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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체벌은 예의 없는 교실을 만든다

이 글은 [한겨레신문] (2010.9.7)에 게재된 칼럼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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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은 예의 없는 교실을 만든다

 

 

교실에서의 체벌을 주제로 실험예배를 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상황극이 준비되었다. 교사, 그리고 학생123, 이렇게 네 명이 등장인물이다. ‘학생1’은 이른바 모범생이다. 그리고 학생23’은 제멋대로 떠들며 수업을 방해하는 문제학생이다.

교사는 너희들 때문에 선량한 학생이 피해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주의도 주고, 몽둥이를 들이대며 경고도 한다.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교사는 흥분한다. 그리고 체벌이 시작될 즈음 극은 끝난다.

이제 상황극을 관람한 이들이 극에 참여하여 교사가 되어본다. 10년이 넘은 현직 교사들을 포함한 몇 사람이 나와서 문제학생들을 수업에 동참시키고자 갖은 애를 쓴다. 그런데 두 학생, 아니 학생역을 맡은 30대의 두 남자는 극이 반복되면서 점점 역할에 빠져들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어떤 교수법도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 상황극에 참여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누구도 바라지 않았고 예상하지도 않았던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 학생들을 매가 아니면 무엇으로 통제한단 말인가.

필경 우리 현실에서 이런 학생에게까지 좋은 교사가 되기는 퍽 힘들 거라고 다들 생각했을 것이다. 교과 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하는 교사가 해야 할 최선의 과제는 이른바 선량한 학생을 보호하는 데 있기 때문이겠다. 그러자면 효과적으로 문제학생을 제재하는 것이 필요하고, 매질은 가장 효과적인 제재의 수단이다. 그러니 원칙상 체벌은 반대하지만, 현실에선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올 법하다.

한데 이런 현실론이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른바 모범생은 중하위계층보다 중상위계층에서 나올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더 문제적인 학생은 그 반대의 계층적 편향을 지닌다. 계층간 경계가 점점 견고해지고 있듯이, 모범생과 문제학생 사이의 벽도 고착화되고 있다.

물론 그 사이의 회색지대는 훨씬 넓다. 이 중간적 존재들을 중심으로 구태에서 벗어나려는 참교육의 실험이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학생을 향한 가혹한 체벌이 본보기가 되어 대부분의 학생들을 훈육하고 있는 것 또한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많은 학생들은, 체벌의 폭력을 실제로 겪든 아니든, ‘폭력의 예감속에 있다. 이는 폭력이 일상화되었다는 뜻이다.

학교교육이 여과시키지 못한 이러한 일상화된 폭력은 다른 폭력으로 전이되기 쉽다. 집단따돌림처럼 보다 약한 이를 향한 배제와 공격이 그렇다.

200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더 클래스>는 파리의 한 가난한 지역의 중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수업풍경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담은 영화다. 거기에는 특별한 교사도 학생도 없다. 수업은 거의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수선하다. 그 속에서 상처받는 학생과 교사가 서로 냉전을 벌인다. 하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하게 지켜지는 폭력(언어폭력까지 포함한)에 대한 합의된 규칙 속에서, 우리문화에선 문제학생일 법한 이들이, ‘시민으로 성장한다.

나는 지난 818일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학생권리 신장을 위한 법령 개정 방안에 주목한다. 여기에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학생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이면서도 훌륭한 관점이 드러나 있다. 학생은 그 자체로 자율적인 시민사회의 일원이며 그런 원칙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학교와 교사, 부모, 그리고 시민사회는 더 예의를 갖추어 학생을 대해야 하며, 체벌이라는 손쉬운 수단을 택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이 행하는 폭력이 문제라면 어른이 가하는 폭력은 더욱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