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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교회 보수주의가 놓치고 있는 감수성

[경향신문] 2018년 11월30일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칼럼 원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13021130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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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보수주의가 놓치고 있는 감수성

 

드디어 근무 시간이 끝났다.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설거지도 깔끔히 마무리했으며 마지막으로 계산대 전원을 껐다. 그때 이십 명쯤이나 되는 손님이 카페로 우르르 들어왔다. 그는 오늘 영업이 끝났습니다.”라고 말했다. 손님 한 사람이 묻는다. “주인이세요?” 상냥한 말투였지만 가시가 느껴졌다. 하지만 아버지보다 더 연장자로 보이는 어른인데다 손님이니 그도 최대한 상냥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니요, ‘알바입니다.”

어느 대형교회 목사가 설교 중에 든 예화다. 다만 알바에게 주인이냐고 물었던 당사자인 그 목사 중심의 얘기를 알바의 시선으로 각색했다. 개신교신학자로서 나는 목사를 평할 땐 몹시 인색한 편이다. 하지만 그 설교의 내용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설교 테크닉에 있어선,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대단히 훌륭해 보였다. 다른 교회의 설교들보다 거의 두 배쯤 되는 긴 설교였음에도 신자들의 몰입도도 매우 높아 보였다. 또 그의 목회 디자인의 결과로 추측되는 것들에서 이른바 맞춤형 선교의 한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그만큼 대중의 다양한 기호를 읽고 그 틈새로 촘촘히 다가가는 현란한 종교 마케팅 기술을 엿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예화에서 그는 어쩌면 감추고 싶었을지도 모를 편견을 들키고 말았다. ‘알바근무시간 이후가 카페에 한꺼번에 몰아닥친 20명의 손님들로 인해 발생할 매출보다 가치가 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스무 잔의 커피로 인해 증가한 매출액이 알바노동자의 초과노동의 대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겠지만, 이 문제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지만 그런 건 차치하고도, 알바노동자가 근무시간 이후에 어떤 스케줄이 있는지 목사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상대가 알바임을 확인한 순간 이렇게 말했다. “그럼 그렇지.” 그 시간에 이 알바노동자에게 스무 잔의 매출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그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목사는 매출액을 증가시키는 일이 그 카페 관계자 모두에겐 어느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설사 그 알바근무시간 이후에 아무 일도 없다고 하자. 그럼 초과근무라도 해서 매출액을 올리는 일은 당연한 일인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럼 그렇지. ‘알바니까.”라고 비하해도 되는 것인가. 매출액의 증가가 타인의 시간을 침범해도 된다는 보편타당한 원리라는 생각이 그의 뇌리에 박혀 있지 않고서야 이런 표현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요컨대 그는 은연중에 자신의 맞춤형 선교의 대상 속에 알바노동자가 존재하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겠다.

다른 교회가 주최한 강연에서 강사에게 한 청중이 청산해야 할 적폐의 사례를 물었다. 강사는 재벌이죠.”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는 순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한데 곧바로 원로급 토박이 교인들 몇이 연이어 발언권을 점유하며 공격적인 비판을 퍼부었다. 꽤 점잖아 보이는 이들인데, 그땐 좀 지나쳤다. 그날 강연회는 난장판이 되었다.

원로급 토박이 교인 중 어떤 이는, 모 재벌총수가 수차례나 목숨을 끊으려고 마음을 먹으면서까지 사력을 다해 일한 것을 평가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무지를 꾸짖었다. 물론 그이는 꽤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재벌과 직접적 이해관계에 있는 이는 아니었다. 마치 영화 효자동이발사에서 대통령의 전속이발사 성한모가 대통령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그이도 재벌총수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이자 국민의 성공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겠다. 하지만 그 재벌기업들의 성공을 위해 일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에 대해서 그는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앞세우기만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도 노동자의 사적 공간은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전제되고 있다.

한 교회는 최근 급성장하는 분당의 매가처치이고, 다른 교회는 한국에서 가장 격조 높은 교회의 하나로 알려졌다. 그리고 두 교회는 사회적으로 고학력의 중상위층 신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 중심멤버들의 이념성향은 대체로 보수주의적이다. 단 극우주의자들은 별로 없고 합리적 우파성향의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매주 1회 이상 수십 년간, 우리사회의 다른 어느 공동체보다 긴밀히 얽힌 연줄집단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계층적인 편견이 깊게 스며 있는 말들이 도처에 넘실댄다. 그만큼 한국의 주요교회들 속에 서식하고 있는 보수주의는 하층노동자에 대한 공감력이 퇴화되어 있다. 거기에 교회의 위기, 그 한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