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자들의 꿈 - 유일신 종교의 탄생

격월간지 [공동선]에 칼럼을 처음 쓰기 시작한 때가 2012년 01-02월호였다. 이번 글은 그 27번째 칼럼으로 [공동선] 2016년 05-06월호에 실렸다.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3대 유일신 종교의 신앙에 대한 비판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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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자들의 꿈

유일신 종교의 탄생

 

 

땅 끝까지 흩어져 있는 사람들아! 모두 나에게 돌아와서 구원을 받아라.

내가 하나님이며, 나 밖에 다른 신은 없기 때문이다.

―〈이사야서〉 45,22

 

 

 

 

한 달여를 내내 걷고서야 강가의 황무지에 내던져졌다. 황제의 땅이다. 그 땅을 개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관리들의 말에 죽을 듯이 일했다. 헐벗은 육체로 감당해야 하는 혹독한 노동에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죽었지만, 질기게도 살아남은 이들에게 세월은 나름의 선물이 되었다.

황권을 둘러싼 암투가 끊임없이 일어나곤 하는 덕에 종종 잉여생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었다. 이틈에 재산을 한몫 챙긴 이들이 생겨났고, 도시로 가서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가 나오기도 했다. 또 귀족의 눈에 들어 관리로 출세한 이들도 생겨났다.

40여년이 흐른 어느 날, 유다인 정착촌에 한 예언자가 나타났다. 그는 바벨로니아 제국이 곧 멸망할 것이고, 그날에는 모두가 고국으로 귀향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선포한다. 꿈에 그리던 얘기지만 그의 말은 너무 위험하다. 아무리 제국이 급격한 혼돈 속에 빠져 있더라도 자칫하면 정착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우려가 농후한 발언이다. 몇 년 전 어느 족속은 불순분자 몇 명 때문에 정착촌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었다.

유지들이 그 예언자를 불러다 심한 매질을 하고 엄중히 주의를 준다. 경거망동은 민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이다. 매질에 몇 번이나 기절하다 축 늘어진 몸둥이가 동네 어귀에 내던져졌다.

 

전에는 그의 얼굴이 남들보다 더 안 되어 보였고,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상해서, 그를 보는 사람마다 모두 놀랐다.

―〈이사야서〉 52,14

 

한데 그는 다시 일어나 절룩이며 사방을 들쑤시고 다닌다. 사람들이 하나둘 그를 따르기 시작했고, 이내 추종자만 한 무리가 되었다. 게다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를 열렬히 환호하고 있어 불러다 매질하여 협박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이제 그의 예언은 유대인 정착촌들 전체를 들썩이게 하였다. 게다가 그는 점점 더 노골적인 반역의 발언을 서슴치 않고 해댄다.

 

벨(바알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동부 버전. 아마도 마르둑) 신이 고꾸라졌고, 느보 신(=나보. 마르둑 신의 아들)이 넘어졌다. 짐승과 가축이 그 우상들을 싣고 간다. 힘겹게 떠메고 다니던 것들이, 피곤한 짐승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이사야서〉 46,1

 

바빌로니아 제국의 황제 나보니두스(Nabonidus. 기원전 556~539년 재위)는 아라비아의 오아시스 도시 테마(Tema)에 머물면서 황권을 압박하는 구세력의 응집체인, 수도의 마르둑 사제들을 견제하기 위해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추진하고 있었다. 마르둑 신전을 폐쇄하고 그 자리에, 그의 모친의 종교였던 달의 신 신(Sin)을 모셨다. 하지만 수도에 머물러 있던, 공동통치자이자 나보니두스의 아들인 벨사살(Belshazzar)은 마르둑 사제들을 위해 대대적인 제의와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해서 수도 인근에는 연일 마르둑 신의 상징들을 앞세우고 수도를 오가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예언자는 바로 이런 풍경을 제국 멸망의 표식으로 읽었던 것이다.

한데 예언자는 여기서 한층 더 놀라운 상상력을 펼친다. 저 마르둑의 상징물들은 철과 나무로 만든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철공(대장장이)과 목공(목수)이 만들어낸 창작물에 지나지 않고, 그들은 이것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재료의 남은 것으로 놋그릇과 장작도 만든다. 해서 저 거룩한 것은 사실 일상의 평범한 것과 본질상 다르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이다.(44장)

 

그런 무리는 모두 수치를 당할 것이다.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다. (......) 철공은 그의 힘센 팔로 연장을 벼리고, 숯불에 달구어 메로 쳐서, 모양을 만든다. (......) 그렇게 해서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따라, 우상을 만들어 신전에 놓는다. (......) 그런 사람에게는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다. 고작 한다는 말이 “내가 그 나무의 반 토막으로는 불을 피워, 그 불덩이 위에 빵을 굽고 고기를 구워 먹었지. 불을 때고 남은 나무로는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지. 이제 나는 그 나무토막 앞에 절한다.” 하는구나.

―〈이사야서〉 44,11~19

 

하여 그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고, 쓸모도 없으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내가 우상들을 둘러보았다. 그들 가운데 말을 하는 우상은 하나도 없었다. 어떤 우상도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못하였다. 보아라, 이 모든 우상은 쓸모가 없으며, 그것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일 뿐이요, 헛것일 뿐이다.

―〈이사야서〉 41,28~29

 

반면 야훼는 진정하고 유일한 신이다. 왜냐면 바벨로니아를 멸절시킬 이를 다른 족속에서 불러내어 그 사역을 담당하게 할 분이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동방의 떠오르는 제국의 통치자 고레스다.(45,1~2) 그로 하여금 세계를 지배했던 제국을 단숨에 멸절시키고 새 역사를 이루게 할 분이다. 해서 예언자는 이렇게 신탁을 선포한다.

 

나는 주다.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다. 나 밖에 다른 신은 없다.

―〈이사야서〉, 45,5

 

여기서 야훼 신앙의 역사상 최초로 유일신 신앙이 설파된다. 이제까지 유다와 이스라엘의 신은 ‘지역신’이었다. 시리아 북부 해안지역의 항구도시인 우가리트에서 발굴된 텍스트에 따르면 만신전에서 최고신 엘(El)이 있고 그 아래에 그이의 자식들인 70명의 신이 각 지역을 할당받아 다스리고 있다. 그 신들은 각 지역에 설립된 국가들의 신이었고, 국가들 간의 전쟁은 곧 신들 간의 전쟁이었다.

팔레스티나에는 ‘사마리아의 야훼’와 ‘예루살렘의 야훼’를 수호신으로 섬기는 두 나라가 있었고, 암몬의 신 밀콤, 모압의 신 몰록, 페니키아의 신 바알, 블레셋의 신 바알 등도 팔레스티나의 다른 지역신들이었다. 이들 국가들의 신은 상대국을 군사적으로 정복함으로써 보다 우월한 신이 되었다. 바벨로니아 제국의 신 마르둑은 바로 그렇게 지역신이었다가 그 나라가 제국으로 부상하면서 세계의 신으로 부상한 존재가 되었다.

한데 이 시기 유다 정착촌의 익명의 예언자가 설파한 유일신 신앙은 놀랍게도 이러한 국가와 제국의 신들, 정복을 통해서만 존재감이 살아나는 신들이 아닌, ‘다른 신’을 강변하고 있다. 그 신은 국가와 종족의 성공과 실패에 좌우되는 신이 아닌, 바로 그러한 성공과 실패를 통해 세상을 심판하고 축복하며, 그것을 통해 성찰에 이르게 하는 존재다. 이제 신은 ‘승리’를 지향하는 신이 아니라 ‘성찰’을 촉구하는 신이 된 것이다. 하여 이 예언자가 주장한 유일신 신앙은 승리주의가 아닌 종교, 성찰의 종교, 해석의 종교다.

사람들은 이 예언자가 과거 유다 왕국이 존속하고 있던 시절의 왕실 사제의 후손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다윗 왕실, 특히 다윗 국가주의를 신학화한 히스기야-요시아 왕의 왕실신학은 나라 안의 각 지역의 신당들을 철폐하고 왕실이 주장하는 국가의 신만이 진짜 신임이라고 강변했다. 그에 따라 국가는 지방의 신당들을 철폐하고, 그 사제들을 처형하거나 내쫓았다. 이스라엘국이나 다마스쿠스의 아람국 등, 시리아-팔레스티나의 다른 선진국들도 이런 식의 중앙신 만을 강제하는 신학을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유다국 만이 그러한 신학을 탄생시켰다. 아직 유일신 신학까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예언자의 신학은 다분히 유다적인 전통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유다국의 신학도 다른 신들처럼 성공과 실패를 통해 명멸하는 신앙을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상위신-하위신’의 논리를 ‘참신-거짓신’의 논리로 대체한 것만 다를 뿐이다. 반면 이 유다 정착촌의 예언자는 성공주의를 해체시키는 신학으로 유일신을 제안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최초의 유일신 신학이 말하는 성찰의 내용, 해석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성공주의가 아니라면 어떤 사상이 담겨 있는 신학일까?

예언자는 말한다. “땅 끝까지 흩어져 있는 사람들아! 모두 나에게 돌아와서 구원을 받아라.”(45,22) 그가 강변한 유일신 야훼는 유다국의 부활이나 성공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을 당신이 있는 곳, 바로 예루살렘으로 초대하는 신이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고 누구도 짓밟지 않고, 각자 자발적으로 오도록 초대한다.

왜냐면 그 신은 유다국의 죄로 인해 바벨로니아를 끌어들여 징벌하고, 이제 그 제국의 손길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해 페르시아의 고레스로 하여금 저들을 멸절하게 함으로서 성찰에 이르게 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신, 유일한 신이 계신 곳, 예루살렘으로 세계만방의 흩어진 사람들, 쫓겨나 떠도는 이들을 부르는 신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신 야훼는 승리주의를 추구하는 정복자의 신이 아니다. 그분은 흩어진, 집 없이 떠도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다. 하여 그들을 성찰하게 하는 신이다. 그것은 그들만의 국가를 만들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 세계의 구원을 위한 빛이 되게 하고자 함이다. 하여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려 함이다.(49,6)

야훼 신앙사에서 최초의 유일신 신학은 이렇게 주창되었다. 지배와 정복을 위한 신학이 아니고, 배타주의를 위한 신학이 아니며, 이웃과 구원을 나누는 소명으로 백성을 부르는 신, 그런 신학이다.

그런데 세계 3대 유일신 신학을 가진 종교들, 유대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는 유일신 신학을 부르짖은 이 예언자의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배타적이며 승리주의적인 종교를 발전시켜 왔다. 이 종교들의 유일신 신학이 공히 기반을 두고 있는 유다 정착촌의 익명의 예언자의 신학은 이 종교들에서 철저히 망각되었던 것이다.

하여 오늘날 지각 있는 많은 사람들은 유일신 신앙이 이 종교들의 진정한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정복자에 대항하고 승리주의를 거부하기 위해 유일신 종교에 반대한다. 또한 떠돌이가 되어 지구를 부유하는 이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유일신 종교에 반대한다. 자 그렇다면 누가, 최초의 유일신 종교를 설파한 이 예언자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 누가 유일신 신앙의 계승자일까? 누가 우상숭배의 혐의를 진 자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