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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나누기(설교)

밤의 발견, 세계화에 맞서다

한백교회 2010.04.11 하늘뜻나누기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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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발견, 세계화에 맞서다



 

주님의 말씀 묵상하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시편 119장 148절

 

방 하나에 다섯 식구가 모여 잠을 잡니다. 별로 없는 일이지만 소변이 급하면 난감한 일입니다. 캄캄한 밤에 현관 밖으로 나가 대문 오른편 좁은 길을 따라 창고 옆에 붙은 변소로 가는 건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닙니다. 해서 그 반대편 안뜰 수돗가로 가서 실례를 하곤 했지요. 세 가구가 옹기종기 바짝 붙어 마주보는 한 가운데 있는 수돗가에서 소리 없이 일을 보는 것도 굉장한 기술이 필요했지요.

근데 어려움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어른이 대자로 누워 양팔을 벌리면 이 끝에서 저 끝이 닫는 비좁은 방에 다섯이 칼잠을 자고 있으니, 잠시 나갔다 돌아오면 누울 자리는 이미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루로 나가 오돌돌 떨며 잠을 자야했거든요. 아니 거기까지 걱정할 것도 아닙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면 누군가를 밟지 않고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틈도 거의 없는데다 캄캄했기에 발 딛을 곳을 찾아내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지요.

어린 시절의 얘깁니다. 문뜩 그런 곳에서 밤은 잠자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까 궁금해집니다. 통행금지 시간에 대문밖을 나가서는 안 되었고, 마당은 여러 가구가 살고 있는 공간 한 가운데라 작은 소음도 조심스러웠지요. 방에 앉아 책을 읽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전깃불을 켜면 나머지 네섯 식구가 잠을 설쳐야 합니다. 물론 앉아 있을 틈도 없었구요.

원고를 쓰면서 숱한 밤을 지새우는 내가 얼마나 호사스러움을 누리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예전엔 상상도 못한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일인데, 글을 쓰자면 더 큰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내 주위에는 책과 프린트물이 켭켭 쌓여 포위하고 있습니다. 또 그 바깥 주위에는 책장들이 둘러싸고 있고요. 하나의 책이 아니라 많은 문서들로 둘러쌓여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컴퓨터와 외장하드 속에 들어있는 문서들 십여 개가 모니터에 창으로 떠 있고, 수도 없이 인터넷 속의 정보들을 찾아가며 글을 읽어냅니다. 디지털 가상공간까지도 차지하고서야 글쓰기는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더 옛날, 아주 먼 예날, 아마도 기원전 3세기경 예루살렘의 지식인들은 어땠을까요? 시편 139편은 가장 긴 장편시인데, 읽어 내려가다 문뜩, 밤새도록 주님의 말씀을 읽고 있다는 이 시의 주인공에 관한 상상에 빠집니다.

176절의 거의 모든 구절에서 그가 읽고 있는 책의 정체에 대한 묘사들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 ‘주의 법’ ‘주의 계명’ ‘주의 교훈’ ‘주의 규례’ ‘주의 율례’ 등등.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토라’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율법, 규례 등으로 불릴 만한 책은 바로 토라였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 이후, 그러니까 페르시아 치하이던 기원전 5세기 중반 이후 유다 지역이 사실상의 정치적 자치구로 인정받게 된 뒤 더디지만 다시 문헌들이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말기에 오면 다소 활발하게 문헌 편찬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지요. 토라나 신명기적 역사서, 그리고 예언집 등, 현재의 제1성서의 주요부분이 그때 이미 어느 정도 편찬이 완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서기관들이 양성되었고, 성전에 들어온 일반 기부금과 귀족들의 특별 기부금이, 아마도 거액의 금액이 이들 책들의 편찬을 쓰이게 됩니다.

한편 페르시아 이후 마케도니아 제국,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제국 치하가 되면서 보다 원거리에 있는 나라들과의 외교관계와 무역이 활발해졌고, 이는 서기관의 역할이 현저히 확장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서기관은 왕궁과 성전만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됩니다. 하여 서기관의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고, 그만한 능력을 갖춘 이들을 공급하는 교육인프라가 상당히 잘 구축되게 됩니다.

문서들이 왕실이나 정부관서 만이 아닌, 다양한 곳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던 시기, 그것이 가능하게 된 시기에 세상은 그것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게 되었을까요. 말했듯이, 글을 읽고 쓰는 전문가집단이 많아졌고, 그들이 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활약을 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요. 가령, 재판시 기록관 외에도, 변호사, 편지대필자, 각종 학교의 교사, 점술가로서 일하는 서기관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기관 중 고급지식인, 즉 대중과 멀지 않지만 고급지식을 활용할 능력의 사람,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면 바로 ‘학자’가 바로 이 시기에 등장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문서가 대중문화와 접하면서 등장하게 됨으로써, 글 자체가 어떤 신성한 인격체처럼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부적이 그런 예이지요. 부적의 상당수는 그림이 아니라 글자인데, 그것은 문자와 문서가 마치 신성한 능력을 가진 존재처럼 여겨지던 시대의 산물이지요. 또 문설주나 대문 같은 데 글을 쓰면 그 글자의 내용과 같은 신령한 힘이 그 집을 아우르게 될 것이라는 관습도 글의 신령스러움에 관한 다른 예이겠지요. 맹세할 때도 글로 남겨두면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것이 됩니다. 바로 이 시편의 시기가 그랬습니다.

더욱이 그런 신령한 문자들의 모움집, 그 내용이 주님의 율법이라고 해석된 책, 바로 토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무게로 사람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이 시편에 150회 가량 사용된 그 문서, 말할 때마다 그것에 의존해서 말하고, 그것에 의존해서 하느님의 심판과 축복을 논하는 책, 토라가 아니고서야 그런 신령함을 가진 것은 아마도 없었겠지요.

그런데 그가 밤을 새며 책을 읽고 있습니다. 글은 주로 사람들 앞에서 낭송함으로서 읽기가 수행되던 시절입니다. 우리나라 선비들이 골방에서 혼자 글을 읽을 때 약간의 음률을 붙여서 읽는 것은 바로 이런 낭송의 문화가 지배적인 독서법이던 시절의 풍경입니다. 이런 문화에서 글을 쓰일 때 이미 음률이 붙여집니다. 가령 7-5조니, 4-4조니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또 히브리에서는 시구의 첫 단어를 히브리어 알파벳순으로 이어지게 방식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시기에 글 읽기는 곧 노래였고, 글쟁이는 작곡가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148절에서 저자는 주의 말씀을 ‘시아흐’ 하고 있습니다. 그는 속으로 읽으면서 내용을 묵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낭송하며 읽는 행위보다 묵독하는 행위는 더 깊고 더 풍부한 내면의 대화를 낳습니다. 바로 저자는 그런 읽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토라는 이제 묵독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토라를 통해, 글을 통해, 문자를 통해 사람과 만나게 된 신, 그이는 이제 사람의 생각 안으로 들어와서 그이의 내면에서 그와 대화를 눕니다. 신앙은 이제 ‘내면의 종교’로서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그는 묵독을 하는 사람입니다. 글을 읽을 수 있고, 낭송이 아닌 묵독으로 읽으며, 글을 읽는 방을 가지고 있고, 그 방에서 밤새 불을 켜고 책을 읽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이것은 학자의 특별한 능력에 속합니다. 그는 학자인 것입니다.

한 학자가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유는 단지 주의 말씀을 사모함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는 누군가에 의해 곤욕을 치루고 있습니다. 재판에 회부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가 그를 조롱하고(51절)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69절). 또 구속되기까지 했습니다(61절). 해서 그는 주의 말씀을 향해 절규합니다. 나의 변호사가 되어달라고 말입니다(154절). 그것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그는 저들로 인해 거의 “끝장 났다고” 말합니다(87절).

도대체 그의 적은 누구일까요. 누가 그이처럼 학문적 능력이 있는 이를, 그만큼 권력을 가진 이를 함부로 하고 모욕하며 기소하고 구금까지 했을까요. 저자에 의하면 저들은 ‘오만한 자들’, 곧 권력자들이고, ‘하느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제국에 의존해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일까요.

당시 예루살렘의 권력 최상층부 인사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제국과 셀류코스 제국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권력게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저자가 말하듯이 ‘배신자’라고 폄하(158절)할 대상은 아닙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국제도시로 만들고 싶어 했던 자들입니다. 또 하나의 알렉산드리아나 안티오키아가 되면 폴리스간의 국제무역에서 특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루살렘도 화폐경제가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고, 인근 국가들 못지않은 국력을 가진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도시 안에 청년 훈련소와 경기장을 건설함으로써(마카베오2서4,7~10) 국제감각을 익힌 인재가 양성해야 한고 주장한 이들입니다.

이들의 생각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설득력은 그네들이 권력 장악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었기에 그들 간의 싸움은 명분이 있었고 그만큼 치열했지요. 그리고 그런 권력게임의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국제화 전략에 반대했던 시의 저자 같은 이들이 국수주의자로 비난을 받았고, 어떤 명분으로든 기소되고 처벌되기까지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를 밤새도록 주의 말씀을 묵독하게 했던 것은 그런 내막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데 그 시인이 꿰뚫어 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국가발전프로젝트는 많은 유대 농민을 몰락하게 했고, 도시의 빈민으로 전락하게 했습니다. 곧 그것은 저들만의 세계화였던 것입니다. 시인은, 시인의 밤샘은, 그의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어도, 그러한 세계화에 맞선 지식인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올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