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네트워크가 주최하고 종자연이 주최한 토론회 <공직자의 종교행위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나?>(2008.9.11. 국가인권위원회 제2배움터)의 기조발제(박광서 교수)에 대한 논평글입니다.
이 토론회의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조발제_박광서(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
논평1_원철 스님(범불교대책위원회 홍보팀장)
논평2_신동식 목사(기독교윤리실천행동 생활신학공동본부장)
논평3_김진호
논평4_조욱종 신부(우리신학연구소 이사)
이 토론회 자료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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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의 종교 편향성을 넘어, 종교간 포용의 한국 공화제 형성을 위한 담론/실천이 필요하다
박광서의 「공직자의 종교행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평
불교계의 집단적 저항으로 MB 정부의 종교 편향성 문제가 공적 토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정부 혹은 공직자의 종교 편향성은 거의 대부분 개신교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핵심 인사들의 일부 노골적 행태들로 불거져 나온 분노어린 비판들은 개신교 일반에 대한 시민사회의 원색적 문제의식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를 다시금 언급한 것은, 정부 혹은 공직자의 종교 편향성 문제는 새삼스런 것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마치 한국 개신교의 원리주의적 배타주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한국사회의 엘리트 충원시스템 구석구석에서 종교 편향성은 이미 근대국가 형성기부터 은밀하게 혹은 공공연히 작동되고 왔고, 그것은 사회 엘리트의 종교적 배경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그것다 훨씬 더 편향적이라는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여기서는 개신교뿐 아니라 천주교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들이 각기 자기 삶을 기획하는 데 있어 종교의 문제는 사회적 자원들을 활용할 다른 기회를 제공해주었던 것이다.
나아가 문제가 된 공직자의 돌출행동뿐 아니라, 국가정책의 거시적 미시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종교 편향성의 문제, 시민사회의 각 영역에서 발생하는 종교 편향적 문화 등, 매우 광범위한 사회적 요소들과 뿌리 깊게 얽혀 있는 문제인 것이다.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은 우리사회의 근대화 과정 구석구석에 대한 점검과 비판, 그리고 대안적 모색의 가능성에 대한 토론과 논쟁의 활성화로 나타났다. 즉 민주화는 일종의 ‘사회적 쟁의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이러한 사회적 쟁의를 기반으로 해서 사회적 합의를 찾아내고 제도화하자는 공화제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공화제 담론은 사회적 쟁의의 문화적 기조로서의 민주화를 넘어서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종의 ‘포스트민주화의 기획’과 관련되어 소통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근대화에 대한 점검, 비판, 대안 모색에서 종교 편향성을 둘러싼 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문제를 색출하고 그것의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관련성을 해석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으로 나누어 본다면, 각각의 단계마다 아주 제한적으로 논의가 있을 뿐이고, 각 단계를 연결하여 논의를 이어가는 과정 역시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형편이니 대안에 대한 논의는 당위적인 선언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발제자를 포함하여, 오랫동안 고독하게 우리사회의 종교 편향성의 제도들에 대해 선구적으로 논점을 제기하고 개발해온 불교계의 비판적 지성들과 몇몇 사회운동 기구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범불교도 대회로까지 이어지는 확대된 쟁의 현상은 바로 이네들의 앞선 노력의 기반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얘기가 반복되고 있다. 나는 최근 문제가 된 공직자의 종교 편향적 돌출행위를 단지 MB 정권의 문제로 보는 것에서 논점을 확대하여 한국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점검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데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는데, 다시 범불교도 대회 얘기로 돌아왔다. 발제자가 잘 정리한 대로, 최근 불교 전체로 확대되어 제기된 문제의 핵심은 ‘종교차별금지법’의 제정 문제로 모아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돌출행동의 재발을 억제하는 법적 제도화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뜻이겠다.
그런데 법제화가 모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에 관하여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갈 단계는 아닐 것이다. 다만, 발제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제기해온 헌법상의 종교의 자유에 관한 규정들을 공직자나 국가기구들이 잘 준수할 수 있도록 하는 하위법 제정의 맥락에서 종교차별금지법이 논의되고 있다는, 법 제정의 맥락 정도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법률의 제정은 필요한 것이고, 법률 제정에 시민사회적 압박의 강도를 크게 높인 불교도의 목소리는 매우 고무적인 것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포스트민주화의 기획으로서 공화제의 문제를 논의하고, 거기에서 종교차별을 지양하는 제도를 첨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최근 종교간 갈등이 국제적으로도 점점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사회도 인구의 국제적 이동이 심화되면서 다인종화, 다종교화가 훨씬 급속하게 기존의 담론 구도를 흔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제도화 논의를 매우 중요한 지적인 것이다. 또한 발제자가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종교간 갈등이 현저히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맥락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종교차별금지법은 그것의 기저에 놓인 상위법인 헌법상의 종교자유 규정들을 보다 실효성 있게 하여, 국가기구나 공직자의 탈법적인 종교 편향적 행위들을 제약하려는 데 직접적인 입법 취지가 있다. 그러한 행위들이 헌법상의 종교자유를 헤치고 있기 때문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는 인식론적으로 ‘법 제정적 논의’에 그치고 있다. 공화제와 그것의 법제화 논의는 한편으로는 ‘법 제정적 논의’를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지만, 그것에는 ‘법 비판적 논의’라는 보다 인문적인 문제제기를 수반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토의가 너무 빈약하다는 데 나는 문제의식을 느낀다. 법은 제정되었지만 사회의 각 행위자들은 그것을 각기 자기 준거적으로 해석하여, 결국 법률안만 제정했지 과거의 관행은 그다지 지양되지 않고 변형되어 나타나는, 우리사회 고질적인 논의 방식이 다시 재현될까 하는 우려이다.
그런 점에서 ‘법 비판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인데, 가령 헌법상의 종교자유 규정은 과연 종교자유에 관한 규정인가, 혹은 종교차별의 제도화의 수단은 아니었는가를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헌법상의 종교자유 규정들은, 이미 많은 법률학자들이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정교분리를 인식론적 기저에 두고 제정된 것이다.
발제자를 포함하여 불교계 학자들 및 사회운동 기구들은 이러한 정교분리의 헌법적 규정들이 종교간 포용을 제도화하려는 한국적 공화주의의 기본 요소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교분리의 인식틀이 종교간 포용의 한국적 공화주의의 요소가 아니라, 종교간 차별의 기재로 활용되어 왔고, 또한 각 종단 내부의 기득권집단과 비기득권 집단 간의 차별의 기재이기도 했다는 점은, 한국 기독교를 연구했던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이미 다각도로 지적되어 왔다(강인철, 장성만, 이진구, 김진호 등). 그런 점에서 한국적 공화주의의 요소가 되려면, 이러한 헌법적 규정들의 문학적 요소만을 점검하여 얘기하는 문맥적 요소만이 아니라, 그것의 사회적 함의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령, 프랑스 공화주의에서 핵심적 요소인 정교분리의 제도화는 ‘공립학교’라는 제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요컨대 특정 종교에 편향적인 요소가 교육과정에 개입하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국민/시민되기’ 과정에서 종교가 변수가 될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가톨릭이 국민/시민성 형성에 독점적 자원을 행사하는 것을 견제하는 국가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그래서 타종교를 가진 사람도 공립학교를 통해 종교 편향적이지 않은 국민/시민성을 가진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교분리의 법적 형태인 종교자유와 공립학교 개념의 연계는 거의 모든 사회의 공화제적 형식에서 견지되고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의 문제는 생략하고, 우리사회에서 종교자유-공립학교의 연계는 과연 공화제적 내용을 담고 있는가? 이미 알려져 있듯이, 한국의 교육제도는 공립학교 체계라기보다는 사립학교체제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사립학교 체제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사회의 제도 형성 과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립학교의 절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종교, 특히 개신교계 사학을 중심으로 하는 사립학교 교육시스템은 종교자유 규정들에 의해 비호를 받으면서, 사회적 감시망을 벗어나 있으면서, 사회문화적 종교편향성을 내재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사실 한국의 근대국가 형성단계에서 기독교는 정교분리를 통해 견제해야할 세력이 못되었다. 그런데 종교자유 규정들이 거의 도전받지 않으며 자명하게 인식되어 온 이후 60년이 지나면서 나타난 결과는 개신교와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의 사회적 자원의 과점현상이 현저해졌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각 영역간의 포용적 통합을 지향하는 공화제의 형성에 있어 정교분리론에 입각한 종교자유 규정들이 부정적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요컨대, 헌법상의 종교자유 규정들에 대해, 한편에서는 사학의 종교 편향성을 비판하는 논거로 활용하고 있지만, 오랜 관행은 오히려 종교 편향성을 지지하는 법적 기재로서 활용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종교자유 규정들에 대한 ‘법 제정적 논의’만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을 보충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시하더라도, 또 다시 그것을 자기 준거적으로 해석하여 차별을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폐습을 지양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은 종교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매우 필요한 일이지만, 동시에 헌법상의 종교자유 규정이나 차별금지법안 등의 법 해석적 차원에 개입하는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맥락에 대한 비판적 점검을 통해 종교 자유 관련법에 대한 인문적 논의의 지평을 확대하는 노력은 2차적인 노력의 대상이 아니라, 1차적인 노력의 대상으로 법제화 노력과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시민사회운동기구와 학계가 함께 논의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일, 각 종단을 아우르는 종단간 대화의 통로를 확대하는 일, 그리고 종단간 연구자들 간의 담화공동체의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하여 현 정부 일각에서 벌어지는 돌출적 종교 편향성을 넘어서, 한국사회 전반에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퍼져있는 종교 편향성을 색출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일에 함께 공조해서 논의를 펴고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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