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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잘못했더라도 그들도 시민이다

[경향신문] 2020년 2월29일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칼럼(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22820350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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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더라도 그들도 시민이다

 

제주4.3사건에 대한 긴 글을 쓰고 나서 국가폭력의 장소들을 돌아다니는 여행을 떠났다. 순서가 뒤바뀐 셈이지만 지난해부터 쉴 새 없이 이어졌던 숨 막히는 스케줄 사이에 생긴 이 그때였으니 나의 다크투어는 합리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집단체험의 시간표에 따르면 그 틈은 떠나는 시간이기보다는 들어앉는 시간이어야 했다. 비행기 값이 대폭 하락했지만 공항은 한산했고 여행지 내내 사람도 상점도 식당도 쓸쓸했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공항 풍경은 그간 느꼈던 것들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전설의 락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인 더월(The Wall)의 뮤직비디오 속에 나오는 소시지가 되어 가는 학생들의 얼굴이 그렇게 되듯 모종의 공포 속에서 얼굴이 지워진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 하루 전(21), ‘코로나19’에 감염된 확진자가 갑자기 급증했고 첫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그때부터 확산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했고, 그보다 중요한 점은 이제 지역감염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23) 대통령은 감염병 위기 4단계 중 최고단계인 심각단계로 격상하는 경보를 발령했다. 아직은 감염사례가 대구와 경북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니, 그것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국민의 주권에 적잖은 제한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귀국하던 날 어간 한국에서 벌어진 코로나19’ 사태의 긴박한 상황 전개의 중심에는 신천지 대구교회가 있었다. 추정컨대 중국 우환 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신천지 교인들이, 춘절 직전인 123일 봉쇄령이 내려진다는 소식을 듣자 대거 우환을 빠져나오는 수백만 명의 인파들 사이에 끼어 대구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감염된 이들이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켰고 전 국민을 질병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으며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 국제적 신뢰도의 하락 등, 엄청난 재앙이 초래되었다는 얘기다.

일부 확인된 것에 기초해 본다면 이러한 추정은 개연성이 크다. 그럼에도 신천지 교단은 자신들도 피해자임을 강변했다. 더욱이 정부의 방역 활동에 협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정부는 신천지 교인들의 포교활동이 지역감염의 원인이라는 판단 아래 전국 곳곳에서 신천지 교회당의 강제폐쇄 조치를 취했고, 본부를 포함한 몇 곳에 대해서는 압수수색과 방역소독을 강행했으며, 모든 신천지 교인에 대한 감염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구나 경북 지자체의 미온적 태도와는 달리, 중앙정부나 서울경기도 지자체 등의 이러한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은 합법적이고 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의도적인 가해자가 아니더라도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행위자들에 대한 합법적 제한 조치들은 정당하고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담론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 무렵부터 매스미디어와 SNS를 통해 유통되는 신천지에 대한 비판적 담론들이 무수히 쏟아져나왔다. 이 교파의 교주인 이만희는, 여러 부패한 대형교회 목사들처럼, 많은 권력형 비리와 폭력의 혐의를 받아왔다. 권력이 1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면 권력형 범죄의 가능성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왜냐면 내부비판을 통한 자정의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여 신천지는 주변으로부터 그런 혐의를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20만 명이 넘는 집단을 교주의 문제로 환원시켜 전체를 악마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비록 그들은 집단적으로 코로나19’ 사태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들 전체를 악의 범주로 낙인찍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책임은 합법적으로 부과되어야 할 것이다. 낙인찍기, 사회적 배제, 비존재화는 그들이 받아야 할 형벌이 아니다. 그들도 시민이다.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