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현대사상] 7(1998 겨울)에 실린 글이고, 나의 책 [반신학의 미소]에 재수록된 것입니다.
자유를 향한 제도적 실천의 역사 - IMF 시대에.pdf
자유를 향한 제도적 실천의 역사
IMF 시대에 읽는 성서의 정치경제적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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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텍스트를 읽을 때, 우리는 언제나 두 발화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하나는 텍스트 내면의 발화자요, 다른 하나는 외면의 발화자다. 텍스트의 내면에는 예수님, 예언자, 혹은 설화자 등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반면 외면에서는 ‘지금 여기’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울려 퍼진 소리가 있다. 물론 실제의 독서에서 이 두 소리는 동등하기보다는 한 편이 다른 편보다 더욱 강렬하게 울려 퍼지기 마련이다. 전자의 소리가 의미 구성에 더욱 강하게 작용하는 경우를 역사학적 독서라고 한다면, 후자가 보다 강렬하게 소리를 발하는 경우를 실존적 독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둘 가운데 하나의 소리만 존재하는 경우는 없다. 이 둘이 만나서 조화됨으로써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소리가 만나 어우러지는 무대가 바로 텍스트다. 즉 이해의 문제는 텍스트 해석의 문제며, 그 해석의 적실성適實性은 텍스트 내면과 외면의 소리가 각기 동시대의 시공간에 얼마나 잘 연관되어 있으며, 텍스트 안에서 얼마나 잘 대화를 실현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오늘 우리는 이른바 ‘IMF 관리체제’라는 깊은 늪을 헤쳐왔다. 그것은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남한의 경제적 메커니즘이 지구적인 급속한 환경변화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 결과다. 1 전 지구적인 환경변화란, 1994년 출범한 UR 협정과 WTO의 설립에서 그 직접적인 계기를 갖지만, 이러한 국제적 제도화의 배후에는 20세기 후반 지구적 경제라는, 세계적 규모로 전개되고 있는 전대미문의 자본주의적 축적 메커니즘의 재구조화가 자리잡고 있다. 요컨대 종전에는 자본의 가치증식 과정이 국민국가적 경계를 통해 완성되었으나, 최근의 지구적 경제는 그 경계를 벗어나 지구적 수준에서 자본의 가치증식을 실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생산과 유통 메커니즘의 급속한 변화에 비해, 지구적 수준의 조절체계는 대단히 취약한 형편이다. 사실,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극도의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핫머니’의 횡포를 제약할 만한 어떠한 국제적 조절기구도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향후에도 그것이 가능할지에 대해 막연한 상태다. 아무튼 조절체계 없는 지구적 경제의 활성화는, 고삐풀린 야생말처럼, 세계 곳곳을 누비며 각 국민국가들 내부의 민주주의적 성과들을 파괴하고 있으며, 특히 위기에 대한 국민국가 수준의 사회적 안전망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제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국가 제도적 보호막’ 없이 개체화된 인간으로서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노출되어 가고 있다. 2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자유’라는 인간 해방의 이상을 무한경쟁의 경제적 논리 속에 인간을 노출시키는 자유로 해석하면서 3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다. 결국 지구적 가치증식 메커니즘에 적응하는 데 취약한 경제적 약자들에게 지옥의 선물을 선사하는 신국제질서가 확립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제적 분업 질서에서 주변화된 지역의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지구적 자본의 무차별 포격의 주요 희생자가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남한 대중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곧 아시아 대중의 위기이기도 하며, 지구적 자본의 공습에 취약한 전세계 대중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성서 텍스트 외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소리의 발화자는 지구적 자본의 횡포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남한과 아시아와 전 세계의 개체화된 대중이다. 이제까지 미약하나마 일정한 효력을 미쳐왔던 국가의 보호막이 대대적으로 걷힌 상황에서 가공할 지구적 자본 앞에 홀로 서게 된 주변적 개인들이 고난 속에서 하소연하는 절규의 소리다. 이 절규 소리 배후에는 개체화된 대중의 무한경쟁을 보장하라고 소리치는 ‘신자유주의적 자유’론자들의 위세찬 호령 소리가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인간 상호간의 호혜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고난 담지자들의 갈망의 소리가 성서 텍스트를 읽는 우리 앞에 울린다. 국가적이고 지구적 수준의 자유의 제도화를 추구하는 대중의 염원을 메아리로 남기면서.
그렇다면 성서 텍스트 내면의 소리는 어떠한가? 만약 현재의 정치경제적 위기에 대한 대중의 염원을 담고 있는 텍스트 외면의 소리에 부응하는 내면의 소리가 있다면 성서 텍스트는 오늘 우리에게 적실성 있는 메시지를 발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유념하면서, 성서 내면의 소리를 경청하고자 한다. 즉 성서의 정치경제적 실천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정치경제란, 인간의 경제적 행위가 정치제도와의 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정치제도를 물리적 차원에 한정해서 보기보다는 광의로 해석한다. 즉 정치기구라는 관점에서만 정치제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효과를 지니는 담론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서의 정치경제적 실천을 묻는다는 것은 성서 텍스트 속에 함축되어 있는 정치경제적 제도화를, 물리적 제도화뿐 아니라 담론 수준의 제도화의 관점에서 조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조망을 다음과 같이 구체화할 것이다. 즉 ‘정치경제적 제도의 압박⇒그러한 압박으로부터의 자유를 향한 대중의 갈망⇒그 갈망의 제도화⇒제도의 억압기재화' 등으로 이어지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순환 과정 속에서, 정치경제적 제도의 압박으로부터의 자유를 갈구했던 성서 속의 야훼의 백성들의 신앙 형성사를 묻고자 한다. 특히 여기서는 국가 이전기 이스라엘 사회 형성기(판관시대)를 반영하는 성서 텍스트를 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시기는 야훼신앙의 뿌리가 형성되던 시기이기 때문에, 성서의 정치경제적 실천의 원류를 살펴보고자 할 때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이런 실천 이념의 원류를 유념하면서 왕국시대와 식민지 시대, 그리고 신약시대에 이르는 후속의 야훼신앙 전승사`를, 시대별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간략히 언급할 것이다. 이것은 성서 자체에서의 원 야훼신앙의 해석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오늘 우리의 맥락에서 야훼신앙을 재해석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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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월드N.K. Gottwald의 기념비적인 저술 《야훼의 지파들》(1979)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기원은 후기청동기 시대(ca. 1550~1200 BCE) 가나안의 정치경제적인 위기와 관련이 있다. 여기에는 위기에 대한 행위자들의 대응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의 형성을 추적할 수 있다는 관점이 함축되어 있다. 4 당시는, 권력집단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이것은 대중사회의 분배구조를 크게 왜곡시켰다. 또한 이로 인한 대중의 몰락을 억제하는 데 있어 지배세력과 지배적 제도들은 철저히 무능력했다. 요컨대 위기에 대한 지배세력의 대응은 제도의 억압기재적 성격을 강화하는 경향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때 지배세력과 지배적 제도의 착취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으려는 무수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권력의 통제망이 미치지 못하는 동부 산악지대로 이주하게 된다. 자유에 대한 갈망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여기서 대중의 대안적 제도화의 노정이 시작된다.
한편 이 시기에 고지대의 계단식 농법을 가능하게 했던 기술적 진전이 이룩된다. 이 사실은 구조가 행위자의 선택을 제약하는 두 요소를 동시에 함축한다. 즉 그것은 산악지대 거주민의 폭증으로 기술적 발전이 강제된 결과(인구학적 요인)인 동시에, 생존을 위한 기술의 향상으로 인해 동부 산악지대에 집성촌의 형성이 촉진된 결과이기도 했다(기술결정론적 요인). 그리하여 점차 이주민들 간의 연결망이 형성되는데, 특히 종교․신화․혈연 등의 상징적 연결망이 발달함으로써 점차 이들은 종교적이고 종족적인 정체성을 갖춘 집단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리하여 자유에 대한 대중의 갈망은 대안적 제도화를 보다 완성적인 모습으로 실현하게 된다.
최근의 연구들은, 이러한 대안 사회적 정체성이 어떤 혁명적 이행에 의한 의도된 과정의 소산이라고 보았던 갓월드의 견해에 대해 비판적이다. 5 그보다는, 길고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종교적이고 종족적인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출현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지파동맹의 출현이 잘 기획된 프로그램의 단순한 소산이라고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종족공동체적 연결망은 어떤 포괄적인 지향을 공유하면서 형성되어 간다. 우리가 아는 한, 이들의 지향은 권력의 집중화 및 일상화에 대한 저항감, 그리고 분배적 호혜성에 대한 집념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형성이 ‘엘 신앙’ 연합에서 야훼신앙 연합의 성격을 보완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엘 신앙은 이스라엘 지파동맹 구성원들의 일상생활과 긴밀이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인근의 정치세력들에 포섭되어 있던 가나안의 일반 대중의 일상적 신앙과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엘 신앙은 가나안 지역의 오래된 신앙전통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가나안 농경사회에서 낯선 종교유형인 야훼신앙은 이스라엘 지파동맹의 대외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하는 데 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즉 외부의 정치세력과의 관계에서 야훼신앙이 이 종족공동체의 특화된 자의식을 고무시키는 기능을 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 이전기 이스라엘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야훼신앙을 들고자 한다. 6 요컨대 국가 이전기 이스라엘의 형성 과정이란, 다름 아니라, 야훼신앙이 지파동맹적 삶의 전 영역으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과정이, 위에서 말한 권력에 대한 저항과 분배적 호혜성에 대한 집념이 이스라엘의 물리적이고 담론적인 제도적 실천으로 체화되는 과정인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스라엘의 형성에서, 어떤 잘 짜인 기획이 부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에 걸친 지향성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박탈을 경험한 사람들이 존재했기에 이러한 지향의 사회가 형성되었다는 식의 안이한 설명으로는 이스라엘의 출현을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왜 박탈 체험이 해방적 지향의 사회를 형성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는지에 대해 그 매개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매개에 관한 논의는 사회적인 박탈 체험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특화된 지도력에 대한 논의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판관기에 나오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들 지도자들에게는 두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이들의 지도력은 한결같이 세습되지 않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은 자신이 속한 씨족/지파/지파동맹 전통의 수호자적 존재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판관들은 국가 형성 이전기 이스라엘 사회의 장기간에 걸친 지향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말했듯이, 이스라엘은 혁명 같은 집약적인 역사과정을 통해 단번에 출현했다기보다는 긴 형성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졌다. 이 사실은 카리스마적 지도력의 일회적 능력만으로 이스라엘의 형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끊임없이 재탄생하게 하는 어떤 담론적인 혹은 물리적인 제도화가 매개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담론적인 혹은 물리적인 제도화의 흔적을 네 가지로 나누어 논하고자 한다. 이것은 야훼신앙이 이스라엘 삶의 전영역으로 확대되어 가는 제도화의 내용에 관한 논의이기도 하다.
㈎ 야훼의 이미지
성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야훼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텍스트의 하나로, 판관기 5장 4~5절의, 이른바 ‘드보라의 노래’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야훼는 ‘시나이의 그분’(Lord Sinai [zœh Sinaj; 참조. 시편68,8~9; 신명33,2]) 7으로 묘사된다. 시나이는 가상의 산이다. 그런데 성서에 따르면 모세가 ‘법’을 받은 산이다. 그리고 이것은 에집트 제국에서 탈출해서 ‘약속된 땅’으로 가는 여정 중에 있던 이야기로 묘사된다. 즉 ‘시나이’는 국가의 권력 ‘외부’의 장소를 시사하며, 국가 권력에 상반되는 꿈과 열망이 응축된 공간, 즉 ‘탈국가로의 유토피아적 공간’을 가리킨다. 이것은 국가 이전기 이스라엘 사회가 인근의 준국가적인 정치세력인 성읍국가의 권력으로부터 탈출하였던 경험과 연결된다. 이들 정치세력은 중앙의 성채를 중심으로 대중의 자원을 독점하는 지정학적 공간 구성을 가진 억압적인 정치제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시나이 ‘산’처럼 이스라엘이 터잡은 곳도 바로 ‘산지’였다. 그런데 이 산의 신 야훼는 당신의 백성을 ‘적’으로부터 구원해 주신다. 즉 착취적 정치권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야훼는 그들의 계속되는 공격을 물리치시는 분인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에게서 야훼는 착취적인 권력으로부터 대중을 해방해 주시는 하느님이다. 이것은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에서 다시 반추된다. 즉 야훼는 어떤 형상으로도 모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상神像은 신의 상징을 약호화함으로써 가시적 실재로 전화시킨 것이다. 신상은 신의 의미가능성의 독점을 야기한다. 이렇게 신상을 독점함으로써 권력은 자신을 신격화한다.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이 신상을 거부하는 신앙을 발전시킨 이유다. 이 본문에 따르면 야훼는 형상으로 모사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으로부터의 구원’으로 모사될 뿐이다. 즉 신앙이 아니라 사건이 야훼신앙의 재현체계인 것이다. 물론 국가 이전기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러한 반신상적 이데올로기가 충분히 관철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잉여재화를 소유한 자는 종종 가문의 신상을 만들어 씨족 혹은 부족의 주도권을 장악하곤 했던 것이다(판관 8,27; 17~18장). 그럼에도 야훼신앙의 정신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자원의 독점적 전유를 추구하는 권력 집중화에 대한 견제력을 일정 정도 발휘했음이 분명하다. 가령 왕권제를 도입하라는 요구에 대한 사무엘의 부정적 반응(삼상 8장)에서 볼 수 있듯이, 동시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야훼의 이미지는 반권력적인 정치경제적 담론으로 제도화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이스라엘의 사회조직
갓월드는 이스라엘의 반권력적 지향을 그들의 사회조직을 통해 추론해내었다(평등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재부족화). 8 그런데 최근의 유력한 한 연구 9에 따르면 갓월드의 해석이 인간의 의도적인 행위를 지나치게 강조하였다고 보면서, 이러한 사회적 조직화는 장기간에 걸쳐 자연발생적으로(즉 탈이데올로기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사회적 조직화를 이데올로기적 기획에 따른 의도적 귀결이라고 보는 견해(Gottwald)도 문제가 있지만, 동시에 전적인 우연의 산물로 보는 것(Lemche)도 과도한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아날학파의 장기지속의 시간longue durée 개념에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는 지리적 특성에 의해 영향을 받아 이루어지며 이러한 지리적 특성 속에서 역사의 어떤 지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관점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 개념은 단순한 우연성만으로 역사를 해석는 없다는 시각을 포함한다. 즉, ‘장기지속의 시간’ 개념에는 인간의 의도성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간 행위자의 행동이 배제된 구조화 이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 형성기 이전의 이스라엘의 사회조직화가 이데올로기에 의한 단순한 귀결은 아니지만(그런 점에서 우연성이 강조될 수는 있다), 전혀 지향성이 배제된 우연의 산물 또한 아닌 것이다. 앞서 시사했듯이, 국가 형성 이전기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특성은 인근의 성읍국가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행동 패턴을 이스라엘이 지향하도록 자극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사회조직화와 인근 성읍국가들의 사회조직 유형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국가 이전기 이스라엘과 인근의 성읍국가들은 모두 가족이나 혈통조직, 나아가 지파조직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들 조직들은 가부장적인 지도력에 의해 인격적으로 통제된다. 그런데 성읍국가에는 이 조직들 상위에 군사력에 의존하는 정치적 지도자가 있다. 이때 이 지도자의 통제는, 인격적 성격을 결여한 채, 거의 전적으로 강제에 의존한다. 반면 동시대 이스라엘 사회조직의 상위에는 장로회의에 의해 가부장적인 인격적 지배를 실현하는 지파와, 지파들 간의 평등한 협의체적 조직인 느슨한 지파연합이 있다. 요컨대 지도자의 강제력에 의한 자원의 독점 욕망을 지양하려는 탈권력 지향이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사회적 조직화의 특성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조직화가 그 이상처럼 효과적으로 유지되지는 않았다. 초기 이스라엘 사회가 지속되던 약 2세기의 기간 동안 지파연합이 효과적으로 활동했던 때는 거의 없었고, 심지어 지파간, 혈족간, 가족간, 나아가 한 가족끼리의 갈등과 반목이 끊이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파연합은 외부의 침공이 되풀이될수록, 그리고 그 강도가 세어질수록 점차 강고한 공동운명체로 형성되어 갔고, 여기에 수호신인 야훼에 대한 신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지파연합이 점점 강한 연대를 구축해 가는 과정은 계급적 연합 성격의 이스라엘이 점차 종족집단으로 전화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 법률 제도
고대국가 사회에서 법은 거의 언제나 국가의 법이다. 그리고 법의 제정자로서 왕이나 귀족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파동맹의 법은 국가에서 이탈하여 형성되었으며, 국가로 이행하기 이전의 배경을 갖는다. 또한 법의 제정자가 하느님이다. 따라서 여타 군주제 사회나 귀족사회의 ‘국가법’ 개념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법정신은 탈국가적이며 동시에 초국가적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되었을까? 국가 이전기 이스라엘 사회에서 법은 성문법이 아니며, 법 심의 또는 중재 기구(성문 안에서의 장로재판부/궁중 서기관 학교) 같은 사법기관도, 법의 보증자인 권력자도 없었다. 국가 이전기 이스라엘의 법은 규범의 자명성에 호소하는 관습법이었다. 10 대개의 경우는 가문이나 혈통, 혹은 지파, 지파연합의 어른에 의해 법적 분쟁이 조정되었으나, 장로나 족장이 직접 개입할 수 없는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 측의 첫 번째 대응은 언제나 지원세력을 조직하는 일이었다(창세31,23; 창세34,5~7; 판관18,22; 판관19,30). 그리고 나서 지원세력을 배경삼아 협상을 한다. 이렇게 관습에 의존하거나 혹은 일시적으로 조직된 배후집단의 힘에 의존하여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끊임없는 협상을 통해 이해를 조정하는 분권적 사회를 함의한다. 11
한편, 룻의 이야기나 다말의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는 형사취수혼법은 이스라엘 내부에서 몰락을 방지하려는 고대적인 사회적 안전망의 존재를 시사한다. 또 안식년이나 희년에 관련된 법도 몰락한 구성원을 복원시키려는 사회적 안전장치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법률적 규범들이 얼마나 실제적이었는지와는 관계없이 법률적 제도 속에 반영되어 있는 이러한 복지적 관심은 위기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방식이 어떠했는지를 말해 준다. 즉 법률 제도 속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위기에 대해 억압의 제도화를 모색하기보다는 무너져가는 정의와 평등의 복원을 바람직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모세의 이미지
성서에 의하면 모세는 파라오와의 협상가, 기적행위자, 군사지도자, 야훼와 이스라엘 간의 계약 중개자, 입법자, 병참전문가, 재판관, 예언자 등, 온갖 종류의 지도자적 이미지를 다 갖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지파동맹의 지도력의 다양한 기능을 신화적인 영웅 모세에게 투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모세의 복합적인 권위 유형에서 유독 ‘왕’의 특성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스라엘의 여타 대표적 인물은 그 후손과 공속관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반면, 모세만은 예외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의 후손에 관한 언급이 있기는 하다(출애2,22; 4,20; 18,2~6).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그들은 유력한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 요컨대 모세는 이스라엘 지파동맹에서 어느 특정 집단이 부상하게 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12 이것은, 지파동맹의 담론에 등장하는 ‘모세’의 탁월한 역할에 비추어 본다면, 이스라엘의 탈권력적인 지향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지파동맹의 형성 신화는 그 신화의 중심적 존재를 실재하는 어떤 세력과 동일화할 수 없도록 원천봉쇄하고 있다. 이것은 권력의 독점을 견제하는 신화적 장치이며, 따라서 이스라엘 형성 신화는 동맹 내부의 타인의 자산을 착취할 권리를 누구에게도 부여하지 않으려는 상징적 제도화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권력에 대한 공공연한 저항의 에토스가 국가 이전기 이스라엘 사회의 특성을 이루고 있고, 또 이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지배적 원리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지파동맹은 현실에선 여전히 불평등화의 위기에 대해 충분한 억제력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특히 ‘성’이나 ‘세대’, 종족 등, 여전히 ‘배제’의 요소가 이 사회의 탈권력적 특성의 한계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스라엘 사회를 지탱하는 물리적 혹은 담론적인 제도적 요소들은 이 공동체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여타 (준)국가 사회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인, 여성이 지도자로 활동한다거나(드보라, 미리암 등), 입다나 다윗 같이 하층민 출신이 엘리트로 충원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훨씬 많았다는 사실은 그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것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줄곧 해방적인 신탁이 메아리칠 수 있는 사상적․신앙적 원류로서 기능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야훼신앙의 핵은 반권력의 평등주의 에토스’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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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이전기 이스라엘의 사회경제적 실천 속에서 물리적으로 혹은 담론적으로 제도화된 야훼신앙의 이러한 원류가 이후 시대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지배적 제도화 속에서는 대체로 변질되었다. 예외가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변형된 형태로 계속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변질된 양상과 살아남은 양식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 속에는 어떠한 제도적 실천들이 함축되어 있을까? 아래에서는 이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⑴ 군주제 시대의 야훼신앙
블레셋 동맹의 등장으로 과거와는 비견할 수 없는 심각한 위협 아래 놓인 이스라엘 지파동맹은 대대적인 방어연합을 결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권력의 과도한 집중을 초래했다. 이미 기드온 이래 권력 집중의 문제는 심각해진 상태였고, 이에 따라 빈부격차의 심화를 억제하던 전통적인 사회적 안전망이 상당히 와해되어 가던 차였다. 그런데 블레셋으로 인해 야기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이스라엘은 더욱 강력한 권력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공동체적 결속력을 약화시켰고, 결국 이스라엘 내부의 불균등한 특권을 가진 세력 간의 갈등을 초래했다. 기득권 집단 중심의 사울 연합과 소외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다윗 연합의 갈등 13은 지파동맹 사회가 국가 유형의 사회로 이행하는 직접적인 계기였다. 전자가 지파동맹의 정치경제적 윤리의 수호자를 자임하고 있었다면, 후자는 전투력이 탁월한 무규범적 기능주의자 집단이었다. 여기서 다윗 연합의 승리는 이스라엘을 군주제 사회로 전화시키는 최적의 결과였다. 나아가 이들의 강력한 전투력은 신속하게 가나안 전 지역을 군주제 사회로 복속시키게 된다.
이후 군주제 이스라엘의 역사는 국가 형성 이전기 이스라엘의 지향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이제 이스라엘의 물리적 혹은 담론적 제도들은 대중수탈의 도구로 재구성된다(대중의 자유를 위한 도구가 아닌). ‘야훼의 지파들’은 통치자를 위한 조세 징수 혹은 부역의 지리적/종족적 단위로 해석되며, 야훼의 성소에서 드리는 제의는 통치자에 의한 체제의 통합을 기리는 기념식이 되었다. 또한 페니키아 등 인근 국가들에서 수많은 상징들이 도입되어 야훼신앙에 결합됨으로써, 왕조 이데올로기로서의 야훼신학이 등장한다. 14
그런데 성서는 바로 이 시기에 이러한 지배적 제도화의 추세에 대항하여 야훼의 자유의 이념을 추구했던 여러 실천들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것은 크게 두 유형의 제도적 실천으로 대별할 수 있다. 하나는 물리적 차원의 제도적 실천으로, 착취적인 군주제적 제도들에 대한 대안 체제를 구축하려 했던 경우다. 가령, 아히야 예언자와 여로보암, 엘리사 예언자, 그리고 히즈키야-요시아 개혁 세력 15 등은 바로 그런 예에 속한다. 특히 요시아 개혁은, 남왕국 유다의 역사에서 유실되어 버린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평등주의적 제도들을 부분적으로 복원하고자 했다. 가령 복지비용을 위한 세제개혁의 성격을 지닌 십일조 제도나, 탈노동화한 대중을 재노동화하기 위한 면제년 제도 등은 요시아 시대에 실행된 국가복지적 제도화의 흔적이다. 16 한편, 담론적 차원의 제도적 실천의 경우를 다른 하나의 유형으로 들 수 있다. 이것은 왕조 이데올로기화한 야훼신학의 내적 균열을 폭로하는 비판담론을 유포한 예언자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데, 아모스, 호세야, 이사야, 미가 등 8세기 예언자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성서 예언자들, 그리고 군주제 시대의 신명기학파 등에게서 발견된다. 이 두 유형 가운데 전자는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의 실천 양식으로서, 지배세력을 대체하기도 했고, 최소한 권력의 억압적 통제방식을 지양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실천들은, ‘혁명의 시대’가 지나면 곧 다시 개혁적 제도화 자체가 억압적 기재로 돌변하는 역사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반면 두 번째 유형의 실천은 제도에 대한 직접적인 변혁을 이룩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무력했지만, 긴 시간에 걸쳐 유통되는 비판의 전통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비판의 전통은 식민지 시대에 해방지향적인 묵시 운동들(제2, 제3 이사야 등)로 이어졌고, 세례자 요한 그리고 예수에게서 다시 찬란한 해방의 힘으로 부활한다.
⑵ 식민지 시대 재건공동체의 야훼신앙
페르시아 치하에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종족적․종교적 공동체의 재건이 시작되었다. 구왕조 세력이 중심이 되는 재건 구상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결과는 사제귀족 중심의 과두지배체제로 귀착되었다. 이러한 체제는 페르시아 제국과 헬레니즘 제국들의 시대에 걸쳐 존속한다. 17 그런데 팔레스틴에서 이러한 체제는 지극히 불안정했다. 제국이 안정된 식민통치 방식을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식민지 내부의 다원적 지배분파들의 무한경쟁이 촉진되었고, 이는 경쟁비용의 과다지출 구조를 야기했다. 여기에는 제국으로 이전되는 적지 않은 양의 공납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결국 재건되는 종족 공동체는 군주 시대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혹독한 수탈적 사회로 귀결하였다. 18
식민지 시대 제도화의 이러한 혹독한 억압적 특성만큼 대중의 자유를 향한 열망 또한 간절했다. 이것은 역사로부터의 탈출을 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묵시적 담론이 이 시대에 폭증하였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시사된다. 이와 같이 대중을 위협하고 있는 심각한 분배의 위기는 사회적 통합의 위기를 초래했고, 이에 지배계급이 ‘위로부터의 개혁’을 단행하도록 하기도 한다. 느헤미야의 개혁과 하스몬 왕국의 알렉산드라 여왕의 개혁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느헤미야는 몰락하던 농민층을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부채탕감를 시행한다. 반면 알렉산드라 여왕은 당시 급부상하고 있던 소자산가 계층의 강력한 여론 형성 능력에 힘입어 개혁조치를 시행한다. 이 두 개혁은 모두 귀족의 권력 집중화를 견제하는 동시에, 대중사회에 대한 호혜적 제도화를 국가가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것은 국가 이전기 이스라엘의 야훼신앙의 원류를 국가체제 내에서 제도화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요시아 개혁과 동류에 속하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이 시대에는 담론적 차원의 제도화 경향도 엿볼 수 있는데, 제2, 제3 이사야, 제2 즈가리야 등으로 대표되는 식민지 전기의 예언자 운동들은 묵시적 담론을 비판담론으로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묵시적 비판담론). 이후 헬레니즘 시대와 하스몬 왕조 시대의 하시딤, 바리사이운동 등은 묵시적 담론을 일상적 지식(지혜적 담론)과 결합함으로써 19 묵시적 비판담론을 규범적 담론으로 재해석하는 데 성공한다. 단 하시딤이나 바리사이가 소자산가적 지식생산자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규범성은 사회의 절대다수를 구성하는 기층대중의 정치경제적 현실을 왜곡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적 차원의 제도화 실천들은 대중을 자각시키는 계몽적 가치를 발휘하였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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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신앙은 권력에 대항하는 호혜적인 에토스를 그 핵심으로 한다. 이것은 정치경제적 제도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를 향한 대중의 갈망과, 그것을 제도화하려는 실천과 관련되어 있다. 제도화라는 말은 현실화를 내포하는 개념이다. 즉 그것은 역사 속에서 원류적 에토스를 적실성 있게 실현하려는 실천을 함축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도화는 성찰적이다. 요컨대 제도화는 원류의 반복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 원류를 자기비판하면서 갱신하게 하는 동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성서에 반영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물리적 기구를 구축함으로써 자유의 제도화를 실현하려 했던 시도들이 언제나 역사의 한계를 체험해야 했음을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담론적 실천은 역사의 한계를 뛰어 넘는 제도화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담론적 실천 역시 시대의 인식론적 한계 혹은 주체의 인식론적 한계 아래 묶여 있다. 가령, 국가 이전기 이스라엘이 성이나 세대, 혹은 종족적인 배제주의를 철저하게 극복하지 못한 것이나, 하스몬 왕국 시대의 바리사이가 탈권력적인 대중적 규범을 실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간계층 지향의 자신들의 계급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 바로 이러한 경우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예수의 존재 의의를 생각하게 된다. 육화된 신이라는 예수의 존재성은 신의 자기해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야훼의 신상 거부의 에토스를 철저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예수의 ‘하느님나라’ 실천은 자유의 제도화를 실현하면서도 그것을 끊임없이 미래로 유보하고 있는 성서의 유토피즘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운동은 야훼신앙을 승계한다는 차원에서 진정성을 갖는다. 즉 자유를 향한 정치경제적 실천의 성찰적 제도화는 예수의 존재성에서 그 동력을 부여받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IMF 관리 체제를 맞고 있는 우리는 성서를 읽으면서 ‘지금 여기’의 대중의 자유를 향한 갈망의 목소리를 듣게 되며, 그 갈망을 제도화하라는 부름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탈권력과 호혜적 평등성의 에토스를 실천하라는 ... □
- 정운찬, 〈한국경제, 거품의 붕괴와 제도개혁〉, 《창작과 비평》 99 (1998 봄), 71. [본문으로]
- 홍윤기, 〈1990년대에 대한 역사철학적 성찰〉, 《현대사상》 5 (1998 여름), 72. [본문으로]
- 그리하여 결국 이 자유는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이 인간 개인을 매개로 자유롭게 운동하는 자유가 된다. [본문으로]
- 한편 최근, 이스라엘의 출현을 인구의 팽창에 따른 기술사회학적 발전과 관련시키려는 신멜더스주의적 시각이, 고고학이나 사회생태학과의 학제간 연구에 힘입어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제기되었다. 이것은 사회적 구조가 행위자를 제약하는 차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최근의 신멜더스주의적 연구들은 갓월드의 논의에 대한 비판에 더욱 초점이 있음에도, 오히려 그를 보완하고 있다. [본문으로]
- F.R. Brandfon, "Norman Gottwald on the Tribes of Yahweh", JSOT 21 (1981); G.E. Mendelhall, "Ancient Israel's Hyphenated History", in D.N. Freedman and D.F. Graf, eds., Palestine in Transition. The Emergence of Ancient Israel (Sheffield: Almond Press, 1983); N.P. Lemche, Early Israel. SVT 37 (Leiden: Brill, 1985); F.S. Frick, The Formation of the State in Ancient Israel. A Servey of Models and Theories (Sheffield: Almond Press, 1985); K.W Whitelam, "Recreating the History of Israel", JSOT 35 (1986); M.L. Chaney, "Systemic Study of the Israelite Monarchy", Semeia 37 (1986); J.M. MIller & L.H. Hayes, A History of Israel and Judah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86); R.B. Coote & K.W. Whitelam, The Emergence of Early Israel in Historical Perspective (Sheffield: Almond Press, 1987) 등. [본문으로]
- 이러한 견해는 Mendenhall과 Gottwald에게서 가장 명시적으로 발견된다. 반면 구조의 구속적 속성을 강조하는 Lemche나 Coote & Whitelam, Frick 등은 이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본문으로]
- 이 본문에 대한 이러한 번역에 대하여는 Frank Crüsemann, 김상기 옮김, 《토라. 구약성서 법전의 신학과 사회사》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5), 76~78쪽 참조. [본문으로]
- Gottwald, 앞의 책, 특히 part vi & vii. [본문으로]
- N.P. Lemche, 위의 책 참조. [본문으로]
- “그와 같은 수치스러운 행위”(판관 19,23~24); “이스라엘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창세34,7; 삼하 13,12). [본문으로]
- Frank Crüsemann, 앞의 책, 148~55. [본문으로]
- Gottwald, 김상기 옮김, 《히브리성서1. 사회․문학적 연구》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7), 240~41. [본문으로]
- W. Brueggemann, First and Second Samuel (Louisville: John Knox Press, 1990), 특히 81. [본문으로]
- 왕조시대 이후 혼합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이국적 상징들을 야훼신학과 결탁시킨 것과 관련된다. [본문으로]
- 최근의 연구들은 요시아 개혁세력은 단일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여기에는 히즈키야 개혁의 주역이던 정부 엘리트들의 후손들이 한 부류를 형성하고 있고, 반아달리야 쿠데타 이후 남왕국 유다의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등장하였던 ‘암하아레츠’도 요시아 개혁의 또 하나의 중심 세력이었다. 여기서 암하아레츠의 사회학적 실체에 대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농민대중을 개략적으로 가리킨다고 본다. Oppenheimer, A. 1977, The 'Am Ha-Aretz: A Study in the Social History of the Jewish People in the Hellenistic-Roman Period (Leiden: E.J. Brill). [본문으로]
- 이 책에 수록된 나의 글, 〈斷과 公의 변증법. IMF 관리체제하에서 민중신학적 실천 담론의 모색〉, 《시대와 민중신학》 5 (1995) 참조. [본문으로]
- 한편 그 이후 하스몬 왕국과 그 이후의 로마제국 시대는 군주제로 회귀하게 되는데, 이때의 군주제는 과두체제 상위에 덧입혀진 형태의 독특한 군주제 사회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 김진호, 〈예수운동의 배경사를 보는 한 시각. 민중 메시아론의 관점에서 본 민중 형성론적 접근(방법론을 중심으로)〉, 《민중신학》 창간호 (1995), 94~114. [본문으로]
- 전형적인 묵시적 담론은 일상성으로부터 벗어난 지식이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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