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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평화신학'의 주제로서의 4・3

이 글은 

가톨릭 제주교구 제주 평화의섬 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제주4.3심포지움 -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소공동체>(2013. 12. 08)에서 논평글로 발표된 것입니다.

이 글을 조금 다듬어서 [맘울림] 2014 상반기호에 게재되었는데, 아래에는 [맘울림]에 실린 글을 올립니다.



<제주 4.3 심포지움>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습니다.


[발제1] 4.3 당시 교회의 역할 / 박찬식(제주 4.3 평화재단 진상조사단장)

[발제2] 신학적 주제로서의 제주 4.3 / 문창우 신부(광주가톨릭대학 교수)

[토론1] "그들로 하여금 숨통을 트이게 하라" / 김상기 목사(새사람교회 목사. 전 남서울대학교 기독교윤리학 교수)

[토론2] 세상을 향한 교회의 첫걸음은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다 / 현문권 신부(신제주 본당 주임신부)

[토론3] '평화신학'적 주제로서의 4.3 / 김진호(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토론4] 허호준(한겨레신문 부장)


이 글을 수정 보완하여 [공동선] 114호(2014. 01-02)에 기고하였습니다.

발제글인 문창우 신부의 글도 첨부하였습니다. 



&lsquo;평화신학&rsquo;적 주제로서의 4.3_공동선(2014 01-02).pdf



문창우_신학적 주제로서의 4.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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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학의 주제로서의 43

 

 

 


 

 

 

쉬뽈렛/시뽈렛

 


판관기의 저자()‘조차체험의 삭제에 가담했다. 아니 의도적인 삭제로 보인다. 121~7절이 바로 문제의 그 체험 삭제의 텍스트다. 본문은 이스라엘 부족동맹 시절, 헤게모니 부족인 에브라임 족이 변방 부족인 길르앗 족을 공격하던 때에 벌어진 한 사건을 다룬다. 사건의 진행은 예상과는 달리 입다가 이끄는 길르앗 족의 대승으로 끝난다. 그리고 입다의 부대는 요르단 강 포구에 진을 치고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쉬뽈렛을 발음하게 했다. 이때 시뽈렛이라고 하는 자는 에브라임의 패잔병들로 간주되어 닥치는 대로 처형되었다. 이렇게 죽은 자의 수가 42천 명이라고 한다.

판관기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 부족동맹이 형성되어 있던 지역 주민의 총수가 45천 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라는 현대 고고학자들의 추산을 따른다면 ‘42이라는 희생자의 수는 터무니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 텍스트 속에는 집단학살의 상황이 시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텍스트의 원 저자들, 아마도 이스라엘국이 멸망한 직후 유다국 군주인 요시아 왕정의 사관()5백여 년쯤 전에 일어났던 이 사건을 전쟁으로 인한 대량학살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승자인 입다의 영웅담으로 기억하였다. 그리고 국가는 입다 같은 영웅들의 전통을 승계한 유일국가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의 공식 기억은 희생자의 소리가 아니라 입다의 소리를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식민지 시대 말기에 있었던 성서의 최종 편찬 과정에서도 그 사정은 대동소이하다. 현대의 성서 연구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이 텍스트에서 집단학살을 떠올리지 않았다.




이쯤 되면 완벽한 체험 삭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3천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희생자의 후손도 학살의 트라우마를 회상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시간이 지났다. 아니 희생자의 기억을 안고 있는 역사의 주체가 사라졌다고 하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전혀 예상 못한 곳에서 기억이 부활했다. 루마니아 출신 유대인 작가 파울 첼란(Paul Celan)1955년 발간한 시집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Von Schwelle zu Schwelle)에 수록된 시 <쉬뽈렛>(Shibboleth)에서 이 단어를 소환함으로써 집단학살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1936년부터 3년간 벌어진 스페인 내전의 희생자를 기리는 조촐한 추모행사에 참여한 시인은,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어느 때에, 내전 이후 계속되는 정부의 집단학살과 반인륜범죄(고문과 살해)를 목도하면서 이 시를 썼다.

첼란의 의식 세계 속에서는 청산되지 않은 집단학살 사건은 바로 그 미청산때문에 세계 도처에서 끊임없이 발생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 자신도 유대인으로서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체험한 자였다. 그는 이러한 비극적 사건들 속에서 단어 하나만으로도 섬뜩한 잔인함이 살기어린 칼날을 번뜩이고 있음을 충분히 겪어냈다. “단어 하나에 죽음 하나”, 첼란의 이 시구는 나치 수용소에서 체험한 무수한 죽음들이 바로 그런 평범한 단어 하나를 매개로 수행되었음을 폭로한다. ‘쉬뽈렛도 그랬다. 한 단어로 그리는 참혹의 미학, 아니 참혹의 신학이 바로 첼란의 시를 채우고 있다.

 


간접적 희생자

 


아르헨티나의 사회학자 다니엘 파이어스타인(Daniel Feierstein), 형법은 희생자의 개념을 직접적 희생자에 한정하여 다루고 있지만, 그 담론적 여파를 논할 때에는 간접적 희생자개념이 더 유용하다고 말한다. 폭력의 피해를 입은 직접적 희생자만이 아니라, 그로 인한 희생자들의 트라우마가 사회적 유대를 해체, 왜곡하는 상황을 초래하기에 폭력은 간접접 희생자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특히 집단학살의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실제로 4.3의 경우처럼 국가에 의한 집단학살의 표적은 좌익 무장세력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사회 전체다. 나아가 4.3은 남한 단독정부를 둘러싼 온갖 이견에 대해 국가가 단호히 대처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표징적 사건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민주화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1987년 이전), 아니 포스트신권위주의 시대가 도래 하는 징후가 엿보이는 2013년 이후까지도 계속되는 방식, 곧 모든 반대는 종북의 흔적이고, 그런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공포가 통치의 기재로 활용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냉전주의적 안보론의 기저에는 국가에 의한 4.3의 기억이 있다. 하여 브루스 커밍스(Bruce Commings)가 말한 것처럼, 4.3은 이후 전개될 한국 정치의 확대경이고 현미경이다.





그러므로 4.3은 단지 1948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집중된 제주민에 대한 국가의 집단학살만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를 아우르는 공포의 정치로 번안되고 재해석되어 파급된 현상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4.3의 담론적 여파는 한국인의 왜곡된 냉전주의적 성향체계(아비투스)에도 미친다. 하여 그것은 한국인과 얽힘으로써 발생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 혹은 사회의 갈등 상황으로까지 연장된다. 즉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그런 것처럼, 4.3의 간접적 희생자 문제는 전 세계의 평화주의적 성숙을 지체시키는 요소로 세계 속에 잔류한다고 확대해석할 수 있다.

요컨대 4.3 담론의 여파는 간접적 희생자를 주목할 때 그 문제적 측면이 더욱 두드러진다. 오랫동안 4.3에 관한 신학적 문제를 연구해온 문창우 신부가 제주에서의 이 집단학살 사건을 기리는 우리 모두가 제주의 문제를 넘어서 반생명이 넘치는 이 죽음의 세계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형법적인 직접적 희생자의 관점을 넘어서 간접적 희생자의 차원에서 사유할 때 4.3의 기억은 전 지구 차원의 평화 실천의 한국적 교두보인 것이다.

파울 첼란은 <쉬뽈렛>을 통해 스페인 내전과 그 이후에까지 계속되는 국가의 집단학살과, 고문과 살해 등의 반인륜범죄, 그 반생명적 폭력성을 고발하기 위해 판관기의 쉬뽈렛/시뽈렛 설화, 그것의 집단학살의 기억을 담론의 재판정으로 소환한다. 이 두 사건의 간접적 희생자로서 그는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는 두 사건을 연루시킴으로써 판관기12장에서 유실된 체험이 어떻게 오늘의 역사 속에 재현되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판관기에서 집단학살의 체험을 유실시키고 국가 형성의 기억으로 편승시킨 결과는 3천년이 지나도록 이런 폭력에 대해서 기독교인을 포함한 인류가 둔감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리하여 나치의 홀로코스트, 스페인의 홀로코스트(프랑크 정부의 집단학살과 반인류범죄 등), 한국의 홀로코스트(4.3 )의 공범자로 우리가 연루되어 있게 하였다.

 

평화신학





현대 평화학의 토대를 세운 요한 갈퉁(Johan Galtung)에 따르면 평화는 단순히 전쟁 없는 상태(negative peace)가 아니라 개인적, 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positive peace)를 가리킨다. 하여 현대 평화학은 폭력으로 인한 직간접적 희생자들의 성향체계(아비투스)의 문제,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공간적으로 확대된폭력의 악순환 문제에 개입한다. 이것은 동시에 평화신학이 추구하는 논점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4.3은 제주에서 벌어진 집단학살 한 사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한반도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시간적으로 현재까지도 그 담론적 여파를 미친다. 그런 점에서 4.3은 한국의 신학자들이 다뤄야할 평화신학의 중심 테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앞의 문창우 신부의 글의 제목 신학적 주제로서의 4.3’평화신학적 주제로서의 4.3’으로 수정할 때 그 실천적 논지가 보다 명확해질 수 있다고 본다.

평화신학으로서의 4.3’의 핵심 논점은 고통(과 치유)이다. 집단학살로 인한 고통과 치유를 평화신학의 관점에서 다룬 대표적인 서구신학적 표제가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이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의제는 (승리하는 영광의 신이 아니라) 고통스러워하는 신이다. 문창우 신부는 이러한 논제를 4.3에 잘 적용했다. “그분이 보지 않는 죽음은 하나도 없었고 그분은 피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그분의 눈 속에 그분의 귀속에 맺혀 있다.” 4.3 희생자들의 고통을 그분이 목도했고 고통스러워했고, 그들과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하여 그는 단언한다. “그들은 그분의 십자가였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그분의 십자가였다.”는 표현을 그는 하느님의 실천이라는 점에서만 다룬다. 실은 이러한 서사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의 가장 치명적인 한계다. 왜냐면 이런 류의 신학적 작업들은 신도 함께 고통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인간의 고통을, 고통의 양상 자체를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이와는 달리, 고통의 구체적 양상을 다루는 데 있어 민중신학적 접근은 매우 유용하다.

집단학살의 가장 심각한 고통 양식은 트라우마적 증후. 트라우마는 개인이 감당하기에 벅찬 충격적인 체험의 기억이 의식 속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막는 내면의 거부반응을 수반한다. 즉 트라우마의 가장 대표적인 증후는 기억 장애. 하지만 동시에 트라우마는 그 고통을 신체와 정신의 장애 현상으로 외면화(externalization)하는 현상을 수반한다. 요컨대 트라우마는 기억 장애로 인해 고통이 언어로 표현되는 것을 가로막지만, 동시에 신체나 정신 질환의 양상으로 드러난다. 신음, 히스테리, 중얼거림, 발작 등이 그것이다. 이런 증상은 그 자체로는 언어가 아니지만 그것들은 그이들의 고통을 우회하여 말하고 있다. 즉 이  외면화는일종의 비언어적 언어. 민중신학은 이러한 비언어적 언어화 현상을 ()이라고 불렀다.



민중신학자 서남동은 이러한 한의 소리를 증언하는 것이 (민중)신학자의 과제라고 말했다. 말했듯이 한의 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다. 비언어적으로 돌출하는 질환적 증후일 뿐이다. 한데 민중신학자는 그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대중이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번역하는 자다. 그 번역 행위를 수행하는 이를 서남동은 한의 사제라고 명명한다. 즉 이러한 번역 행위 자체가 일종의 치유 과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치유는 질환자 개인에 한정되는 치유가 아니다. 그 질환자로 인해 야기된 갈등과 고통의 치유에 개입하려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질환자의 치유를 도모한다. 하여 정신분석가는 그 질환적 증후에서 파편화된 개인사를 읽어내지만, (민중)신학자는 파편화된 사회사를 해독한다. 하여 정신분석가의 치유가 개인으로 환원되는 치유라고 한다면, (민중)신학자는 사회적 치유를 지향한다. 바로 이 사회적 치유가 현대 평화신학의 실천적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재규정한 문창우 신부의 평화신학적 주제로서의 4.3’이라는 논제는 신학자로 하여금 4.3 희생자(직접적 희생자뿐 아니라 간접적 희생자를 포괄하는)들의 파편화된 소리, 트라우마적 증후들을 수집하고 해독하는 실천을 수반한다. 여기서 신학자라는 표현은, 민중신학적 정의에 따르면, ‘신학적 실천을 수행하는 자’, 그러니까 이 표현은 신학적 사유와 실천을 결합하고자 수행하는 평신도 사목자와 전문직 사목자를 포괄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마태복음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 이러한 신의 고통의 해석자일 뿐 아니라 사회적 치유자로서의 평화신학적 실천이 함께 수행될 때, 문창우 신부가 결론부에서 말한 “4.3같은 비극을 배태한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의 해소를 신학적 의제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 충족된다. 즉 개인의 고통이 사회적, 구조적 고통과 연루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을 치유하는 일은 모순을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여 집단학살에 관한 문제에 있어 평화신학적 고통과 치유의 서사는 이렇게 요약된다. 집단학살이 야기한 고통은, 그 고통의 트라우마적인 비언어적 표현들은 바로 신의 신음이며 신의 발작이다. 또한 그러한 질환을 겪는 이들의 치유 과정은 상처 입은 신의 치유 과정이고, 나아가 사회적, 구조적 모순, 그 복잡하게 뒤얽힌 사회적 상처들의 해소 과정이다.

 

간접적 희생자로서의 민족?

 

문창우 신부는 결론부의 또 다른 구절에서 제주 4.3의 희생자는 한국인 모두이고 그 책임자도 한국인 모두이며 그 진실을 65년 동안 묻어둔 비겁함과 태만의 책임도 살아있는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이다. 이제 제주 4.3 해결에 제3자의 입장이란 없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는 우리 민족의 범위를 넘어서서 세계의 새로운 평화질서를 향한 반성의 잣대로서 4.3을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4.3의 고통과 치유는 민족적 체험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이 녹아 있다. 앞서 말했듯이 간접적 희생자는 전 지구적 반평화, 그 죽임의 체계와 연루된 모든 이들이다. 파울 첼란이 기원전 11세기의 쉬뽈렛/시뽈렛 설화와 스페인 내전이 야기시킨 집단학살과 반인륜범죄를 연결시킨 것처럼, 4.3 또한 쉬뽈렛/시뽈렛 설화와 얽히며, 온갖 홀로코스트 사건들과 얽힌 고통의 사건이다. 쉬뽈렛/시뽈렛 설화가 요시아 왕정에서 승자의 목소리로 변조되어 나타난 것이 스페인 내전의 비극적 사건들의 담론적 배후가 될 수 있듯이, 그것은 4.3의 배후이며, 4.3은 또 다른 고통의 사건들의 배후다. 또 거꾸로 4.3의 치유가 그 앞뒤의 고통의 사건들에 대한 담론적 치유를 향한 사건이다.



한데 종종 민족으로 간접적 희생자의 체험을 국한시키는 경우가 있다. 유대인의 홀로코스트 해석이 그 한 예다. 역사학자 임지현이 말하는 희생자 의식 민족주의(victimhood nationalism)가 그 논리다. 자기 민족의 희생만을 성화(聖化)시키면 다른 희생에 대해 무감각해지며, 종종 다른 이들에 대한 가해의 논리로 작동한다. 현대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팔레스티나인 주민에 대한 전쟁과 반인륜적 범죄들이 그렇다.

한반도에는 변형된 희생자 의식 민족주의가 작동해 왔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우리 민족이 희생되었다는 의식이 과도하게 작동하면서, 민족에서 공산주의자를 제거하고, 유사 공산주의자를 배제하는 가학의 논리가 작동한다. 그 점에서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제국주의가 우리 민족을 희생시켰다는 과도한 의식이 전면화되면서 민족에서 제거된 제국주의의 부역자들이 반동의 이름으로 숙청되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유사 부역자들이 생산되고 처벌된다.

이와 같이 간접적 희생자 담론이 민족배타주의와 결합하면 그것은 치유와 해방의 담론이 아니라 고통과 파괴의 담론이 된다. 하여 4.3이라는 이름의 평화신학 담론은 4.3을 민족의 기억으로 재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전 지구적인 고통과 치유의 담론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태초의 신이 역사 안으로 들어와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고통을 겪는 이들의 모습으로 환생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신이 영이 되어 모든 몸의 경계를 뚫고 전 지구적 고통의 몸으로 환생하는 것처럼, 4.3은 시공간적 경계를 넘어 초월자와 동일화되기도 하고 내재적인 역사사회적 사건들과 동일화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