고 그것을 한층 부추기고 있다. 그밖의 여러 법회들도 개신교 뺨칠만한 상업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은 성공주의가 더욱 배타주의적인 교리관과 결합된 신앙운동이 꽤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개신교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계층적으로 중산층에 더 밀접하게 닿아 있고 보다 지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1960,70년대 개신교의 서민적 성공주의와는 양상을 달리한다. 반면 최근에는 개신교도 중산층적 성공주의의 성격이 현저히 강화되었다. 나중에 더 상세히 살피겠지만, 이러한 변화는 성공에 대한 인식에 있어 매우 다른 방식의 신학을 만들어냈다. 서민적 성공주의는 신의 축복이 결핍에서 풍요로 삶의 조건이 전환되는 것과 동일시하는 데 초점이 있다면, 중산층적 성공주의는 이미 주어진 풍요를 어떻게 간직할지의 문제를 신학화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톨릭은 후자와 더욱 긴밀하다.

불교나 가톨릭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개신교 따라하기의 요체는 ‘성장/성공’에 있다. 성장을 위한 전략은 개신교의 그것처럼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양상을 띠었다. 물론 이러한 모방은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고, 불교신자나 가톨릭신자들 중 다수의 동의와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몇몇 종교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결핍된 종교들은 오늘날에는 시대착오적이다.

한국근대는 기념비적인 성공을 이룩하였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많은 이들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 또한 고통을 양산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가득했다. 바야흐로 한국의 근대는 열망의 대상에서 성찰의 대상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근대에 대한 숱한 검토와 비평이 속출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데 한국의 종교들은 한국의 근대를 여전히 ‘성장의 기억’으로만 해석하고 있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시민사회는 그러한 종교의 시대착오성에 혹독한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한국근대인의 신 체험을 표상했던 개신교적 신은 이미 청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젠 다른 종단들이 그 길을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