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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것들

[한겨레신문]의 '야!한국사회'에 실린 칼럼 원고.(201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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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것들

 


사람들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무수히 방치해온 검찰이 조금 더 방치해도 될 법한 것에 분연히나섰다. 통합진보당 내의 부정선거 비리 문제는 검찰의 개입으로 복잡해졌다. 검찰의 행위에는 많은 문제가 있지만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압수해간 당원명부가 이 사건과 무관한 일로 악용될 가능성 때문이겠다.

혹자는 그것이 과잉 피해의식이라고 하지만, 얼마 전 조전혁 의원이 전교조 명부를 공개하고 나서 벌어진 논란을 보면 그렇게 단정할 일은 아니다. 학교와 무관한 사람들이 그들을 교단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극언을 퍼부은 것은 차치하더라도, 교사와 교장, 교감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들의 분노에 찬황당한 극언은 그들이 학교에서 했을 법한 폭언과 폭행을 충분히 연상하게 한다. 생각과 말이 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만한 권력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할 기회를 갖고, 또 그런 생각들을 서로 교류한다는 것은 생각을 행동화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교장이나 교사들의 특정 정파를 두둔하는 노골적인 정치적 발언과 행위를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 있겠는가. 그것은 거의 국민 체험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을 검찰과 법원만 몰랐다. 해서 얼마 전 민주노동당에 당비를 납부한 교사들만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은, 사실상 정당 활동을 하고 있는 교사들을 검찰이 조사하지 않는지에 대해 의아해했다. 그리고는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 번 품었을 법한 생각은, ‘원래 검찰은 그래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다. 그러니 국민 체험을 검찰만 모르는 사회에서, 당원명부가 저 천진한’(?) 검찰에 의해 어떻게 악용될지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하나 더, 사람들의 예민해진 신경을 자극한 사건이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원 자격심사를 거론했다. 40년 동안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을, 주사파라고 낙인찍힌 이들이 국회의원이 되어 국가기밀을 북으로 유출시킬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시 들춰냈다. 이런 생각은 일부 행정부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회의원이 요구하는 자료를 조건 없이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든 아니든 국가 기밀을 타국에 제공하는 것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중차대한 반국가 행위다. 그것은 국민이든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예외 없다. 그러기 위해서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정치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고, 언론 또한 그래야 한다. 한데 이한구 대표는 며칠 전 정치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언론의 파업행위를 부당하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이나 국가정보원의 정치적 유착행위로 의심될만한 사안들에 대해 발언한 적이 없다.

이런 식이다. 원내대표가 된 지 불과 며칠 사이에 그의 언행들이 과격하다. 그 덕에, 박근혜 씨가 개혁군주가 아니라 극우보수주의자였구나 하는 오래된 의혹을 상기하게 되었다. 새누리당이 다시 집권하면 장난 아니겠다는 의혹이 불연 듯 든다.

민주주의를 할 것인가 아닌가? 내게는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이런 언행들은 작은 정당에서 일어난 소란보다 훨씬 심각해 보인다. 하여 그것들이 내겐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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