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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웰빙-우파'와 대형교회, 보론 - 중간지대에서 정치적 의제로 부상하는 웰빙적 도덕주의

이 글은 [주간경향]  1198호(2016. 10. 25)에 실린  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다섯 번째(보론)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_id=20161018111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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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보론

중간지대에서 정치적 의제로 부상하는 웰빙적 도덕주의

 

 

 

정치적 주체로 떠오르는 웰빙우파


지금까지 나는 1990년대 이후 대형교회라는 문화적 장을 통해 웰빙우파가 문화적 주체로서 형성되어 왔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 웰빙우파는 절대빈곤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로서 부의 축적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지 않고, 이미 주어진 혹은 자신의 유리한 자원을 활용해서 얻은 재화를 품격있게 관리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삶의 스타일을 추구했다. 그것은 주로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품위유지비를 조달할 능력이 되는 계층적 현상이다. 물론 이 계층의 사람들 모두가 웰빙적 가치를 추구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계층이 집중적으로 모여 형성된 대형교회, 특히 그들이 교회 형성에 주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대형교회에서 웰빙적 삶의 스타일은 신앙제도 속에 잘 결합되었다. 하여 이런 대형교회에서는 웰빙우파적인 문화의 안착이 더 용이했다.

가톨릭과 불교의 경우도 웰빙적 계층이 다수 모여 형성된 교회나 사찰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 두 종단의 평교도들은 신앙제도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개신교에 비해 공식집회 횟수도 적고 참여율도 낮으며 비공식적 만남도 덜 하다. 또 종교제도에 대한 충성심과 결속력도 낮다. 하여 가톨릭 교회나 불교 사찰의 웰빙적 신자들은 보다 느슨한 공동체로 엮어 있다. 그밖에 다른 어느 영역에서도 개신교 대형교회들 만큼의 문화적 주체들의 네트워크가 잘 발달된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일부 대형교회는 웰빙우파적인 문화가 만들어지기에 그 어느 문화공간보다도 용이했다.

그런데 문화적 주체로 형성된 웰빙우파가 2천 년대 이후 정치적 주체로 부상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있었다. 그것은 이명박이나 박근혜 중심의 보수대연합의 일원이 되거나, 그 반대편의 개혁연합의 일원으로 혹은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경우든 이들은 이념 지향적 정치를 구태정치로 규정하면서 다른 정치문화를 강변했다. 이때 이들이 강변한 다른 정치문화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도덕주의적 성향으로 수렴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 웰빙우파의 정치적 주체화를 정치의 도덕화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80,90년대 미국에서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대를 설명하는 용어였던 정치의 도덕화는 근본주의적 개신교가 중심이 된 현상이라면, 최근 한국에서는 웰빙우파가 중심이 문화적 가치를 사회의 보편적 규범으로 제시하려는 정치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까지 웰빙우파적 정치세력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보수대연합의 일원으로 정치에 개입하였지만 그 요구는 거의 수용되지 않았다.

한편 20164.13 총선 이후 한국정치의 장에서 이른바 중간지대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웰빙우파적 정치와 연관성이 있다. 물론 아직 주장만 무성하고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엿보이지 않지만, 기존의 보수대연합이나 개혁연합 같은 슬로건 아래 각각 견인되기보다는 독자적 정치의 장으로 해쳐 모이자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새롭다. 이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얼마나 많은 대형교회의 웰빙우파적 주권교인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와 직결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 가능성이 높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웰빙우파는 이제 문화적 주체인 동시에 정치적 주체로 점점 더 뚜렷하게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주장하는 도덕적 규범들은 어떤 형태로든 더 많이 제도 속에 투사될 것이다. 많은 자원을 과점하고 있는 세력인 웰빙우파가 정치적 주체로 부상하고 있는 한, 그 가치는 점점 우리의 일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웰빙우파의 정치의 도덕화와 부드러운 은폐된 폭력

 

최근 대형교회 극우주의자들은 반동성애적 기치를 높이 들어올렸다. 심지어 동성애자를 처형하자는, 미국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을 되풀이하기까지 했다. 한데 내가 만난 몇몇 대형교회의 웰빙우파적 신자들은 담임목사의 공격적인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그들은 관용(똘레랑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것은 이들만의 생각이 아니다. 최근 개신교 극우주의자들의 반동성애 운동에 대해 많은 보수적인 혹은 복음주의적인 개신교 지도자들, 기관들, 언론들의 이른바 관용론이 도처에서 나왔다. 그 수위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동성애자들을 우리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기독교학술원 제44회 월례발표회(2015.03.06.)에서는 소극적 의미의 동성애 관용론이 기조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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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복음화협의회와 청어람아카데미가 공동주최한 포럼(2016.09.25.)에선 진보적 복음주의의 관점에서 적극적 관용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 주장 가운데 가장 소극적 관용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막아야 하며 가능한 한 그이들의 동성애 성향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적극적인 관용론은 사회의 규범에 저촉되지 않는 한에서 모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극적인 관용은 말할 것도 없고, 적극적이라고 말했던 그것이 과연 진짜 적극적인가? 누군가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이를 위해 우리 자신이 바뀔 수 있다는 태도를 전제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이는 우리의 진정한 일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관용적인 보수적 개신교 지도자들은 이성애 중심적 정상가족의 규범을 수정하려 하지는 않았다. 요컨대 이성애가족주의만이 하느님이 계시한 ()이기에 그것이 존중되는 한에서만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제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수용하기는 하되, 완전한 일원이 될 수 없는, 비정상적이고 주변적인 일원으로 포용한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개신교의 웰빙우파적 주장은 대체로 이와 비슷하다. 그들의 도덕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일 수 없다. 그것이 고수되는 한에서 배제는 유보되고 완화될 뿐이다. 하여 이러한 개신교적인 웰빙우파적 관용론은, 극우주주의적 개신교 배타주의의 폭력성을 지양했지만, 다른 방식의 폭력성을 낳는다. 즉 타자화된 이를 공격적으로 처벌하는 대신 비정상적 일원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 부드러운 폭력이다. 이것은 얼핏 폭력이 정치에서 소거된 것과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웰빙우파적 도덕의 정치는 정치의 미학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치의 미학화는 폭력을 은폐한 것이지 소거한 것이 아니다.

 

웰빙우파, 현대판 한국의 바리사이 운동

 

이전

기원전 8세기

이후

 

기원전 3세기 이후

 

기원전 2세기

 

 

 

 

 

 

 

씨족적 촌락사회

씨족적 질서가 붕괴되고 있는 촌락사회

상향분해: 소자산가 계층

정치적 주체로서의 바리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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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작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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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향분해: 예속농 혹은 촌락 이탈자

 

 




서기 1세기 예수계 운동들은 다양한 얼굴의 바리사이 운동과 갈등을 빚었다. 서기 50년경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아카이아(현대의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등을 포괄하는 지역) 지역의 대도시들에서 활동한 바울의 눈에 비추인 바리사이 운동은 일종의 종교적 근본주의에 가까웠다. 반면 서기 30년 어간 팔레스티나 북부의 갈릴래아 시골에서 활동한 예수의 눈에 비추인 바리사이 운동은 소자산가적 중간계층 중심의 도덕 재무장 운동처럼 보였다. 기원전 8세기 경부터 팔레스티나 촌락의 씨족적 질서가 붕괴하기 시작했고 기원전 3세기 이후에는 촌락 주민의 계층적 분화가 거칠게 진행되었다. 하여 기원전 2세기 경에는 촌락의 씨족적 리더가 아닌, 율법 전문가들이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여 권력투쟁의 쟁점을 이끌어가는 양상이 빚어졌다. ‘바리사이라고 하는 촌락 대중에서 상향분해된 이들이 주도한 정치적 주체는 그렇게 역사 속에 태동했다.

이후 이들은 사제들이 지켜오던 율법을 촌락 대중이 일상 속에서 신의 백성으로서 지켜야할 규범으로 재해석하며 촌락민의 도덕 재무장 운동을 이끌었다. 촌락민은 바리사이가 마을 회당에서 가르쳤던 율법에 스스로를 규율시킴으로써 촌락의 범위를 넘어서는 상상적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일원이 되었다. 즉 바리사이의 율법을 통한 도덕 재무장 운동은 일종의 고대의 민족 만들기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고대의 도덕주의를 교통과 통신이 극도로 발전한 현대사회적 국민 만들기 현상처럼 해석하는 것은 금물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들의 율법을 매개로 하는 도덕 재무장 운동은 바리사이의 계층적 특성이 소자산가적 중간계층 지향성을 지녔다는 점을 주목하자. 가령 바리사이가 가장 중요시한 안식일 규정 같은 것은 7일에 최소한 하루를 일 하지 않고 쉴 수 있는 계층, 나아가 그날 금식을 해도 영향실조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계층의 규범 해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바로 이것이 예수와 바리사이가 팔레스티나의 촌락에서 갈등을 일으킨 논점의 핵심이다. 예수는 안식일 준수가 신의 보호망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최소한의 규범이라는 바리사이 식의 해석에 대해서, 안식일 자체가 성찰하지 않는 한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의 장치에 다름 아니라는 논점을 제기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나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대형교회라는 장소를 통해 문화적 주체로 부상하고 나아가 정치적 주체로 전화하고 있는 웰빙우파적 도덕주의에서, 예수와 대립했던 팔레스티나 촌락의 바리사이 운동을 떠올린다. 하루하루를 생계노동에 시달리는 이들 혹은 일터에 진입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이들은 해외단기선교 같은 최소한의 종교적 이타심의 실천이나 비참한 제3세계 아동과 결연 맺는 소액 기부운동조차 여의치 않다. 그런 행동들이 최소한의 규범으로 작동하는 공동체에서 그것조차 지키지 못하는 이들은 비록 공동체가 그이들을 공공연히 배제하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이들은 그러한 규범에 의해 사실상의 폭력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형교회의 웰빙우파적 인식과 제도가 교회를 넘어 사회의 보편적 규범을 형성하게 된다고 하면, 그 사회는 은폐된 폭력의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웰빙우파가 자신의 도덕주의 가치와 제도를 성찰의 대상으로 보고 그것을 끊임없이 현실 속에서 쇄신하지 않으면, 이러한 도덕주의가 담고 있는 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는 누군가를 배제하는 폭력의 장치에 다름 아닐 수 있다. 예수시대 바리사이의 도덕주의, 그 민족 만들기 프로젝트가 그랬던 것처럼. 이때 배제된 그 누군가가 바로 그 사회의 소수자다. 소수자는 그 제도의 은폐된 폭력의 장치 속에서 탄생한다. 그런 점에서 웰빙우파가 스스로의 가치와 제도를 쇄신할 때 원리는 그들 자신의 신념이 아니라 소수자의 시선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