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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극우주의가 귀환하고 있다는 착각에 대하여

[경향신문] 2019년 3월23일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칼럼원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322204002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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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주의가 귀환하고 있다는 착각에 대하여

 

전 세계적으로 극우주의가 약진하고 있는데 한국에선 몰락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던 1987년 민주시민의 저항이 있었던 시간에서 꼭 30년이 지난 2017, ‘적폐청산을 외치며 나선 촛불시민에 의해 다시 정권교체가 실현되었다. 한국에서 극우주의는 괴멸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것이 한국 촛불운동의 자존심이고 자긍심이다.

하데 최근 자한당을 통해 극우주의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도처에서 들린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전당대회 기간 전후로 극우주의를 의심케 하는 언행들이 속출했고 그 주역들이 당권을 장악하는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바로 그 즈음 당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최근의 여러 여론조사들을 조금 더 세밀히 살펴보면 나이, 지역, 직종, 성별 등에서 대체로 보수성향이 강한 이들이 자한당으로 복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극우주의의 팽창과 연결시킬 고리는 매우 빈약하다. 오히려 자한당발 극우적 발언들에 대한 부정평가는 여전히 높고, 최근 다시 불거져 나온 권력형 성폭행 사건들과 취업비리 사건들 등에 대한 철저한 재조사 여론은 거의 압도적이다. 한데 이런 의견을 가진 보수성향의 대중이 자한당을 다시 지지하기로 한 양상이 더 두드러졌다.

다행이다. 이 당의 지지율의 급상승이 극우주의의의 약진을 의미하기보다는 동요하는 보수주의의 귀환현상과 더 밀접히 연결된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사실 이것은 문재인정부의 지지율 하락에도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지자들의 이탈은 충성심이 덜한 범주들에서 두드러졌다.

이런 현상은 최근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정치변동의 한 요소다. 보수든 진보든, 당과 이념에 대한 귀속의식이 약한 이들은 과거엔 대체로 정치에 무관심했는데, 최근에는 꽤 높은 관심을 가지고 정치에 개입하려 한다.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은 개신교 신자의 정체성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개신교 신자 총수는 900만 명 안팎이다. 이중 3/4의 신자들은 2~3회 이상 교회를 떠돌아다닌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100~200만 명의 신자들은 교회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넘어 아예 종교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떠돌이 신자의 경험이 무신자 혹은 비신자로의 길로 이어지지 않고 새로운 종교성의 발견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는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런 신자들에 대한 개신교계의 일반적인 논의는 부정적인 종교성으로 전제하면서 분석과 대안을 모색하는 경향이 있다.

내 생각에는 이와 비슷한 일이 한국정치 현상에도 나타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보수와 진보, 그리고 무관심층으로 3분화되었던 정치지형이 최근 달라지고 있다. 무관심층이 아니라 유동하는 정치지지자들(bohemian political supporters)이 광범위하게 등장했다. 해서 박근혜 정권 말기에 그들을 염두에 둔 일단의 정치인들이 빅텐트론을 펴며 이른바 본격적인 포괄정당(catch-all party)을 모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했다. 아직 유동하는 정치지지자들의 정치 감각이 덜 발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포괄정당을 추구하는 이들의 정치 비전이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 변화가 구체화되려면 정당의 내적 민주주의가 훨씬 더 성숙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남는 의문은 그런 유동하는 정치지지자들 중 보수주의 성향의 적잖은 이들이 왜 최근 자한당으로 돌아오는가의 문제다. 하필 극우주의적 망언들이 속출하는 시기에 말이다. 그런 발언들은 일부 극우성향의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데 효과가 있었겠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원심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자한당으로 끌어들이는 구심력이 더 강했다. 그게 무엇인가, 이 점이 핵심이다.

최근 지지율 변화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아마도 북미정상회담의 실패일 것이다. 탈냉전적 평화체제, 그것은 한국사회 내에 작동하는 무수한 갈등요소를 봉합하여 희망으로 변조시키는 욕망의 소실점 같은 것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정상회담의 실패로 갈등을 봉합하게 하는 정치가 마비되었다. 그것은 적지 않은 이들에게 현 정부에 대한 포괄적 실망으로 표현되었고, ‘정부가 대북외교에만 집착하는 것이 가장 큰 이탈의 원인이라는 여론조사기관들이 진단으로 나타났다. 바로 이 점이 보수성향의 유동하는 정치지지자들을 자한당으로 끌어들이는 진공청소기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데 문제는 여전히 자한당이다. 그들은 오인하고 있다. 극우주의가 다시 살아난 것으로 말이다. 해서 더욱 극우화된 언행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시 그들을 좌절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