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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기 사람이 있다”

[한겨레신문] 칼럼 '야!한국사회'(2013.1.17)에 실린 원고.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99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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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이 있다




용산 참사 4주기가 되었다. 그 사이 서울 시장이 바뀌었고 경찰청장도 바뀌었다. 이제 정부도 한 달 남짓 남았다. 그런데 그 4년 동안 바뀐 것이 또 있을까? 강제철거가 좀 줄어든 듯하고, 정부와 지자체를 빚더미에 앉힌 도심 재개발 정책들은 대부분 철회된 듯하다. 한편 남일당 사건 가담자라 하여 구속되었던 철거민들은 아직 수감 중이고, 강제 철거되어 빈민의 처지로 전락해버린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방치도 여전하다. 또 몰락 위기에 놓인 중산층에 대해서도 정부나 지자체는 대책은커녕 사과도 없다.

도심 재개발정책은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거대한 범주로 엮는 공간의 상품화라고 할 수 있다. 원재료가 상품이 되기까지 수십, 수백 배의 이윤이 창출되듯이 공간을 상품화하는 것도 막대한 이윤을 남긴다. 한데 먹거리 하나, 옷 한 벌, 집 한 채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지역을 상품으로 하는 일은 그 규모가 상상을 불허한다. 그러니 국가나 지자체로서 유혹을 느낄만하다. 또 많은 시민들이 그런 정책에 호감을 가질 만하다.

한데 그 사업이 성공했을 때도 그것으로 인해 더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되는 이들이 존재한다. 더구나 제로섬 혹은 마이너스사업이 될 수도 있고, 그 경우 피해는 엄청날 수 있다. 그러니 그 실패에 대한 대책은 철저해야 한다.

한데 우리의 지차체와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미친 듯이 재개발정책에 탐닉했다. 피해는 실패한 개인에게 떠넘기고 성공만을 향유하는 자기중심적 욕구의 중심부에 이 정책이 있었다. 용산 참사는 그 임계점에서 발생한 결정적 재앙이다. 그 사건을 하나의 상징적 기점으로 하여 도심 재개발정책의 재앙들이 도처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났다.

사람들의 자기중심적 욕구를 분별없이 인플레이션시킨 정책, 그것이 초래한 위기는 단지 경제적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배려 없는 사회를 만들어냈고, 성찰조차도 자기에게 집중하게 했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문화는 이웃에 대한 감수성이 결여된 자기치유의 욕망을 반영한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이제 지난 정부가 저지른 과오들은 새 정부에게 떠넘겨졌다. 공약만 보면 과장할 수는 없어도 어떤 변화의 조짐이 있다. 한데 인수위원회 활동이 시작된 지 며칠 안 됐는데 벌써 복지 공약들 상당수를 크게 후퇴시키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돈다. 또 소박하나마 경제민주화 추진 의지도 다분히 의심스럽다. 개발주의는 새 정부에서도 여전히 꺾이지 않는 중심 기조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용산 참사 4주기 이후도 전향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17, 목요일은 용산 참사를 기리는 기독교 단체들이 주관하는 행사들이 있다. 그 마지막에 몇몇 작가들이 기획하고 시민들이 함께 하는 퍼포먼스가 계획되어 있단다.

사람들이 거울을 보면서, 거기에 비춘 자기 얼굴을 응시하며 독백을 한다. 각자 스스로 준비한 성찰의 이야기들이다. 누구는 구호를 외치고 누구는 자기의 무관심을 자성한다. 한데 응얼거리든 큰 소리를 지르든 사람들은 잘 듣지 못한다. 또 말하는 이들도 거울을 향해 말할 뿐이다. 그 성찰에 이웃이 없다. 아마도 이 작가들은 이웃 없는 성찰, 그 힐링 문화에 쓴 소리를 던지는 것 같다.

그러다 사람들이 하나씩 바닥에 거울을 놓는다. 그제야 비로소 거울들은 세상을 비춘다. 그때 사람들이 외친다. “여기 사람이 있다.”

용산 참사 4주기를 우리는 새 정부에 대한 별 기대 없이 맞이하게 될 것 같다. 이때 작가들은 우리의 성찰에서 이웃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라고 권하는 듯하다. 4주기에 우리가 주목할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