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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나누기(설교)

사탄의 탄생

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201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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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탄생

 

 

하루는 하느님의 아들들이 와서 주님 앞에 섰는데, 사탄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욥기 1,6

 

 

악마 하면 가장 먼저 어떤 이름이 떠오르십니까? 존 밀턴의 실락원을 인상 깊게 읽은 이들은 루시퍼라고 말할 것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리스를 연상하는 이들은 아마도 꽤 독서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예수 설화에 종종 등장하는 바알세불도 있겠지요. 어떤 아이는 디아블로라고 말합니다. 컴퓨터온라인 게임 가운데 디아블로라는 게 있답니다. 아마도 성서에 사용된 그리스어인 디아볼로스에서 유래한 용어겠지요. 바울에게서 단 한번 표현된 벨리알을 떠올리는 이는 별로 없겠지요. 악마의 이미지는 퇴색했지만 붉은 악마의 영어이름을 떠올리는 이들은 데불이라고 말하겠군요. 아마도 최근 가장 많이 알려진 용어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유명한 악마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악마 가운데 우두머리악마로 알려져 있고, 그 힘의 파괴력은 종종 하느님을 압도하기도 하는 존재로 묘사되곤 합니다. 사탄을 표현하고 있는 무수한 작가들은 가장 음흉하고 가장 흉측하며 가장 파괴적인 모습으로 그려냅니다. 아마도 여러분도 마음속에 묘사된 사탄의 이미지는 이런 형상일 겁니다.

그런데 사탄에 관한 이러한 괴기스럽고 포악스런 느낌이 대중화된 시기는 11세기 유럽이었습니다. 사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을 담고 있는 제1성서에서는 아직 그런 이미지는 그다지 보이지 않습니다. 실은 제1성서의 39개 문서들 가운데 사탄이 등장하는 문서는 단 세 개에 불과합니다. 역대기상스가랴서에 단 한 번씩만 나오고, 욥기에서만 11번 등장할 뿐입니다. 요컨대 제1성서 시대에 그이는 아직 그리 유명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참고로 제2성서의 경우엔 조금 더 활발하게 나옵니다. 사용된 횟수가 35회이고, 문서의 수도 12개입니다. 의미에 있어서도 악 중의 악, 우두머리악마 같은 뉘앙스가 상당히 정착된 느낌을 줍니다. 한데, 뒤에서 좀더 얘기하겠지만, 1성서 문서들에 나오는 사탄의 용례는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게다가 제1성서의 세 문서들이 모두 후기에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역대기스가랴서를 기원전 6세기경의 문서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욥기도 그렇게 보는 이들이 많고요. 요컨대 바빌로니아 식민지 시대나 페르시아 식민지 초기의 문서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 시기는 문서가 만들어질 만한 여력이 별로 없던 시기입니다. 스가랴서역대기 같은 방대한 연구와 편찬능력이 필요한 문서는 좀더 부유하고 안정된 사회에서나 편찬이 가능한 것이기에, 페르시아 후기, 그러니까 기원전 5세기 말에서 4세기까지 내려와야 하는 게 더 타당성이 있을 법합니다. 그리고 욥기는 더 후대의 문서, 아마도 헬레니즘 시대로 추정됩니다. 대략 3세기에서 2세기의 것이라는 얘깁니다. 이 책은 잠언 전도서와 함께 본격적인 지혜문학의 장르에 속하는데, 이 장르가 하나의 일관된 문서 형식을 낳을 만한 시기는 헬레니즘 시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헬레니즘 시대는 알렉산드로스가 팔레스티나를 정복한 4세기 말경부터 유대족속의 자주적 민족국가인 하스몬 왕조가 건국된 2세기 중반까지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헬레니즘 시대 가운데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이 경제적, 문화적으로 지중해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기원전 3세기경에 지중해 전반에 걸쳐 매우 많은 문헌들이 제작되었고, 특히 전통귀족이 아닌 신흥소자산가층 작가의 문헌작업이 전에 없이 활발해집니다. 바로 그 시기에 귀족과 종교엘리트 집단의 이른바 궁중지혜가 대중화되고, 대중의 촌락지혜가 촌락과 씨족의 범위를 넘어 보다 보편적 지혜의 지평으로 해석되는 문헌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지혜문학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매우 수준 높은 지혜문학의 하나인 욥기도 이 시기에 태동한 것이라고 보는 게 아마도 가장 개연성이 있을 법합니다.

또한 욥기보다 조금 더 후대(아마도 기원전 2세기경)의 문서이고 외경 문서인 에녹1희년서 같은, 일종의 환상문학에는 사탄이나 벨리알 같은 다른 악마에 대한 묘사가 좀더 빈번하고 체계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욥기는 이들 경외전 문서들보다 조금 이전의 것이고, 아직 사탄이라는 용어가 그리 흔치 않던 역대기스가랴서보다는 후대의 문서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이제 욥기얘기를 좀더 해볼까요?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운문 형식의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산문 형식의 부분입니다. 운문부는 3장부터 42,6까지로 거의 대부분의 분량을 이루고 있고, 지혜장르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현대의 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이 제1성서 문서들 가운데 특히 욥기에 대대 열광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운문부에 대한 해석 때문입니다. 반면 산문부는 서론(1,1~2,10)과 결론(42,7~17) 형식의 짧은 텍스트에 국한됩니다. 아마도 이 산문부는 욥이라는 전설적 인물에 관한 전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원저작 욥기인 운문부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덧붙여진 것 같습니다. 해서 고품격의 지혜문서이자 풍자문학인 욥기는 대중통속소설 형식을 띠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요컨대 산문부가 서론과 결론을 이루면서 운문부를 감싸고 있음으로 해서, 이 문서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라는 얘기지요.

한데 사탄은 산문부 서론에만 등장합니다. 짧은 32개 절 가운데 11차례나 나오고 있어, ‘하느님과 더불어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존재입니다. 한데 오늘 본문에서 보듯 그이는 하느님이 주관하는 회의에 배석한 존재입니다. 이 문서보다 조금 후대의 것인 에녹1, 비록 사탄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 않지만, 추방된 타락천사의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는데, 욥기는 아직 추방당한 타락천사가 아니라 하느님 옆에 배석하여 일종의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좋은 관계를 훼방 놓는존재입니다.

그보다 더 앞선 문서들인 역대기에서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도록 미혹한 자, 스가랴서에서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소의 재건주역인 여호수아(예수아) 사제를 하느님에게 기소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미혹자기소자는 다윗/여호수아와 하느님 사이의 순관계를 훼방 놓고 있다는 점에서 욥기의 훼방자 용례와 유사한 함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사탄은 식민시 시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탄생한 악의 상징으로, 1성서에서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를 훼방 놓는 하느님의 천사로, 좀더 후기의 경외전에서는 추방당한 타락천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2성서에 오면 그이는 악마의 괴수라는, 전형적 악마의 이미지로 점차 형성되고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새롭게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어떤 이는 사탄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해 내게 물었습니다. 이때 그가 상상하는 사탄은 유황불이 타오르는 지옥을 관장하는 악마의 괴수이고, 그 자가 그리스도인이 된 자기 내면을 파고들어와 유혹에 빠지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다윗을 부추겨인구조사를 실시하게 하거나(역대기상22,1), 이스카리옷 유다에게 들어가예수를 배신하게 한 사탄(루가복음22,3)처럼 성서의 여러 구절들에서 사탄은 내면으로 들어가 유혹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지옥을 관장하는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지만 묵시록2,13사탄의 왕좌라는 표현은 그자가 악마의 괴수라는 이미지가 제2성서 시대에 정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컨대 그가 가진 사탄에 관한 상식은 제2성서 시대에 오면 적어도 일부 그리스도인, 그리고 유대교인 사이에서 공유하고 있던 생각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말했듯이, 그러한 사탄의 이미지는 식민지 시대 이후 점차로 형성된 이스라엘 인들의 악마상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형되면서 확정된 상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하면 악마의 괴수이자 미혹자인 사탄은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실재하는 존재인지 여부는 알 수 없고, 분명한 것은 역사를 사는 야훼주의자들 사이에서 어떤필요에 의해 형성된 신앙적 상상물이 성서와 경외전 속에 나오는 사탄 묘사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에 관한 상상은 역사적 성찰을 통해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탄의 상상력은 신앙에 도움이 될 수 있고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이 세계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성찰이 결여된 사탄의 상상력은 근대 형성기 유럽과 미국의 그리스도인이 자행한 가장 참혹한 범죄인 마녀학살을 낳았습니다. 그밖에 수많은 그리스도교 범죄는 사탄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공포심의 산물입니다.

하여 저는 새해 처음부터 사탄 얘기로 몇 번을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탄에 관한 일상적 생각이 천국과 지옥, 구원 등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핵심적 신앙체계와 연관되어 있고, 나아가 세상과의 일상적 접촉점에 사탄의 기억술이 관여하고 있기에, 내게 질문한 이에 대한 대답을 겸해서 사탄에 관한 역사적 성찰에 관해 한백식구들과 함께 나눠보기 위함입니다. (올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