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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연되는 가해자들의 시간을 멈추게 하라

[경향신문] 2017년 7월13일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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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되는 가해자들의 시간을 멈추게 하라

 

나의 첫 번째 아메리카 대륙 여행지는 캐나다였다. 3주 동안 빡세게곳곳을 누볐지만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이 거대한 나라 남부의 서쪽 편 두 개 주 몇 곳을 다닌 것에 불과했다. 게다가 거의 들리지 않는 영어와 씨름하며 허우적댔던 까막눈의 여행객이 읽어낼 만한 사회가 아니었다. 하지만 단어 하나가 머릿속에 또렷하게 새겨졌고 그 속에 얽힌 사회사가 좀더 깊게 남았다.

캐나다에 입국한 첫날부터 내가 만난 사람들의 말속에 무수히 언급되던 단어가 있었다. ‘인디지너스(indigenous), 이 형용사는 인디지너스 피플의 줄임말로 거의 명사처럼 사용되었는데, 우리가 흔히 인디언이라고 불렀던 이들을 지칭한다. 하지만 그 땅을 발견한 이들이 타자화시킨 대상, 심지어 정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적대적 상상력을 자극했던 인디언이라는 표현과는 달리, 그 땅의 원주인에 대한 예우를 담은 표현이다.

캐나다에서 맞이한 첫 번째 일요일엔 가까운 곳에 있는 성공회 성당의 예배에 참여했다. 마침 주교가 방문하여 예배를 집전했는데, 그는 마치 머털도사의 스승인 누더기도사의 지팡이처럼 보이는 것을 가지고 그 의미를 길게 소개하는 설교를 했다. 그것은 인디지너스추장의 지팡이였다. 이날은 캐나다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지켜오고 있는 선주민을 위한 기념예배의 날이었다. 해서 보수적 성향의 주교조차도 인디지너스의 지팡이 속에 담긴 지혜를 되새기는 설교를 했던 것이다.

인디지너스에 대한 기억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거의 모든 전시관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된 미술작품들이었다. 그중 대부분은 인디지너스출신 작가가 만든 것으로 인디지너스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그 미학적 수준도 그랬지만, 백인 중심 사회에서 매우 고가(高價)로 거래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사회 곳곳에는 인디지너스를 시민의 일원으로 포용하려는 제도적 흔적들이 넘쳐났다. 많은 교회들은 그런 지향을 가진 프로그램들을 실시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편견을 지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데 그런 역사는 오래지 않았다. 이 단어는 유엔(UN)인디지너스 권리선언을 발표한 2007년 어간부터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그이들을 동등한 시민의 일원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정신이 담겨 있다. 하지만 캐나다 정착 150주년(2017)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그들은 인디언으로 불렸다. 그 단어 속에는 절멸의 대상이라는 함의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다 그들을 백인 사회에 동화시켜야(assimilated) 한다는 정책들이 추진된 것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 무렵이었다. 이때는 퍼스트내이선(first nation) 혹은 애브리지널 피블(aboriginal people) 같은 말들이 사용되었다. 이 단어들은, 절멸의 대상인 인디언과는 달리, 선주민으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지만, 열등한, 하여 백인으로 동화시켜야 한다는 생각들과 분리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인디지너스가 된 역사는 불과 10년 남짓에 불과했다.

이제 그들은 적어도 지배적 제도와 담론 속에서는 동등한 시민의 일원이었다. 그 노력은 경의를 표해도 될 만큼 광범위하고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짧은 여행 중에도 현실의 인디지너스와 혼혈인들(Métis)이 지배적 제도와 담론이 추구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적극적인 듯 보였던 포용적 노력이 현실을 바꾸기엔 턱없이 미미했다. 특히 그이들이 집단거주하는 슬램 지역은 가난할 뿐 아니라 마약과 술에 중독되어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오랜 기간 백인들은 인디지너스의 땅을 빼앗고 삶을 약탈해왔음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렇게 존재가 파괴된 이들은 사회가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자존성을 불어넣어 주고자 해도 여간해선 그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경제적 빈곤주체의 붕괴의 상태에 놓여있다.

물론 이런 가해적 폭력은 인디지너스만의 체험이 아니다. 한 허름한 전시공간에서 인디지너스와 인종적 소수자, 그리고 성적 소수자 등이 겪은 트라우마를 공유하며 고통의 연대성을 발견하려 시도하는 이들이 있었다.

한국사회와 동아시아에서도 정복당한 인종이라는 이유로, ‘나쁜 이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위험한 지역 주민이라는 이유로, 혹은 열등한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장기간 삶이 파괴되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 한데 그 가해자들 대부분은 아직도 사과하지도, 가해의 제도를 청산하려고도 않고 있다. 캐나다에서의 짧은 청산의 노력도 우리에겐 생소하다. 게다가 최근 그 가해자들은 더욱 발광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해서 고통의 연대성이 더욱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