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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나누기(설교)

제3시대

2012년 5월 13일에 했던 한백교회의 하늘뜻나누기 원고. 이 예배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주관하여 준비한 예배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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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대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요한복음38

 

 


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1991년 모이기 시작했고, 1996년 조직이 확대개편되면서 이 이름은 줄곧 우리를 가리키는 명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연구소의 나이는 16살이고, 모임이 실제로 시작된 때부터 계산하면 21살이 됩니다. 한데 존재감이 별로 없습니다.

우선 이름조차 정확히 아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저희를 3세계혹은 3세대라고 부르는 이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저희의 이름을 정확히 알려주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이들이 대다수입니다.

한백 식구들은 아는 이들이 많겠지만 그 듯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시토회 소속 수도자인 요아킴 피오레(Joachim of Fiore)라는 12세기 신학자가 성부의 제1시대(1성서 시대)와 성자의 제2시대(2성서 시대)를 넘어서 우리의 시대를 성령의 제3시대로 규정한데서 3시대라는 용어가 유래합니다. 민중신학자 서남동 목사님은 이것을 민중신학적으로 재해석하였는데, 그것을 통해 성서 중심주의를 넘어서고 있다는 데 그 핵심이 있습니다.

성서가 정전(正典)이 되었다는 것은 그 이외의 어떤 것도 배척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오직 그것만이 정당하며, 그것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서 목사님은 한국의 민중전통과 성서의 민중전통의 합류를 얘기함으로써 정전 중심주의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전 중심주의를 넘는 합류 중심주의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합류라는 말 자체가 끊임없는 변화하는 유동적 실체이지 갇혀 있는 고체적 실체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유동성의 핵심은 관계에 있습니다. 두 범주가 서로를 규정하고 보완하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제3시대가 성령이라는 은유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성령요한복음38절이 얘기하고 있듯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알 수 없는, 바람 같은 속성의 존재입니다. 아니 존재라기보다는 사건에 가깝습니다. 하느님이 당신의 루아흐를 흙으로 빚은 것에 불어 넣으니 생명체가 되었다는 창세기27절의 구절처럼 말입니다. 루아흐는 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인데, 2성서에서 영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프뉴마가 루아흐를 번역한 것입니다. 곧 하느님의 숨이 사람 형체의 것과 마주치면서 생명체가 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지요.

이렇게 성령은 형체도 없고 존재도 아닌 무엇입니다. 그것은 이 세계의 시간과 공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숨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루아흐처럼 그것은 탈현세적인 어떤 것입니다. 그것이 현재적 시공간에 있는 어떤 형체를 가진 무엇과 만나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성령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는,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처럼 생명체인 인간도 유동적이지요. 유동적인 것 둘이 서로 만나 끊임없는 사건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제3시대라는 말 속에 담긴 숨은 뜻입니다. 하여 제3시대는 모든 단단한 경계를 해체하고 넘어서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민중사건을 계속 일으키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3시대입니다.

저희 연구소가 지향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사회 속의 경직된 틀들 속에는 민중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제도는 민중을 은폐함으로써 체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체제는 세상을 해석하는 단단한 고체 같은 준거가 됩니다. 하여 사람들은 체제를 통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는 이러한, 민중이 은폐된 체제에서 민중을 발견해 내는 것을 지향하는 연구소입니다. 민중의 고통을 보고, 그 고통의 장치를 체제 속에서 읽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단단함을 해체하기 위해 활동합니다.

하여 연구소의 중심 과제는 체제를 해석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체제가 은폐하고 있는 민중 고통의 메커니즘은 체제의 법적 주권자인 시민이나 그 운영자로 위임받은 대표들 자신도 모르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작동하는 메커니즘이 발달할수록 고급화된, 더 안정적인 체제입니다. 해서 체제를 분석해내는 일, 그 속의 은폐의 메커니즘을 읽어내는 일은 매우 난해한 작업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 은폐적일수록 더 안정적인 체제의 형성에 종교가 관여합니다.

과거 막스 베버는 종교의 세계는 덜 근대화된 세계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근대적인 많은(‘모든은 아니지만) 국가들 속에는 종교가 중요한 요소의 역할을 합니다. 즉 체제에서 종교적 요소를 읽어내고 해석해내는 일은 체제의 민중 은폐 메커니즘 해석에서 결정적인 것이 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소는 최근 종교와 체제의 연관성에 대해 주목하면서, 한국사회가 매우 종교화된 사회로 전개되고 있음을 주장하였습니다.

가령 촛불집회 현상을 보면서 한국사회에서 시민종교가 대두하고 있음을 문제제기하고, 이러한 시민종교 현상은 주로 개신교 밖에서, 다분히 개신교와 대립적인 기조로 전개되고 있음에도 개신교를 매우 닮아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지요. 해서 개신교를 읽어내는 일은 최근 한국사회의 시민종교 현상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며, 개신교에 대한 비판은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유의미하다는 견해를 피력하였습니다.

갑자기 어려운 얘기를 했군요. 실은 아직 우리 자신도 잘 정리되지 않았고, 아직 먼 생각을 발전시키고 있는 얘기인데, 짧고 명료하게 말하기란 너무 어렵군요. 아무튼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한국사회의 민중 은폐의 메커니즘을 읽어내기 위해 종교에 대한 해석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으며, 아직 누구도 얘기하지 않았던 것을 저희 연구소가 주도적으로 생각을 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최근 기획하고 있는 심포지엄, 강좌, 책들 등이 바로 이런 의문에 다가가기 위한 작업들입니다. 그리고 하나씩 성과물이 축적될수록 저희의 생각에 공조하는 이들이 조금이 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체제와 사회의 종교성이 서로 얽혀 있는 현상에 대한 해석은 체제의 은폐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희는, 아직 부족하지만, 현재의 작업들을 통해서 민중 은폐의 양상을 폭로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소는 이렇게 안병무 선생의 민중신학을 오늘의 시대에서 계승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987년 이후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자들은 과연 민주화 이후에 한국에서 민중이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이 허술해 보이는 지적에는 꽤 중요한 뼈가 담겨 있습니다. 왜냐면 민중1987년 이전의 민주화담론 속에서 그 내용이 채워진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민주화 이후, 특히 최근에는 민중과는 다른 용어로 민중문제를 이야기하는 현상이 많고, 반면 민중을 여전히 얘기하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민중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적어진 탓이 아니라, 민중이라는 개념이 낡은 시대의 시각과 얽혀 있기 때문이지요.

가령, 한국의 민중론자들은 대다수가 민족적 민중을 강조해왔는데, 이렇게 민족을 강조하는 순간 민족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고통의 현상에 무감각해지는 일이 벌어집니다. 가령, 국제이주노동자나 국제결혼, 성소수자, 무능력자 등과 같은 분단체제 같은 것과 잘 엮이지 않지만 오늘날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고통들에 대해 민중론자들이 무관심했던 것은 바로 민족적 민중론의 함정에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중신학은 여전히 민중을 얘기합니다. 그것은 민중신학 내에는 한국사회의 민중론이 빠졌던 함정을 넘어서는 요소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안병무 선생의 오클로스 민중론이 그렇습니다. 이 민중론은 민족적 민중이 아니라 민족으로부터 배제된 민중입니다. 안병무 선생은 이 민족에게서 배제된 민중의 실어증을 얘기했습니다. 서남동 목사님은 그러한 언어, 파편화되어 언어성을 상실한 소리를 한의 소리라고 말했지요. 바로 그런 상황을 안병무는 민중의 실어증으로 본 것입니다.

그것이 민중이 체제로부터 은폐된 이유였습니다. 실어증 때문이지요. 그 장애에서 해방되는 사건들을 기대하며 연구소는 소리 증언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지켜봐주시고 격려와 충고의 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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