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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나누기(설교)

혐오주의에 반대하다 (설교원고)

이 글은 연세대학교 수요예배(신과대 & 연합신학대학원) 설교(2015. 11. 04)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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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주의에 반대하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9,19

 


 

북아프리카 출신 10대 소년이 내게 시간을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내 스마트폰을 퍽치기 할 계획이었던 모양입니다. 프랑스에 13년째 거주하는 어느 미술작가는 자기가 당한 스마트폰 퍽치기 사례를 알려주었습니다. 집시소녀 셋은 팀이 되어 나의 가방 지퍼를 열었습니다. 책밖에 없던 덕에 그녀들의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3일째 마주친 동유럽 이민자로 보이는 남자는 밤이 되면 구걸하는 노숙자이면서 낮엔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옷가지나 음식을 먹습니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그런 이들은 가끔 한적한 데서 강도로 돌변한다고 합니다.

유학생으로 와서 직장생활까지 하고 있는, 15년째 프랑스에 거주하는 연변 출신의 조선족 부부는 새로 이사 간 동네에서 흑인 갱단이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는 걸 목격했습니다. 13년째 프랑스에 살고 있는 다른 미술작가는 집 옆에서 북아프라카 출신 갱단간의 총격전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주민 한 사람이 사망하는 것을 겪었습니다.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인 프랑스 남부의 도시 마르세유의 풍경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 도시는 유럽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곳이기도 하고, 특히 북아프리카에서 유입된 마약 원료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유럽 최대의 기지로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선 인구가 두 번째인 이 도시는, 열배나 인구가 많은 미국 뉴욕에 맞먹는 마약범죄가 발생하는 곳입니다. 해서 프랑스 당국은 몇 년 전 이 도시를 최우선 치안구역으로 지정하기까지 했습니다.

매일 오전 101분에 외교부 발 문자 한 통이 날아옵니다. “프랑스 대테러 경보단계 최상급 유지 중. 신변안전에 각별한 주의 요망.” 이곳에 거류하는 한국인들 말에 의하면 작년부터 매일 똑같은 문자가 왔다고 합니다. 외교부의 그밖의 다른 조치나 교육이 전혀 없는 걸 보면, 이 문자의 정체는 한국인 피해자가 생겼을 때 외교부의 책임 면피용인 듯합니다. 이것은 이 낯선 곳에서 나의 정부는 나를 돌봐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연일 겪고 듣는 이런 사례들에 강박증이 생깁니다. 가방은 언제나 대각선으로 맸고,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힘주어 움켜집니다. 교통카드와 신용카드를 넣은 주머니를 수시로 확인하고, 주변에 흑인이나 유색인, 집시, 동유럽 사람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있으면 잔뜩 긴장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피해를 안 받고자 방어적 태도를 취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단순해집니다. 위험한 이들과 아닌 이들, 마주치면 경계할 이들과 미소 지으며 인사할 이들, 얽히고 싶지 않은 이들과 얽히고 싶은 이들, ......, 해서 결국은 나쁜 이들과 좋은 이들. 하여 그 도시의 골목길과 큰길, 대중교통과 관광지, 시장에서 나는 무의식적 인종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합니다. 가판대에 놓인 신문들 가운데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주의를 은연중 혹은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우파나 극우파 신문들을 집어 드는 이들이 현저히 많아졌습니다. 전통적인 좌파 지역인 이 도시 시장도 우파정당에게로 넘어갔고, 심지어 극우파를 지지하는 이들도 현저히 늘어났습니다.

인구의 40%가 북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동유럽 이민자, 집시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서유럽 출신 백인보다 이들 이민자가 더 많은 도시로 보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불법 이민자들이 너무 많은 탓인지도 모릅니다. 요컨대 양적으로 백인이 결코 다수자가 아닌 도시에서 백인 편향이 강한 정권이 집권한데다 백인인종주의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뜩 들른 가톨릭교회에서 점심 미사가 열립니다. 2백 명은 넘어 보이는 신자들 가운데 백인이 아닌 이는 어린 아기를 보행기에 태우고 앉아 있는 흑인 여성과 나, 둘뿐이었습니다. 듣기로는 대부분의 성당들은 거의 백인 중산층뿐이고, 교회의 사회적 활동도 대개 보수우파적 성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주일에 방문했던 개신교교회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너무나 친절하고 관대하며 성숙해 보이는 백인들이었지만, 무슬림과 동유럽 이민자, 집시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것이나, 범죄자에 대한 혐오 이상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집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내면의 문제였습니다.

여행 중인 지난 두 주 동안 느낀 이 도시의 풍경 중 가장 눈에 뜨인 것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를 걷던 낯선 여행객도 그 풍경에 동화되고 있었습니다.

21세기 내가 거닐던 이 도시처럼, 1세기 중반 지중해의 여러 메트로폴리탄들의 거리와 시장을 거닐던 낯선 방문객인 바울이 마주친 풍경도 나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이민자들이 넘쳐났고, 그들은 대개 불결했고 불량했으며 위험하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그들 중에는 인장이 찍힌 노예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와 거리를 떼 지어 몰려다니니 사람들은 그들로부터 혹여 해코지 당할까 두려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옥타비아누스가 지존자(아우구스투스)의 위상을 차지할 때 선포했던 팍스로마나로 정복전쟁이 종식된 이후 노예의 무한 공급체계가 무너지자 노예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지요. 이에 노예노동의 의존했던 대농장들이 속속 농지를 소작농에게 임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노예들을 무당방출하기 시작했고, 이들 방출노예들은 생존을 위해 대도시들로 몰려왔던 것입니다.

하여 도시들의 시민 대다수 사이에는 낯선 이민자들, 특히 노예에 대한 혐오감정이 치솟아 올랐고, 많은 대도시들에서 공식적 거류민 기관으로 인정받은 이스라엘계 이민자들의 회당에서도 비슷한 혐오주의가 강력한 여론으로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바리사이라는 신앙운동은 실재했음이 분명하고 상당히 활동력 있는 운동을 도처에서 벌인 것임은 의문의 여지없습니다. 다만 아직 그들은 하나의 이념이나 교리로 묶인 이스라엘의 신앙종파는 아니었습니다. 해서 후대에 비교적 잘 조직된정파로 자리잡은 뒤의 문서들로 이 시대 바리사이 운동의 정체를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빈약하지만 당대의 정보들로 그 운동의 양상을 그때그때 해석하는 것이 필요한데, 바울의 진술 속에 등장하는 바리사이 운동의 정체는 앞서 말한 지중해 도시들의 이민자 혐오의 분위기 속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날과 달과 해의 절기를 중요시하고, 할례를 특히 강조하는 율법주의자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율법 해석은 좀더 개방적인 사마리아적 신앙보다는 더 순혈주의적인 유대적 신앙에 가깝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유대주의 중에서도 강성의 행동주의적 신앙운동을 벌였던 것 같습니다. 한데 바울은 이 운동들에 반대하면서 이방인과 여자, 노예들이 주 안에서 차별 받지 않는 신앙을 강변합니다. 그것은 바리사이가 이방인 개종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여성이나 노예들이 공공연히 예배에서 발언하는 것을 억제하는 주장을 펴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필경 이방인, 특히 방출노예에 대해 이스라엘계 회당에서도 혐오주의를 부추기는 운동이 힘을 받고 있을 때 바울은 그것에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여 오늘 본문에서 보듯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노예)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자유로운 몸에 대비되는 노예는 상징적 표현이 아닙니다. 노예인장이 찍힌 채, 그들을 먹여 살리던 주인에게 버림당한 이들, 일종의 유기견처럼 떠돌이가 되어 밑바닥 삶을 전전하며 쓰레기 같은 삶을 살던 이들에게 그는 복음을 전했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했으며 그들과 함께 주의 예배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1세기의 바울은 당시의 세계화된 땅 지중해 대도시들의 거리를 거닐면서 이렇게 주의 복음을 해석했고 실천했습니다. 당대의 혐오주의를 거슬러서 저들 불결하고 불량한이들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자유인이지만 노예가 되었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신이 고통받는 이가 되어다는 주의 복음처럼, 바울도 그가 주 안에서 함께 하고자 했던 저들, 특히 노예들과 같은 존재가 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에 관한 책을 쓴 나는, 21세기 지중해 도시 거리를 거닐면서 무의식적 인종주의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바울이 가르친 주의 복음에서 떠나갔습니다. 하여 이제 나는 속죄의 고백과 함께 타인이 되었다는 바울의 자기 선언을 여기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곱씹어 보려 합니다. 주여, 저를,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소서. (올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