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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그 메시아주의 정치’는 불온하다

이 글은 2012년 10월 9일에 문주 출판사에서 펴낸 책 당신들의 대통령선출된 왕과 민주주의, 그 이후》에 수록된 것입니다. 이 책은 김상봉, 전규찬, 이택광, 김항, 한윤형, 김민하, 권수정, 그리고 제가  필자로 참여했습니다.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더 자세한 정보를 보려면 다음 주소로 찾아가 보세요. http://owal.tistory.com/admin/entry/post/

 

들어가는 글 나의 꿈은 대통령이었다. _ 권수정

선출된 왕과 민주주의, 그 이후 _ 김상봉
거리의 철학 / 대통령, ‘선출된 왕’ / 민주주의와 공화국 / 국가와 ‘너도 나라’ / 민중 봉기와 ‘뜻’ / 저항의 근원과 ‘앎’ / 내각제, 나의 민주주의 / 형성의 정치 / 잊힌 이념 / 불안정이라 하는 것 /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

메시아주의, 한국 정치의 어떤 열망 _ 김진호
다른, 그러나 닮은 남자 / 메시아의 탄생, 박정희 / 대항 메시아의 탄생, 노무현 / 다른, 그러나 닮은 메시아

표상의 정치, 표상 ‘대통령’의 연대기 _ 전규찬
표상, 뜨거운 정치의 장 / ‘대통령’의 표상과 표상의 대통령 / 대통령의 꿈, 표상의 권력 정치 / 반공의 ‘국부’ 혹은 뉴라이트 쥐-인간? / ‘각하’의 나라, ‘박통’의 전체(주의) / 청와대의 동정, 대통령의 휘호 / ‘전통’의 텔레비전, ‘땡전’의 뉴스 / 기호학적 저항과 ‘대통령’ 표상 권위의 추락 / 대통령 표상의 민주화, 패러디 대중의 출현 / 억압된 표상의 귀환, 표상 정치의 (재)민주화

대통령과 경제, 발전의 여러 갈래 _ 한윤형
사실과 진실, 혹은 묘사 혹은 서사 / 이승만 : 그의 ‘반일주의’가 가능했던 배경 / 박정희 : 두 가지 구전설화, 그리고 ‘반미’의 신화 / 전두환 : 위대한 자유주의자? 멍청한 허수아비? / 노태우 : 북한을 가장 괴롭혔던 ‘물태우’ / 김영삼 : ‘세계화’의 그늘과 IMF 책임논쟁 / 김대중 : 신자유주의자들의 완전한 승리? / 노무현 : 한미 FTA와 부동산 버블이라는 유산 / 이명박 : 강만수와 미네르바의 신자유주의 / 결론

초인의 꿈 : 어느 30대 정치 평론가의 회고 _ 김민하

어느 하루의 대화 : 대통령이란 마물(魔物)에 관하여 _ 김항
작가론에서 대통령제의 원리로? / 예외로부터 원리를 설명하기 / 대통령제, 통치와 법치 사이에서 / 주권 : 한 마리의 늑대냐 무리지은 늑대냐 / 전시 최고 사령관의 밀실과 비밀, 대통령제 작동의 범례 / ‘주권국가’를 역사화하기 / 1970년대 한국, 주권의 힘과 시인의 언어 / 예외 혹은 예외의 예외

당신들의 대통령 _ 이택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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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메시아주의 정치는 불온하다

박정희와 노무현 담론의 정치신학

 

 

 

 


 

 

 

다른, 그러나 닮은 남자

 

이 글은 대통령이어서 비극의 주인공이어야 했던 남자들에 관한 것이다. 박정희와 노무현, 이 두 인물은 한국 현대사에서 정반대의 상징으로 코드화되어 있다. 한 사람은 개발을 위한 권위주의 체제를 표상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은 탈권위주의를 통한 개발의 가능성을 실험한 이로 기억되고 있다. 그것은, 혹자들에겐 또 다른 측면에서 두 사람을 평가하는 준거가 되기도 한다. 즉 한 사람은 산업자본주의 시대 개발주의를 대표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은, 비록 미완에 그쳤지만, 탈권위주의까지도 가치 증식의 도구로 탈바꿈하는 후기자본주의적 개발론의 표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양자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두 사람은 빈농 집안의 막내아들이었다. 둘은 각기 자기 시대의 출세방식에 따라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한 사람은 군인이 되었으며, 다른 사람은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출세를 위한 삶의 수단은 실제로는 그리 실속이 없었다. 한 사람은 일본 제국주의가 우월한 군사력으로 동아시아를 제패하고 있던 시기에 만주군관학교를 만계(滿系: 조선인과 만주인을 통칭하는 표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본 육사를 전체 3등으로 졸업하였으나 정작 그가 장교로 배치된 1944년은 제국의 몰락이 코앞에 와 있던 시기였다. 다른 사람은 상고를 졸업한 뒤 군복무를 마치고 수년간 주경야독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였으나 조세전문 변호사의 안정된 삶은 6년 만에 끝이 났고, 강성의 인권변호사로서 험난한 인생 도정에 들어섰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이 실패한 삶의 수단이 기반이 되어 그들은 대통령이 되었다.

또 두 사람은 주류가 될 수 없는 팔자를 타고났다. 출신 배경에서도 둘은 주류의 바깥사람이었고, 시대의 순리라는 잣대에서도 그들은 돌출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해서 그들의 이력에는 끊임없는 견제와 배척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역경을 헤쳐 나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둘은 또한 대통령이었기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 둘을 관통하는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따로 있다. 그들은 한국 근대사에서 대중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통치자였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2012년 총선에는 두 사람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세력이 양편에 서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계승자들이 최근 정국을 주도하는 것은 이들 세력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혹은 물리적 자원이 다른 세력보다 우월하기 때문이겠다. 그리고 필경 이 두 사람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은 향후에도 얼마 동안, 그 시간의 경계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박정희와 노무현, 이 두 인물에 대한 대중의 애정의 정체를 묻는 데 초점이 있다. 물론 이때 대중이 사랑하는 대상인 박정희와 노무현은 자연인이 아니라 대통령이다. 실체로서의 대통령이 아니라 상상으로서의 대통령말이다. 그것은 현존하는 권력관계의 정점으로서 특정 집단에 대한 귀속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비대칭적 국제관계의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런 대통령이 아니라, 그러한 역사적 시간의 제재를 초극한 통치자를 뜻한다.

비유하자면 성서의 인물 다윗이 바로 그렇다. 그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모세와 더불어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존재였다. 특히 다윗은 대중적 메시아주의 속에서 삼천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살아 있다. 그는 기원전 10세기의 인물로 고대 팔레스티나에서 존재감이 별로 없던 약소국 유다 국의 창건자였다. 하여 실제 역사상의 그의 왕권은 약한 왕권이 갖는 제약, 약한 국가가 갖는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훗날 메시아적 열망 속에 살아 있는 상상의 왕으로 기억되게 되면서, 시공간적 제약을 초극하여 이스라엘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통치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박정희와 노무현을 그런 통치자로 상상함으로써 현재의 시간, 그 시간적 질서의 체제를 초극하고 싶은 바람, 곧 구원에 대한 열망이 그들에게 투사된다. 요컨대 그이들은 메시아적 존재로서 현재에 개입하고 있다.

박정희와 노무현의 후계자들은 대중의 이러한 메시아주의적 욕망을 전유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자원으로 전화시키고자 한다. 또한 대중 역시 자기들의 메시아적 꿈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고자, 그것을 역사화할 매개자를 선택한다. 하여 이 두 차원이 맞물리면서 대중의 심상에서 작용하는 메시아적 상상 작용은 정치가 된다. 그것은 일종의 세속화된메시아주의 정치다. 물론 이 정치는 끊임없이 대중의 메시아적 상상과 협상해야 한다. 곧 철저히 세속화된 정치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탈세속적 메시아성, 그것에 대한 대중의 욕망에 기반을 둔 정치이므로, 메시아적인 탈시간적 개입이 없이는 작동할 수 없는 정치, 메시아주의적정치다.

요컨대 이 글이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종교로서의 박정희와 노무현을 읽어냄으로써, 대통령을 출현시키려는 역사적 행위 속에 함축된 메시아주의적 정치의 정체, 그리고 그 메커니즘에 있다.

그것은 1997년 이후의 박정희 담론과 2009년 이후의 노무현 담론이 다분히 종교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나의 판단과 관련이 있다. ‘종교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정치라는 것은 각 사람들이 자기가 처한 사적, 공적인 난관을 정치가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치 행위에 참여해야 할 때 생겨나는 현상이다. 곧 계산 가능한 정치적 출구가 보이지 않음에도 막연히 정치를 기대하는 상황에서 정치는 종교화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매개자들의 역할이 주목된다. 정치에 대한 종교적 성향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매개자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정치 행위 속에 참여하도록 유인하는 장치의 제공자(frame agents). 그들은 직업적 정치가들일 수도 있고 언론매체의 전문가들일 수도 있으며, 문필가들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들은 대중의 종교적 상상력을 결집시키고 정치적인 행동으로 전화되도록 이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담론은 다분히 대중의 종교성을 극화하는 경향이 있다. '메시아주의 정치'라는 극단적인 종교화된 정치담론은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다.

하여 이 글에서는 박정희, 노무현 담론이 메시아주의 정치로 전화되는 메커니즘을 살피고자 한다. 그것은 1997년과 2009년 이후의 일부 정치적 국면들, 특히 2012년 총선대선과 깊은 상호연관이 있을 수 있는 정치 현상의 메시아주의 정치 차원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런 부류의 메시아주의 정치에는 대개 비평과 성찰이 결핍되어 있다. 이렇게 종교와 정치의 상호작용에 관한 비평적이고 성찰적인 개입을 정치신학이라고 한다면, 이 글은 바로 오늘,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메시아주의 정치 현상에 대한 하나의 정치신학적 비평이라고 할 수 있다.

 

메시아의 탄생, 박정희

 

1989<조선일보>가 실시한 역대 대통령의 업적 평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로 박정희가 1위를 차지했다. 1992미디어 리서치가 조사한 여론조사와 1994<경향신문>의 여론조사에서도 이러한 압도적인 결과는 변함없다. 그리고 이것은 2012년 오늘까지도 마찬가지다. 선호도, 호감도, 업적 등의 평가에서 그는 항상 1위였다.

하지만 박정희가 동시대 역사의 무대로 환생하는 시기, 단순한 회고를 넘어 시대를 형성하는 담론적 지위로 부상하게 된 계기적 시기는 1989년이 아니라 1997년이다. 그해 7<중앙일보>실록 박정희 시대라는 연속기획을 1년간 연재하기로 했고, 박정희의 대통령 재임기간 18년 중 절반을 비서실장으로 지냈던 김정렴의 회고록을 출판했다. 무비판적인 찬양 일변도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발간 두 주 만에 무려 5만부 이상 팔리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0월부터는 조갑제가 <조선일보>에서 저 유명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제목의 연재를 시작하였고, 이것은 3년간 564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적인 연속물이 되었다. 한편 그에 앞서 4월에는 작가이자 비평가인 이인화가 박정희를 소설화하여 쓴 󰡔인간의 길󰡕 3권 중 1,2권이 출간되었다.

조갑제의 논조는 김정렴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이야기를 담론으로 만들어내는 당대 최고의 극우파 논객이던 그의 손길을 거치면서 박정희는 1997년의 시대로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거기에는 한국적 자본주의의 발전론과 반공주의의 안보론이 모든 것보다 우선한다는 유신체제의 가치가 재천명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민주화에 대한 반제로 제시된 것이다. 국론분열과 유약해진 안보관, 그리고 경제적 위기 등이 민주화를 보는 그의 시각이다.

그에 의하면 그것은 대중이 박정희의 길을 따르지 않은 결과다. 대중이 민주화를 추구한 결과, 일류국가로 도약하던 사회가 삼류국가로 전락하게 된 것이라는 얘기다. 하여 그는 조선조의 문약성으로 회괴하는작금의 민주화의 길이 아닌 강한 통치자박정희의 길을 주장한다.

이인화는 더 노골적으로 박정희를 모든 평범한 사람을 이끈 천재적인 개인, 영웅으로 해석한다. 그는 한국적 근대화의 길을 펼쳐 보인 장본인이다. 각각의 사회마다 그 나름의 근대가 있듯이 한국의 근대는 바로 박정희로 인해 우리의 역사로 도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것은 경제의 발전이라는 물질적 차원을 넘어선다. 거기에는 근대라는 세계사적 과정에서 그 하나의 양상인 한국의 근대를 통한 인간의 존재론적 발전이 있다. 또한 그것은 영웅 개인의 성과가 아니라 영웅을 숭배하고 그를 따라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추종자, 곧 국민이 함께 이룩한 발전이다.

이와 같이 이인화의 박정희론은 김정렴이나 조갑제 식의 박정희론보다 좀더 신화적이다. 하여 조갑제 식의 박정희론이 문약한 민주화의 도정이라는 1997년 전후의 시대인식에 대한 맞춤형 영웅담론이라면, 이인화의 박정희론은 근대로 규정된 시간 안에서 어느 때곤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영웅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조갑제는 항상 자신이 해석한 1997년의 시간 인식으로 이후의 모든 시간을 규정하면서 박정희를 그때마다의 동시대로 소환하려 한다면, 이인화는 한국적 근대의 화신으로 박정희를 해석한다.

즉 이인화에 따르면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세계사적인 보편적 발전의 경로이고, 그 보편성은 각각의 사회마다 다르게 진행되는 특수성과 얽힌다는 역사인식론이 전제되어 있다. 하여 각각의 사회는 세계사적 이행에 속하면서도 자기 나름의 근대를 구성하게 되며, 박정희는 한국적 근대의 문을 연 개척자이자 그것을 체계화한 한국 근대성의 설계자이다. 전근대의 신화가 한국인에게 가난과 수치를 선사했다면, 한국적 근대의 형성자인 박정희는 근대적 신화의 주인공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인화와 조갑제, 두 사람의 박정희론은 공히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 박정희 영웅론을 펼친다. 박정희가 이룩한 것(결과)이 그가 어떻게 그것을 실현해냈는지의 문제(과정)를 압도한다. 과정은 결과를 보충하는 한에서만 평가할 가치가 있다. 결과를 폄하하는 과정은 삭제되거나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박정희가 이룩한 결과는 한국인에게는 메시아적 구원사건이다. ‘메시아적이라고 한 것은, 그 결과가 계산가능하지 않은 것임을 뜻한다. 당대의 인식과 가치에선 상상할 수 없는 한계영역인 그것을 초역사적으로 뛰어넘게 한 장본인, 그가 박정희라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 중심주의에 의해 박정희 영웅주의 논지가 펼쳐진다. 그의 모든 삶의 여정은 영웅을 위한 예고이며 준비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영웅주의는 그 영웅이 이룩한 업적 속에 분리할 수 없이 얽힌 부조리함과 폭력을 삭제하거나 미화하며, 심지어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까지도 영웅서사의 일부로 편입시킨다. 이렇게 영웅론은 언제나 신화적이다.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했던 초기 그리스도 운동의 선구자들도 그랬다. 그들이 만들어낸 예수 케리그마 담론을 보면, 나사렛 출신의 예언자이자 사회운동가인 예수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과정)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이가 십자가에서 숭고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새로운 구원역사가 개시되었다는 행동의 성취(결과)를 중심으로 하는 서사가 구성됐다. 즉 이들은 그 결과의 측면을 축으로 하고 과정의 측면을 그러한 결과에 이르는 신화적 알리바이로 하는 예수 담론을 구성해낸 것이다. 그것은 나아가 탄생과 유년시절에 관한, 심지어는 탄생 이전의 신성세계에서의 존재양식에 관한 신화화된 이야기로 보충되었다. 이렇게 초기 그리스도교의 메시아적 영웅론이 발전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박정희 신화담론도 발명된 것이다.

이러한 신화적 영웅론에서 영웅과 대중의 관계는 주객이원론을 띤다. 이인화에 따르면 영웅과 대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영웅의 탄생만으로 영웅주의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영웅을 알아주는 대중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떤 천재성을 지닌 개인이 길을 제시하고 모범을 보이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선택하고 비주체적으로 그를 뒤따른다. 곧 그에게서 영웅과 대중의 상호성은 수직적이고 일방향적이다. 영웅은 초월적이며 대중은 그 초월에 의탁함으로써 주체가 된다. 즉 대중은 영웅의 하위주체다.

한데 흥미롭게도 그가 재현한 박정희는 실증적이기보다는 너무나 해석적이다. 말했듯이 그의 박정희론은 결과를 전제하고 과정을 기술한 것이고, 심지어 탄생과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도 결과의 프리즘을 통해 회상한 것이다. 여기에는 사실에 대한 열정보다는 영웅주의적 시각, 곧 해석에 대한 열정이 노골적으로 배어 있다. 그는 결코 사실 그대로의 박정희를 말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의 박정희 메시아론이 해석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겠다.

그럼에도 분명 이러한 믿음은 해석의 결과다.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원래의 사건보다 후대의 것이다. 그러나 그 후대의 것으로 원 사건을 구성해내고 그것이 본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하나의 해석을 다른 해석들과 병행시키지 않고 그것만이 본원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교조적(dogmatic)이고 배타적(exclusive)인 성격을 지닌다. 이인화나 조갑제의 논조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아주의는 그 영웅이 유일배타적 존재라는 믿음에 기초한다. 오직 그만이 구원자일 수 있고 대중은 그를 수동적으로 추종하는 존재이니 말이다. 이러한 메시아주의를 초월적 메시아주의라고 부른다. 한데 초월적 메시아가 주장되는 한 그 영웅/메시아와 대중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어진다. 그렇기에 중간적 존재가 필요하게 되고, 이 중간적 존재에게 특권적 권위를 허락해야만 한다. 요컨대 이러한 메시아주의는 유형적으로 권위주의적 체제와 친화적이다.

한편 박정희 메시아론이 유포되는 데 주류미디어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은 익히 알려진 바다. 여기에 정치계, 경제계, 학계의 지배엘리트 집단이 열렬히 반응했고 기여했다. 그들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특권화된 중간적 존재의 실체다. 대중의 루머(유언비어) 형식으로 유포되다가 몇 세기 지나서야 지배층의 언어로 둔갑한 예수 담론과는 달리 박정희 담론은 처음부터 권력화된 양상을 띠었다. 반면 대중은 초월적 메시아론의 속성처럼 수동적 추종자의 역할을 하였다. 사실 사회적 자원을 과점한 지배 엘리트집단이 자신의 권력이 미치는 제도적 장치들을 활용해서 유포하고 활성화시키는 이 메시아담론 현상에서 대중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 외에는 거의 없다. 하여 대중의 수동성제도의 적극성이 박정희 메시아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항 메시아의 탄생, 노무현

 

2009523일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은 극적인 반전의 계기였다. 국민장이 치러진 1주일 동안 봉하마을을 방문한 조문객이 120만 명에 달했고, 전국 각 처에 설치된 분향소들을 찾아온 조문자 수를 합하면 무려 5백만 명이나 된다. 이 수는 그 해에 유명을 달리한 한국 현대사의 거목들인 김수환 추기경의 39만 명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166만 명, 그리고 1979년 암살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200만 명이나 1949년 암살당한 김구의 100만 조문객 수와 비교하면 놀라운 숫자다. 또한 장례식이 끝나는 날 치러진 노제에는 무려 50만 명이나 운집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조문하게 되는 데는 분향소가 전국에 300개 이상 설치된 것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는 국민장 장의위원회가 전국에 설치한 공식적 시민분향소 외에도 단체 및 개인이 설치한 비공식적 분향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다른 이들의 장례식과는 현격히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즉 그를 애도하는 시민들은 단순한 조문 이상의 적극적 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극성은, 잘 알다시피, 그가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던 시절 형성된 그의 지지기반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박정희는 과대성장한 군대가 그 배후에 있었고, 김대중은 과대발달한 지역주의 감정을 등에 업고 있었던 반면, 노무현은 안정된 지지기반을 갖고 있지 못했다. 해서 그는 언제나 설득력 있게 대중에게 다가가야 했고, 감성적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를 드러내야 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권위는 수평적이고 소통적이며 감성적 호소력이 강한 속성을 띠었다.

수직적인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대중을 수동화하지만, 수평적인 대화적 리더십은 대중의 자발적 활동을 동반한다. 또한 감성적 공조를 통해 자발성이 더욱 활동성을 지니게 된다. 하여 전자는 지도자의 영도력에 따라 일사불란한 결속력과 결합되지만, 후자는 해석의 주체로 부상한 대중의 다층적이고 분열적인 운동들과 연계된다. 해서 노무현의 지도력이 성공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때는 언제나 감동적인 이벤트가 있고, 대중의 적극적이고 다층적인 지지 현상이 벌어진다.

그의 이미지는 이런 대화적이고 감성적 리더십의 성격과 매우 잘 맞물린다. ‘바보 노무현혹은 인간 노무현을 키워드로 하는 담론이 바로 그런 전형적 사례다. 여기에는 노무현과 지지대중 사이의 격차감이 해체되어 있고 그들 사이의 감정적 일체감이 함축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대중의 심상에서 박정희는 초월적 영도자로서 표상되어 있다면, 노무현은 내재적 영도자다. 초월적 영도자는 지엄함을 통해 대중을 이끌지만, 내재적 영도자는 친밀함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 대중과 함께 혹은 따로 무언가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지할 것은 초월적인 존재는 항상 그의 지엄함이 대중에게 의식됨으로써 힘을 발휘하는 반면, ‘내재적인 존재는 은연중에, 종종 무의식적으로 대중의 내적 동기를 불러일으킨다. 즉 영도자의 초월성은 대중이 그에 대한 경외감을 의식함으로써 사회를 형성하는 동력이 되지만, 내재성은 대중의 (무의식적) 욕망과 결합됨으로써 사회적 생명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노무현 현상이 나타난 때는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였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 그에 이어 펼쳐진 대선에서 그야말로 드라마적인 극적 반전을 통해 그는 대통령이 되었고, 곧이어 탄핵정국에서 불꽃을 일으키며 기득권세력의 자원동원 능력을 무력화시켰다. 대중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는, 비록 일시적이긴 했어도, 제도 해체적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육체’, 곧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뿌리 깊은 제도들의 체계다. 설사 존재가 육체를 벗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더라도 살아 있는 한 벗어버릴 수 없는 것이 육체다. 그러므로 욕망은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하지만 육체는 항구적이고 변화에 대해 보수적이다.

하여 그는 재벌개혁을 열렬히 추구했으나 실패했고 오히려 더욱 강력해진 재벌들의 독과점 사회를 초래했다. 또 그는 열렬히 언론개혁을 추구했으나 실패했고 오히려 패권언론사들의 담론화 능력을 한층 강화시켰다. 그리고 그는 토건체제를 개선해보고자 갖은 애를 썼지만, 오히려 사회의 토건성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가 시도했던 개혁은 뿌리 깊은 제도들, 한국적 근대의 형성 과정에서 별로 드러나지 않았던 그 육체성을 가시화하게 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중앙의 명령체계가 너무 강고했기에 그 체계에 의해 작동하는 하위메커니즘의 작동은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못했었다. 중하위 단위의 조직들, 혹은 각 영역의 기관들은 마치 존재 자체가 없는 듯이 중앙의 명령에 따라 작동했을 뿐이다. 그런데 중앙의 명령체계를 개혁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시키려는 운동이 벌어지자 몸의 각 부위와 부위들을 연계시키는 기관과 조직들의 미친 존재감이 발휘되었다.

이때 주지할 것은 노무현과 그의 정부는 대중을 수동적 존재로 포섭하려는 구지배세력에 대한 적극적 대중의 개혁의지를 대변했지만, 이 대중의 개혁의지 이면에는 저 낡은 체제의 육체에 갇혀 있는 대중의 욕망이 깔려 있었다. 이것이 대통령 노무현의 딜레마였다. 그는 대중의 적극적인 지지를 설득해냄으로써 개혁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그의 지지대중의 욕망은 그가 극복하고자 했던 구체제의 질서에 깊게 포획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노무현의 개혁은 체제의 육체성, 그리고 그 체제의 일원들인 대중의 육체성 이면으로 다가가지 않는 한 그 딜레마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그의 죽음과 부활은 새로운 가능성이다. 왜냐면 죽음은 존재가 더 이상 육체라는 존재의 감옥에 갇혀 있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부활은 그 경계를 넘어선 것에 대한 하나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사례를 예수에 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적 해석에서 엿볼 수 있다. 예수는 동시대 지배체제를 바닥까지 뒤흔드는 근본적인 변혁을 꿈꾸었다. 하지만 생전에 그는 체제의 육체성, 그리고 그 체제에 식민화된 대중의 육체성의 한계를 결코 넘어서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가 죽은 이후, 그의 부활설이 유포되었고, 점차 그것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한데 특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부활에 대한 믿음의 내용이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점차 그의 부활을 몸의 부활이 아니라 영의 현존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이때 영은 육체가 없는 존재를 뜻한다. 요컨대 영은 경계를 넘나들며 그 역능을 발휘한다.

특히 요한복음은 그 영이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여 영은 육체를 경유하지 않고 대중의 욕망과 대면한다. 이렇게 해서 지배체제가 여전히 반신(反神)적 질서에 포획되어 있음에도 그리스도교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변혁의 동력을 갖게 된다.

물론 그리스도교의 주류는 영의 신앙보다는 체제의 신학, 그 육체성에 열망하게 되고, 그 결과 권력 지향적 종교로 회귀했지만, 다른 한 편에는 체제의 육체성에 저항하는 변혁 지향적 신앙이 계속 존속하였다. 민중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등이 그 예다.

마찬가지로 노무현의 죽음, 자연사가 아닌 그의 죽음은 노무현 현상의 신학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 대중은 그 죽음이 불의한 체제로 인한 죽음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 죽임의 체제가 전복되는 꿈을 꾸게 되었으며, 그 꿈이 노무현을 키워드로 하는 메시아주의적 정치를 가능하게 했다. 노무현이 부활한 것이다. 하여 그가 서거한 직후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가 실시한 역대 대통령 호감도 조사에서 노무현은 박정희에 거의 맞먹을 만큼 높은 수치를 보였다.(박정희 38.1%, 노무현 36.0%) 이것은 최근까지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체로 일관되게 나타난다. 즉 죽음 이후 노무현은 사회 형성 능력을 갖춘 존재로서 역사의 무대 위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여기서 그의 부활이 육체 없는 부활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를 다시 육체로 환원시키는 제2의 노무현은 아직 없으며, 누구도 그의 혈통, 말씨, 스타일 등을 따라하지 않는다.(이 점에서 노무현 담론은 박정희 담론과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그의 지향성은 끊임없이 그의 지지자들에 의해 반추되고 있다.

요컨대 2009523일 이후의 노무현 담론은 다분히 신학적이다. 그는 죽었으나 그 직후 역사 속으로 환생했다. 그의 환생 양식은 육체 없음그리고 내재화로서 특성화된다. 한마디로 그는 이 되었다. 영은 더 이상 낡은 육체에 갇혀 있지 않으며, 대중의 내면으로 들어와 새로운 육체를 향한 욕망을 부추긴다. 그것은 지배적 체제, 그 인습적인 육체성에 저항하는 욕망의 정치화다. 즉 내재적 메시아주의 정치인 것이다. 박정희가 초월적 메시아주의 정치의 주인공이라면, 노무현은 내재적 메시아주의 정치와 연계된다. 그리고 전자가 수직적이고 중앙 집중적이며 일방향적인 방식으로 대중을 그 메시아주의 정치에 동원하고 있다면, 후자는 수평적이고 대화적인 방식으로 대중의 자발적 참여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전자가 주류 미디어를 통해 유포되고 있다면, 노무현 담론은 주류 미디어 바깥에서 더 활발히 유통된다.

그렇게 죽은 노무현은 대항 메시아로서 탄생했다. 그와 연계된 정치적 코드는 변화이며 질서의 해체다. 물론 주류 미디어에서도 노무현은 유포되며, ‘대항의 함의로 코드화되지 않는 노무현 담론도 있다. 하지만 그가 죽은 지 얼마 안 됐고 그의 죽음에 대한 대중의 원한이 해소되지 않는 지금까지는 적어도 노무현 담론이 대중에게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키는 지점은 그가 대항 메시아로서 현현(epiphany)할 때다. 만약 대항담론이 아니라 지배담론으로 전환될 수 있게 된다면, 노무현 메시아주의 정치는 사라지거나 변화화게 될 것이다.

 

다른, 그러나 닮은 메시아

 

이와 같이 박정희 메시아주의 정치와 노무현 메시아주의 정치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서로 다른 색깔로 탄생하였다. 그리고 이 두 존재는 총선과 대선이 맞물려 정치의 해가 된 2012년 정국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부재하지만 그 정치적 효과를 통해 커다란 파급력을 지니고 있음으로써 역사 속에 실재한다.

이렇게 이들을 역사화(historicization)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매개자의 존재다. 박정희와 노무현의 역사화를 주도하는 이들은 주로 국가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권력게임을 벌이는 정치행위자들이다. 하여 박정희와 노무현 담론이 소비되는 주요 공간 역시 국가적 범주의 정치다. 이들 매개자들은 현재 지배연합(ruling coalition)과 도전연합(challenge coalition)으로 양분되어 경합을 벌이고 있다. 그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어떤 담론전략을 벌이고 있는지,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의 여부와 권력게임의 결과는 깊은 연관이 있다. 그리고 박정희 담론과 노무현 담론은 이러한 담론전략과 수행방식에 연결되어 역사적 생명력을 이어갈 것이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대중의 메시아주의적 열망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선거 국면 같은 일종의 준예외상태에서다. 그것이 예외상태인 것은 법과 일상화된 정치관행을 중단시킬 만큼이나 충동적이고 과도한 정치적 언술들이 선거 때에 남발되기 때문이다. 그런 과잉의 정치담론이 설득력을 갖는 데 대중의 메시아적 기대는 효과적이다. 즉 매개자들은 메시아와 과잉 유토피아주의를 통해 대중을 정치화하곤 한다.

대항 담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광우병 소고기 시위 같이 비상한 광장의 정치가 활성화될 때 대항 담론의 많은 부분들은 다분히 초시간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때도 매개자들은 대중의 메시아주의적 감성을 고조시키고 비판의 논리적 설득력보다는 분노와 심판의 감성을 극화하려 한다.

한데 선거 이후 혹은 광장의 정치 이후 사회는 빠르게 메시아주의 정치를 청산하곤 한다. 가상적이든 실제적이든 심상 속에서 강력한 힘을 떨쳤던 메시아주의적 혁명의 정치는 그것에 대한 반동을 통해 구체화되곤 한다. 거기에는 대중과 매개자들의 공모가 있다. 사회가 빠르게 정치신학적 담론의 폭발력을 망각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메시아주의 정치는 강력한 열정을 정치화하지만, 또한 신속한 망각을 통해 마무리되곤 한다. 요컨대 메시아주의 정치는 자칫 열정만 불태웠을 뿐, 변화와 개혁을 위해 아무런 실체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판과 성찰의 요소가 결핍된 메시아주의 정치의 한계다. 거꾸로 말하면 메시아주의 정치는 비판과 성찰의 정치신학적 논의들을 통해 반박되고 보충됨으로써 그 한계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대중에 주목해 본다. 대중의 메시아주의적 상상 혹은 갈망이 매개자를 거치면서 정치화될 때 메시아주의 정치가 된다. 즉 대중적 메시아 현상이 메시아주의 정치의 전제다. 하여 여기서는 대중적 메시아 현상이 메시아주의적 정치로 전화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것은 두 차원을 지니는데, 하나는 대중적 메시아의 상상이 메시아주의적 정치에 미치는 영향의 차원과 그 과정에서 대중의 상상 속에 끼어든 상징적 기호로서의 메시아의 이미지가 대중의 정치적 상상력에 미치는 영향의 차원이다.

먼저 왜 대중이 메시아를 갈망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대중은 매우 현실적 존재다. 대중은 미래를 위해 정신을 저축할 여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대중은 추상적인 진리보다는 현실의 정당성과 이익에 더 민감하다. 현실을 넘어서는 존재를 통한 종교적 기대를 품을 때조차 대중은 기복적인 성향이 강하다. 초현실적 기대조차도 현재로 환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대중이 메시아를 갈망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르쥬 아감벤(Giorgio Agamben)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역사철학테제의 제8항을 해석하면서 메시아적 시간예외상태(Ausnahmezustand)와 즉결 심판(Standrecht)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현재의 질서를 규정하는 법적이고 인습적인 시간을 단절시키는 것을 뜻하며, 현재의 법과 인습이 담고 있는 불의를 처벌하는 신적 행위가 벌어지는 시간이다. 메시아는 이렇게 현존하는질서의 시간을 중지시키고 심판을 수행하는 신의 대행자다.

그런데 현실적인 대중이 현재로 과격하게 개입해 들어와 현재를 단절시키는 초현실적 존재인 메시아를 갈망한다. 그것은 대중에게 현재의 시간이 충분히 절망적으로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현실의 절망이 너무나 깊을 뿐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날 합리적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가 너무나 고통스럽기도 하거니와 그 고통에서 벗어날 계산 가능한 미래가 없는 상황, 그것이 메시아에 대한 대중적 상상의 토대다.

나는 여기서 2천년대 들어오면서 광장으로 뛰쳐나온 대중들의 함성을 떠올린다. 거기에는 깃발대신 촛불이 등장했다. ‘깃발은 대중적 동원을 조직해내는 기관들의 인문적 미래기획이 함축되어 있다. 반면 촛불은 사람들 각각의 염원을 상징한다. 그런데 그 염원 속에는 불안이 들어 있고, 불안에 대한 신학적 상상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촛불은 미선이 효순이를 살려내라!’, ‘탄핵무효, 민주수호!’, ‘미친소를 먹기 싫어요!’, ‘FTA 비준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담고 있을 때에도 그런 외침 이면에 사람들 각자의 비루한 삶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답답함을 담고 있다. 독재정권을 타도한다거나 재벌을 해체한다거나 제국의 군대를 몰아낸다거나 하는 1980,90년대식 구호 이면에 들어 있는 희망의 정치와는 사뭇 다른 기조다.

왜 사람들은 절망하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절망이 그 한 이유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해도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절망이다. 심지어 민주주의가 도리어 고통을 가중시켰다는 절망이다. 무엇보다도 민주화가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지구화와 맞물리며 제도화됨으로써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이 극대화된 탓이겠다. 세상은 전자파의 속도로 이동하는 자본의 회전율만큼이나 발 빠른 존재의 속도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누구도 거기에 맞는 속도로 몸과 생각을 변화시킬 수 없다. 하여 사력을 다해 달려도 항상 실패하는 자, 혹은 실패의 예감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자가 된다. 마치 율법 앞에서 언제나 죄인으로 귀결되는 인간처럼, 지구적 자본 앞에서 모든 인간은 잠재적 실패자. 그런 변화에 그 어느 사회보다도 적나라하게 노출된 사회, 게다가 존재의 안전망의 바닥까지 털려버린 과격한 청산의 정치를 경험한 사회인 2천년대 한국은 그 비루하고 불안한 현실을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불안과 공포의 정체다.

사람들은 고통을 체감할 때 반응을 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고통을 대면하는 방식보다는 회피의 방식을 택한다. 그중의 하나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잊는단 말인가? 오락 중심의 대중문화가 망각을 위한 안성맞춤의 기재다. 오락이 웃음을 통해 망각을 유도한다면, 섹스와 폭력 중심의 대중문화는 공포와 불안을 다른 흥분 감정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망각을 가능하게 한다.

한데 또 다른 방식의 잊어버림이 있다. ‘감동이 그것이다. 봉사 활동이나 종교 활동 같은 것이 그 예다.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감수하고 단언하면, 봉사가 자신보다 낮은 타자를 향한 삶을 모방함으로써 오는 망각의 장치라면, 종교는 높은 타자를 향한 모방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스타, 연예인, 정치인, 학자, 기업가, 사회운동가 등등, 여러 사람들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대중에게 흥분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다른 어떤 이는 웃음거리를 준다. 또 어떤 이는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혹은 이도저도 아니면, 대중이 함께 미워할 대상을 찾아냄으로써 망각에 도달하는 경우도 있다.

한데 어떤 존재는 메시아적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간다. 메시아 현상은 종교적이지만 기성 종교 변두리나 혹은 그 외부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사회에서 대중은 광장으로 몰려들거나 넷공간에서 메시아주의적 상상력을 동력화하곤 한다. 이때 그 메시아적 기호로서 대중과 만나는 대표적 존재가 박정희와 노무현이다.

박정희와 노무현이 메시아적 존재로서 오늘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대중의 메시아 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대중의 절박한 고통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메시아 현상을 사회적 자원으로 동원하는 존재인 매개자들은 그 메시아적 기호를 정치권력을 위한 자원으로 한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물론 메시아주의 정치가 언제나 정치권력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박태선이나 조용기 같은 이는 대중의 메시아적 상상력을 종교권력의 자원으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마치 유대인들이 정치권력의 중심이 되는 예외상태를 도래시키는 메시아로서 다윗 메시아주의를 열광적으로 믿었던 것처럼 박정희 메시아주의와 노무현 메시아주의는 정치권력을 위한 자원으로 동력화되고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하나는 초월적 메시아로서 수동적 대중을 이끄는 유아독존적 영도자의 기호라면, 다른 하나는 내재적 메시아로서 적극적 대중과 함께 대화하며 나아가는 소통적 영도자의 기호다. 대중은 이 다른 기호를 각기 소비하며 그 기호에 함축된 메시지에 자신을 맞추고자 한다.

그런데 이 두 메시아적 존재는 우리와 시간적으로 너무 근접한 과거에서 유래했다. 또 그들이 메시아적 존재로 탄생한 시기는 더욱 근접하다. 아직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기에 그들을 전유하는 방식도 그이들의 실존적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그렇기에 박정희 메시아주의 정치나 노무현 메시아주의 정치는 한국적 자본주의의 재생산 방식을 각각의 방식으로 개혁하려는 정치적 영성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그이들의 실존 양식이 그다지 개혁적이지 않기에 그 메시아주의 정치의 개혁적 밑그림은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다. 가령 두 정치적 운동은 복지사회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과감한 개혁의지와 결합되어 있지 않다. 또한 두 정치적 운동이 내포하는 한국 자본주의적 축적양식에 대한 개혁적 영성은 현재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미국식 축적양식의 모델에 따르는 제도화로부터 그다지 과감한 전환의 비전을 내포하고 있지 못하다.

말했듯이 메시아주의 정치는 현실의 질서를 중지시킬 만큼 맹목적이고 열광적으로 정치적 메시아에게 집착하는 정치 현상을 낳는다. 하지만 그 메시아적 기호의 함의가 현실의 질서를 좀더 발본적으로 개혁하는 자원으로 전환되지는 못한다. 박정희 메시아주의 정치나 노무현 메시아주의 정치는 그런 점에서 그다지 개혁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메시아적 상상력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지금은 메시아주의 정치에 대한 좀더 냉정한 비평과 성찰이 필요하다. 또 그 속에 함축된 대중의 욕망의 구조를 읽어낼 필요가 있으며, 대중의 종교적 열망을 정치화하려는 정치적 매개자들의 담론 전략을 비평적으로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