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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실천적 그리스도인과 종말신앙 - ‘1992년의 열풍’과 성서의 묵시적 종말신앙

이 글은 1992년 이후, 아마도 그 이후 1990년대 초 어느 때 집필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천적 그리스도인과 종말신앙 - ‘1992년의 열풍’과 성서의 묵시적 종말신앙.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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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그리스도인과 종말신앙

‘1992년의 열풍과 성서의 묵시적 종말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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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시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소.” 이것은 로마 제국주의의 주구인 안티파스 치하에서 해방을 열망하는 민중을 향해 세례자 요한이 외친 말이다. 30여 년 전 왕실 노예출신 시몬이 메시아를 자처하며 이제 새 나라가 도래했다고 선언한 바로 그 현장(베레아)에서, 그와 그를 따르던 농민군이 처참하게 죽임당한 바로 그 현장에서(김진호 1992), 이제 세례자 요한이라는 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또 다시 임박한 종말을 선언한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소식이던가? 그의 소문이 팔레스틴 뿐 아니라 시리아와 데카폴리스와 그밖의 여러 지역에까지 두루 퍼졌다. 예루살렘 성전에 바칠 최소한도의 제물도 소유하지 못한 경제적, 종교-이데올로기적 박탈자들인 많은 민중이 그를 찾아와서 죄사함 받기 위해 세례를 받는다. 그러나 이 예언자는 곧 체포되어 끝내 참수형으로 죽고 만다. 그리고 시몬의 때처럼 그를 따르던 많은 민중이 죽임을 당한다. 새 세계에 대한 민중의 열풍은 갑자기 식어버린다.

1987, 이른바 민주화 르네쌍스시대가 갑자기 도래한다. 예속적 자본주의의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민주화를 향한 길고도 지루한 투쟁이 있었고, 민중의 새 세계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때가 도래한 것이다. 예언자는 외친다. “모두 일어나 함께 나아갑시다. 참된 민주화가 이루어질 새 세상이 다가왔소라고. 그런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는 갑작스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버린다. 무거운 단조음악의 악보들만 남긴 채.

한편 바로 이 시기에 또 다른 예언의 소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1992년의 열풍’.[각주:1] 그는 새 세계를 갈망하는 민중을 향해 그때가 가까이 왔소. 그때는 바로 1992년이오라고 외친다. ‘그날이 오면’ (이 땅에서 민중이 함께 어우러져 춤출 민주화된 세상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택함받은 이가 공중으로 들어올림 받으리라고 한다. ‘저주받은 남은 자들이여, 그대들은 7년간 대환란을 겪을 것이오. 그 속에서 그대들이 구원받을 길은 오직 하나, 사탄의 표 받기를 거부하며 순교하는 길 뿐이오라고 외친다.

민주화 르네상스가 사그라든 이후에도 이 열풍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니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전국의 거의 모든 신문과 잡지, 그리고 방송에서 이 열풍이 특집으로 다뤄졌다. 이 가운데 거의 대다수가 우려와 경고의 손짓을 했지만, 그 열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그리고 이 열풍의 종착역인 ‘1992102824’. ‘열풍의 강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법한 시기를 기점으로 이 예언의 소리도 갑작스럽게 사그라들었다. 20세기말 한국의 씁쓸한 풍자적 추억을 남긴 채.[각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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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그리 길지 않은 한국 그리스도교의 역사 속에 이런 류의 열풍은 결코 적지 않았다. 1920년대와 30년대의 유명화(민경배 393~95), 황국주, 김성도(민경배 396~99),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천부교의 박태선과 통일교의 문선명(민경배 470~75) 등은 자신이 재림주임을 자처하면서 종말 일정을 제시하여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또한 최근 애천교회의 정명석(1990714)이나 들림교회의 공용복(19995월 둘째 주),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1988년 올림픽 개막 팡파르가 울릴 때), 그리고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등도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던 자들이었다(조성노 295~96). 시한부 종말론이란 일종의 세대주의적 종말론, 즉 시한개념에 과도하게 초점을 둔 종말신앙이다. 그런데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세대주의적 종말신앙이 이들처럼 기성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된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에는 기념할만한 두 번의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다. 말 그대로 이 운동은 모두 한국 교회의 양적 대폭발을 이룬 것인데(윤경로 1992, 30; 크리스찬아카데미 1981, 298~307), 그 배경에도 역시 세대주의적 종말신앙이 있었다(조성노, 292~95).

첫번째 대부흥운동은 20세기가 시작할 무렵인 1907, 평양 장대현 교회의 부흥사경회에서 비롯되어 1930년대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두 번째의 것은 소위 순복음 열풍으로 상징되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전반기 한국을 휩쓸은 대부흥운동이다. 위에서 열거했던 이단적시한부 종말운동은 (통일교 운동을 제외하면) 짧은 시간 혹은 제한된 공간에서만 파급력을 가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 두 대부흥운동은 한국 그리스도교 전통의 골간을 이루는 대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둘은 그 배경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다. 전자는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편입되고 무단통치가 자행되자 독립을 열망하던 실천역량이 교회로 몰려들던 시기에 일어났다. 후자는 유신정권과 그를 이은 ‘5공정권의 군부 무단독재가 진행되자 민주화를 열망하던 실천역량이 교회로 움집하고, 이들에 의해 사회참여적, 나아가서는 사회변혁적 신앙이 무르익던 바로 그 시기에 일어났다.

그리고 첫 번째 대부흥운동은 19세기 후반부터 강력하게 일기 시작했던 미국의 2차 심령부흥운동에 신학적, 신앙적으로 영향받고 있었다. 이 운동은 유럽의 합리주의적 지성주의(신학적으로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발로서 복고주의적 신학인 근본주의 신학에 열광적인 성령운동이 결합되어 나타난 일종의 그리스도교 반()지성주의운동이었다(차성환 1991, 438~44). 두 번째 대부흥운동은 1970년대부터 역시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던 이른바 아마겟돈 신학/신앙에 신학적, 신앙적으로 영향받은 것이다.[각주:3] 이것은 미국의 진보적 지성운동의 실패(R.R. 류터 1982, 274~97)와 이로써 입증된 파괴적인 과학기술문명의 견고성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그리스도교 반지성주의 운동인 것이다.

또한 이 두 대부흥운동의 가시적인 성공은 교회의 사회 참여적인 실천적 그리스도교 운동을 억제하는 계기로서 작용했고(차성환, 448). ‘타계적인 영혼구원을 지향하는 한국개신교의 특징을 정초하고 보다 확고히하는 계기였다(차성환, 450). 요컨대 이 대부흥운동으로 인해 사회의 변혁적이고 실천지향적인 운동은 교회 밖을 주무대로 하여 전개된 반면, 교회의 주류적 신앙은 내세지향적, 비실천적 내용을 갖추게 된다(강원돈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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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대주의적 종말신앙은 한국과 미국의 그리스도교 역사에만 나타난 고유한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런 신앙이 필연코 비실천적 운동으로 귀결된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교 역사뿐 아니라 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에서는 이런 종말론적이고 세대주의적인 신앙운동이 존재한다. 종교학이나 인류학, 사회학 등에서는 이런 운동을 천년왕국운동이라고 총괄하여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대표적인 천년왕국운동의 하나로 주후 3~5세기의 도나투스 운동이 있다. 이것은 북아프라카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지중해 전역에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으로, 도시의 농촌에 대한 착취로부터 해방되려는 농민의 열망이 도나투스파적인 열광적 성령운동과 결합되어 일어난 민중운동이었다. 특히 4~5세기 지중해 지역의 농민들이 대대적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되는데, 그것은 천년왕국적 새 세계를 설파하는 도나투스적 신앙이 그들에게 해방의 동력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반체제적이고 급진적인 운동은 정통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되고 가혹한 박해를 받게된다. 결국 도나투스파 상부의 성직자들이 체제와 결탁하여 민중을 이반하게 되면서, 이 운동은 사라진다. 그리고 7~10세기경에는 민중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나타난 이슬람교로의 개종이 광범위하게 일어난다(W.H.C. 프랜드 1980, 86). 이런 민중해방운동 유형의 천년왕국운동으로는 이외에도 도나투스 운동과 거의 동시대의 몬타누스 운동, 그리고 종교개혁기에 뮨쩌 등이 주도한 농민운동이 있다. 물론 이런 유형의 운동은 그리스도교 외부에도 존재했다. 예컨대 중국 청조말기의 태평천국운동(황신명 1981, 138~46)이나 조선후기의 동학운동(안진오 1983, 35~75) 등은 대표적인 민중해방적인 천년왕국적 종교운동인 것이다.

한편 천년왕국적 민중운동이 해방적 성격을 지니기 보다는 파괴적인 성격을 지닌 경우도 없지 않다. 예컨대 중세의 민중십자군(People's Crusades) 운동이 그런 예인데, 팽창주의적인 제국주의적 교회 지도층에 의해 선동된 이 운동은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파괴적인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들은 팔레스틴 지역의 민간인을 닥치는 대로 살상하기도 하고 유럽의 유태인을 학살하는 등의 잔혹한 집단 광기(히스테리)로 나타난 것이다(N. Cohn 1977, 53~70).

또 다른 유형의 천년왕국운동으로는 19세기말 절망적 상태에 떨어진 미국의 인디언 사이에서 일어난 이른바 유령춤(ghost dance) 운동이 있다. 이 운동은 몰몬교 신앙과 그들의 토착신앙이 결합된 천년왕국운동으로, 백인의 파괴적인 무기에 대항하기 위해 아메리카 벌판에서 드높은 기상을 날리던 조상들을 부르는 일종의 초혼제 같은 것이다. 이를 통해서 황홀경(엑스타시) 상태에서 백인과 무모한 항쟁을 벌였던 슈족(sioux)을 제외하면 이 운동은 거의 대체로 유령춤제의를 통한 대리우월의식을 체험하는데 그치는,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탈속적 천년왕국운동이었다(R.R. 류터, 254~57).

이상에서 보듯이 천년왕국운동은 사회적 성격에 있어서 다양한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운동 참여자들의 사회적 성격에 있어서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운동이 사회적, 윤리적, 심리적으로 상대적 박탈(relative deprivation)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C.Y. Glock 1973, 210). 상대적인 박탈을 체험하는 계층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기층민중인 경향이 있다. 이러한 박탈감은 기성 사회의 규준에 의해 억눌리면서도 분출기회를 찾는데, 그 계기는 여러 사회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다. 그런데 이중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천년왕국운동의 지도자인 예언자이다. 예언자는 일종의 카리스마적 지도자(P. Worsley 1968), ‘불의한현세계를 전복하고 이상적인 새 세계를 선포함으로써 억눌린 대중의 정서적인 무한정한 열기를 모우며, 이것을 특정한 방향으로 동력화하는 상징적 중심(a simbolic focus of identification)이 된다(Y. Talmon 1962). 그러므로 천년왕국운동의 지도자인 예언자와 그의 제자들은 운동의 사회적 성격을 규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전략집단(stragetic group)이다. 즉 어떤 천년왕국운동이 민중해방적 (급진주의) 운동이냐 파괴적 급진주의운동[각주:4]이냐, 혹은 온건주의적인 도덕갱신운동이냐, 아니면 현실회피적 탈속주의운동이냐는 문제는 이들 전략집단이 운동의 목표와 그 지향수단(Orienterungsmittel)을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결정적으로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4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범례인 성서를 보게 된다. 성서에 나타난 신앙의 원조들은 어떤 종말실천을 우리에게 보여주는가?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천년왕국운동은 묵시사상적 신앙에 기초한다. 묵시사상이란 이스라엘의 남북 왕국이 멸망하고 오랜 식민지 시대에 들어간 주전 6세기 이후 역사의 무대에 묵시문학의 형태로 공개된 것이다(김진호 1991a, 615~16).[각주:5] 그러므로 묵시문학은 내용상 식민지 지배국으로부터의 해방염원이 강하게 깔려 있다. 그런데 이 열망은 식민지 제국에 부역하는 지배자들을 포함한 지배체제 전체가 초월적인 힘(=하느님)에 완전하게 전복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묵시사상의 핵심은 억압적 현실로부터의 해방에 있으며, ‘종말은 이 해방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임박성에 대한 강조는 묵시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임박한 종말에 관한 물음, 그때는 언제인가, 어떤 징조가 나타나는 때인가등의 질문은 헤어날 수 없는 박탈의 현실 속에서 희망을 열광적으로 되살리는 역할을 한다. 임박한 종말신앙을 배제한 묵시신앙은 무장해제되고 만다.

이 시대에는 많은 묵시문서들이 등장했는데, 이 가운데 구약성서에 들어오게 된 것들은 페르샤 시대의 민중적 해방운동(즈가리야 1~8), 마케도냐 시대의 민중적 해방운동(즈가리야 9~11), 셀류커스 시대의 민중적 해방운동(다니엘서)과 관련된 것들이다(김진호 1991b, 356~72; 김진호 1991a, 623~39). 요컨대 식민지 시대 구약성서의 묵시운동들은 민중해방적인 정치적 급진주의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구약성서의 이러한 묵시운동적 성격은 세례자 요한의 운동에서 계승되며,[각주:6] 이는 예수운동에 그대로 이어진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에는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묵시사상에 물들어 있었고, 여러 유형의 묵시운동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도덕갱신운동을 펼쳤던 바리사이 운동이 있었고, 자신들이 확신하는 그날까지는 모든 사회적 행동을 유보하고 탈속적이며 폐쇄적인 공동체로만 남아있던 꿈란(Qumran)류의 운동도 있었다.[각주:7] 그런데 예수님은 민중해방적 천년왕국운동의 맥에 있던 세례자 요한 운동을 계승한 것이다.

당시 팔레스틴에 묵시사상의 핵심 소재는 성전으로, 야훼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있어 예루살렘 성전은 야훼와의 약속의 상징이요 야훼를 만나는 상징적 장소이다. 그러나 현실의 성전은 부패한 사제들의 거점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당시 민중운동의 종말 신앙에 따르면 현실의 성전은 타도하되 정의롭고 정결한 새로운 성전이 다시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G. 타이쎈 1986).

세례자 요한이 성전의 핵심기능인 죄사함의 제사를 대체하는 죄사함의 세례를 베풀었듯이, 예수님도 성전 부패의 상징인 제의용품 독점업체들의 상행위에 비난을 퍼부우며, 성전 파괴 및 그 재건을 선언한다. 이것은 스테반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현실의 성전은 악의 소굴이 되어버렸고 파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울에게서 이것은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는 노예 종교의 원천인 현존의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자유(해방) 종교의 원천인 천상의 예루살렘이 새로이 도래할 것이라고 선언한다(김진호 1992b). 다만 그에게는 요한이나 예수식의 정치적 급진주의가 현저히 후퇴했고[각주:8] 지식사회에서 민중지향적 사회개혁적 실천운동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런 민중적인 천년왕국적 성전신앙은 요한묵시록에서 새 세계의 표상으로 이어진다(이정희 1987).

이상에서 보듯이 성서에 반영된 그리스도교 선조들의 묵시신앙은 민중해방적 에토스에 강하게 지배되고 있었다. 이것이 실천적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인 것이다.

 

5


콘스탄틴 황제의 그리스도교 공인을 계기로한 서구그리스도교로의 대전환으로 이러한 실천적 그리스도교 신앙이 비공식적 신앙으로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A. 키이 1988). 그리하여 고대시대 이래 중세까지의 그리스도교 공식신학에서 새 세계를 지향하는 사회변혁적인 묵시신앙을 배제하고 그 대신에 개인 영혼의 삶과 부활, 그리고 그 사이의 죽음상태에 관한 중간상태론적 종말신학이 발전하게 된다(황정욱 1991). 또한 고대와 중세의 가톨릭 신학을 비판하고 나선 종교개혁적 전통에 선 정통주의 신학 및 현대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신학들(김균진 1991, 685~89)에서도 성서의 민중해방적 묵시신앙은 배제되거나 또는 그 변혁적 성격이 탈각된 무색무취의 것으로 재해석되었다. 이제 묵시적 종말신학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아무런 역동성을 부여하는 힘이 되지 않게 되었다.

한편 앞에서 언급한 현대판 종말신학인 이른바 아마겟돈 신학및 이와 관련되어 미국과 중남미, 특히 한국에서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는 성령운동(오순절계통의 신앙운동을 포함하는 성령운동), 묵시신학을 사살상 무장해제함으로써 역동적인 힘을 상실한 차가운신앙에 대해, ‘뜨거운신앙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운동은 현대신학의 지성주의에 대한 반지성주의라는 전선에로 그 뜨거운신앙의 힘을 소진하고 있을 뿐이다. 이 종말신앙으로부터 생긴 역동성은 묵시적 신앙의 한 전통 위에 있음은 분명하지만(한국적 유령춤이기도 하고 한국적 민중십자군이기도 한 세대주의적 종말신앙) 성서의 묵시신앙의 실천적, 사회변혁적 전통과는 무관하다.

세례자 요한이 죽임당하므로 꺼져버린 듯한 민중의 해방 열기는 새로운 엘리야요 새로운 요한인 예수의 등장으로 다시 부활한다. 그리고 1987년의 민주화 르네쌍스가 숨을 거두고, 1992년의 열풍이 괜한 바람인 것이 드러난 이때 실천적 그리스도교인이기를 지향하는 우리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피와 살을 통해서 다시금 부활하여 나타날 예언자의 소리를 듣는다. “회개하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러니 성서의 묵시적 종말신앙에 따라 역동적이고 실천적인 그리스도 신앙을 회복하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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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92년 종말론을 퍼트린 가장 계기적인 책은 이장림이 〈다미시리즈〉의 첫번째 책으로 쓴 《1992년의 열풍》이다. [본문으로]
  2. ‘1992년 종말론’의 종교사회학적 분석으로는 김성건의 글(1991a)을 보라. [본문으로]
  3. 미국의 아마겟돈 신학의 대표적 저작인 H.Rindsey(1970)의 책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4. 김성건에 의하면(1991b) 사회적 박탈감은 고대농경사회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사회에 와서도 신비적인 종말론적 열광주의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인다. 특히 그는 파괴적인 정치적 급진주의의 하나인 ‘파시즘’ 출현에 이용됨을 증명한다. [본문으로]
  5. 처음에는 단편적인 어구, 문장, 단락 등의 형식으로 나타나다가 점차 독립된 하나의 문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본문으로]
  6. 세례자 요한이 주도한 운동의 종교-이데올로기적인 성격에 관하여는 김진호의 책(1992c)의 제3장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7. 민중항쟁을 주도했던 시카리나 젤롯데 등의 운동은 예수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팔레스틴이 민중혁명기(66-70년) 직전의 전반란기(primitive rebel period)에 나타난 것이거나 아니면 항쟁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 나타난 것(홀슬리 & 벨로 1990)이므로 1세기 팔레스틴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시기였던 예수시대의 운동과 사회적 실천의 차원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본문으로]
  8. 임박한 종말신앙도 남아 있기는 하되 요한이나 예수에 비해 현저하게 후퇴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