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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격노사회와 ‘사회적 영성’

이 글은 [말과 활] 창간호(2013. 7-8)에 게재된 것으로, 연구소가 기획 진행하고 있는 사회적 영성 프로젝트를 위해 쓴 글입니다.

이 글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와 우리신학연구소가 함께 기획하여 현암사에서 출간한 책 [사회적 영성 -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에 수록된 글입니다. 
이 책은 기라성 같은 필자들이 참여하여 좋은 글들이 게재되었고 빛나는 사진에세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읽을 거리로서 괜찮은 책이지만 기획자로서의 저의 부족함 탓에 좀 산만하게 구성된 느낌입니다.
이 책의 목차를 옮겨 놓습니다.


서론: 사회적 영성 시론(김진호)
고통, 말할 수 없는 것을 기억하기(엄기호)
힐링 담론과 사회적 영성(백소영)
망루의 상상력, 사회적 영성(김응교)
세월호 국면에서 나타난 사회적 영성(황진미)
혼, 숲 - 글과 사진(자우녕)
애도, 기억, 저항: 세월호 ‘안의’ 민중신학(정경일)
도덕이 사라지는 그곳으로 영성은 가야 한다: ‘사회적 영성’을 말하는 것의 어려움에 관하여(정용택)
사회적 영성의 정의와 방법론(박정은)
무덤에서 사라지다, 그리고 함께 돌아오다(조민아)
격노 사회와 ‘사회적 영성’(김진호)
목사의 영성에서 장로의 영성으로: 영성 권력의 이동(최형묵)
뉘우치라, 더 뉘우치라는 망령을 거부하며: 윤리적 자본주의의 시대, 사회적 영성이란(김신식)
사회적 영성과 주체의 정치학: 민주적 유물론의 패러다임을 넘어(이택광)
영성을 듣는 시간(신윤동욱)



제 글을 빼면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글들입니다. 많이들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에 책 신청을 해 주시면 더욱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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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노사회와 사회적 영성

 

 

 

 





 

 

분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

 

인도 바로 옆 차선을 달리던 택시가 갑자기 섰다. 그 뒤를 따르던 경차의 여자는 핸들을 급히 왼편으로 돌려 택시를 피해가려 했다. 그 옆 차선으로 주행하던 승합차의 남자는 밀고 들어오는 경차에 황급히 핸들을 왼편으로 꺾으며 클랙슨을 거칠게 눌렀다. 놀란 경차의 여자는 얼떨결에 핸들을 반대로 돌리다 택시의 범퍼를 들이받았다. 택시 기사와 경차의 여자가 잠시 후 차 밖으로 나와 자기 차와 옆 차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이내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승합차의 남자는 방금 전 옆 자리에 앉은 아내와 싸움을 하던 중이었다. 한창 성이 나던 중에 경차의 여자가 그의 화를 더 치밀어 오르게 했다. 클랙슨을 거세게 울리고도 분이 가라앉지 않은 그는 창문을 열고 그 여자를 향해 욕설을 퍼붓는다. 한데 접촉사고를 낸 여자는 승합차의 남자가 내뱉은 쌍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순간 승합차의 남자는 자동차 급정거 소리에 고개를 왼편으로 돌린다.

차선을 갑자기 넘어온 승합차에 놀란, 그 왼 편 차선 승용차의 남자는 급정거를 했다. 순간 마시던 커피음료를 엎질러 와이셔츠와 바지를 온통 적셨다. 승용차의 남자는 갑자기 옆 차선으로 밀고 들어온 승합차의 남자를 향해 욕설과 거친 손가락질을 한다. 화가 치밀어 있던 승합차의 남자는 승용차 남자의 입모양과 손가락을 보자 왼편 창문을 열고, 경차의 여자에게 내지른 소리보다 더 격앙된 소리로 욕설을 퍼붓는다. 이내 승용차의 남자와 승합차의 남자 간의 몇 마디 격앙된 소리가 오갔다.

4차선 도로의 세 차선이 막혔다. 곧바로 그 뒤의 차들이 어지럽게 클랙슨을 울려댄다. 할 수 없이 승용차의 남자가 먼저 차를 뺀다. 승합차의 남자도 차를 운행했다. 십여 초에 불과한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승용차의 남자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는 대학교수였고, 제자의 석사학위논문 심사를 위해 학교에 가던 길이었다. 그 논문은 논지도 허술하고 방법론도 다듬어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문장도 엉망이었다. 교수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으면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짜증이 나 있던 탓이어서 말투가 심하게 경직되어 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학생은 완전히 얼어버렸다. 대답은 횡설수설했고, 교수는 폭발했다. 그날 그 학생의 논문은 통과되지 못했다.

약간의 해석이 덧붙여진 이 실화는 그때그때의 감정상태가 일으키는 파급효과가 엉뚱한 곳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전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때때로 마음의 균형상태를 잘 유지한 채 합리적 판단을 내리며 행동하는 데 실패한다. 학력이 높고 지위가 높으며 자신의 행동을 잘 포장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갖춘 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심지어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이성적 판단이 예리하게 번뜩일 법한 학술 논쟁을 하고 있을 때라고 해도, 서로 오가는 말들이 미묘하게 감정을 건드리면서 논쟁의 흐름과 내용이 뒤죽박죽되어 버리는 일은 결코 낯설지 않다.

성서의 잠언에서 한 현인(賢人)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고 말했다. 감정, 특히 분노 조절이 세상사의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는 뜻이겠다.

그렇지만 감정의 문제가 늘 그 현자의 권고처럼 개개인이 자기 조절만 잘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감정 조절의 이상 현상은 종종 그 사회의 집단 병리를 반영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시대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2007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성인 남녀의 74.4%정체성 유실(identity foreclosure) 성향을 드러냈다. 이 연구소의 이동수 소장은, 이런 성향은 자존심이나 체면이 손상됐다고 느낄 때 타인을 비난하거나 분노를 격하게 표출하는 공격성을 띨 수 있다고 한다.

앞의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거나 자신의 무례함을 차분히 변명하기보다는 먼저 격한 분노를 표출하고, 그러고도 해소되지 않고 남은 분노감을 이후의 다른 상황에서 표출함으로써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의 관계가 이어지게 하고, 그로 인한 나쁜 기분(氣分)을 전염, 확산시키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체성 유실 현상은 자기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 없이 타인 혹은 사회가 규정한 목표나 과제에 떠밀려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가리킨다. 이 연구소는 이것을 권위주의의 부정적 부산물로 해석하였다. 가령 부모가 자식과 대화하기보다는 자식의 비전을 부모가 결정하고 거기에 몰두하도록 강제하는 권위주의적 가족 문화가 사회 전체적인 정체성 유실 증상을 심화시켰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해석에는 이 연구가 진행된 2007년 직전, 그 어간이라는 시간의 문제가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권위주의는 한국사회가 유교사회이던 때나 한창 돌진적 산업화(rush-to industrialization)를 드라이브하던 때,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질서에 광속으로 편입된 때를 통째로 관통하는 느슨한 변수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 연구가 반영하고 있는 것과 같은, 최근의 감성 현상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한 기점을 ‘1997으로 잡는다. 알다시피 외환위기로 전례 없는 경제적 파탄을 체험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협박성 권고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질서 속으로 과격하게 편입되는 기점이 바로 이 해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면 이렇다. 그 직전까지 한국사회는 자기 취향의 표현 욕망이 급격히 높아졌고, 1997년 이후에도 그러한 현상은 욕망의 인플레이션이라고 할 만큼 치솟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1997년을 기점으로 그러한 과잉 욕망은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되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의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모조리 바꿔라는 말처럼,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 취향, 자기 성격 등 모든 것을 다 유보하고 생존을 위해 유리하다고 평가된 사회적 가치에 맞추어 내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내적 욕망은 최고조에 올랐으나, 외적인 사회적 가치는 그 욕망을 억제하도록 강압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데 사람들은 이 두 요소 간의 절충점이 어딘지를, 곧 사회 속에서 나의 존재의 자리는 어디여야 하는지에 관한 정체성의 문제를 고민할 틈이 없다. 욕망은 전례 없이 높아졌는데, 그것을 포기하는 데 갈등할 틈도 없는 상황,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집단적인 정체성 유실 증상을 더 많이 드러내게 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최근 사람들이 더 많이 화를 내고 더 공격적인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라는 얘기다. 하여 나는 ‘1997년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이러한 시간성의 문제가 최근 우리사회 대중의 집단감정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


 

‘1997년 이전’, 우리끼리 공유하는 공감

 


많은 극우 파시스트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군부권위주의 정권도 국가가 주도하는 과잉민족화 프로젝트(hyper-nationalization project)를 전략적으로 추진했다. 이것은 일종의 전체주의적 국민만들기다. 이때 국민은 민족과 거의 동의어다.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집합적 존재로서의 민족/국민 말이다. 개별적 취향은 극도로 억제되고 집단주의적으로 과잉스타일화(hyper-stylization)된 국민이 권위주의 국가에 의해 호출된 것이다.

하여 국민은 거의 같은 시간에 잠에서 깨고, 거의 같은 시간에 잠든다. 국민은 어디서나 열과 횡으로 줄을 서야 하고, 허용된 음악, 허용된 책만을 읽어야 하며, 허용된 옷, 허용된 머리 스타일만을 해야 한다. 그것을 위반하는 것은 불온한 것이며, 따라서 학교든 직장이든 군대든 위반자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 하여 국민은 동질화된 집단이고, 그 동질적 집단 간에는 마치 가족처럼 서로 친밀함을 가져야 하고 서로 정서적 지지자가 되는 감정, 곧 공감(sympathy)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과잉민족화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때는 1960년대 이후다. 그 이전까지 남한 사회에서 사실상 동질화된 국민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몇 년간의 내전과 전면전은 일체의 공감할만한 관계가 형성될 수 없게 했다. 전후에도 무능한 정부는 그러한 공감의 메커니즘을 가동시키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1960년대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은 과거 일본 군국주의 시대를 모범 삼아 전체주의적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를 강도 높게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민 만들기가 그 실효성을 드러낸 것은 1970년대 이후다. 정부가 주도한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특히 매스미디어산업과 인쇄산업이 크게 발달하게 되는데, 이는 국가의 메시지가 일상의 공간으로 전달되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또한 공교육 체계가 거의 모든 아동, 청소년에게 적용됨으로써 국가가 추구하는 균질적 인간이 대량 복제되기 시작했고, 한층 안정된 체계를 갖추게 된 군대도 이러한 현상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하여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범주 속에 엮인 이들은, 비록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괜한 친근감과 동질감을 공유하게 되었다. 국민이라는 상상적 동일시에 의해 엮인 이들은 바로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를 공감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 시기에 대한 절반의 이해다. ‘우리는 모두 한민족의 일원이라고 하는 국민 담론이 성공적으로 유포되면 될수록, 국민 범주에서 퇴출된 이들은 국민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다. 실제로 이 시기는 무수한 이들을 국민의 대열에서 이탈하게 했고 그들에게 체제는 너무나 가혹했다. 해서 많은 이들은 그러한 체제의 불의함을 비판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지할 것은 이 시기 민주화 운동은 민족이라는 공감의 대상임에도 민족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그러한 국민의 이상을 스스로 위배하는 불의한 정권에 대해 분노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민주화 운동의 기저에는 이념이라는 이성적 가치보다는 공감과 분노라는 감성이 깔려 있다.

시간을 건너뛰어 1980년대 말로 가보자. 배제된 민중에 대한 공감과 불의한 체제에 대한 분노심에서 비롯된 민주화 운동이 결실을 맺은 때는 1987년이라고 할 수 있다. 학계는 이때부터 군부권위주의 체제가 종식되고 민주체제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물론 1987년 이후에 여전히 정부는 군부체제의 연장인 6공 정권이었다. 그럼에도 이때가 민주화의 기점이 된 것은 민주주의가 꿈꾸는 대상이 아니라 제도화를 실현하는 대상으로 전환된 기점이 그때이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이 시기 민주화를 논할 때 종종 간과되는, 그러나 반드시 함께 이해해야 하는 것은 소비사회적 제도화도 바로 이 시기에 시작되었고, 그것은 이 시기 한국에서의 민주적 제도화와 불가분 얽혀 있다는 점이다. 좀 무리하게 단순화시켜보면, 이 시기 한국의 민주적 제도화는 국가 대 개인’, 그리고 소비사회적 제도화는 국가 대 시장의 이분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과거에는 국가에 의해 모두 장악되어 그 존재감이 미미했던 두 요소가 민주화+소비사회화와 더불어 그 미친존재감을 드러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인시장이다.

국민이라는 집합적으로 과잉스타일화된 정치, 사회, 문화의 감옥에 갇혀 있던 개인새로운 국민의 주역이 된 것이다. 그 새로운 국민으로서의 개인이 그때그때마다 다른 개인들과 협상하고 결속하여 때로는 지연, 학연, 혈연적 연고망(networks)으로, 또 때로는 노동자로, 때로는 학생으로, 때로는 여성으로, 때로는 장애인으로, 때로는 성소수자로, ......, 다양한 연대로 뭉쳐서 국가와 거래하고 협상하는 권리를 쟁취한 것, 그것이 바로 민주화의 요체였다.

물론 이 개인들은 공공적 가치로 뭉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각기 자기 이해와 이익, 욕구의 주역이다. 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해서 그들은 때로 국가와 협상하고 거래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개인, 다른 집단과 거래하고 협상한다. 그리고 또한 협상력을 갖추지 못한 다른 이들을 배제하고 타자화한다. 국가처럼 말이다.

이때 협상의 권리를 얻은 개인, 그리고 그러한 개개인의 결속체를 시민이라고 한다면, 민주화는 국민의 시민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시민인가를 둘러싼 경쟁과 협상의 마당이 민주화의 장(fields)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넓은 의미의 정치적 민주화의 과정에서 협상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타자화된 이들도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이들을 민중이라고 부를 것이다. 민중속하지 못한 자’, 국민, 민족, 시민의 위상을 획득하는 데 실패한 자다. 마가복음의 용례를 따라 민중신학이 오클로스(ochlos)라고 부른 이들이 바로 이 민중이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민중은 국가가 배제하고 타자화한, 그러나 많은 국민은 공감의 대상으로 그 고통을 감정이입하는 대상이었다. 한데 민주화 시대에 민중은 국가와 시민의 협상과 담합 과정에서 배제된 이들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는 국민의 시민화인 동시에 타자적 국민의 비시민화/민중화과정이다. 하여 단순화시키면 민주화는 국가정치라는 고전적 개념 외에, ‘시민정치라는 관점과 민중정치’, 이 정치들 간의 길항성의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한편 소비사회화의 주체는, 근검, 절약이라는 에토스로 과잉스타일화된 집합적 주체인 국민이 아니라,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며 구매하는 자, 소비자. 국가가 억제했던 욕망이 풀렸다. 사람들은 갖가지 자기 취향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분출하는 욕망의 표현은 구매를 통해 실체화된다는 점이다. 즉 구매자가 아닌 자는 소비사회화의 주역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소비사회화는 국민의 시장화과정이며 비국민의 탈시장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말했듯이, 민주화와 소비사회화는 서로 얽히고설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제도화되었다. 이 민주화+소비사회화의 조합은 포함된 부류배제된 부류로 나뉘며, 양자의 포함과 배제에는 정치적 성격과 시장적 성격이 서로 뒤엉켜 있다. 즉 시민과 민중은 정치적인 동시에 시장적인 포함과 배제의 상황에서 나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한국의 민주화+소비사회화 과정에서 시장화된 시민간의 공감은 어떻게 나타나는가?’의 문제다. 우선 과거의 집합적 주체로서의 민족 관념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사람들은 동족에게 특별한 친근감을 덜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가 대항 스포츠 같은 비일상적 이벤트에서나 그런 공감이 예외적으로 작동할 뿐이다. 반면 일상에서 공감은 동료집단(직업별, 성별) 혹은 또래집단이거나 학연지연혈연 같은 사적으로 친밀함과 지지 감정을 공유하는 장에서 실행되었다.

그러나 권위주의 시대의 공감과 민주화+소비사회화 시대의 공감 사이에는 큰 틀에서 유사성이 있다. 거의 구조변동이라고 해도 될 만큼 공감이 작동하는 장의 성격이 달라지긴 했어도, 이 두 장에서 작동하는 공감은 일종의 계보학적 유사성(genealogical similarity)을 지닌다는 것이다. 양자의 경우 모두 공감은 동질적이라고 생각하는 집단 내부에서 그들끼리 공유하는 감정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동시에 이질적인 것, 곧 집단 외부가 이 공감의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집단의 외부자, 속하지 못한 자(나의 표현으로는 민중혹은 오클로스)가 공감의 대상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은 제도적으로 복지나 경제민주화 같은 정책적 장치가 부재하다는 것을 뜻한다. 너무나 단순화시킨 해석이지만, 이런 정책적 장치들은 배제된 이들을 차별하고 그러한 박탈적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것에 저항하는 다양한 사회적 노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 민주화+소비사회화 시대

국민

민족이라는 동질적인 집합적 주체

(민족의 동질성이 분절된) 시장화된 시민

공감

민족적 국민이 서로에 대해 갖는 친밀감과 지지 감정

사적 공동체 내부인들이 서로에 대해 갖는 친밀감과 지지 감정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공동체로 엮인 우리간의 친밀성과 상호 지지 감정.

이것은 타자의 배제를 제도화하는 집단 감정



아무튼 이와 같이 내부자끼리 나누는 공감의 메커니즘은 이절적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저들’/타자)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작동시킨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 경계심은 혐오감 혹은 공포감 같은 감정이 특정 대상에게 범주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가령 동성애자 혐오증 혹은 공포증 같은 것이 그렇다.

그렇지만 1980년대 말의 민주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해야 한다. 이 시기 민주화의 지배적 측면은 위에서 본 것처럼 국가 대 개인의 이분법과 관련이 있고, 이는 소비사회화의 국가 대 시장의 이분법과 상응하면서 시장 친화적 제도화의 경향을 띠었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화의 배타주의적 속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민주화의 진정성에 관한 논점을 편 다른 흐름이 있었다. 민주화는 특권 대 비특권의 이분법을 해소하는 데 더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령, 위에서 논한 복지나 경제민주화 같은 제도적 요구도 그런 것이고 차별금지법도 이런 논점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런 사회민주주의적 제도화는 1990년대 말까지는 거의 체제 비판적 의제로만 존속했다. 이것이 제한적으로나마 제도 형성적 요소로 작동하게 된 것은 1997, 외환위기 이후에 와서다.

 



1997년 이후, 도구가 된 공감

 



외환위기의 탈출 프로그램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강제한 구제금융의 이행조건을 단적으로 요약하면 한국사회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neoliberal globalization)의 질서에 편입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사회 내부에서의 다양한 저항에 부딪치면서 비대칭적으로 제도화된다. 저항할만한 자원을 더 많이 가진 이들과 덜 가진 이들, 그리고 자원이 빈약한 이들과 거의 없는 이들이 극명하게 나뉘고, 전자로 갈수록 좀더 유리하게, 후자로 갈수록 좀더 불리하게 제도화되었다.

국가는 이런 상황에서 양편을 오가면서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인다. 한편에서는 좀더 강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고, 다른 한편에선 약자를 보호하려는 정책을 편 것이다. 위에서 말한 사회민주주의적 정책과 조치들이 그렇다. 그러나 후자의 노력은 미미했고, 사회의 격차성은 너무나 빠르고 심하게 악화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이와 같은 위기는 전례 없다. 국가는 물론이고, 기업, 중소자영업자, 그리고 개별 가족과 개인에 이르기까지 행위자들은 저마다 몰락의 위기에 처했다. 누구든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도 절실했고, 그러기 위해서 타자와의 무한 경쟁이 불가피했다. 민족이라는 집합적 주체는, 스포츠에서나 유효했지, 개인들의 위기를 방어하는 데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사람들의 생존 게임은 공생(共生)과 공존할 수 없는 아생(我生)의 논리에 둘러싸였다. 하여 과거 돌진적 산업화 시대에 전 국민의 총력전이 강조되었다면, 이제 사람들은 저마다 몸의 총력전에 돌입했다.

자기계발, 스펙 쌓기, 그리고 재테크 열풍 등은 노동과 쉼의 시간과 공간의 이분법, 이성과 감성이라는 생산적인 고등한 속성과 소모적인 저등한 속성의 속설적 이분법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하여 모든 가능한 시공간 점유 능력과 인식의 내적 잠재력을 다 동원하여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최선의 목표였다. 말했듯이 민족이라는 공감의 도덕공동체는 이러한 생존 게임에 별로 유용하지 않았고, 그보다는 보다 직접적으로 유리한 동료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 해서 공감이 있어서 서로를 돌봐주고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해서 그들 사이에 공감이 형성되는, 도구적 친밀함과 지지 감정의 문화가 확산되었다.

매스미디어나 산업자본은 이러한 문화의 확산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천 년대를 풍미했던 이른바 부자되기열풍은 지구화 시대를 맞은 매스미디어의 가장 성공적인 상품의 하나였다. 부자들의 집, 삶의 스타일, 권력 등이 시각적으로 전시되었고, 젊고 매력적인 배우들이 그 전시된 것을 점유하는 멋진모습을 연출하였다. 그리고 부자들의 성공스토리가 컨설팅 전문가들과 심리학자들에 의해 분석되고 소개되었다. 여기에 주식투자, 부동산, 기타 여러 재테크 기술을 소개하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정보와 분석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제공되었다.

제공된 정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각자 전문가가 된다. 저마다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을 발휘하고, 그것들을 선별하여 선택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재테크를 위한 최적의 방법이 발견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무수한 책을 읽고 무수한 해석들을 섭렵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과 대화하면서 상대가 숨기고 있는 은밀한 비밀들을 캐낸다. 사람들은 각자 기업가가 된 것이다.

이런 노력을 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소설을 읽고 시를 음미하며, 철학과 역사 교양서를 읽고, 영화를 관람하며, 커피 한 잔과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향유할 여유가 없다. 그런 사고방식, 마인드로는 부자가 될 수 없으니, 온 사회가 공유하는 집단적 욕망의 해법에 자기 몸을 맞춰 일상을 노략질한다. 하여 일상은 사라졌고, 모든 삶은 투자이고 사업이다.

1997년 이후 집권한 두 번의 민주정권들은 이런 개인 기업가들부자되기 욕구의 정치를 부추기기 위해 너무 많은 노력을 소모했다. 하지만 정작 이 시기에 이른바 부자되기 상품을 팔았던 진짜 부자들은 엄청난 초과이윤을 획득했다. 더구나 그 와중에 부자의 횡포에 둔감해진 가짜 부자들인 평범한 시민들은 조금씩 혹은 왕창자산을 털렸다.

많은 이들이 몰락의 위기에 처했고, 실제로 몰락했다. 매스매디어는 많은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그 예감된 혹은 체험된 몰락은 세계경제의 악조건 때문이고, 잘못된 재테크 기술 때문이라는 일방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빗나간 부자되기 욕구에 대한 문제제기나 가진 자의 공정하지 않은 횡포에 대한 고발은 묵살되기 일쑤였다.

이런 시민사회의 부자되기 욕구가 절정을 맞이한 것은 MB 정부의 등장으로 나타났다. 이제 사람들은 부자의 도덕성도 정당성도 묻지 않았다. 단지 성공한 자를 선망했고, 그이의 성공만을 공유하고 싶어 했다. 부자되기 열풍은 이렇게 극한을 향해 치솟았다.

그러나 MB 정부를 거치면서 이 욕구는 날개 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10, 사람들의 77.4%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졌다. 이제 남은 것은 빈곤에 대한 공포, 질병에 대한 공포, 가족 해체에 대한 공포뿐이다. 앞에서 얘기한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의 연구보고처럼,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정체성 유실 증상을 보이며, 누군가를 향한 그리고 종종 무력한 타자를 향한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어쩌면 전체 사회가 몰아붙인 가치에 편승하여 사람들이 각기 부자되기 욕구에 맹목적으로 몰입하게 한 결과이고, 그것이 절망에 빠진 지금 공포심에 휩싸인 채 벌이는 비성찰적 반응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오늘 우리 사회, 그것의 배후에는 이러한 빗나간 선망과 욕구, 그 속에서 형성된 도구적 공감의 문화가 있다는 것이 내가 이 글에서 주장하는 중심 논지다. 그리고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이런 도구적 공감의 문화에 반대하는 다른 시민성’, 특히 타자화된 이들과 공감하고자 하고, 그들에게 비대칭적으로 가해진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과 결합된 시민성을 주목할 것을 제안하려 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러한 타자화된 공감을 사회적 영성이라고 불렀다. 아니 실은 그것은 내가 명명한 것이고, 해석한 것이다. 그것은 자기 중심적이고 도구주의적인 공감을 문제제기하고, ‘타자되기를 추구하는 신앙적 감정을 말한다. 감정의 타자적 성찰성에 관한 신학적 개념인 것이다. 몇 년 전 한 정치학자가 먼저 제시한 것을 곱씹으면서 다듬고 보충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신학적 가설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이름 지은 것에 불과하다. 이미 그리스도교 신앙 전통 속에는 사회적 영성이 굳건한 전통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자되기로서의 사회적 영성

 



서기 1세기 중반 고린도(Korinthos) 시의 그리스도 분파 내에서 벌어진 최소한 세 가지 갈등 가운데 하나가 방언(glōssa)의 문제였다. 방언은 사람들이 말하는 일상의 언어와는 다른 낯선 소리다.

그런데 일상의 언어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옳음과 그름, 착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가치를 담고 있다. 해서 사람들은 말을 하는 중에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이 담고 있는 가치를 함께 말한다. 그리고 그 가치에는 그 사회의 위계질서가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방언은 그런 언어 체계 속에서는 전혀 포착될 수 없는 말이다. 해서 이 일상 언어의 관점에서 보면 방언은 소리, 아니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소리/소음을 적지 않은 이들은 신령한 소리로 받아들인다. 즉 어떤 사람들에게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의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대체로 방언을 소음으로 여기는 이들은 일상의 언어, 즉 지배적 언어 질서에 잘 안착해 있는 이들이 많은 반면, 방언을 신령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이들은 대개 지배적 언어 체계의 소외자들이다. 해서 낮은 계층의 여성이나 노예, 그밖의 여러 비특권층 사이에서 특별히 방언 현상이 더 많이 나타난다. 하여 방언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리로서 표현된 민중의 신비체험의 특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2장에서 톤 프뉴마티콘(tōn pneumatikōn), 영에 속한 것들의 목록 속에 방언을 포함시킨다. 다른 항목으로는 지혜의 말, 지식의 말, 믿음, 치유 행위, 기적 행위, 예언의 말, 영 분별의 능력, 방언 통역의 능력 등이 있다. 이중 앞의 두 가지는 이성적 현상과 좀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나머지는 감정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라는 말이 감정 현상과 더 밀착된 표현임을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고린도전서를 포함한 바울의 용례 외에도 성서의 다른 예들, 그리고 고대의 여러 문헌들 속에서 이 용어는 감성 현상과 더 관련이 깊다. 한데 이미 기원전 3세기 경, 이 단어는 우주의 원리 같은 이성 중심적 개념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요컨대 영(프뉴마)라는 용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고 개념화되는 과정에서, 원래 감성 현상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던 것이 이성적 현상을 나타내는 데까지 확장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일부 이성적 현상뿐 아니라 여러 감성 현상들이 1세기 고린도의 그리스도 공동체 내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들 분쟁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이성적 혹은 감성적 능력을 영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서로를 비하하고 공격했던 것 같다.

바울은 이런 상황에 놓인 그리스도 공동체를 향해 편지를 보내면서 소위 영에 속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한데 이것들은 한결 같이 자기 중심적 욕구의 표현들이다. 다른 이를 이기기 위해 그 영적인, 신비한 은사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것들은 동시에 타자 배제적이다.

바울은 이 영에 속한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그 결론부에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의 최고 덕목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13장은 사랑의 품성에 관해 길게 열거하는데, 하나로 요약하면 타자를 배려하는 품성’, 아니 타자되기의 품성이다. 영의 진수는 바로 이것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바울이 알고 있던 그리스도가 표상하는 의미의 결정체다. 그에 의하면 신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라는 기호의 핵심이다. 신의 타자화가 그리스도인 것이다. 한데 바울은 그리스도를 역사의 예수와 직결시키는 것을 넘어서 과 직결시킨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의 개념과 연계시키면 신의 자기 해체, 신의 타자화의 의미는 한층 극단화된다. 신은 신의 형상을 해체할 뿐 아니라 예수의 형상까지 해체했다. 아니 모든 형상을 해체했다. 여기서 신의 타자화는 극한까지 간다. 세상에서 형상이 부정된 존재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리고 바울에게서 그 극한은 갈라디아서에 의하면, 주인(노예소유주), 남자, 유대인을 넘어서 노예, 여자, 이방인에 이른다.

이 주장의 역사적 배후는 이렇다. 이스라엘 이민자 사회가 고대 로마의 여러 지중해 연안 대도시들에서 유력한 결사체였던 탓에,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 종교로 개종하고자 했다. 특히 자신을 보호해줄 기반을 갖고 있지 못한 자들, 속하지 않은 자들이 대대적으로 개종자가 되려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예들이다.

아우구스투스가 팍스 로마나를 선언하면서 정복전쟁의 중지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지 80년 가까이 지난 1세기 중반, 주 공급원이 사라진 노예의 가격은 대단히 비싸졌다. 노예는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소작인보다 생산성이 낮았기에, 더 이상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많은 노예소유주들은 노예를 무차별적으로 방면했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대도시로 떠밀려와 마치 유기견처럼 처참한 생활을 영유하였다. 바로 그런 이들의 다수가 가장 유력한 결사체의 하나인 이스라엘 종교로 귀의한 것이다.

이스라엘 교포사회에서 가장 근본주의적이고 순혈주의적 성향이 강한 엘리트들인 유대주의자들은 이런 이방인 개종자들의 순수성을 의심했고 멸시했다. 반면 바울은 이들 이방인들, 심지어 노예들이나 여자들도 그들을 차별하는 엘리트들인 유대주의자들과 아무런 차별이 없는 존재라는, 당시 이스라엘 종교 사회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을 폈다. 그런 맥락에서 바울이 주장하는 것이 신의 은혜. 그리고 그 은혜의 핵심은 신의 타자화, 곧 신이 구원받아야 할 이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영은 그것을 가장 극한적인 대상에게까지 이르게 한다. 즉 영의 요체는 형체가 부정된 모든 이들, 하여 존재감을 박탈당한 가장 말단의 대상에까지 이르는 무한한 타자화에 있다. 고린도전서에서 영의 진수가 사랑, 곧 타자에 대한 배려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아니 그것보다 더욱 극한적인 논점을 펴는 맥락에서 갈라디아서의 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고린도전서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영을 주로 감정 현상과 관련하여 이야기한다. 고린도 시에서 그것은 서로에게 분노하고 증오하는 감정들을 일으키고 있었다.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이스라엘 교포사회에서는 더욱 극단적으로 속하지 못한 자들을 배제하고 증오하는 일이 벌어졌다. 바울은 그러한 배타적인 신앙을 문제제기하면서, 영은 타자를 배려함, 나아가 타자됨에 핵심이 있다는 주장을 편다.

그렇다면 신학적으로 영성은 타자화된 자, ‘속하지 못한 자에게 품는 배려의 감정이고, 그런 이들과 친밀함과 지지 감정을 나누며, 그러한 공감의 감정에 기반을 둔 모든 실천들을 함축하는 개념이다. 한데 이 영성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신의 형상 해체를 시사하는 신학적 기호다. 즉 영성은 신학적 개념인 동시에 탈신학, 반신학의 개념이다. 교회를 넘어서서, 기독교를 넘어서서, 타자되기의 감성, 그러한 사회적 실천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영성을 이야기하는 신학, 아니 반/탈신학은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해 있다. 영성의 의미를 독점해온 교회로부터 영성을 수거하는 것이 그 하나고, 이 영성을 세상에 돌려주는 것, 특히 세상 속에서 타자되기를 향한 감정과 그에 기반을 둔 실천에 이 이름을 부여해 주는 것이 다른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