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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뉴-뉴미디어'적 전환기의 개신교, 위기와 기회

이 글은 [여성신학사상 9집. 미디어와 여성신학](2012.1)에 수록된 논문입니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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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부

이영미 - 웹 2.0시대 협업과 공감의 여성주의 담론

김수연 - 사이보그 시대에서 여성신학-하기: 여성의 '주체'문제와 '연대'를 중심으로

이주아-  전자미디어를 통한 여성신학의 유통과 여성 주체의 생성 가능성

김진호 - '뉴-뉴미디어'적 전환기의 개신교, 위기와 기회

전철 -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진화의 신학적 함의


제 2부 

이인경- 대중매체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성찰

이숙진- 대중적 신앙서적과 성별화된 자기계발담론

백소영- 여성신학적 시각에서 본 한국 드라마

최우혁 - 매체로서의 역사와 신화, 그 기억에 관한 여성신학적 반성 - 창세기의 창조신화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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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적 전환기의 개신교

위기와 기회

  

 

  

 

 

 

 

머리말

 

이 글의 가설적 전제는, 개신교 교회체제의 초석적 제도(founding institution) 형성은 동시대의 공론장 구조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각주:1] 일단 초석적 제도가 구축되면 공론장 구조가 바뀌어도 그 변동을 하위적인 요소로 혹은 갈등적인 요소로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각주:2] 이 글은 개신교와 미디어의 상호성에 주목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표현된 공론장 구조는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게 하는 기술적 매개체계와의 관계 속에서 논의될 것이다.

개신교 교회의 초석적 제도는 구텐베르크 활판인쇄기술의 발명과 깊은 연관 속에서 시작된다.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구텐베르크 활판인쇄기술을 매개로 하여 형성된 문화적 체계를 구텐베르크 은하계(Gutenberg Galaxy)라고 명명하였는데,[각주:3] 이 거시적인 문화적 구조에 관한 개념틀 속에는 활판인쇄기술을 매개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의 구조가 포함되어 있다.

이 글의 첫 번째 장에서는 일종의 정전(canon)으로서[각주:4] 개신교의 초석적 제도화의 과정을 살피고, 그 속에서 형성된 커뮤니케이션 양식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특히 개신교적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의 이용자인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 양식을 살피고, 특히 해석의 주체로 부상한 대중의 주체화 과정과 하위주체화 과정, 그 두 요소의 길항적 관계성에 대하여 논할 것이다. 이것은 개신교 종교제도 속에 지속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주체의 형식이며, 또한 이후의 변화된 공론장의 구조 속에서 시대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시대착오적 주체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장은 그러한 개신교의 초석적 제도가 한국에 번역되어 수용되는 과정에 대하여 논할 것이다. 이는 초석적 제도의 한국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번역의 속성이 그렇듯이 그 과정은 비대칭(asymmetry)적이다. 원천언어(source language)가 목표언어(target language)로 옮겨지는 과정과 결과에서 번역은 원천언어의 모국이 우월한 위치에 있으면 원천언어의 속성이 목표언어 속에 과잉개입되며 반대로 목표언어의 모국이 우월한 위치에 있으면 과소개입하는 경향이 있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수행되었던 한글판 성서의 번역인데, 이때 사실상 원본 역할을 했던 영어본 성서는 한글 어법으로 부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영어의 어법을 과잉 과잉관철시켰다.[각주:5]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 식민적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의 형성과 한국화된 개신교의 제도화는 서로 얽혀 있다. 특히 이 장에서는 한국적 개신교 제도의 초석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평양대부흥운동을 중심으로 한국 개신교의 초석적 제도의 식민성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런데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형성과 맞물리며 발전한 유럽적 기독교의 한 체험이 보편적 가치를 획득하며 개신교의 초석적 제도로 구축되었고, 그것이 식민주의적으로 변용되어 한국의 초석적 제도로 구현되는 번역으로서의 한국 개신교는 최근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기독교와 미디어의 관계를 주목하고 있는 이 글은 그러한 위기를 미디어 상황의 변화를 통해 살핀다. 이른바 구텐베르크 은하계 해체의 징후가 뚜렷해진 오늘의 상황에서 한국 개신교의 초석적 제도는 새로운 변화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세 번째 장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포스트 구텐베르크 은하계(Post-Gutenberg Galaxy)가 열어 놓은 변화의 지평을 뉴-뉴미디어의 폭발적 등장과 연결하여 성찰함으로써 한국 개신교가 직면한 위기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그러나 뉴-뉴미디어적인 미디어 상황의 변화는 위기만이 아니라 제도적 성찰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은 탈권위적이고 탈중심적인 신학과 신앙, 교회를 향한 모색이 뉴-뉴미디어가 압도적인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에도 다양하게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은 한갓 주변적인 실험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뉴-뉴미디어적인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이 열어놓은 제도적 성찰의 지평은 저 주변적 시도들을 대안적 모색으로 부상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그것을 꿈꾸며 이 글을 쓴다.

 

구텐베르크 은하계와 개신교의 출현


개신교의 초석적 종교제도는 활판인쇄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형성된 사회적 미디어 상황, 곧 마샬 맥루한이 입론화한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대두와 깊은 연관이 있다. 구텐베르크 은하계 이전 시대의 제도화의 산물인 가톨릭은 제의 종교로서 발전하였다. 당시 종교언어는 대다수 대중이 읽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라틴어였다. 하여 제도는 예전용 말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고, 대신 의례를 수행하는 사제의 제스츄어, 제의 매개물을 통한 향기와 소리, 예배당의 공간적 배치 등의 장치들을 통해서 대중을 종교제도에 흡수하고자 했다. 이런 장치들은 당시의 소통 가능한 종교언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매우 추상적이며 모호했다. 하여 가톨릭은 다른 장치를 고안해냈는데, 성화와 민담 등이 그것이다. 성화가 가톨릭 당국에 의한 의도적인 고안물이라면,[각주:6] 구술 이야기들 가운데 많은 것은 가톨릭 문화권이 집단적이고 무의도적으로 창안해낸 규범적 담론이다.[각주:7]

반면 개신교는 말의 종교로서 제도화되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패트릭 콜린스(Patrick Collins)󰡔종교개혁󰡕(The Reformation)[각주:8]에서 당시 구텐베르크에 의해 시작된 활판인쇄문화가 팸플릿 산업으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종교개혁이 강력한 상업적 동기가 되었음을 주장하였다. 종교개혁과 관련된 주제는 당시 가장 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시대의 트랜드였던 것이다. 이때 은 구술문화가 아직은 지배적이지만 문자문화의 영향이 현저히 강화되고 있는 사회의 이다. 특히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이들과 그것에 열렬히 반응하며 팸플릿을 생산, 유통, 소비했던 이들은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등장을 주도했고, 시대의 언어감각에 따라 가장 빠르게 재주체화되고 있던 이들이었다. 15세기 후반경에 생산된 인쇄물의 77.5%는 여전히 라틴어로 쓰였지만, 22%의 문서는 독일어와 같은 지방어들로 되었다.[각주:9] 그것은 1450년경 활판인쇄본 라틴어 성서를 출판했던 구텐베르크가 파산한 지 불과 반세기도 못되어 지방어가 민족어로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종교개혁을 둘러싼 문자계층의 열렬한 사회적, 종교적 활동이 있었다. 바로 그런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개신교의 종교제도가 정착하였다.

은 매우 구체적인 소통의 미디어다. 동시에 문자문화 시대의 말은 언술의 외연이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로까지 연계된다. 곧 문자문화의 말은 일상적으로 실천되는 구체성의 미디어지만, 그 함의는 신의 영역에까지 연계되는 영원성과 보편성의 미디어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개신교적 말의 종교제도는 예배당 안에서 뿐 아니라 일상생활 구석구석에서 신의 영역과 인간 실존을 결합시킨다. 하여 예배당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교회를 넘어서 몸 자체로까지 의미망을 뻗힌다. 곧 몸 또한 예배당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 규율의 영역이 몸으로까지 확장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말의 종교는 일정 시간과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예배에서 뿐 아니라, 일상생활 곳곳에서 신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한데 이것을 가능하게 한 요소의 하나는 활판인쇄로 출간된 성서다.

성서는 이미 구술시대에 문자화가 이루어진 신의 말이다. 한데 문자는 저장성(storage capacity)이 매우 높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다. 즉 구술시대의 문자는 이질적 시간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그때의 문서는 너무 고가이며,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해독 불가의 텍스트다. 하여 성서를 확정짓고 그것의 신성성을 극대화한 텍스트, 즉 정전은 해석 능력보다는 점유 능력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된다. 요컨대 구술문화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정전으로서의 성서를 누가 점유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반면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성서의 미디어적 성격을 변화시켰다. 대량복제가 가능해지고 비용이 저렴해짐으로써 성서의 저장성보다 유통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더욱이 대학을 통해 해독능력을 보유한 이들이 대거 등장함으로써 성서는, 소수의 점유자만이 읽을 수 있고 그의 허락 아래서만 접근 가능한 문서[각주:10]가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종교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이 보유하고 읽을 수 있는 문서가 된 것이다. 게다가 지방어로의 번역이 활발해짐으로써, 성서를 해독할 수 있는 이들의 잠재적 수효는 무한히 확장되었다. 하여 성서의 공간적 소통(communication of spatial meaning)이 가능해졌다. 그것은 종교권력이 성서의 점유를 둘러싼 쟁투에 몰두하기보다는 해석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성서 텍스트가 더 이상 독서 불가능성(illegibility)의 문서가 아님을 확증한 셈이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역사는 반동적 개혁을 통해서 완성된다. 성서를 보유하고 읽는 것은 모든 이에게 허용되었지만, 성서를 해석하는 것은 여전히 종교권력에 의해 독점되었다. 이것은 미디어 상황과 엇물리는 형식의 종교제도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종교적 진리를 독점하려는 교회와, 다른 해석의 개연성을 끊임없이 발견하려는 학문이 갈등을 일으키고, 사람들이 신심을 표현하는 일상적인 언어감각과 어긋난 교리가 재생산되며, 대중적 신심과 학문적 해석이 서로 빗나가는 양상이 이 종교제도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곧 교리와 신학이, 신학과 신앙이, 그리고 신앙과 교리가 서로 엇나가는 상황이 이 제도를 둘러싼 각종의 실천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그리스도교적 종교제도의 한 모습이다. 특히 여기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성서 읽기를 둘러싼 교회 엘리트와 신학자, 그리고 교회 대중이라는 세 범주의 미디어적 존재론[각주:11] 간의 길항성이다. 하나의 종교제도 속에 포섭되어 있지만, 하여 서로 간에는, 미셸 마페졸리(Michel Maffesoli)가 말한 현대적 부족의 동족의식으로 결속되어 있지만,[각주:12] 동시에 서로 간에 지배적 미디어 상황에 대한 다른 감각으로 인해 통합의 위기가 끊임없이 출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 범주간의 권력 자원의 배분 양상에 따라 그리스도교적 종교제도가 운위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지해야 하는 것은 활판인쇄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하여 검열(censorship)의 제도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인쇄술로 인해 소통의 공간적 성격이 확대됨으로써 열려진 다양한 해석 가능성에 대해 생각의 통제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때 부상한 것이 신조(confession). 마르틴 루터가 만인사제론을 주장하여 군주로 하여금 일종의 비상주교의 역할을 수행하는 길을 열어 놓음으로써, 이미 정치권력인 가톨릭뿐 아니라 새로운 교회권력인 개신교 중심세력도 정치권력과 긴밀히 연동되게 된다. 신조는 바로 이러한 지역적 정교 연합 상황에서 교회의 교리를 특정화하고 그것의 수호를 위한 정교 연합적 사회체제 구축의 의미를 갖는다. 볼프강 라인하르트(Wolfgang Reinhard)가 말한 교파화(confessionalization)란 바로 신조를 매개로 하는 지역적 정교연합 체제의 구축을 의미하는데, 이 체제는 법원, 대학, 교회를 연동시키는 검열체제의 구축을 포함한다.[각주:13] 그리고 이 검열은 사람들에게 예비적 검열을 자발적으로 수행하게 함으로써 일종의 사회적 규율화(social disciplinary)를 야기시켰다.

이때 그 신조들의 내용은 구텐베르크 이후 미디어 상황에 의한 소통의 공간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통의 선형적 시간계열화(linear time-series)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가령 그것은 영원의 시간에서 역사의 시간으로 투사된 신의 의지, 곧 계시를 권력화함으로써, 소통의 위계질서를 통해 해석의 공간화를 규율하려 했던 것이다.

이렇게 교회 권력은 문자 미디어의 공간적 소통의 장에서 성서 해석의 검열관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그것은 거꾸로 대중을 하위주체(노예적 주체, subaltern)로 전락시키는 과정을 수반한다. 물론 이것만으로 대중의 ()주체화(de-subjectification)에 관해 충분히 설명된 것은 아니다.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점차 지식을 대중화하고 대중의 시민적 주체의 신장을 가져왔다. 그런 점에서 교회를 매개로 하는 대중은 주체화와 하위주체화의 상호 모순적 형식으로 존재의 자의식이 구성된다.

 

한국교회의 종교제도 식민적 형성과 미디어 상황


개신교의 초석적 제도는 정전적 지위를 지니며 개신교의 특성 형성에 압도적인 지위를 갖는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이러한 초석적 제도의 한 특성을 본래적인 것인 양 확신함으로써,[각주:14] 그 정전성을 유일무이의 초월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확정한다. 그러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압도적 영향에 의해 한국 개신교의 신앙제도가 구축되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이러한 한국적 개신교 형성의 초석적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근본주의적인 선교사들의 영향력이 확고해졌고, 그들이 주도하는 개신교의 한국적 번역 작업이 구체화된다. 여기서는 이러한 번역에 의해 개신교의 초석적 제도에 식민성이 추가되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러일전쟁이다. 일전쟁의 뼈저린 폭력의 기억을 각인하고 있던 평안도 대중에게 다가온 이 새로운 전쟁의 상황은 극도의 공포와 절망감 바로 그것이었다.

불과 1년 반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러일 양국군의 사망자 수가 20만 명에 달할 만큼 이 전쟁의 치열함은 상상의 극한치를 보여준다. 하지만 양국 군대의 사망자만으로 전쟁의 혹독함을 상상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남의 나라에서 벌인 전쟁이었기에 민간인에 대한 군대 폭력은 상상의 정도를 넘쳤다. 전쟁터였던 중국인 민간인의 피해는 사망자만도 수십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물론 전쟁의 직접적인 배후지였던 조선 양민의 피해도 못지않았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러일전쟁 연구는 청국과 조선국 백성의 고통의 문제를 간과해왔다. 종군 기자들의 기사나 사진 등에서나 간접적인 추정이 가능했을 뿐이다.[각주:15]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 민간인 피해의 양상을 해독해 낼 수 있는 사료들이 발굴 분석됨으로써 전쟁의 고통에 관한 향후 연구의 길이 열렸다.[각주:16]

아무튼 외국 군대가 자행했던 무자비한 폭력에 직면한 조선 백성이 기대할 수 있는 공시적 보호망은 자국 정부와 군대다. 그러나 당시 조선 정부나 군대는 외국 군대에 유린당하는 백성을 위해 아무런 보호조치도 수행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정부는 일의정서(1904.2.23)를 체결함으로써, 비록 비자발적인 조약이긴 하지만, 일본의 군대폭력을 법적으로 정당화해준 셈이 되었다. 이것은 대중()의 입장에서 ()-()-()의 관계에 관한 조선의 공간적(공시적)인 해석체계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위기에 직면한 대중에게 또 다른 일상의 보호망은 통시적인 것인데, 망자가 된 조상과 조상의 수호신이 시간 속으로 개입해 들어옴으로써 제공되는 구원이다. 하지만 러일 양국군의 가공할 폭력 앞에서 이것 역시 철저히 무력했다. 하여 조상-후손의 관계에 관한 조선의 시간적(통시적)인 해석체계 역시 훼손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컨대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조선 대중이 위기를 해석할 수 있는 안보의 시공간적인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의 구조가 붕괴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북지방, 특히 평양지역에서 많은 이들이 교회로 몰려들었다. 이 지역은 미국 정부와 가장 밀접한 연계망을 갖고 있던 미국 북장로회의 선교영토였기에 이곳의 교회는 사실상 미국의 영토인 셈이다. 당시 미국에게 있어 조선은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그다지 중요한 나라가 아니었다. 하여 미국의 관료나 사업가들 중 조선으로 들어온 이들은 극히 일부였다. 반면 미국의 나이아가라 전도대회를 매개로 시카고의 근본주의적 개신교지도자들은 열렬히 아시아 선교를 외쳤고, 특히 조선 선교의 비전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1889~1923년까지 나이아가라 무디 선교집회 출신 해외선교사 818명 중 31명이 조선으로 들어왔다.[각주:17] 이들은 조선에 들어온 미국인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여 조선 주재 미국 공사관의 주요 업무는 선교사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각주:18] 아울러 서북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미국 선교사들이 당시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종파인 북장로회 소속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에 대해 비대칭적 관계에 있던 일본이 조선의 개신교, 특히 서북계 개신교 선교사와 그들의 교회에 대해 얼마나 조심스럽게 행동했을지에 대한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 미국의 주일 선교사인 조지 풀턴(George Fulton)이 평양을 둘러보고 난 뒤 이곳을 제국 속의 제국이라고 표현한 것[각주:19]은 일본에게 있어 미국 기독교의 장소가 일종의 치외법권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그 교회들은 십자가와 함께 성조기를 달아 놓음으로써 일본군이 침입할 수 없는 곳임을 분명히 했다. 하여 교회로 피신해 들어온 대중은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보장받는 데 있어 결정적으로 유리했다.

한데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전쟁의 상흔을 몸과 영혼 속에 가득 안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조선 시대의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일상의 보호와 관련된 해석체계가 심각하게 훼손된 채 살아가야 하는 일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도둑질, 간음, 분쟁과 폭력, 살인 등, 상호간 폭력이 난무했다.[각주:20] 붕괴된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은 이렇게 사람들 간의 친밀성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교회 당국은 당황했다. 갑자기 불어난 신자를 감당할 준비도 안 된 이들에게, 그들이 마주한 새 신자들의 심성은 전쟁으로 난도질 된 상황이었다. 선교사들을 포함한 교회 당국자들은 그러한 대중의 행위를 그들의 상처 난 경험과 연관시켜 해석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교회 당국자들은 근본주의자들로서, 현실의 경험보다는 근본원리를 중요시하는 신앙체계에 몰입돼 있는 자들이다. 이 근본원리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미국사회에서 유래한 신앙적 해석의 한 양상이다. 그런데 특정 시기의 미국적 경험이 보편화되고 절대화되며, 다른 경험은 부차적인 것, 불필요한 것으로 착시하는 현상, 그것이 근본주의 신앙이었다. 이때 그들이 생각했던 근본적인 것은 종교개혁의 초석적 신앙의 요소였다. 그들은 이것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래적인 것으로 오인했다. 아무튼 근본주의에 충실했던 선교사들은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교회로 몰려든 이들, 그리고 그 전쟁의 상흔으로 정신적, 육체적 파산상태로 내던져진 이들을, 그이들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여 선교사들은, 마을 곳곳에서 사람들의 경험을 살피고 그 기억의 파괴적 잔상들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골방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하고 열렬히 기도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기도하는 중에 이들은 신비체험을 하게 되고, 그 체험에 동화된 이들이 차츰 기도회에 동참함으로써, 신비체험의 대열에 들어선 이들은 몸과 영혼을 난도질했던 그 잔혹한 체험의 기억을, 그 위태로운 잔상들을 봉합할 수 있게 된다. 이 신비체험은 전통종교가 아닌, 이식된 종교의 신적 시간이 현재의 시간으로 개입해 들어옴으로써 탈전통적인 시간적 해석의 문이 개방되는 기억의 사건이다. 새로운 시간적 해석, 탈전통적인 해석의 사건이 위기의 사람들을 안정되게 하고 그러한 안정감을 선사한 교회에 귀속되게 하는 것, 여기까지가 이른바 평양대부흥운동의 제1단계다. 요컨대 선교사들 중심의 기억의 정치가 대중의 기억과 체험을 배제하면서 식민주의적으로 관철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이 구축된 것이다.

이제 교회로 통합된 이들의 기억을 통제하는 권력의 제도화가 구현되는 다음 단계가 이어진다. 즉 선교사 중심의 대안적인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이 그 성공적인 부흥회로 인한 일시적인 담론 현상을 넘어서 일상적인 기억의 장치로 강제되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평양대부흥운동의 제2단계다.

선교사들은 서북지역에서 목사후보생의 양성과 목사 임명에 관한 일체의 권리를 장악하였고, 이것은 교회 대중에게 가르치는 내용에 관한 독점력을 더욱 확고히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예배와 성서 공부 등 각종 교회 활동을 통해 선교사적 가르침이 대중에게 이식된다. 이것은 전통적인 기억의 잔흔들을 억제하는 교회의 규율장치가 구축되었음을 뜻한다.

여기서 대부흥운동의 진원지인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방사된 선교사들의 영향망이 매코믹 출신 네트워크의 확대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각주:21] 시카고의 매코믹 신학대학은 1878년 나이아가라 성서대회 이후 미국 근본주의 신학의 중심지의 하나로 부상하였고, 특히 이 학교 출신자들이 서북지역의 선교사로 자원하여 세계에서 가장 근본주의적인 조선의 매코믹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이다.

이들은 조선의 신자대중을 그들 자신의 문화적 토양으로부터 단절시키고자 했다. 하여 대중의 삶을 탈문화적 해석의 지평으로 초대하려 했다. 성서는 그러한 탈문화적인 공간성의 새로운 토양이었다. 이때 그 성서는, 말할 것도 없이, 근본주의적으로 해석된 성서다. 선교사들은 그러한 성서의 독법을 축자영감의 원칙으로 규정하였다. ‘문자 그대로의 해석이다.

그 문자는 고대그리스어와 고대히브리어/아람어로 쓰인 문자지만, 선교사들에게 그것은 영어문자로 대체된다. 왜냐면 그 해석의 원리인 근본주의는 영어 사용자들의 경험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이때 영어 사용자들의 경험은 성서 텍스트 속의 주인공들의 경험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기원의 망상은 영어성서의 원본성을 주장하는 셈이 된다.

조선의 신자대중은 한글로 번역된 성서를 읽는다. 번역이란 타자의 기억을 내재화하는 과정(incarnation), 곧 타자의 것을 자신의 신체 속에 용해시키는 과정이다. 하지만 평양대부흥운동을 거치면서 조선의 신자대중은 자기들의 경험 밖에서 성서를 읽어야 하며, 타인의 경험을 경유해서만 성서를 읽을 수 있다. 선교사들의 헤게모니 하에서 수행되는 근본주의적 신앙화는 영어문자 속에 내재된 타자의 경험을 기계적으로 수용(이식)하는 것을 복음화로 오인하는 과정에 다름 아닌 것이다. 요컨대 신앙화는 신앙적 재주체화가 아니라 근본주의적 타자화이자 식민화인 셈이다.

이러한 평양대부흥운동의 식민주의적 신앙 양식은 이후 점점 더 확고하게 정착하여, 한국 장로교, 나아가 개신교 일반의 신앙 양식이 되었다. 비록 선교사의 직접적인 검열은 사라졌지만, 근본주의는 신자들의 영혼 속으로 내재화되어 검열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하여 한국 개신교는 대중의 식민주의적 탈주체화의 종교적 장치이며, 그 장치 안에 포섭된 대중은 식민화된 여러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을 마치 자발적이며 자존적인 것인 양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담론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

 

-뉴미디어적 청산담론과 한국교회

 

이상에서 나는 유럽 종교개혁기의 초석적 제도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계기로 하는 식민주의적 변용을 통해 한국 개신교의 신앙제도로 번안되었음을 이야기했다.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형성과 맞물리며 해석의 담지자로 부상한 대중은 개신교의 초석적 제도의 주요 구성적 주체가 되었다. 하지만 개신교 교회에서 실질적인 해석 주체는 목사다. 대중은 목사의 시선에 규율됨으로써만 주체가 될 수 있다. 대중은 성서를 읽고 해석하지만, 그 해석의 올바름은 목사의 시선이 대중에게 내면화됨으로써 관철된다. 그런 점에서 개신교에서 교회 대중은 성직자가 대변하는 규범적 질서에 규율된 하위주체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의 초석적 제도는 신과 교회 대중 사이를 매개하는 목사의 시선이 위치하는 자리를 선교사가 차지한다. 이때 선교사의 눈은 미국적 근본주의의 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교회 대중의 하위주체화는 미국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의 식민화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개신교의 초석적 제도가 통제하는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은 소통의 수직적 일방향성을 통해 관철된다. 교회 대중으로 표현될 수 있는 비가역적 소통(irreversibile communication)이다. 물론 여기에는 중계자가 개입된다. 목사/성직자/선교사로 표상되는 매개자의 시선이다.

한데 이 매개자의 시선은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심성 속으로 내면화된다. 물론 그 과정이 기계적이고 획일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국 그리스도교가 전반적으로 근본주의적인 신앙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시선의 주체인 매개자의 관점이 수동적 수용자인 교회 대중에게 과도하게 이식되었음을 뜻한다. 또한 수많은 교파들로 분화되었음에도 교파간 신앙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교파들을 아우르는 거대한 공론장이 수평적으로 획일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 그리스도교의 수직적 일방향성과 수평적 획일성을 띠는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이 최근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1962년 마샬 맥루한이 자신의 책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획일화되고 선형적인 사고체계를 조직해내는 구텐베르크 은하계20세기 초 전신(telegraph)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되는 전자 미디어에 의한 새로운 은하계(new galaxy)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 바 있다.[각주:22] 또한 월터 옹(Walter J. Ong)󰡔구술문화와 문자문화󰡕(1982)에서 라디오나 TV 같은 전자미디어의 등장이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문자성을 해체하고 두 번째 구술성의 시대를 도래하게 하는 계기임을 주장하였다.[각주:23] 닐 포스트만(Neil Postman)도 마찬가지로 설명의 시대(age of exposition)쇼비지니스의 시대(age of show business)로 나누어 TV의 등장을 결정적인 전환기로 보았다.[각주:24]

하지만 미디어 상황의 변화와 맞물리는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의 결정적인변화는, 폴 레빈슨(Paul Levinson)이 말한 -뉴미디어(New New Media)의 등장, 곧 블로그, 유튜브, 위키피디아, 페이스북, 팟캐스팅 등의 등장과 맞물려 있다.[각주:25] 이는 일반적으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여 재구성되는 미디어 상황을 지칭하는 뉴미디어와 차별화하기 위한 레빈슨의 개념인데, 뉴미디어가 기존의 인쇄미디어나, TV 같은 전자미디어를 대체하여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을 창출할 때 기존 미디어의 요소와 갈등하면서도 포함하는 이른바 잔여(residue)의 특성을 지니는 데 반해, 레빈슨의 -뉴미디어는 인터넷 미디어의 특성을 극대화하여 기존의 미디어적 요소의 많은 부분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각주:26] 특히 저자와 독자, 발화자와 수용자,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기반으로 하여 구현되었던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의 특징과는 달리 뉴-뉴미디어적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은 저자가 독자이며 독자가 저자인 담론의 장, 생산자와 소비자가 융합되는 담론의 장을 구현하면서 작동된다는 점에서, -뉴미디어의 활성화는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을 기반으로 하는 제도의 존속에 위기를 초래한다.

최근 한국에서 뉴-뉴미디어적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의 급격한 확산은 대단히 눈부시다. 촛불집회, 황우석 현상, 최근의 나꼼수 현상에 이르기까지 뉴-뉴미디어적 공론장들은 한국 주류사회의 의제형성 능력을 농락하며 전통적 권위에 대한 존경의 체계를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한데 전통적 권위 가운데 지속성이 가장 강하고 도전에 대해 가장 폐쇄적인 대표적 범주에 속하며, 성장주의적인 동시에 식민주의적인 근대의 청산담론의 표적이 되는 종교는 다름 아닌 개신교다. 그런 점에서 뉴-뉴미디어적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이 개신교를 표적 삼고 있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치명적인 위상의 실추를 경험한 것은 개신교 성직자의 권위다. 특히 설교는 성직자의 권위를 과대표하는 표상인데, 그것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붕괴하였다. 설교는 원초적 육성에서 시작하여, 교회 규모가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 음향미디어인 마이크를 사용하게 되고, 대형화되면 TV 모니터 같은 영상미디어를 활용하게 된다. 나아가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으로 유포되기까지 한다. 또 설교원고가 주보 형식으로 인쇄되었다가 책으로 출간되기도 하며, 혹은 인터넷을 통해 문서텍스트로 유포되기도 한다. 즉 설교는 한 미디어에서 다른 미디어로 수없이 옮겨 다닌다.

텍스트가 다른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는 현상을 볼터와 그루신(Jay David Bolter and Richard Grusin)재매개(remediacy)라고 말했는데, 그 텍스트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하는 이들은 그 텍스트의 본래적 의미를 접하고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immediacy), 실상은 수없이 다양한 의미로 번안되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다(hypermediacy).[각주:27] 이것은 미디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이들은 원본적 진실을 향한 욕망 속에 있지만, 다층적 시선으로 그 텍스트를 재현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설교는 일방적인 발화자와 수동적인 수신자를 가정하는 커뮤니케이션 양식이다. 또한 설교는 발화자 자신의 말이 아니라 신의 말이 설교자에 의해 대리된 것이라는 신화적 확신 속에 수행된다. 그렇기에 설교는 확고부동한 위로부터의 배타적 진리를 내포한다. 그것은 마치 성서와도 같다. 특히 근본주의자들의 성서처럼, 일점일획도 가감첨삭할 수 없는 글과 같다.

하지만 성서의 한 텍스트가 그림이 되고 소설이 되며 영화가 되는, 미디어 이동을 통한 재매개 과정 속에 놓이는 것처럼 설교도 그러한 재매개를 통해 원본적 의미는 신화적 확신으로만 존재하며 실상은 다중적인 의미망 속에 놓인다. 즉 설교자와 청중은 하나의 투명한 진리를 수직적 일방향성과 수평적 획일성을 띠는 커뮤니케이션 공론장 속에서 소통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재매개 과정 속에서 청중은 설교자의 시선으로 텍스트를 읽고 세상을 사는 수동적 주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청중은 설교자와는 다른 방식의 응시를 통해 적극적인 이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재매개 과정은 그러한 가능성 앞에 청중을 놓이게 한다. 하여 외부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 대중조차도 설교의 수용 과정에서 설교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닌 자율적 주체가 되곤 한다. 즉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설교가 미디어 사이를 옮겨 다니며 소비되는 과정은 목사의 시선으로 주체화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주체화된 청중을 양산하며, 이것은 목사가 더 이상 수직적 권위의 상징으로만 존속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폴 레빈슨의 뉴-뉴미디어적 현상에 이르면,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은 폭력적으로 설교 텍스트를 해체한다. 그것은 설교의 원본성을 욕망하는 비매개성(immediacy) 자체가 붕괴되고, 종종 텍스트가 패러디되기도 하고 전도되기도 한다(be inverted). 하여 이른바 안티담론이 소통되는 공론장들이 대두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교회로 하여금 성찰보다는 과잉 반응을 야기하곤 한다. 한기총이나 기독교 뉴라이트의 위악적 말과 행동은 그러한 무성찰의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런 과잉반응들이 나타날수록 점점 더 한국교회는 그런 무성찰의 표상처럼 간주되며 교회 안팎에 귀속된 시민사회의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에서 청산의 대상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하여 한국교회는 위기의 악순환 속으로 휘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맺음말

 

주류 교회의 위악성으로 인해 시야에서 가려져 있지만 한국교회의 다른 한 켠에는 사회의 뉴미디어적 변동이 내포하고 있는 제도적 성찰성(institutional reflexibility)을 통해 자기개혁의 여정에 들어선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뉴-뉴미디어의 폭발적 등장은 그러한 성찰의 지평을 극대화시켰다. 곧 많은 이들의 생각의 이반이 행동의 이반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크게 강화되었다. 가령 수직적인 차원의 영성적 깊이를 탐구하고 수평적 차원의 탈권위적이고 탈중심적인 대화에 대해 열린 신앙을 제도화하려는 다층적 모색이 도처에서 시도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작은 교회 운동타자적 신앙운동에서 주목하였는데,[각주:28] 크기나 배타적 주체성을 욕망하지 않고 탈중심적이고 타자 중심적인 깊이와 폭을 열망하는 커뮤니케이션 공론장을 구현하려는 신앙적 시도를 가리킨다.

신학적, 신앙적인 다양한 층위에서, 하나의 연대망 아래서 모색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별개로 서로 다른 방식의 실험을 통해 다양한 작은 교회들이 나타났다. 어떤 것은 제도교회 내에서, 또 어떤 것은 기독교적인 실험적 교회로서, 나아가 어떤 것은 탈기독교적인 신앙적 실험으로서(흩어지는 교회로서), 새로운 시도들이 모색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뉴-뉴미디어적 맥락에서 거칠게 확산되는 안티기독교 현상에 직면한 교회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임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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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뉴미디어’적 전환기의 개신교, 위기와 .pdf

  1. 이것은 인간 사회는 그 사회의 지배적인 커뮤니케이션 양식 및 유형에 의해 구성된다고 보는 닐 포스트먼(Niel Postman)의 입론을 개신교 제도와 연관시켜 재정리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닐 포스트만, 홍윤선 옮김, 󰡔죽도록 즐기기󰡕 (굿인포메이션, 2009) 참조. [본문으로]
  2. 그런 점에서 초석적 제도는 하나의 정전적(canonic) 지위를 갖는다. [본문으로]
  3. 마샬 맥루한, 󰡔구텐베르크 은하계󰡕 (커뮤니케이션북스, 2001) 참조. [본문으로]
  4. ‘정전’은 그 생성 역사가 생략된 채 원래부터 그랬다는 기원의 신화를 가지며 후대의 제도 수용 과정에서 그 원본성을 고수하고자 하는 특성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초석적 제도는 정전과 같은 기능을 한다. [본문으로]
  5. 원영희, 「번역의 식민주의적 기능과 탈식민주의적 기능―영한번역에 나타나는 대명사 ‘그’ 사용」, 󰡔번역학 연구󰡕 3/1 (2002.3) 참조. [본문으로]
  6. 조나단 에드워드의 성화론에 따르면, 그것은 가톨릭 당국이 그리스도인의 덕성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진락,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화론」, 󰡔한국개혁신학󰡕 29(2011), 86~94쪽. [본문으로]
  7. 송영규, 「프랑스 중세서민문학 연구―구전으로 본 Fabliau」, 󰡔프랑스어문교육󰡕 18(2004.11), 517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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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김면, 「독일 인쇄술과 민중본」, 󰡔인문연구󰡕 59(2010), 268쪽. [본문으로]
  10. 유럽 중세 시대에 성서 필사본은 교회나 수도원 내에서 쇠사슬에 묶어둠으로써 이동할 수 없는 텍스트였다. J.O. 워드, 「󰡔장미의 이름󰡕의 도서관 vs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로이 매클라우드 외, 이종인 옮김, 󰡔에코의 서재.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시공사, 2004), 256~261쪽. [본문으로]
  11. ‘미디어적 존재론’은 미디어에 의해 추동된 사회적 구조와 상호 연결된 주체의 특성이 일종의 ‘존재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착안한 주장이다. 이것은 미디어적 구조에 의해 특정한 주체의 양식이 파생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디어 상황과 친화적인 주체의 양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12. 박재환, 「미셀 마페졸리의 부족주의란?」 (한국사회학회 기획국제세미나 2006.3) 참조. [본문으로]
  13. 황대현, 「16~17세기 유럽의 ‘교파화 과정’에 대한 연구사적 고찰―사회적 규율화의 첫 단계로서의 교파화 과정 패러다임에 대한 독일 사학계의 논의를 중심으로」_, 󰡔역사교육󰡕 제100집 (2006 겨울) 참조. [본문으로]
  14. 역사학자 김기봉은 이것을 ‘기원의 망상’이라고 말한다. 김기봉,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푸른역사, 2000), 173~174쪽. [본문으로]
  15. 나의 글 「한국 개신교, 자리찾기와 자리잡기」, 󰡔한국종교를 컨설팅하다󰡕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010)은 이러한 제한적 자료들을 찾아냄으로써 전쟁 당시 대중의 고통에 관한 상상을 펴야 했다. [본문으로]
  16. 차경애, 「러일전쟁 당시의 전쟁견문록을 통해서 본 전쟁지역 민중의 삶」, 󰡔중국근현대사연구󰡕 제48집 (2010 겨울). [본문으로]
  17. 이재근, 「매코믹 선교사와 한국 장로교회―기원과 영향」,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식󰡕 95(2011.7), 9쪽. [본문으로]
  18. 류대영, 「한말 미국의 대한 정책과 선교사업」, 󰡔한국기독교와 역사󰡕 9(1998.9), 198쪽. 한편 The Journal of American History 77(Jun 1990)의 특집주제인 Explaining the History of American Foreign Relations 아래 미국 외교사 연구에 관한 일종의 문화사적 시도가 새롭게 모색되었는데, 이후 기독교와 미국의 국제정치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그 중에는 미국 대외정책에서 해외선교의 역할에 관한 주제도 다루어졌다. 이런 논의들에 따르면, 당시 미국의 국제정치적 정책 형성에서 선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선교사 가운데는 미국의 특사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또한 여러 선교사들로부터 보내진 피선교지의 정보는 그 지역에 대한 미국 시민사회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이는 여론으로 번안되어 정치인들에 의해 정책화되었다. 그런 점에서 피선교지인 조선의 교회는 조선의 미국 외교공관이나 다름없었다. [본문으로]
  19. 안종철, 「종교와 국가의례 사이―1920~30년대 일본 신도를 둘러싼 조선 내 갈등과 서구인들의 인식」, 󰡔한국학연구󰡕 22 (2010.6). [본문으로]
  20. 북감리교 선교회 감독 해리스의 총회 보고서(1908)에는 당시 교회의 대중이 상황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묘사가 들어 있다. “술주정꾼, 도박꾼, 도적놈, 오입쟁이, 살인, 도박, 광신적 유학자들, 구태의연한 불교 신도들, 수 천 명의 잡신을 섬기던 사람들...”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 (생명의 말씀사, 2008), 462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21. 이재근, 앞의 글. [본문으로]
  22. 맥루한 󰡔구텐베르크 은하계󰡕, 474. [본문으로]
  23. 이기우 임명진 옮김, (문예출판사, 1995), 11~12쪽. [본문으로]
  24. 닐 포스트만, 󰡔죽도록 즐기기󰡕 참조. [본문으로]
  25. Paul Levinson, “The Long Story about the Short Medium”, 󰡔언론정보연구󰡕 48/1(2011.2), 11쪽 이하. [본문으로]
  26. 이동후, 「제3구술성―‘뉴 뉴미디어’ 시대 말의 현존 및 이용 양식」, 󰡔언론정보연구󰡕 47/1(2010), 56쪽. [본문으로]
  27. 제이 데이비드 볼터 & 리처드 그루신, 이재현 옮김,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제1장 참조. [본문으로]
  28. 나의 글 「작은 자들의 반란 ‘작은 종교’의 탄생」, 󰡔한겨레21󰡕 880 (2011.10.10)과 「그리하여 도래한 신들의 사회」, 󰡔한겨레21󰡕 884 (2011.11.07)은 한국교회의 대안적 행위들을 각각 ‘작은 교회’와 ‘신앙의 타자성’으로 해석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