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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냉철함의 경제학과 고용조정

[한겨레신문]의 '야! 한국사회' 코너에 실린 칼럼원고.(201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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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함의 경제학과 고용조정

 


1998년 정부 당국자가 구조조정안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까지 들여다볼 안목은 없지만, 내 눈엔 그가 냉철함을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전 세계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수없이 번쩍이는 자리에서, 오로지 맡은 과제만을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마음에는 자기의 이미지도 고려되고 있었겠다.

고위 경제 관료로서 자기가 얼마나 합리적인 선택을 했는지를, 그는 과시하고 싶었을까. 너무도 담담한 말투로 냉정하게 그는 국민에게 구조조정안을 설득하고 있었다.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진실은 모른다. 그럼에도, 작은 것에도 예민함을 감추지 못하던 시절, 그의 목소리가 그렇게도 야박하게 들렸다. 그의 몸짓과 태도가 그렇게도 눈에 거슬렀다.

괜한 부화에 옆에 있던 경제학자인 후배에게 따져 물었다. 저것밖에 방법이 없냐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저런 말을 하면서 뭐가 저렇게 당당하냐고. 한데 그 후배 역시 냉철했다. 지금은 빠른 결정이 최선이고 구조조정안은 불가피한 것이며 인정에 휘둘러 갈팡질팡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른 방법을 고려할 수 없었는지, 왜 고용조정안이 가장 빠르게 결정해야 하는 것이지, 그런 말을 하는 이는 침통함을 연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리고 그 순간 유능한 관료의 모습이 왜 냉철함인지 말이다. 하여 나는 아직까지도 그것이 우리를 너무나 불편하게 하는 못된 경제 관료의 아비투스가 아닌가 하는 불평을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가 울면서 발표를 했다면 아마도 나는 이런 괜한 상상 혹은 생트집을 오래도록 간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랬다면 자살률 1위에, 출산률 꼴찌, 최장의 노동시간과 최고 수준의 비정규직의 비율 등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살기 나쁜 사회의 요건을 고루 갖춘 우리사회의 지난 10여 년간의 변화와 최상위 재벌의 부가 수직상승하는 것을 연관시켜 음모론을 연상하는 습관을 키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날 관료의 발표에서 엿보이는 경제 관료들의 아비투스가 재벌 친화적인 경제학의 한 증거라는 음모론을 몸에 품고 산다.

얘기가 길었다. 실은 한진중공업 쟁의 얘기를 들으면서 다시 도진 독기로 숨 쉬며 떠올린 그때의 회상이다. 경제 관료의 그따위 아비투스가 재벌기업 하나하나의 영혼 속에 불어넣어준 혹은 그들끼리 서로 교감한 당위적인 상상력이 인적 구조조정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업가라면 앞날을 예측하며 전향적인 발전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하여 숙련된 노동자들보다 값싼 노동력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타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획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자. 그러자면 본국의 노동자들을 고용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이런 시나리오가 정당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직장을 잃게 됨으로써 살길이 막막해질 노동자에게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침통한 표정과 눈물이 필요한 거 아닌가. 그리고 그 침통함을 어떻게 표시해야 설득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최소한 업종을 개발해서 실직자들을 최대한 수용한다든가 하는...

재벌 계열사끼리 행하는 일감몰아주기는 그들이 결코 냉철함의 효율성의 경제학에 항상 의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국가와 재벌기업은 유독 고용조정에서만은 냉철하다. 그 정부가, 그 기업이 국민을, 노동자를 단지 도구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서로 막나가자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