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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권력독점구조를 개혁하려는 교회들도 있다

[경향신문] 2019년 1월26일자 '사유왕성찰' 코너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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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독점구조를 개혁하려는 교회들도 있다

 

JTBC가 지난 19, 오랫동안 분규를 겪고 있는 서울교회 사태를 보도했다. 무려 4백 개가 넘는 차명계좌가 발견되었고 이것들을 사실상 운용한 혐의로 고발된 장로 모씨가 관여된 횡령액이 2백억 원이 넘는다는 얘기다.

추정컨대 이 교회는 한국 개신교회, 특히 장로제도로 운용되는 교회들의 제도적 취약성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전형적 사례다. ‘장로제는 담임목사와 시무장로(현직장로)들로 구성된 사실상의 최고의결기관인 당회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정치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목회 전문가인 목사와 경영 전문가인 장로가 함께 교회를 이끌어 가는 제도다. 여기서 방점은 후자에 있다. 목사가 독점했던 권력을 평신도 엘리트가 분점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한국개신교 중 장로교 신자, 목사, 교회당 수가 각각 전체의 70%를 크게 상회하며, 다른 주요 교파들인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교회들 상당수도 변형된 장로제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개신교의 절대다수는 장로제도로 운용되는 특이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한데 목사는 한 교회에서 재직하는 기간이 제한적인 데 반해, 장로는 피택될 때부터 은퇴(70)할 때까지 대개 한 교회에서 시무한다. 이것은 헤게모니 형성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제도적으로 교회에서 목사의 위상은 사회의 어느 통치자보다도 권력집중적이다. 하지만 교회의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실제적 점유능력은 그 교회에서 잔뼈가 굵은 장로가 더 크기 마련이다. , 장기간 한 교회에서 재임한 목사는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형성된 제도적 권위를 고스란히 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도 목사는 자신을 지지하는 장로를 의결정족수(대개 출석인원의 1/2 또는 2/3)보다 많이 보유함으로써 독재에 가까운 전횡적 권력을 유지한다.

한국 개신교회에서 성공한 대부분의 담임목사들은 그 교회에서 장기간 재임하고 가용자원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으며 그것을 성장에 집중 투여할 수 있는 자였다. 한데 1970~80년대, 대성장기에 성공한 목사들 대다수가 사망하거나 은퇴했다. 목사직 세습 현상은 대개 이런 교회들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훨씬 많은 교회들(대형교회 중 94%, 전체 교회 중 99%)에서 비세습의 방식으로 후임목사가 결정되었다. 그 경우에도 은퇴목사는 원로목사라는 명칭으로 사실상의 최고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튼 비세습 교회들에서 극소수 목사들이 개혁을 시도했다. 그중 가장 어려운 부분은 재정의 합리적 운영의 문제다. 오랫동안 많은 담임목사들이 교회재정을 임의로 운용했고, 이는 재정장로가 장기간 재정을 독점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가능했다. 법은 교인들이 교회의 회계장부를 열람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지만, 절대다수의 교회들에서 교인은 말할 것도 없고 장로들에게조차 열람되지 않는다. 하지만 담임목사와 그를 지지하는 장로들은 그것을 부조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 복잡한 것을 대신하니 편하기도 했겠다. 그런데 그 속에서 횡령이 적잖이 발생했다.

신임 목사가 교회재정의 합리적 운영을 도모하려 한다면 장로들 다수는 그 목사의 반대파가 되곤 하며 그를 몰아내기 위한 갖은 제도적 도구들을 활용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유력한 교회일수록 장로는 교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막강한 인맥을 갖고 있고 그들 자신이 전문적 지식과 능력의 소유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교회가 그랬다. 시무장로 26인 중 목사의 지지파는, 7년을 재임했음에도, 8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반대파의 중심에는 교회가 창립된 이후 27년 중 23년 이상 교회재정을 전담한 장로가 있었다. 게다가 그는 개신교계의 막강한 인맥의 소유자다. 또 반대파에는 법조인들도 여러 명이 있었다.

이런 경우 많은 개혁파 목사는 주저앉아 버린다. 그리고 얼마 후 적폐의 적극적 계승자로 살아간다. 그러나 이 교회는 그렇게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교단들이 조정능력도 개혁의지도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많은 사건들이 일반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되고 그중 몇 개는 개혁파의 손이 들렸다. 언론들도 몇몇 경우를 널리 보도하였다. 서울교회가 그런 사례다. 하여 지금 이 교회는 개혁파의 어깨에 큰 힘이 실렸다.

오늘 한국의 많은 교회들 내부에는 개혁을 위한 노력들이 무수히 벌어지고 있다. 그중 어느 정도 개혁에 성공하고 있는 경우는, 신자든 목사든 장로든, 교회 내부의 다수가 개혁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시민사회가 주목하며 법정에서 정당성을 획득함으로써 가능했다. 장로제의 제도적 한계인 특정 엘리트들의 독과점구조에도 불구하고 개혁은 이렇게 몇몇 곳에서 서광을 비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