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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신자유주의 시대의 ‘영성’을 논하다 - 김항섭의 〈신자유주의의 도전과 과제〉에 대한 논평

살레시오 수녀회 주관 18차 청소년영성포럼(2012 12 08)에서 발표된 김항섭 교수님의 글에 대한 논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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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의 영성을 논하다

김항섭의 신자유주의의 도전과 과제에 대한 논평

 

 

 

 

 

 

19971116일 미셸 캉드쉬(Michel Camdessus) 당시 IMF(국제통화기금) 총재가 극비 내한했다. 그 직후 IMF 구제금융 외신기사가 나돌았지만 한국정부는 부인했다. 나흘 후인 1120,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해 빠삭히 알고 있는 MIT 교수 출신 스탠리 피셔(Stanley Fischer) 당시 IMF 수석부총재가 내한해, 19일 전격 임명된, IMF 관료출신 신임 경제부총리 임창렬과 협의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인 1120일 한국 정부는 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발표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심각한 국가적 위기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IMF니 구제금융이니 모라토리움이니 하는 말들은 너무나 생소했다. 그저 외국의 거대한 금융기관으로부터 긴급 차관을 받게 되나보다 했다.

1127일 휴버트 나이스(Hubert Neiss) 당시 IMF 협상팀 단장이 내한했다. 신속한 협상과정에 대해 아는 이는 거의 없었고, 123일 캉드쉬가 다시 내한해 임창렬과 발표한 협상 결과만이 주목받았다. IMF로부터 구제금융 지원이 합의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IMF의 구제금융을 위해 이행해야할 조건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은 여전히 상상하지 못했다.

사회학자 송호근은 이 과정을 무장해제“IMF 진주라고 표현했다. 또 그 협상을 투항이라고 말했다. 이제 한국은 꼼짝없이 IMF의 지배 아래서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이행해야 했다(송호근, 23~30).

혹독했다. 무수한 기업들이 사라졌고, 정리해고된 1백만이 넘는 실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자살자들이 속출했고, 수천 명의 홈리스들이 광장 구석구석을 매웠다.

정부는 20018IMF 차입금 전액을 상환했다. 2004년까지 예정된 것을 3년이나 앞당겼다. 그만큼 국민의 고통이 깊었다. 하지만 그 사이 한국사회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동안 고생한 국민을 위해 보상할 여유도 의지도 없는 냉혹한 사회가 되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한국사회에 정착했다.

김항섭 교수는 우리의 삶에 폭력적으로 끼어든 신자유주의를, 그 배경과 역사를, 그리고 한국사회에 정착한 1997년 이전의 전조를 간략하면서도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특기할 것은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고 있는 현재에도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계속 잔류하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것이 우리 안에 내면화되어 있다, “머리로는 신자유주의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몸으로는 신자유주의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일상화된 신자유주의 문제가 김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논지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영성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이 심포지엄은 바로 이 점에서 이 글과 만난다.

영성의 문제는 일상 속에서 일상을 초월하는 삶의 성찰에 관한 신앙적 물음이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일상성의 주요한 요소라고 한다면 영성의 물음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일상성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의 논평은 김항섭 교수의 이러한 해석을 나의 방식으로 보충하고, 약간의 수정 제안으로 구성될 것이다. 첫 번째 절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재정리하는 것이고, 두 번째 절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일상성에 관한 논의다.

이렇게 재정리의 방식으로 논평글을 쓰는 것은, 내가 보기엔, 저자의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특성에 관한 설명과 신자유주의적 일상성에 대한 설명 사이에 해명하지 않으면 충분한 이해에 방해가 될 법한 비약이 있기 때문이다. 즉 그가 설명하는 신자유주의는 정치경제적 제도에 방점이 찍혀 있는 반면, 일상화된 신자유주의는 주체의 제도, 그리고 문화로서의 제도의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자 사이에는 역사와 특성에 있어서 서로 연관되지만 동시에 조금 다른 함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상세한 내용에 대하여는 본론에서 더 이야기할 것이다.

 


정치제도로서의 신자유주의



인류학자 박소정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국내외 학계의 논의를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국가정책의 거시경제적 독트린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식론 또는 사회적 에토스로서 보는 것이다(박소정, 15). 전자가 정치경제적 제도의 관점이라면, 후자는 주체 혹은 문화적 제도의 관점이다.

먼저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신자유주의를 보자. 사회학자 장진호는 이것을 다시 두 가지로 나눈다. 북반구 나라들에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실패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책적인 물음으로 나타난 신자유주의가 그 하나이고, 개발도상국에서 IMF나 세계은행 같은 국제금융기관의 관리 아래 수행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서의 신자유주의가 다른 하나다(장진호, 317).

김항섭 교수의 정리는 전자의 신자유주의 역사에 관해 잘 설명하고 있다. 1940년대 프리드리히 하이예크(Friedrich August von Hayek)의 영국 노동당의 국가개입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으로 하고, 1970년대 석유파동을 계기로 하여 전개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주효했던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성공으로 본격화되었다. 여기에 그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세계화되는 데 주효했던 한 가지 요인을 더 첨가한다. 1989~1991년 소련과 동독 등 동유럽 공산주의권 사회의 연이은 몰락은 자본주의의 성공인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성공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른바 하이예크의 후예들이 레이거노믹스를 이끄는 핵심 경제브레인이 되는 과정에 대한 논의가 생략되어 있다. 김성현의 논문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엘리트의 형성에 관한 유용한 사회사적 분석을 담고 있다. 1930년대 이후 미국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뉴딜 연합이 케인즈적 경제정책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데 이러한 경제정책의 핵심 브레인은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의 유력한 가문 출신자들이었다.

이러한 편향된 엘리트 형성 과정은 도전집단으로 하여금 케인즈적 정치경제에 대해 상반된 지적 전통에 경도되게 하는 요소가 된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뛰어난 유럽의 엘리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도전세력이 이들 유럽 출신 연구자들을 포용하게 되면서 도전세력의 이론적 기반이 크게 향상되었다.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에 밀리고 있던 시카고 대학이 이들을 대거 유입함으로써 시카고 대학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담론의 본거지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이들은 경제학을 수학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것은 수학이 언어적인 장벽을 뚫고 보편적인 과학성을 획득하게 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이들의 수학적 경제학은 케인즈주의적 정치경제에 반대하는 도전세력의 담론형성에 기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수리경제학과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밀접한 상호연관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뉴딜 연합이 붕괴되는 1970년대를 지나 그 대안으로 집권한 신자유주의적 정부인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정책 브레인으로 대거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적 경제는 미국을 지배하게 되었다(김성현, 2012, 87~93).

한편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세계화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하나는 수학적 경제학은 유럽주의나 아메리카주의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지니기에 유용한 학문적 형식을 지닌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말했듯이 그것은 수학이라는 학문이 하나의 언어적 체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수학이라는 언어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지역성을 극복하게 하는 도구였고, 그런 점에서 수리경제학은 세계화되는 데 매우 유용한 지식담론의 형식을 지녔다. 하여 수리경제학은 빠른 속도로 전 세계 경제학도들의 표준적 이론이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관한 다른 이유는 구제금융의 대두에 관한 것이다. 1973년 제1차 석유파동 이후 세계는 경제위기에 놓이게 되었고, 이는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를 해외 차관 열풍에 휩싸이게 했다. 특히 미국의 부당한 개입으로 인해 집권한 친미적 독재정부들이 차관을 받는 데 유리했다. 한데 이 정부들의 무분별한 재정운영은 중남미 국가들의 연이은 국가파산을 야기했다. 이것은 월스트리트 금융가의 파산위기로 이어졌고, 이에 대해 레이건 정부의 정책은 IMF와 세계은행을 통한 구제금융과 이행 프로그램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었다. 즉 미국 정부의 부당한 제3세계 정치개입이나 월가 금융권의 분별없는 차관 전략의 실패를 파산한 제3세계 국가에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방식이 바로 구제금융과 이행 프로그램 정책이었다. 이것은 구제금융을 받게 된 나라들 국민의 혹독한, 죽음 같은 고통을 야기했다. 한데 이때 IMF와 세계은행의 경제 브레인들이 수리경제학자들이었고. 이들의 경제 프로그램은 정부지출 삭감, 무역장벽 철폐, 국영기업의 민영화, 수출 지향 정책 등이었다(김성현, 2012, 85~87).

이렇게 개발도상국, 특히 재정위기에 놓인 국가들에게 가해진 구제금융과 이행 프로그램을 통한 압박으로서의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은 워싱턴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고 명명했다. 그것은 IMF나 세계은행이 워싱턴에 소재하고 있고, 이들에 의해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표준화된 신자유주의화를 강요당하였다는 것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한데 이러한 구조조정과 이행 프로그램의 압박을 받은 나라들은 예외 없이 양극화를 급속도로 심화시켰다. 이것은 이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강요당한 나라들에서 시민층의 붕괴, 소비자층의 붕괴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 등, 1세계 국가들에 기반을 둔 다국적 기업들의 위기로 이어졌다. 특히 1997년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초래한 빈곤의 세계화를 지양하기 위해 세계은행의 부총재를 지냈던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사회안전망을 확대하고 빈곤감축 프로그램을 위한 재정지원을 주장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포스트워싱턴컨센서스(Post-Washington Consensus)라고 불렀다. 이것이 김항섭 교수가 얘기한 신자유주의는 끝났지만...”이라는 말의 내용이다.

김 교수는 여기에 남미 지역에서 도미노처럼 좌파정권이 집권하는 현상, 그리고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제1세계 국가들 사이에서 폭넓게 확산되는 현상을 덧붙인다.

 


주체 형성 혹은 문화제도로서의 신자유주의

 

김항섭 교수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신자유주의의 양상을, 앞서 말했듯이, “우리 안에 내면화된 신자유주의로서 설명한다. 하지만 그는 내면화된 신자유주의의 양상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서두에서 세 가지 사례(모 대학의 정원 축소 기획, 모 연구소의 구조조정 기획, 그리고 한 방송 다큐에서 다룬 미국 정치인과 그 지지자들의 의료보험에 관한 태도)를 간략하게 언급했고, 글 말미에서 김영삼 정부에 의해 수행된 1995년의 이른바 5.31교육개혁조치와 그 이후 계속된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을 뿐이다.

한데 이러한 논의는 얼핏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가령 5.31조치는 김영삼 정부가 사용한 자구(wording)에 따르면 세계화 교육이지 아직 전형적인 정치경제 제도로서의 신자유주의적 교육이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의 가장 대표적인 요소는 교육재정의 감축이다(한만중, 164). 하지만 1998년까지 한국의 교육재정은 감축되지 않았다.

5.31조치의 근본 기조는 교육을 공공재가 아니라 상품으로 간주하는 것이었다(김소영, 147~148). 즉 교육개혁에 시장원리를 도입하여 수월성(효율성)을 추구함으로써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것이 그 주된 가치다. 이것을 김항섭 교수를 포함하여 이 주제를 언급하는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신자유주의적 교육제도의 출발점으로 간주한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평가는 타당하다. 하지만 이때의 신자유주의는 위에서 언급한 정치경제적 제도로서의 신자유주의와는 바로 직결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5.31조치를 신자유주의의 내재화의 실례로 언급한 김 교수의 문제제기를 따라 이것 속에 함축된 신자유주의를 개념화한다면 경쟁화와 효율화(수월성), 시장화에 대한 사회적 욕구체계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미셸 푸코의 말기 사상의 대표적 개념인 통치성(governmentality)을 통해 현대사회를 읽어내려는 일련의 연구자들이 주목한 신자유주의 개념이 흥미롭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정치경제적 제도로서 보기보다는 일종의 주체의 제도로서 해석한다(박소정, 15).

푸코의 통치성개념에 따르면 정치경제적 신자유주의론자들이 강조했던 작은 정부테제는 국가 주권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국가의 통치가 확장된 것을 뜻한다. ‘작은 정부의 대립 명제인 큰 정부는 국가의 촘촘한 감시 장치가 국민으로 하여금 자신을 ()자발적으로 그 국가가 지향하는 권력체계에 통합되게 하는 사회 시스템을 반영한다. 반면 작은 정부슬로건은 국민 개개인이 각자 자기 욕구의 실현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기를 통제함으로써 국가를 구성하는 권력관계에 포섭되는 사회와 관련이 있다. 즉 통치성 학파가 제시하는 신자유주의는 사람들 각자의 자기 계발을 통해 그 사회가 재생산되는 사회질서와 맞물린 개념이다. 이러한 자기 계발이 일상화된 사회는 경쟁화, 효율화, 시장화가 사람들 각자의 내면에서부터 작동하고 있는 사회다. 즉 주체의 제도로서의 신자유주의는 김항섭 교수가 언급한 우리 안의 내면화된 신자유주의를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김 교수가 불명료하게 제시했던 내면화된 신자유주의 문제는 정치경제적 제도로서의 신자유주의보다 좀더 확장된 개념으로 재규정할 필요가 있고, 그 한 사례가 통치성학파가 제시했던 신자유주의론일 것이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경쟁화, 효율화, 시장화의 내면화가 작동하게 되는 시간적 계기를 1980년대 말로 본다(김진호, 380~392). 그것은 한국사회가 소비사회로 전화되는 계기적 시점이다. 또한 이 시기는 한국사회의 민주적 제도화가 본격화된 계기적 시점이기도 하다.

나는 민주화를 국민의 시민화로 해석한다. 여기서 국민이 국가의 욕망과 자기의 욕망을 동일시하는 집합적 주체라고 한다면, 시민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준거로 국가와 거래, 교섭하는 개별화된 주체다. 한데 동시에 진행된 소비사회는 시민을 시장화했다. 소비사회로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시장을 성찰할 틈도 없이 시장화된 시민이다. 이런 성찰 없는 시장화된 시민은 게걸스럽게 자기 욕망에만 탐닉하는 존재, 이웃이 사라진 자기 집착적 주체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근대를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라고 부르면서, 사람들 간의 유대가 붕괴된 신자유주의적 개인의 탄생을 말했는데(바우만, 13), 바로 그런 시민이 한국사회에서 태동한 계기적 시점을 나는 1987년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개인은 자기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자기 계발의 열정에 미친 주체가 되었다. 이웃과 얽힌 자기를 돌아볼 틈도 없이 자기의 욕구에만 충실하게 자신을 과잉으로 불사르는 존재, 하여 그이는, 아니 우리는 피곤에 지쳐 있다. 요컨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자기 소진(burn-out)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결론부에서 김항섭 교수는 신자유주의와의 싸움은 이념으로서, 정책으로서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널리 확산된, 우리들 각자의 사고나 행동 양식에 각인된 신자유주의를 거둬내는, 지난하고 일상적인 싸움이라고 말한다. 이념과 정책으로 신자유주의와 대결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내면의 신자유주의와의 싸움이란 무엇일까? 나의 논리에 따르면 그것은 자기 계발의 과잉 열정에 불타 있는 자신으로부터 물러섬일 것이다. 극단의 자기에의 몰입,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소진된, 자기 착취적 개인으로부터의 물러섬이다. 그것은 이웃의 회복을 향한 의식적인 관계적 실천이며, 이웃을 소실되게 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변혁하기 위한 공동체적 실천이다. 나는 이것을, 이러한 생각과 실천을 신자유주의적 일상의 시대의 영성이라고 해석한다.

 

 

 

[참고자료]


 

김성현, 세계은행과 거버넌스: 경제개혁 모델의 발명에 대한 소고, 시민사회와 NGO10/1(2012 여름), 77~111.

김소영, 신자유주의적 개혁에서의 공교육 체제와 정치적 불평등, 현대정치연구4/2(2011 가을), 139~162.

김진호, 5.18 기억의 정치화와 민족지구화 시대 민주화와 선진화 담론의 망각 체계, 조희연정호기 엮음, 5.18 민중항쟁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시선(한울, 2009), 377~404.

박소진, 자기관리가족경영시대의 불안한 삶, 경제와 사회84(2009 겨울), 12~39

송호근, 또 하나의 기적을 향한 짧은 시련(나남출판, 1998)

,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삼성경제연구소, 2006)

장진호, 금융 헤게모니로서의 신자유주의 분석, 경제와 사회80(2008 겨울), 315~390

한만중,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의 본질과 문제점, 지구화시대 맑스의 현재성(문화과학사, 2003), 161~181.

바우만, 지그문트, 액체 근대(,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