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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한국사회의 변화와 신학적 성찰

'기독교문화연구원' 심포지엄(2006.11.25)에서 발표된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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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변화와 신학적 성찰

 

 

 

 


한국의 역사문화적 변화를 성찰하는 신학적 담론 찾기

 

한국의 역사문화적 변화에 대한 지적 성찰을 내재화한 신학은 존재하는가? 이것은 역사문화적 컨텍스트가 신학의 내생적 요소(endogenous factor)인가 외생적 요소(exogenous factor)인가라는 해묵은 논의를 다시 점검하게 한다.

여기서 컨텍스트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각주:1] 문맥적 컨텍스트(컨텍스트 I), 매체적 컨텍스트(컨텍스트 II),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컨텍스트 III). 이 중 컨텍스트 I’은 신학사적으로 텍스트 이해의 내생적 요소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져 온 반면,[각주:2]컨텍스트 III'은 거의 대체로 외생적 요소로 취급되어 왔다. 심지어 컨텍스트 II'는 컨텍스트의 한 범주로서 인식조차 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의 주제가 컨텍스트 III'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 세 번째 요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텍스트-컨텍스트 논쟁에서, 신학의 지배적인 역사문화적 토양인 서양사회는 컨텍스트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이미 텍스트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착시 현상이지만, 시공간 귀속성에 의존하지 않은 탈국지적 신학인 양 생각함으로써 서양신학은 당연히 대문자 신학(Theology)이라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고, 그 반대급부로 이러한 보편성외부의 신학들(theologies)에 대해서는 부가어를 첨부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된다. 또한 그러한 특수 지평의 신학들에 대해 혼합주의니 토착화니 하는 논의가 가능한 것도 (순수성과 보편성으로 과대대표되는 서구신학에 대비하여) 비서구사회의 신학적 해석의 지평과 국한시켜 사고하게 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텍스트-컨텍스트에 대한 신학의 이분법적 인식은 제국주의적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컨텍스트 III에 대한 신학의 몰인식과는 반대로, 현대 텍스트 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논점이 바로 이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는 해석의 주체가 텍스트와 만나는 지평으로서, ‘역사문화적 담론의 네트워크(networks of historical-cultural discourses) 형태로 존재한다고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각주:3] 다시 말하면 텍스트는 이 역사문화적 담론의 네트워크 밖에서는 해석자에게 독해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담론의 네트워크와 얽히지 않은 텍스트는 해석자게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여 이탈리아문학 연구자로서 기호학자인 박상진의 말대로 컨텍스트는 해석이 열리는 자리인 셈이다.[각주:4]

문제는 역사문화적 담론의 네트워크가 결코 공정한 담론의 연계망을 형성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특정한 담론이 보다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면서 다른 것을 식민화하려는 경향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그러한 지배권을 둘러싼 담론간의 쟁투가 되풀이된다. 이때 지배적 담론의 자기 근거로 이해되는 텍스트를 흔히 정전(Canon)이라고 규정한다. 정전은 해석을 거부하는 텍스트다. 그것은 항상 절대원본이며,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의 간섭을 받아 그 의미가 변형될 수 없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한데 정전을 통한 담론의 식민화 과정은 그것이 탄생한 공간의 영역을 넘어서 타공간으로 확장되려는 지향성을 갖는다. 이러한 정전의 문화횡단(transculturation)은 불가피하게 해석을 필요로 한다. 또한 이질적 문화간의 접촉이 단순히 문화적 변동을 야기시킨다는 가치중립적 표현인 문화접변(acculturation) 개념이 아니라 그러한 접촉 과정이 식민화를 동반하면서 전개되는 복잡한 문화현상을 함축하는 문화횡단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정전이 그 절대 원본성을 획득한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와는 다른 시공간적인 문화적 배경 아래서 벌어지는 해석의 상황은 다층적이고 갈등적이다.[각주:5] 이러한 식민주의적인 문화횡단적 해석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번역이라는 메타포(translation as a metaphor)가 즐겨 사용된다.

1920년대 초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통찰한 것처럼, 번역된다는 것은 원본의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번역을 수행하는 언어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와의 변증법적 상호과정을 통한 창조적 재의미화 과정이다.[각주:6] 그런 점에서 번역한다는 것은 원본의 훼손이자 원본의 재창조다. 한데 이때 원본의 정전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원본을 특권화 하겠다는 것이며, 번역되는 언어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와의 존재론적 얽힘 관계를 부정하겠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내생적 요소가 아니라 외생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요컨대 정전성을 지닌 원본의 번역은 이중의 존재론적 모순관계를 내포한다. 번역되는 순간 불가피하게 그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와 얽히게 되지만, 동시에 그러한 얽힘을 부정하지 않는 한 정전성은 유지될 수 없다. 그러므로 실제의 텍스트 이해는 컨텍스트 III의 지평에서 수행되고 그 간섭에 의해 다양한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영향을 미칠 수는 있어도 영향을 받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전성의 신앙인 것이다.

이 점은 서구신학이 한국사회에 번역되어 재신학화하는 과정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앞서 말했듯이 서양신학은 서양이라는 자신의 태생적 맥락과의 연관성을 부정함으로써 더 이상 서양신학(western theologies)이 아니라 대문자 신학(Theology)이라는 단일 보편성을 획득하였다.[각주:7] 즉 신학은 서양신학이 정전화된 것을 의미한다.[각주:8] 그런 점에서 본질로서의 (서양)신학이라는 생각은 지구화된 신학이라는 광역의 장(, champ)에서 갖는 일상적인 상념에 속하는 일종의 아비투스(habitus, 습속)라고 할 수 있다.[각주:9] 이러한 아비투스는 신학이라는 장의 게임룰의 형성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 하여 신학이라는 장의 행위자, 즉 신학자는 서양신학을 본질로서의 신학, 단일 보편성의 신학적 실체로 이해하고 게임에 임할 때, 이 장이 제공하는 종교자본의 배분에 보다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학의 장에서 그 장의 감각체계를 내면화하는 신학자들은 당연히 한국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를 신학의 내생적 요소로서 보지 않는다. 그 컨텍스트가 신학이라는 텍스트를 보는/해석하는 토양이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신학이라는 정전적 텍스트가 한국사회를 규율하고 교화하는 일방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는 신학적 담론들이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를 다룰 때조차, 경험지평에 대한 주의 깊은 연구보다는, 대문자 (서양)신학이 패러다임화한 모델들을 먼저 주목하려는 경향과 맞물린다. 이때 그 모델들은 단순히 사회문화적 연구의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 속에는 우리의 경험 세계인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라는 야생의 실재[각주:10]를 길들이기 위해 대문자 신학이라는 서구적 텍스트가 필요하다는 무의식적 식민주의가 암암리에 깔려 있다.


I

복음(상황)’: 복음 지상주의

김이환 박아론 등의 장로교 신학

선교신학

II

복음상황’: 복음 우월주의

복음주의적 번역론(윤성범)

복음주의적 성취론(유동식)

복음주의적 변형론(박봉배)

III

복음=상황’: 세속화와 세속주의

 

비신학

IV

복음상황: 역사주의적 상대주의

V

(복음)상황: 탈식민주의

종교상황적 창조신학(변선환)

창조신학

역사상황적 창조신학(서남동)

[] 이경제의 복음-상황유형론과 한국신학들


이 점에서 이경재가 상황과 복음간의 관계를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이중 세 유형 속에 한국신학들을 배치한 유형학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여기서 복음은 서구신학이 바탕에 깔린 신앙적 담론화를 의미한다. 한편 상황복음이 수용되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복음과 함께 한국신학을 구성하는 변증법적 요소인 것이다. 즉 그는 한국신학을 형성하는 데 있어 복음과 상황이라는 두 개의 해석학적 요소를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황은, 나의 용어로 표현하면,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와 유사한 함의를 갖는다. 아래 그림은 그의 유형학을 도표화한 것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이경재는 한국신학을 선교신학창조신학으로 이분화하는데, 선교신학이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의 내재성을 부정하고, ‘대문자 신학인 텍스트에 의한 식민주의적 문화횡단을 지향하는 신학적 담론을 의미한다면, 창조신학은 식민주의적 문화횡단의 신학적 담론에 대항하는 대안적 신학화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전자가 정전의 번역으로서의 신학이라면, 후자는 신학이라는 텍스트의 정전성을 해체하고, 재창조로서의 번역, 새로운 해석으로서의 신학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교신학으로 분류된 두 유형에서, 그것이 복음 지상주의든 복음 우월주의든, 한국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에 대한 지적 성찰을 내재화한 신학적 모색은 발견될 수 없다.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를 다룰 때도 그것은 단지 복음화를 위한 도구적 지평이거나 규율의 대상으로서 고려될 뿐, 역사문화적 컨텍스트가 복음을 검열하는 요소일 수 없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복음 혹은 그것의 신학적 담론화인 대문자 신학의 담론 전략은 한 마디로 탈문화화(deculturation)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경재는 창조신학을 다시 둘로 나누어 이야기하는데, 변선환에 의해 모색된 종교상황적 모델과 서남동에 의해 모색된 역사상황적 모델이 그것이다. 여기서 그는 종교상황적 모델은 한국적 패러다임 형성을 위한 불충분한 담론임을 언급한다. 그것은 복음상황이라는 전제를 복음(종교)상황의 방식으로 단순 전도시킨 것에 지나지 않을 뿐, 새로운 패러다임을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위의 표에서 보듯, 이경재가 변선환의 신학을 [IV]로 분류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가 근대성 일반을 다룬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한국 종교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나의 억측은 이경재의 논의에 대한 나의 이해력을 무력화시킨다. 반면 나 또한 변선환의 담론 방식에 대해 좀 다른 관점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이른바 타종교의 신학이 과연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를 적절하게 다루고 있는지 혹은 다룰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그에게서 타종교성, 이경재가 잘 간파하고 있듯이, 복음을 규제하는 한국적 컨텍스트에 속한다. 그러므로 타종교의 신학은 서구신학이라는 텍스트와 타종교성이라는 역사문화적 컨텍스트 사이의 변증법적인 대화 상황의 과정을 통해 재텍스트화된 것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변선환에게서 타종교성이 관찰되는 지점은 항상 신조의 차원에 머문다. 그런데 역사문화적 맥락에서 종교성이 과연 신조에 국한되는가? 오늘날 사회 연구는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담론의 차원, 실천의 차원, 그리고 제도의 차원이 그것이다. 이 세 범주는 서로 연계되지만, 각각 논의의 초점이 다른데, 담론은 을 초점으로 하고, 실천은 실연된 행위, 그리고 제도는 행위자와 구조의 네트워크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이 범주들 각각의 외연은 다른 범주들의 논의들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셋 중 어느 것을 주목하느냐의 문제는 방법적이고 인식론적인 것이지, 다른 것이 간과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변선환이 주목하는 신조는 말에 초점이 있지만, 제도와 실천 등의 연관성까지도 함축하는 담론 연구의 차원에서 볼 때 너무 협소한 시각에 갇혀 있다. 요컨대 변선환의 연구는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와 신학 간의 변증법적 대화 과정을 고려하고 있기는 하지만, 접근방식에서 보다 많은 보완을 필요로 한다.

이 점에서 서남동의 두 이야기의 합류라는 변증법적 메타포는 범례가 될만한 인식의 틀을 제공해준다.[각주:11] 성서의 민중 전통과 한국사회의 민중 전통 간의 대화구조에 관한 언급이다. 그는 이 두 전통을 텍스트와 컨텍스트라고 하는 대신에 전거(refreences)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한국신학은 정전으로서의 대문자 신학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 담론이어야 함을 명시한 것이다. 즉 그에게서 정전은 없으며, 다만 해석을 위한 레퍼런스에 불과하다.

두 이야기 각각에서 민중 전통을 읽어내고 그것을 합류시키기 위한 방법을 그는 성령론적 공시적 해석이라고 이름 붙인다. ‘성령론적이라는 표현은 지배적인 담론의 전통이 해석 상황을 지배하는 가다머류의 해석학과는 구별되는, 일종의 의심의 해석학에 가까운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성서 속에서나 교회 역사 속에서 발전된 다른 어떤 개념보다 한층 더 위반의 기조를 강하게 담고 있는 기표로서 성령이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공시적이라는 말은, 텍스트라고 하든 전거라고 하든, 해석의 대상인 성서와 신학의 발생맥락보다는 해석자의 수용맥락을 중시한다는 주장을 함축한다.[각주:12] 이렇게 서남동의 성령론적 공시적 해석은 신학적 담론 전통의 서구 중심주의, 그 반해석학적 정전주의에 대한 급진적 비판의 기조를 담고 있다.

심지어 그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전도시켜 신학이나 성서를 컨텍스트라고 하고, 한국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를 텍스트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일종의 말장난이겠지만, 그의 글쓰기에서 어느 정도 실행에 옮겨지고 있기도 하다. 가령 그의 글 ()의 형상화와 그 신학적 성찰이나 소리의 내력, 민담에 관한 탈신학적 고찰그리고 민담의 신학반신학[각주:13] 등에서 보듯 그가 이야기하는 많은 텍스트들은 한국의 설화들이거나 그와 동시대의 민중의 이야기이고, 성서의 설화는 극히 제한적이다. 서술방식도 모든 설화들을 병행적으로 언급하여, 성서나 신학이 전체를 정리하면서 다른 것들을 포섭하는 상투적인 방식이 지양되고 있다.

한편 그가 성령론적 해석을 주장한다고 해서, 논리적 인과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론적이라는 수사어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서구적 기독교의 자기 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이지, 그 속에 함축된 합리주의적 방법론까지를 비판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하여 그는 당시 서구 신학의 비주류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쇼트로프 부부(Luise & Billy Schottroff), 슈테게만(Wolfgang Stegemann), 갓월드(Norman K. Gottwald) 등의 급진적 성서연구자들을 인용하면서, 그들의 연구방법을 시사하는 사회경제사적 방법과 문학사회학적 방법을 전거의 해석에 활용하자고 제안한다.[각주:14] 사실 그 자신이 인정하고 있듯이 그는 이러한 연구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다. 또한 연구사적으로 이 해석의 도구들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감안할 때 이 주장이 얼마나 애매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는 잘 알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위의 성령론적이라는 방법론에 관한 지시어와 이 두 방법이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서도 당연히 그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거를 해석하기 위해 서양의 연구방법들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것은 이런 방법을 활용한 연구자들이 한결같이 성서에서 민중에 대한 체제의 억압과 이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발견하고 있다는 점을 그가 주목하였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그는 전거를 민중적으로해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해석적 지향의 배후에는, 동시대적 문제의식(공시성)이 깔려 있다.

이러한 동시대적 문제의식은 한국인 신학자로서는 드물게 한국의 사회 현장에 대한 사회학적 정보들을 신학적 서술에 활용하는 데로 이어진다. 그는 주로 르뽀기사, 신문기사, 일부 연구서들을 이용하여 민중 현실을 분석함으로써 한국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를 신학화하고 있는 것이다.[각주:15]

그런 점에서 서남동의 신학이야말로 한국의 상황과 복음 간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의 해석학을 보여준 한국적 신학의 모범적인 선례로 평가한 이경재의 진단은 타당성이 있다. 비로소 한국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는 신학의 내재적 요소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를 말하기 위해 먼저 서양신학이나 사회이론의 패러다임을 물은 것이 아니라, 먼저 신문기사, 르뽀르따쥬, 각종 통계 등을 보았다. 그는 연구 방법을 활용할 수는 없었지만, 먼저 현장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것에 감정이입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가 비록 사회경제사적 방법이나 문학사회학 등을 언급했으나, 그것은 서양 신학자들의 전거 해석 작업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준거였지, 자신의 방법은 아직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논의는 하나의 모범적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평가하기에는 미완성적이지만, 모범적 시도로서 평가하기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한편 나는 서남동에 비해 논의는 덜 체계적이지만, 그의 선언적 주장에 비해 좀더 구체적인 한국적 신학하기의 모범을 안병무의 작업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안병무의 가장 대표적인 신학적 모색이 역사의 예수연구라고 하는 데 이의를 드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한데 그의 예수 연구의 방법론적 핵심이 오클로스론이라는 점을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다. 나는 그의 오클로스론이 그의 예수 연구 방법을 특징짓는 가장 주요한 틀이고, 또한 그것이 매우 독창적인 방식이며, 나아가 그러한 연구방법의 고안에 그 자신이 이해하는 한국적인 역사문화적 맥락이 긴밀히 개입되어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는 다른 글[각주:16]에서 상세히 말한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 논의를 이 글의 구성에 맞게 간략히 재요약하는 것으로 대체하겠다.


 

 

구술 전승의 전달자

전승양식

 

문서 전승

 

 

 

 

 

 

 

 

 

 

예수

카리스마적 떠돌이 예언자

단편적 말

예수 어록(Q)

:

타이쎈의 가설

 

 

 

 

 

 

 

오클로스(민중)

이야기

마르코복음

:

안병무의 가설

[2] 예수 전승의 두 계보



우선 안병무의 오클로스론은 역사의 예수를 묻는 주요 자료로 Q 자료가 아니라 마르코복음을 주목하였다. 아래 표는 그의 오클로스론의 연구 영역과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표에서 반드시 주지해야 하는 것은 예수에 관한 가장 오래된 전승이 구술 형태였다는 점에 있다.[각주:17] 여기서 구술 전승의 주체를 안병무는 오클로스라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다가와 겐조(田川建三)의 연구에 의하면,[각주:18] 유대사회의 대중 일반이라기보다는 좀더 구체적인 대상으로 일종의 천민적 존재를 가리킨다. 안병무는 다가와의 견해를 보다 예각화된 의미로 재해석하여 귀속성을 박탈당한 존재로 규정한다. 그는 다가와의 해석에 간접적으로 접하면서,[각주:19] 그 자신의 동시대의 대중, 특히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비자발적으로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해 와서 도시빈민층을 형성한 이들을 상상했다. 준거집단에서 떠나야했던 그들에게 고향은 그리워해야할 대상일 뿐이며, 그들 자신들이 실제 밟고 있는 생활공간은 존재의 뿌리가 박탈된 곳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겪는 가난의 고통은 부모와 조상의 땅에서 겪은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뿌리 뽑힌 이, 준거집단을 상실한 이, 그들 자신의 영적인 동조집단(부모 혹은 조상)이 사라진 이, 그런 이들이 겪는 고통의 신랄함을 기억하며 안병무는 오클로스를 예수의 대중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예수 주위의 대중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예수의 말과 행위, 그의 사건을 전한 이는 다름 아닌 이들 오클로스였다. 여기서 안병무는 서양 성서학의 뿌리 깊은 인식론적 전제인 주객도식을 문제시한다. 그들은 예수만을 물을 뿐, 그의 대중은 단지 수동적인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한다. 반면에 안병무는 누군가가 전달자라는 것은 자신의 삶, 바람, 욕망 등과 분리할 수 없이 얽혀 있는 것을 의미한다는 타이쎈의 구술 연구의 논의를 수용한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텍스트와 전달자라는 컨텍스트는 의미형성 과정에서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여기서 오클로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마르코복음의 예수 텍스트는 예수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예수와 오클로스에 관한 해석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더 언급할 것은 마르코복음이라는 책을 통해 예수 이야기를 듣는 청중은 누구인가의 문제다. 안병무는 다가와의 해석을 수용하여 오클로스가 바로 그들이라고 본다. 설교학은 청중의 예비검열이라는 커뮤니케이션학의 성과를 신학 내에서 가장 먼저 수용했다. 한데 안병무는 성서학에서 이러한 예비검열을 통해 지식인 저술가의 작업 속에 청중인 오클로스가 개입하여 예수-오클로스의 이야기가 구성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각주:20] 여기서 그는 다가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독창적인 역사학적 상상력을 펼치는데, 마르코복음의 예수-오클로스의 이야기가 예수 당대의 예수-오클로스의 이야기를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마르코복음과 예수라는 두 텍스트의 역사문화적 상황이 오클로스의 고통이라는 관점에서 연계되고 있다는 데서 유래한 주장이다. , 고통의 동질성이 기억의 동질성을 낳았다는 것이다. 하여 마르코복음을 통해 예수를 읽는 역사학적 알리바이가 설명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그 자신의 동시대와 다시 연계시킨다. 전태일에 의해 폭로된 한국 민중의 고통을 오클로스의 고통으로 읽어내면서, 이제는 시공간을 달리하는 세 개의 텍스트(예수, 생성 당시의 마르코복음, 오늘날의 마르코복음)의 연계성을 주장하는 데로 이른다. 그것은 세 텍스트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의 동질성에 대한 그의 관점에서 도출된 것이다.

이와 같이 안병무의 오클로스론은 성서 및 신학 텍스트와 한국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텍스트의 재해석으로 이어지는 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한국적 신학의 범례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남동 안병무의 신학은 한국사회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와 깊이 연루되어 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는 담론의 네트워크 형태로 존재한다. 이 두 신학자처럼 비주류의 저항담론이 자리잡는 곳도 바로 여기다. 여기에는 그들이 경험하는 세계에 대한 나름의 관찰이 함축되어 있으며, 경험하고 관찰한 그것을 읽기 위해 그 세계를 다루는 여러 담론들과 선택적인 대화를 모색한다. 그리하여 저항담론으로서의 서남동과 안병무의 신학이라는 재해석된 텍스트가 생성되는 것이다.


 

 

예수 당대

 

구술 전승기

 

마르코복음 형성기

 

오늘

 

 

 

 

 

 

 

 

 

텍스트

:

예수

 

예수-오클로스 이야기(I)

 

예수-오클로스 이야기(II)=마르코복음

 

마르코복음

 

 

 

 

 

 

 

 

 

 

 

 

 

 

 

 

 

 

컨텍스트

:

오클로스

(청중)

 

오클로스

(전달자)

 

오클로스

(수용자)

 

오클로스

(한국의 민중)

[] 안병무의 오클로스론의 텍스트-컨텍스트

 

 

한데 여기서 주지할 것은, ‘선택적인 대화라는 점과 관련되어 있다. 서남동(~1984)1980년대적 비판담론이 활성화되기 이전에 삶을 마무리했지만, 안병무(~1996)1980년대적 비판담론의 활황과 몰락을 다 체험하였다. 그러므로 안병무의 신학 속에서 우리는 1980년대 이후의 경험과 담론이 접맥되는 측면들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병무의 신학을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컨텍스트 이해는 1970년대적 비판담론들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신학을 시기구분하면서 세세하게 논할 때는 좀더 세밀한 측면을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지만, 통전적으로 그를 얘기할 때는 그의 신학을 1970년대적 비판담론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적 신학을 논하는 데는 주로 민중신학의 제2세대에 의해 수행된 맑스주의적 연구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와 민중신학의 1980년대적 경향을 논하는 것은 민중신학 연구자들에 의해 이미 많이 수행된 바 있고, 또 이 글에서 보다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시대 맥락이라는 점에서 여기서는 논의를 생략한다.


오늘 한국의 역사문화적 변화 읽기

 

오늘 한국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논하려면 우리의 경험 세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는 시대를 이 글은 변화의 시각에서 보고자 한다. 어떤 사회든 그리고 어느 시기든 지속의 측면과 단절의 측면은 항상 존재한다. 그런데 어느 시기는 지속에 보다 주목하는 반면, 또 어느 시기는 단절에 관한 감각이 좀더 예각화된다. 여기서 단절에 대한 감각을 학문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시기구분론이 발전하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시기구분을 통해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와 신학 담론간의 연계구조를 논한 것은 최종철과, 그리고 민중신학자인 최형묵과 김진호에게서 발견된다.

최종철[각주:21]은 한국에 개신교가 들어온 시기부터 현재까지를 세 시기(기독교 전래 이후부터 식민지 시대까지1, 해방기부터 1960년대까지2, 그리고 1970년대 이후3)로 나누는 광역의 시기구분을 하고 있는데, 그의 관심은 한국기독교의 정치문화와 일상문화[각주:22]가 이 시기에 어떻게 변화 혹은 지속되었는지에 있다. 그는 한국 전래의 종교문화의 특징을 현세적 공리주의와 정교합일주의라고 보고, 그것이 기독교 전래 시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앙에 어떻게 관철되었는지를 조명한다. 특히 이러한 토착화의 양상이 근본주의와 자유주의로 분류된 두 신학적 성향체계와 어떻게 결합되면서 구현되었는지를 각각 정치문화와 일상문화로 나누어서 찾는다. 그런데 정치문화는 1기에서 2기로 이어지면서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다가 3기에 이르면서 다소간의 변화를 겪게 되는 반면, 일상문화는 시대구분과 관계없이 지속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의 시기구분은 그의 논지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지 않다. 만약 그의 논지와 결합시키려면 두 시기로 나누거나 아예 시기구분을 하지 않는 게 타당하다. 아마도 한국 근대사의 상식을 따라 나누어 보면서 기독교 신앙문화의 전개를 보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한편 최형묵과 김진호는 민중신학의 시기구분론에 국한된 것으로, 시기를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만을 다루는데, 각각 1970년대, 80년대, 90년 이후로 삼분하여 신학과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와의 연계를 논하고 있다.[각주:23] 이 분류방식에 따르면, ‘오늘에 해당하는 시기는 1990년대 이후를 말한다. 이렇게 시기구분을 하는 근거는 다음의 시간적 요소들을 계기적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1987년 이후 한국사회는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화 시대로 이행했다. 이는 사회제도나 일상이 조직되는 방식 등에서 중대한 변화를 의미했다.[각주:24]

둘째, 1988년 올림픽은 한국사회의 산업화 양식의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왔다. 즉 소비자본주의가 바로 시기 이후 본격화된다는 것이다.[각주:25]

셋째, 1989년 이후 동독과 소련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한국사회의 1980년대를 풍미했던 이른바 동구 맑스주의적 변혁이론의 설득력이 상실되었다. 또한 이는 냉전적 국제정세 하에서 산업화의 기회를 맞았던 한국사회가 탈냉전 시대의 새로운 발전모델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 우리의 사회를 위기의 일상화로 주장하는 배후에는 이러한 국제정치경제적 변화에 따른 산업화의 위기가 있다.[각주:26] 특히 국제정치경제적 변화의 중심에는 급속한 지구화의 엄습이 있다.

이러한 세 가지 계기적 사건들을 경유하면서,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제도적이든 담론적이든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각주:27] 우선 민주화는 과거 단일 주체의 슈퍼개인에 의해 조직되었던 사회구조가 해체되고 다중적 주체들에 의한 사회로 재편되는 과정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한데 이러한 다중적 주체화 과정에서 누가 주체로 부상하느냐의 문제와 그렇게 부상한 주체들이 어떠한 권위적 자원을 획득하느냐의 문제가 재구조화의 중요한 현안이 되면서 복잡한 갈등과 경합이 벌어진다. 이러한 주체화를 국민의 시민화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때 국민이 전체주의적 국가에 위탁된 수동적인 신체들의 집합적 표상을 의미한다면, 시민은 국가에 귀속되어 있지만 일정한 자율권을 획득하여 국가와 교섭하는 사회적 존재로 부상한 이들을 가리킨다.

안병무는 일찍이 전두환 체제가 호헌을 선언하며 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열망과 최후의 투쟁을 한창 벌이고 있던 무렵 창세기 2장의 선악과 이야기를 알레고리적으로 재해석하여 인간의 원형적 죄를 공()적인 것을 사유화하려는 욕망에서 찾았는데,[각주:28] 공을 사유화했던 슈퍼개인을 퇴출시킨 시민은 과연 민주화 시대에 공공성을 수호하는 새로운 주체가 되었을까?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한국 민주화의 치욕스런 체험은 시민이라는 공공성의 수호자로 성화(聖化)된 이데올로기적 주체가 실은 지극히 상스러웠다는 데 있다. 모든 것의 초월적 감시자로 군림했던 슈퍼개인이 사라진 뒤, 새로운 감시의 체계가 대체하기 전에 엘리트계층의 무분별한 지대추구행위와 맞물리면서 시민 또한 탐욕스런 욕망을 게걸스럽게 소비하는 존재로 구성되어 갔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민주화가 국민의 시민화와 동반하는 현상이라는 앞의 언급을 다시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공공성이 사유화되는 과정은 슈퍼개인만 퇴출시킨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퇴출자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비록 수동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국민이라는 사회적 집단 범주는 국가 내에서 단일하게 결속된 존재로서 이해되었고, 이는 국민은 공동체라는 사회적 공통감각과 맞물려 있었다. 그런 점에서 독재체제하의 국민은 계층적 분화가 억제되는 효과를 지녔다. 슈퍼개인이 독식하고 남겨놓은 적은 권력자원의 배분체계는 비교적 공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적인 것을 사유화하려는 무한경쟁의 사회, 그 퇴행적 민주화의 공간에서 공동체라는 국민적 공통감각은 후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른바 권력자원을 배분받지 못한 존재가 불가피하게 양산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실패한 시민을 나는 국민의 비시민화라고 규정하고자 한다.

물론 독재체제 하에서도 배제는 존재했다. 계층적 분화가 억제되긴 했어도 여전히 권력자원의 배분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존재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국민은 공동체라는 공통감각은 이웃이라는 사회적 유대를 어느 정도 유시시킬 수 있었다. 한편 체제는 그러한 공동체성을 체제 유지에 활용하기 위해 비국민을 끊임없이 생성시켰다. 가령 빨갱이는 대표적인 비국민이었다. 그밖에도 무수한 비국민들이 있었는데, 혼혈인이라든가 대마초흡연자, 부랑자 등등 이른바 비정상인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는 노골적이었고, 그런 점에서 독재시대의 배제의 정치는 야만스러운 제거의 정치(politics of elimination)였다.

그런데 민주화 시대의 비시민은 시민 자신에 의해 퇴출된 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퇴출은 독재자에 의한 야만적 행위의 소산이 아니라 시민의 무한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배제는 다분히 은폐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배제의 정치는 잊어버림의 정치(politics of forgetting)[각주:29]라고 할 수 있다.

한데 이러한 민주화 시대의 배제의 정치를 논하는 데서 반드시 유념해야 하는 것이 바로 소비자본주의 문제다. 말했듯이 우리 사회는 1988년을 계기로 급속하게 소비재 산업의 비중이 높아졌다. 소비자본주의란 대중을 끊임없이 소비자로서 호명한다. 그것은 산업역군이라는 과거 독재 시대의 대중 호명방식과는 구별된다. ‘산업역군이라는 이미지는 근검절약하며 노동에 전력투구하는 인간상을 모범으로 하는 상징어라면, 소비자는 자기 욕구의 주체라는 자의식을 개발하는 존재를 시사한다. 주목할 것은 바로 여기에서 사적 공간은 비약적으로 확장되게 된다는 점이다.

위에서 한국의 민주화가 공적 공간을 사사화하려는 퇴행적 욕망을 북돋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했는데, 소비자본주의는 그러한 욕망에 불타는 사적 공간을 비약적으로 확대하는 요소인 것이다. 바로 이 사적 공간의 비약적 확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폭발적으로 대두한 문화라는 시민의 새로운 활동범주에 관한 담론과 맞물린다. 이른바 문화사회라는 용어는 시민적 경험에서 문화적 요소의 규정성이 높아지면서 생긴 사회적 영향망의 변동을 추적하기 위한 이론적 개념화인데,[각주:30] 이 용어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이와 맞물려 문화목회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다만 후자는, 글을 마무리 하는 대목에서 좀더 얘기하겠지만, 다분히 기능론적 시각에서 문화를 활용하는 목회 기술에 관한 문제의식이 지배적이어서, 목회의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는 문화사회의 새로운 감각체계로 인한 고통 감각의 변동이나 사회적 병리성의 재구축 등에 관한 논의가 생략되는 경향이 있다.

아무튼 이러한 소비자본주의화와 문화담론의 확대는 시민의 개인화를 강화시켰고, 이는 동시에 담론공간에서 일상의 발견을 촉진시켰다. 2002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권지예의 소설들은 그러한 일상의 담론화를 특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가령 단편 풋고추[각주:31]는 풋고추라는 요리의 재료에서 등장인물들간의 서로 동일하지 않은 기억들이 소통 불능의 대화 상황을 낳는다. 과거에 먹거리는 거의 언제나 굶주림을 상징했고,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는 국가주의적인 산업화의 동력이 추론됐다. 하지만 일상은 이러한 국가주의에 의해 규율된 일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수한 도발들로 구성되었으며, 그것은 거창한 저항의 몸짓과 그로 인한 고난을 경유한 것이 아니라, 사사로운 기억 속의 쾌락을 통해 수행되었다. 그리고 소비자본주의는 이러한 사사로운 기억의 쾌락을 산업화하는 무수한 기술들로 채워졌다. 하여 이 시대 시민, 아니 심지어 민중은 억압적 규율 아래 놓인 게 아니라 유혹을 통해 규율되고 있는 것이다.[각주:32] 여기서 우리는 지구화를 생각해야 한다. 전 지구적인 사회적 통합(social integration)의 가능성이 전자매체의 발전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적 도약을 통해 급속하게 향상됨으로써 다양하게 추진되는 전지구적인 다중적 연결망의 구축 과정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 과정은 관계의 공간적 폭이 비약적으로 넓어지는 측면만이 아니라, 미시적으로 확대되는 측면을 모두 포함한다. 즉 지구화는 거시미시적인 공간 확대 과정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한데 현행의 지구화는 크게 두 개의 차원에서 폭력적으로 진행되는데, 하나는 지구무기체계에 의해서이며, 다른 하나는 지구자본체계에 의해서다. 후자는 1997년 이른바 ‘IMF 체제를 통해 우리 사회에 폭압적으로 엄습해왔고, 전자는 최근의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도 이러한 전쟁의 제3자가 아니라는 지구적 위기의식과 함께 우리의 일상에 위압적으로 다가왔다.[각주:33]

어쨌든, 어느 유형의 제국적 지구화 모델이 국면적 지배력을 행사하든 간에, 지구화의 체험이 삶을 일상 깊은 곳까지 전쟁터처럼 재조직화하는 효과가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없다. 이러한 전쟁의 일상화는 우리사회에선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냉전사회의 체험은 전쟁의 폭력성을 직접 체험하게 한 것이 아니라 예감하게 함으로써, 일상을 전시체제처럼 총동원하게 하는 방식으로 조직했던 것이다.[각주:34] 요컨대 전쟁의 일상화는 일상을 전장(戰場)으로 조직한다. 그런데 냉전체제는 단일한 국가적 의제에 맞추어 개개인의 삶이 총동원되었다면, 또 다른 전쟁의 일상화를 낳는 메커니즘인 지구화는 개체적 의제를 따라 삶을 다양한 의제 속으로 동원한다. 국가적 총력전의 사회는 개인적 총력전의 사회로 전이된 것이다.

한데 우리는 전쟁의 일상화 속에 담긴 또 다른 차원에서의 일상에 주목해야 한다. 홍콩 출신 작가 짱아이링(張愛玲)의 작품들에 대한 비평의 글[각주:35]에서 임우경은 전쟁이 일상의 파괴에 대한 공포인 동시에 일상의 종식으로서의 축제이기도 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공포와 축제, 이 두 개의 이율배반적 요소의 동시성이 바로 현대적 일상성의 특징임을 주장한다. 이것은 일상화된 전쟁의 또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즉 전쟁은 쾌락을 통해 일상의 무료한 반복을 견뎌내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구화가 시감각적 쾌락을 극대화하는 체계라는 점에 주목한다. 즉 지구화는 시각적 쾌락의 매개로 일상화된 전쟁의 위기를 은폐한다.

이와 관련하여 소비자본주의와 지구화의 내습은 소비의 실패자전쟁의 패잔병처럼 취급하고 처벌하는 배제의 사회적 문화를 낳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는 우리 사회의 무능력 담론이 법적 정치적 개념에서 시장적 개념으로 초점이 전이되면서 나타나는 소비의 실패자에 대한 처벌의 메커니즘을 연구하면서,[각주:36]역할기대행위능력이 모두 부정적인 유형의 무능력과 역할기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행위능력이 낮다고 여겨지는 무능력이라는 두 유형의 시장적 무능력을 분류한 바 있다. 여기서 전자가 시민의 공간에서 퇴출된, 즉 비시민화된 존재를 가리킨다면, 후자는 그러한 퇴출의 공포를 예감하면서 현실의 일상을 전쟁처럼 맞이하게 되는 시장화된 시민을 가리킨다. 그런데 위의 연구에서 내가 주목하려 했던 것은 이들 시장화된 시민이 어떻게 퇴출된 자의 배제의 정치에 자발적으로 연루되는가를, 그 메커니즘을 해석해보려는 것이었다. 무능력의 담론이 일상화됨으로써 소비의 욕망이 강화되는 한편 퇴출의 공포가 내면화되면서 사람들은 타인의 배제에 무감각해지거나 망각하게 되는 잊어버림의 정치의 행위자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상을 도식적으로 정리하자면 민주화는 국민의 시민화를 낳았고, 소비자본주의와 지구화는 이들을 시장화된 시민으로 재주체화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개개인의 고통이 사회적 체계와 연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회적 고통은 과거와 같이 거시정치의 공간에서 실행되는 것일 뿐 아니라, 보다 미시적적인 일상 공간에서도 벌어진다.[각주:37] 그리고 이러한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사람들의 의식무의식적 행위 전략은 퇴행화된 민주화와 소비자본주의화, 그리고 지구화의 체험을 통해 형성된 일련의 게임룰 속에 포섭되었다. 그것은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한데 이러한 고통 전가 과정의 야만성이 적나라하게 자행될 수는 없다. 민주화를 경유한 사회의 공통감각은 그러한 적나라한 야만성을 죄악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적나라한 야만은 적지 아니 우리 사회에 관행화되고 있지만, 사회는 그것을 처벌함으로써 스스로가 민주화된 사회의 이상에 다가가고 있다는 착시에 빠진다.

한편 무능력 담론은 그러한 야만성이 사회적으로 은폐되는 또 하나의 특징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무능력은 사회적 배제와 처벌의 동기를 개체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능력 담론은 능력의 판타지를 동반하기 마련인데, 상업화된 대중문화는 그러한 판타지와 상호연관되면서 무수한 스타들을 탄생시키고, 이는 사회적으로 스타와 스스로를 동일시하려는 대중의 욕망의 정치를 낳는다. 이러한 욕망의 정치는 일종의 쾌락이며, 이러한 쾌락은 그 이면의 고통을 그리고 그 고통의 전가를 망각하게 한다. 하여 고통은 사회적으로 거래된다. 그 거래 과정에서 시민의 쾌락과 비시민의 고통은 비대칭적으로 배분되며, 그 배분은 시장에서의 능력으로 환산된다. 요컨대 최근 우리 사회가 시장화된 시민의 사회로 급격하게 전화하고 있다면, 그러한 사회는 그 하부에 일상화된 고통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적나라한 야만은 제거되는 대신 은폐된, 부드러운 야만의 사회로 재조직되고 있다.

하여 우리 시대는 무수한 고통의 신음소리가 넘실거린다. 하지만 그 신음소리는 많은 경우 사회적인 것으로 기억되지 않고 개인화된 원인의 소산으로 이해된다. 심리학자 마리-프랑스 이리고앵(Marie-France Hirigoyen)이 최근 심리학이 사회적인 것을 심리화/개인화한다고 자기비판한 것처럼,[각주:38] 신학 또한 무수한 개인화하는 담론 틀을 통해 고통의 사회적 책임을 은폐하고 있다. 그리하여 고통의 소리는 있되, 그 원인은 망각되거나 은폐되는 현상, 그러는 가운데서 일상 속에서 무수한 폭력과 희생이 되풀이되는 상황이 오늘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주된 요소라는 점을 나는 이 글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글을 마무리하는 대목에서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대한 신학의 과제를 이야기해보자.

 

변화하는 시대, 신학의 길찾기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의 변화가 매우 급격하게 체감되는 상황에서 사회는 곳곳에서 변화에 적응하느라 분주하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때로 성공적으로 변화에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들이 발견된다. 이러한 성공에 대한 비판적 해석들은 세속적 성공주의를 신앙제도로 잘 구현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각주:39]이것은 성공을 목적론적 가치의 최종에 두고 다른 일체의 것들을 대상화하는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성공주의 이데올로기), 그것을 구현하는 창조적 실행능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원동원 능력을 통한 제도화의 성공 여부와 밀접히 관련된다.

여기서 대상화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대상화하는 주체가 필요에 의해 다루는 방식에 의해서만 그 대상적 존재가 의미화될 뿐이다. 청중의 적극적 반응을 강조하는 열린예배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단지 청중은 보다 잘 기획된 쇼프로그램의 기획에 따라 반응하도록 요청받을 뿐이다.[각주:40] 여전히 강력한 규정력을 갖고 있는 기독교의 정전주의나 성직자주의가 이러한 대상성의 토대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는 성공주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성공을 위하여 복무해야 하며, 이렇게 하여 성취된 성공은 그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를 변혁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이러한 신앙의 기조를 형성한다. ‘복음화라는 기독교적 팽창주의 담론은 그러한 변혁의 시나리오를 거칠게나마 담고 있다. 이른바 문화목회라는 것이 의제화되는 대목은 바로 이러한 성공주의적 도구주의와 관련된다.

실은 이 경우 오늘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역사성은 문화의 동시대성의 배후에 놓인 시공간적 알리바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공주의적 복음은 시공간적 배후와 대화하기보다는 현재의 그것을 단지 도구화하려는 데만 주목할 뿐이다. 또한 일종의 담론의 메트릭스인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를 무시하고 이질적인 담론을 공격적으로 끼워 넣음으로써 복음화를 실현하려는 서구 제국주의적 기독교의 관성은 한국 기독교에서도 조금도 지양되지 않고 여전히 퇴행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라는 표현보다는 역사성이 제거된, 단순 대상으로서 해석될 여지가 많은 문화라는 다소 중립적이고 애매한 표현이 기독교가 오늘의 변화를 논하는 담론틀로 선호된다.

하여 기독교의 성공 중심적인 문화변혁론은 변화하는 오늘의 문화를 두 가지 이율배반적 함의로 이해한다. 하나는 위험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공의 수단이라는 것이다.[각주:41] 물론 이것은 서구 제구주의의 식민주의적 담론과 등가적이다. 마치 콜럼부스가 자신의 성공의 수단으로 위험한신대륙을 이용하고, 콜럼부스를 고용한 스페인 왕실이 왕정의 성공을 위해 이 위험한 인물을 이용한 것처럼 말이다. ‘복음화라는 팽창적 정복주의 담론은 이러한 세속적 성공주의를 정당화한다. 즉 말하지 못하는 문화적 대상에게 언어, 즉 하느님의 축복을 전수한다는 논리는 그 주체의 세속적 성공주의를 미화한다.

앞의 1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성공주의적 문화변혁론은 복음 지상주의 내지는 복음 우월주의에 지나지 않다. 그것은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내재화할 수 없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세속적 성공주의를 추구하는 교회들의 성공은 시장의 체계, 그 맘몬의 질서가 부여하는 우생학적 원리에 의존한다. 요컨대 이 세계의 질서를 위험시하고 단지 세계를 포섭하는 일방향적 소통담론으로서의 복음화를 추구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그것은 시장의 우생학적 원리를 활용하여 이룩된 성공인 것이다. 즉 복음 지상주의 혹은 복음 우월주의는 오늘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에서 복음을 재의미화하기 위해 시장을 대화의 파트너로 받아들인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명시적으로는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교화의 대상이라고 주장할 뿐, 실은 시장화된 교회와 신학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시각은 소비자본주의화와 지구화의 가치를 내재화한 신학을 추구한다. 미국의 기독교가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선 것처럼, 한국의 기독교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나는 제2장에서 오늘 우리 시대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를 정리 요약하면서, 지난 시대의 고통의 메커니즘이 오늘 우리의 시대에는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말하려는 데 초점을 두었다. 퇴행화된 민주화, 폭력적으로 엄습해오면서도 그 폭력을 교묘히 은폐하면서 우리에게 유혹으로 다가오는 소비자본주의화와 지구화라는 변화의 조건 아래서 고통의 메커니즘이 재조직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 신학과 교회적 목회 혹은 선교의 초점이 세속적 성공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돌봄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최근 권수영은 서구의 목회신학이 하느님나라보다는 하느님 인식에 더 초점을 두어왔다고 비판하면서, 오늘 우리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가 담고 있는 고통의 구조에 해체적으로 다가가는 방식의 돌봄을 문화변혁적 목회신학의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각주:42]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고통을 사사화하는 체계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함축한다. 개개인이 일상 속에서 겪고 있는 고통은 사회적인 연관 속에서 이해되어야만 비로소 그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9장의 소경의 치유 이야기는 그러한 하느님나라적 돌봄 중심의 문화변혁적 복음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제자들은 한 소경을 보며 예수에게 묻는다. ‘저이가 왜 보지 못하나요?’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의 대답을 제한한다. ‘그가 죄를 지어서인가요 아니면 부모 탓인가요?’ 필경 이는 복음서가 바라보는 유대주의의 통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 체제의 수호자인 유대인만의 생각이 아니라, 심지어 예수운동의 핵심인자인 제자들의 내면까지 지배하고 있다. 그러한 생각이 일상의 인식세계를 침투한 것이다. 여기에는 예수가 고통을 사사화하는 체제, 심지어 자신의 제자들의 생각까지 지배하고 있는 그 뿌리 깊은 인식틀에 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대인은 다시 보게 된 이를 추궁한다. 하필 그 날이 안식일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볼 수 있게 된 이의 삶이 아니라 그 치유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옳음의 체계에 부합하는지를 묻느라 장애인이었던 그이를, 그의 고통과 그의 환희를 공감할 수 없다. 이들에 대한 예수의 분노, ‘너희들이 차라리 소경이었다면 좋았을 거다. 그러나 너희는 본다고 말하니 그 죄가 심히 중하다는 저주의 말은 유대체제가 고통을 거래하는 시장이었음을 폭로한다.

9장 전체에 걸쳐 13번이나 나오는 본다는 뜻의 동사 블레포(βλεπω) 볼 수 없는 자였으나 치유된 이의 본다고 자부하지만 보지 못하는이들을 대조하는 문맥에서 교차적으로 사용된다. 이들 본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이들은 보지 못하는다른 이들의 생각을 지배함으로써, 자신들의 을 통해 상징권력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권력을 위해서는 소경이 필요하다.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이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경은 진리 망각의 존재를 표상하게 되며, 사람들의 죄를 몸으로 표상하는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한데 여기에는 하나의 착시가 있다. 사람들은 그 희생양이 자신들의 죄를 대신 짊어진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리 망각의 체계의 비밀이 지켜지기 때문이다. 하여 그가 소경인 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직계가족의 죄의 탓이라는 통념이 생겼다.

이상의 해석은 르네 지라르의 틀을 이용한 나의 상상의 소산이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이 인류학적 개연성을 지니고 있듯이, 그에 의존한 나의 해석도 역사적 개연성을 주장할 수 있다면, 예수의 치유는 돌봄의 사회적 성격을 은폐하는 체제에 대한 비판이고, 그러한 은폐의 체제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돌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고통을 회피하는 후방지역[각주:43]을 앗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더욱 심각한 고통의 체제로서 구축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전 영역의 전방지역화는 오늘날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서 회피되고 있다. 타인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체계가 보다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맥락 없는 즐거움, 감각적 쾌락의 체계가 발달하게 되면서 고통을 전가하면서도 그것에서 무감각하게 되는 은폐의 메커니즘이 연관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돌봄의 목회는, 그러한 그통을 찾아 헤매며 겨우겨우 읽어내는 고고학적 감수성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려면 교회 대 세속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 교회 안팎 도처에 목회의 현장이 있다. 하여, 신학이 오늘 우리 사회의 변화를 성찰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런 현장들, 고통이 있는 그 자리들에서 그 소리들의 내력을 읽어내고 드러내며(증언) 그것의 은폐의 장치들과 대결하는 데 있다고 본다. 󰡖

  1. J. 슐테-자쎄 & R. 베르너, 〈기호분석과 문예학의 대상규정〉, 허창운 편저, 《현대문예학의 이해》(창작과 비평사, 1989), 55~65쪽 참조. 여기서 저자들은 네 가지 컨텍스트를 말하였는데, 나는 이를 위의 세 가지로 재정리하였다. [본문으로]
  2. 신학은 끊임없이 성서 속의 한 텍스트보다는 정전(Canon) 전체의 종합적 의미를 묻는 데 주목했다. 설사 그 종합적 의미라는 것이 실상은 바울 해석사에 좌우되어 왔더라도, 그것은 항상 ‘종합적’이라는 강박증을 통해 표출되었다. [본문으로]
  3. 해석의 주체가 마주치는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는 객관적 세계가 아니라 언어화된 세계다. 그것은 다양한 의미들이 서로 긴밀히 혹은 느슨히 연계되기도 하고 또 서로 경합하기도 하면서 엮이어 있는 네트워크 형태다. 그런 점에서 컨텍스트는 담론의 망(network of discourses)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4. 박상진, 〈컨텍스트의 이론: 데리다와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20(2003), 197쪽. [본문으로]
  5. 존 크라니어스커스, 〈번역과 문화횡단 작업〉, 《흔적》 1(문화과학사 2001) 참조. [본문으로]
  6. Walter Benjamin, “The Task of the Translator”(http://social.chass.ncsu.edu/wyrick/debclass/benja.htm). 이 글을 쓸 당시(1923년) 벤야민은 아직 그의 후기 사상에서 보이는 역사철학적 시각을 갖기보다는 낭만주의적인 형이상학적 순수언어에 더욱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피터 오스본이 벤야민의 번역이론을 그의 후기사상을 통해 재해석함으로써 번역에 관한 일반이론을 제시한 것처럼, 나 또한 그의 후기 사상을 통해 초기의 번역이론을 재규정하여 원본과 다른 역사문화적 컨텍스트간의 변증법적 상호과정을 번역이라는 메타포로써 말하고 있다. 피터 오스본, 〈번역으로서의 모더니즘〉, 《흔적》 1 참조. [본문으로]
  7. 개념사가(槪念史家)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에 의하면, 서양 사상의 개념사에서 이러한 단일 보편적 개념화를 통해 주체가 형성된 것은 서양 근대 사유의 특징에 속한다. 그런 점에서, 비록 코젤렉은 신학이라는 단어에 얽힌 개념사에 대해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역시 근대 서양의 일반적 자기 이해의 맥락에서 확정된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듯싶다. [본문으로]
  8. 나는 이러한 관점에서 ‘정전’으로서의 성서가 근대적 현상임을 연구한 바 있다. 김진호, 〈탈정전적 성서 읽기의 모색〉, 《반신학의 미소》(삼인, 2001). [본문으로]
  9. 여기서 ‘장’과 ‘아비투스’는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용어를 빌려온 것이다. 또한 나는 앞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를 논의할 때 부르디외의 장 개념을 염두에 두면서 이야기하였다. 이에 대하여는 이상길의 논문 〈장 이론: 구조, 문제틀, 그리고 난점들〉(《문화와 계급: 부르디외와 한국사회》〈동문선 2002〉)을 참조하라. 또한 그의 장과 아비투스 개념을 한국 기독교의 형성에 관한 문화적 접근 방법으로 활용한 것으로, 최종철, 〈한국 개신교 문화의 형성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1)~(2): 삐에르 부르디외의 문화사회학 이론의 한국적 적용〉, 《기독교사상》(1996.2&3)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10. ‘야생의 실재’라는 표현을 쓴 것은, 우리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에 대한 사회학적, 인문학적 연구가 충분치 않아 담론화의 결핍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러한 결핍에도 불구하고 그리 많지 않은 연구성과들에 대해 무관심한 채 마치 무정형의 영역처럼 바라보고 서구 신학의 사회구성 모델에 더욱 주목하는 신학자의 일상적 시선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11. 서남동, 〈두 이야기의 합류〉, 《민중신학의 탐구》(한길사, 1983) 참조. [본문으로]
  12. 최형묵, 〈민중해방의 정치와 ‘합류’의 해석학―서남동의 《민중신학의 탐구》 다시 읽기〉, 《진보평론》 14(2002 겨울) 참조. [본문으로]
  13. 이 글들은 모두 《민중신학의 탐구》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으로]
  14. 〈두 이야기의 합류〉 48쪽. [본문으로]
  15. 그의 말기 저술인 〈빈곤의 사회학과 빈곤의 신학〉(《민중신학의 탐구》에 수록)에서 한국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를 이야기하는 것이 곧 신학적 서술이 되는, 새로운 신학하기의 기술(記述) 방법의 가능성이 제시된다. 하지만 이러한 서술을 좀더 발전시키기 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후 제2세대 민중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신학적 문제의식이자 주요 의제인 ‘과학적 현실분석’과 ‘이데올로기 선택’ 주장의 결정적인 전거로서 서남동의 이 글을 주목하며, 그러한 관점에서 서남동 읽기를 조직하고자 한다. 강원돈, 〈서남동의 신학〉(한국문화신학회 2005년 가을 학술대회 발표글〈2005.11.25〉) 참조. [본문으로]
  16. 나의 책 《예수 역사학―예수로 예수를 넘기 위하여》(다산글방, 2000)의 4장과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삼인, 2006)에 실린 최근의 나의 글들인 〈이름을 불러주기까지 그들은 꽃이 아니었다―안병무의 ‘오클로스론’ 다시 읽기〉와 〈두 개의 복음, 민중이 은폐된 예수와 민중이 전한 예수〉 참조. [본문으로]
  17. 최근의 북미의 연구들은 예수 전승 연구에서 Q 자료를 주목하는데, 그들 대다수는 그것의 문헌성에서 연구의 실마리를 발견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술에 주목하는 안병무나 타이쎈의 논의와는 차별화된다. [본문으로]
  18. 田川建三, 김명식 옮김, 《마가복음과 민중 해방―원시그리스도교 연구》(사계절, 1983) 참조. [본문으로]
  19. 안병무는 다가와의 책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의 오클로스론은 다가와의 선행연구와 매우 비슷하다. 아마도 그 무렵 주19)에서 인용한 다가와 저서를 서남동 등으로부터 듣고 알게 되었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물론 안병무는 일본어를 잘 읽을 줄 안다. 하지만 안병무의 ‘읽지 않았다’는 평소의 말을 익숙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것이 간접적인 접촉의 결과라고 판단한다. [본문으로]
  20. 안병무 자신은 청중의 예비검열이라는 용어를 알지 못했다. 다만 그는 상상력을 통해 동일한 문제의식을 담은 관점을 드러낸 것이다. [본문으로]
  21. 최종철, 〈한국 개신교 문화의 형성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1)~(2): 삐에르 부르디외의 문화사회학 이론의 한국적 적용〉 참조. [본문으로]
  22. 그는 이를 상징체계와 관련된 ‘생활문화’와 미학적 체계와 관련된 ‘표출적 문화’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본문으로]
  23. 최형묵, 〈민중신학의 고유성과 그 전개〉,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손이 없기 때문이다》(다산글방, 1999); 김진호, 〈한국사회의 근대성과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를 위하여〉, 《시대와 민중신학7: 한국 기독교, 그 어두운 자화상》(다산글방, 2002) 참조. [본문으로]
  24. 이러한 견해는 일반화된 것이지만, 최장집에게도 가장 명쾌한 논의를 볼 수 있다.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한국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후마니타스, 2002) 참조. 한편 이러한 민주화라는 규정 요인을 중요시하면서 한국사회의 변화를 논의하려는 시도들이 있는데, 이런 관점에 따라 오늘의 시대를 ‘1987체제’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1987년 체제’라는 명칭은 박형준(동아대 사회학과 교수)이 제기한 관점으로, 《당대비평》이 24호(2004년 겨울)에서 특집 ‘겨울 길목, 1987체제라는 희망의 덫’이라는 주제로 먼저 다루었고, 《창작과 비평》이 130호(2005년 겨울) 특집 ‘19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하여’라는 주제 아래서 다소 다른 관점에서 체계화를 시도한 바 있다. [본문으로]
  25. 소비자본주의로의 변화를 논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있는데, 그 계기적 시기를 1988년으로 보는 것은 최홍준의 탁월한 논문에 의존한 것이다. 최홍준, 〈1980년대 후반 이후 문화과정의 정치경제적 조건과 도시적 경험에 관한 연구〉(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석사학위 논문. 1993.8) 참조. [본문으로]
  26. 이러한 견해 역시 매우 일반적인 것이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이러한 논지를 편 것은 아마도 이병천이 아닐까 한다. 이병천, 〈역사적 관점에서 본 한국경제의 위기 해석〉, 《경제학연구》 47/4(1999) 참조. [본문으로]
  27. 이하의 내용은 내가 《당대비평》 주간으로 재직한 2003~2004년 사이에 저술한 논문, 에세이, 잡지 머리글, 기획취지문, 청탁서 등으로 작성한 글들에 기초한 것이다. 이것은 지난 2006년 한국조직신학자대회에서 발표한 나의 글 〈고통과 폭력의 신학적 현상학: 민중신학의 당대성 모색〉에서 먼저 정리되었고, 이 글에서 다소 축약 보완하면서 재정리하였다. [본문으로]
  28. 안병무, 〈하늘도 땅도 공(公)이다〉, 《신학사상》 53(1986 여름) 참조. [본문으로]
  29. ‘잊어버림의 정치’라는 표현은, 박배균과 정건화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지구화된 우리 시대의 배제의 정치가 갖는 특징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인데, 나는 이 용어를 좀더 확장해서 우리 시대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뒤에서 나는 지구화 과정의 해석에서 이 개념을 다시 사용할 것이다. 박배균・정건화, 〈세계화와 ‘잊어버림’의 정치―안산시 원곡동의 외국인 노동자 거주지역에 대한 연구〉, 《한국지역지리학회지》 10/4(2004) 참조. [본문으로]
  30. 문화사회로의 이행에 관한 한국학계의 논의를 보려면, 《문화과학》 17호(1999 봄)의 특집 ‘문화사회로의 전환’에 기고된 글들 참조. 그밖에도 《문화과학》은 문화사회에 관한 다양하 논의를 지속적으로 전개・발전시킨 글들을 무수히 수록하고 있다. [본문으로]
  31. 권지예의 소설집 《폭소》(문학동네, 2003)에 수록. [본문으로]
  32. 2006년 민중신학자대회에서 발표한 나의 글 〈그대가 아픔을 말하는 빼앗긴 목소리를 되찾기까지〉 참조. 이 글의 초고는 원래 ‘신학아카데미 탈/향’의 2005년도 상반기 강좌에서 발표되었는데, 그 글의 원제는 〈민중은 유혹받고 있다〉였다. [본문으로]
  33. 이러한 지구화 과정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는 나의 글 〈팍스로마나, 팍스아메리카나, 팍스크리스티아나: 역사의 예수 연구의 정치성에 대하여(재론)〉, 《세계의 신학》(2003 봄) 참조. [본문으로]
  34. 전쟁의 폭력에 대한 ‘예감’을 통해 전쟁을 일상화하는 것에 대하여는 도미야마 이치로, 임성모 옮김, 《전장의 기억》(이산 2002) 참조. [본문으로]
  35. 임우경, 〈전쟁과 일상: 전쟁 체험과 張愛玲의 문학 세계〉, 《중국현대문학》 17(1999 겨울) 참조. [본문으로]
  36. 김진호, 〈카인 콤플렉스와 무능력자 담론〉, 《당대비평》 23(2003 가을)와, 이 논문을 다소 수정 보완하여 신용불량자에 대한 연구로 재정리한 글인 〈무능력과 신용불량담론, 그 시민적 욕망과 ‘악의 진부화’에 대하여〉,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58(2004년 5~6월호) 참조. [본문으로]
  37. 미시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고통에 관한 연구사적 소개를 보려면 신진욱, 〈일상의 사회적 배제와 커뮤니케이션의 미시정치: 모빙, 불링, 사이코 테러의 집단 다이네믹, 권력기술, 권력관계〉, 《사회이론》 26(2004) 참조. 또한 이러한 미시적 폭력의 현장에 대한 연구는 특히 청소년학이나 아동학 연구지들에서 이른바 ‘집단따돌림’에 대한 연구로 무수히 제출되었다. [본문으로]
  38. 신진욱, 같은 글, 229쪽. [본문으로]
  39. 종교학자 이진구는 한국개신교의 주된 공통감각의 하나로 ‘성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언급한 바 있고, 나는 이를 ‘승리주의’로 명명하였다. 이진구, 〈개신교와 성공주의 이데올로기〉, 《당대비평》 12(2000 가을); 김진호 이숙진, 〈‘한국의 근대’와 민중신학: 회고와 전망〉, 《반신학의 미소》(삼인, 2001). 한편 한종호는 전병호 목사의 신학을 분석하면서 세속적 성공주의가 어떻게 그의 설교 속에 잘 녹아 있는지를 분석해낸다. 한종호, 〈세속적 성공주의와 역사의 왜곡: 전병욱 목사〉, 《기독교사상》(2002.10) 참조. 최근의 ‘열린 예배’ 등은 이러한 세속적 성공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예배 제도적 포맷으로 그 유용성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용함을 모방하려는 많은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그 효력은 자원이 풍부한 대형 교회들의 전유물임이다. 신문철 김효성, 〈포스트모던 문화와 교회의 감성적 예배: 현대 교회의 열린예배에 대한 비판적 고찰〉, 《조직신학연구》 6(2005) 참조. [본문으로]
  40. 신문철 김효성, 같은 글, 66~67쪽. [본문으로]
  41. 김승호는 한국의 문화적 지평을 포스트모던 문화상황으로 규정하고, 포스트모던 일반이론을 끌어들여 상대주의, 종교 관용, 다원주의적 특성이 위험성의 요소라고 해석하며, 이러한 위험성에서 복음의 기회를 상항한다. 김승호, 〈포스트모던 상황에서 한국복음주의 교회의 선교〉, 《성경과 신학》 39(2006) 참조. [본문으로]
  42. 권수영, 〈‘문화분석’으로 본 하나님 나라: 해방신학의 목회신학적 전망〉, 《한국기독교신학논총》 41(2005) 참조. [본문으로]
  43. 이 표현은 기든스에게서 빌려온 개념으로, 가령 일터에 대해 쉼터, 노동/공부시간 대 쉬는 시간 등 근대적 시공간 개념에서 잘 발달된 것이다. 그런데 그는 급진화된 근대(radical modern, 그는 포스트근대를 이렇게 해석한다)는 감시와 욕망의 체계가 발달함으로써 후방지역의 전방지역화를 훨씬 정교하게 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