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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민중담론은 민중을 어떻게 기억해낼 것인가 - 권진관의 <중진국 상황에서 민중신학 하기>에 대한 논평

이 글은 지난 2010년 4월 9~10일 감신대에서 열렸던 제1회 한국신학심포지엄에서 발표(4.10토)된 권진관 선생의 글 <중진국 상황에서 민중신학 하기 - 민중론을 중심으로>에 대한 논평의 글입니다. 권진관 선생의 글과 저의 논평글을 올립니다.

권진관_중진국 하에서의 민중신학_한국신학.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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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담론은 민중을 어떻게 기억해낼 것인가

권진관 선생의 중진국 상황에서 민중신학하기민중론을 중심으로에 대한 한 논평

 

 


내가 보기에 이 글의 가장 큰 미덕은 민중신학의 담론 형성에서 (신학사적 맥락성Contextuality of History of Theological Theory보다는) 한국사회의 변화라는 동시대적인 맥락성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은 민중신학적 서사가 신학적인 이론의 이론[각주:1]을 지향하기보다는 신학적 실천이론을 추구하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신학적 이론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선행하는 지배적인 신학적 가설을 전제로 하고, 그것과의 거리를 논하는 작업을 통해, 곧 그 유사성과 차이를 명료히 하는 방식으로 수행되어왔다. 반면 민중신학은 처음부터 선행하는 신학적 언술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한국사회와 교회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강조하면서 등장하였다. 하여 민중신학이 대면하고자 하는 실제 대상은 선행하는 신학적 이론의 주체, 서구신학의 담지자가 아니라 동시대 한국사회, 특히 그 시대적 사회 형성 과정이 파생시킨 고통의 경험적 담지자로 가정된 민중이었다.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은 일반적인 신학적 서사들과는 다른 언술형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시도는 이미 민중신학의 초기부터 있어왔다. 우리는 서남동의 민담의 신학이나 빈곤의 사회학과 빈곤의 신학, 김용복의 민중의 사회전기, 그리고 안병무의 선천댁등에서 그러한 신학적 서사 형식에 대한 민중신학자들의 창조적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또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집필된 강원돈의 물의 신학의 원고들도 한국적 1980년대식의 서사적 독창성이 신학적 형식에 담긴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민중신학적 서사는 동시대성을 주요변수로 하는 비판적 신학운동의 산물이다. 여기서 동시대성이라는 가상의 실체는 언제나 동시대 비판담론의 형식과 대화하며 재현된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비판담론의 재현은 1970년대~1980년대 중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 1990년대 중반~현재까지의 세 단계로 국면적인 전개 상황을 보인다. 나는 이러한 비판담론의 국면적 전개와 민중신학의 신학적 서사의 전개가 서로 상응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 민중신학 담론의 세대론을 주장한 바 있다.[각주:2]

다시 권진관의 글로 돌아와 보자. 선생은 이 글에서 중진국 상황이라는 시대성을 통해 과거의 민중신학적 서사와는 다른 언술형식을 가져야 한다는 논점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 중진국 상황이라는 동시대적 문제의식을 구체화하는 개념적 언술로 포스트포드적 생산방식에 기초한 포스트모던 시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것이 지구화시대 한국사회의 독특성을 설명하는 언술로 얼마나 적절한지의 문제는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다만 포스트포드주의포스트모던이라는 두 용어를 연결하여 약술한 개념적 언술 속에는 ‘1990년대 이후라는 시대인식이 함축되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이라는 국지적 공간성의 문제가 고려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좀더 보충적인 설명을 필요로 한다.

아무튼 선생은 그러한 동시대에 대한 비판적 언술을 넘어서기 위해 다중주의자들의 이해방식을 빌려온다. 또 한 번 그가 빌려온 다중론이 다중론자의 그것과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의 문제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나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론을 빌려 올 때 원본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여부보다는 재해석의 독법, 그 취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재해석은 대개 원본의 그것보다는 논리적 적확성이 결여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논리적 적확성을 잣대로 재해석의 타당성을 논하는 것은 원본에 대한 ()의식적 식민성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재해석 속에 내재된 문제의식을 주목하는 게 논평자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본다.

나의 판단으로는, 선생이 다중론을 빌려옴으로써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포스트포드주의적이고 포스트모던적인 중진국 상황에서 오늘 한국의 민중 문제는, 민족이니 노동자니 하는 단순 명료한 획일적 정체성으로 호명될 수 있는 지난 시대의 민중과는 달리, 매우 복잡하게 분화된, 다중적 존재 상황에 놓여 있다. 이것은 민중운동의 낙맥을 가져왔고, 지배적 제도와 담론에서 민중적 논점이 개입할 여지를 심각하게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선생을 이러한 민중담론의 위기상황을 지칭하기 위해 중진국 상황의 민중이라는 용어를 끌어들인다.

실제로 민중신학에 대한 토론의 장에서 많은 비평가들은 저개발국가를 탈출하고, 중진국화된 한국에서 민중은 존재하는가?’를 묻곤 한다. 선생의 중진국 상황의 민중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그 나름의 대답으로 보인다. 많은 비평가들이 민중이 부재하다고 보는 것은 제도와 담론에서 민중이 망각된 결과라는 것이다. 선생의 중진국 상황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러한 망각의 메커니즘에 대한 물음을 수반한다. 바로 여기에 민중신학의 과제가 있다는 것이다. 즉 민중신학은 망각된 민중, 분열되어 정치적 결속의 가능성을 상실한 민중을 재주체화하여 대안적인 신학적 지식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새로운 지식을 그는 다중론에서 발견하였다. 하여 다중론을 통해 민중신학적 서사를 재구성함으로써, 민중운동의 부활을 위한 신학적 비판담론으로 자리매김하여야 한다는 얘기다. 하여 그의 다중론 수용, 다중론적 민중신학은 일종의 대안적 지식 혹은 대안적 지식인으로서의 민중신학과 민중신학자, 중산층적 민중교회와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실천윤리로 귀결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많은 부분에 대해 나는 공감한다. 특히 시대성을 민중신학적 서사의 핵심적 요소로 보는 그의 관점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중진국 상황에 대한, 그의 동시대성의 해석에 대해 몇 가지 동의할 수 없는 점이 있다.

선생은 포스트포드주의적 생산방식과 포스트모더니즘적 질서가 정착되어 가는 지구화의 시대에, 민중의 구성원은 다양해졌다고 이해한다. 더 이상 노동자, 도시빈민, 농민으로 단순화할 수 없는, 다중적 정체성의 존재들이 계기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본다. 가령, 노동자의 경우만 보더라도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대기업노동자인지 중소기업노동자인지, 내국인 노동자인지 외국인 노동자인지 등등, 이러한 차이들이 더 이상 동질성으로 묶을 수 없는 요인으로 작동하게 되었다는 것이겠다. 무엇보다도 선생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른바 지식노동자가 전례 없이 중요한 위상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

선생이 강조하는 중진국 상황에서의 민중이라는 표현은 분산된 주체성으로 인해 역사의 무대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죽은 민중의 상황을 내포한다. 하지만 동시에 새롭게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되는 새로운 상황이 노정된, 즉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 있는 민중의 상황을 내포한다. 그것은 동질적 정체성으로 묶인 민중이 아니라, 다중화된 네트워크로 연대하여 공공선을 부르짓는 다중적 민중이 새롭게 정치적 주체를 구성하게 되었고, 그것을 매개하는 다중적 민중 담론이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때 이 다중적 민중 담론의 형성자가 지식노동자층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선생은 민중교회와 목회자들, 신학자들의 민중신학적 자리를 발견한다. 선생에 따르면 민중교회는 최근 지식 노동자들이 구성적 중심을 이루게 되는 변화를 직면하게 되었기에, 이제 민중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민중신학자는 다중적 담론 형성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게 필요해졌고, 또 그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중의 다중화는 과연 포스트포디즘적인 시대의 산물인가? 오히려 민중은, 민중담론이 활발하게 역사의 무대에서 재등장하던 1970년대부터 다중적이었다. 선생은 이 시기 민중신학자들이 민중을 정의내리려 하지 않은 것은 민중을 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실재계의 민중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던 것이라고 해석한다. 선생의 이 해석은 1세대 민중신학자들이 민중을 말하지 않고 느껴야 한다고, 즉 민중에 대한 일체의 담론화를 거부한다는 뜻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 주장은 넌센스다. 민중신학자들 누구도 민중을 담론화하지 않은 적은 없다. 민중신학 자체가 민중의 담론화를 의도한 행위임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획일적 주체성으로 옷 입은 단일 주체의 민중으로 재현하려는 화석화된 민중 담론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민중신학자들이 일찍부터 민중의 다중성을 훼손하고 화석화하는 민중론을 문제시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시기 민중운동을 연구한 정치사회학 연구자 김원이 부마항쟁을 민중운동, 민주화운동으로 수렴될 수 없는, 도시 하층민의 이질성과 복합성을 드러내는 도시봉기라고 설명한 것[각주:3]은 민중의 다중성이 이미 1970년대적 현상이기도 했음을 의미한다. 조희연은 민중의 화석화는 민주화운동 주체들의 섣부른 이데올로기적 활용과 이에 대한 지배체제의 담론적 억압과정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담론화된 결과라고 본다.[각주:4]

요컨대 산업화시대이고 고도성장시대인 1970년대에 비판담론의 핵심적 요소로 재등장한 민중이라는 담론적 요소는 여러 계층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병존하는 획일적이지 않은, 정치적으로 배제된 다중적 존재를 가리키는 비개념적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선생이 말하고 있듯, 노동자의 내적 분열이라든가, 특히 지식노동자의 등장을 포스트포디즘적 시대의 특징으로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산업화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 이행하는 것은 근력기반사회에서 지식기반사회로의 이행을 함축한다. 근력기반사회의 핵심적 생산주체인 근력노동자계층의 상당수가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하면서 계층하향을 체감해야 했고, 특히 비정규직화되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현상과 맞물려 노동시장의 이중화, 혹은 삼중화를 이야기하는 해석들이 많다는 것은 민중계층의 분화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지식기반사회의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한 지식기반노동자의 등장은 이러한 노동시장 분화 논리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요컨대 포스트포디즘적 시대는 민중의 다중화의 특정한 양상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민중의 다중성은 포스트포디즘의 독특한 특성이 아니라, 다중적인 민중이 포스트포디즘적 세계에서 다른 방식의 다중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서 선생은 민중의 다중성을 말하기 위해 안토니오 네그리나 빠울로 비르노 같은 다중론자의 글을 독서해야 했지만, 다중성은 이미 한국 민중론자들의 생각 속에 담긴 것이었다. 그런데 선생의 외삽적 독서를 통한 생각이 선대 민중신학자들과 다른 지점은 지식노동자의 민중담론형성의 네트워크적 중심성에 있다. 아마도 바로 이것이 아마도 포스트포디즘적 세계에서 민중의 다중성, 그 독특한 특성에 관한 선생의 생각을 특징짓는 함의일 것이다. 선생은 이 생각을 위해 다중론자들의 책에서 배워야한다는 강변을 하고 있는 것이겠다. 그런데 이 주장은, 내가 보기엔, 너무 나이브한 낙관론 같다.

주지하듯이 과거 군부권위주의 시대는 사회적으로 고도성장상황에 있었다. 브루스 커밍스가 얘기하듯이 한국사회, 특히 남한사회는 1950년에 비로소 전쟁 상황에 돌입한 것이 아니라 해방직후부터 이미 내전상황에 있었다. 그런데 군부권위주의 정부는 해방이후 계속된 전시동원체제를 발전동원체제로 재편하여 사회적 자원을 성장을 위해 총동원하는 데 성공한다. 이것은 실제로 성장에 있어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한다. 한데 이러한 성공을 위해 정부는 발전동원체제에 편입될 수 없는 타자를 생산한다. 그들은 불순한 존재이며 따라서 격리의 대상이다. 하여 제거의 정치(politics of elimination)가 사회 전 영역에서 고강도로 작동한다. 국민은 이러한 제거의 대상에 대한 국가의 색출을 의식하며 사회에 통합되었고, 이것은 이 시대의 민중문제가 국가 대 국민이라는 대립선을 중심으로 노정될 수 있는 제도적 토대였다.

한편 이 시기 한국사회는 국가 차원의 사회적 결속의 제도가 도처에서 구축되었다. 노동은 국가발전과 직접적인 연계를 지니며 담론화되었고, 여행이나 이주 같은 국경 너머로의 이동은 극히 제한된 반면, 고속도로로 상징되는 국가내의 공간적 결속의 정도는 이전 시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해졌다. 또한 애국가로 시작해서 애국가로 끝나는 TV 시청시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국민이 공유하는 시간이 전 사회를 아울렀다. 하여 한국의 민중은 이러한 시공간적 공통감각 위에서 국가에 예속되었고, 또한 국가에 저항하는 존재였다. 교회도 이러한 국가주의를 여실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담론화었다. 그것은 교회가 국민의 공간으로 신앙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은 기본적으로 국가 차원의 제도적 통합이 권위주의적이 아닌 민주적인 방식으로 재구성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민중운동은 이러한 재구성 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거된 대중과 제거의 위협에 놓인 대중은 모두 국가의 제거의 정치의 직간접적인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민중운동 역시 국가화된 교회에 대한 저항이자, 그 연장선상에 있는 국가에 대한 이의제기를 중심으로 담론화되었다. 요컨대 다양한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들은 국민적 결속에 대한 군부권위주의적 모델을 문제시하고, 그 속에서 배제된 존재, 나아가 배제의 위협 아래 놓인 존재, 곧 국민의 신원회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 지평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말 이후 민주화는 저항담론이 아니라 새로운 지배담론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국가의 욕망에 스스로를 동일시해야 하는 존재인 국민은 민주화의 시대에 그러한 제도화에 개입하는 주체로 호명되기 시작하였다. 이제 국민은 국가라는 정치의 장에 개입하여 국가를 형성하는 하나의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시민이 바로 그러한 존재다. 곧 시민은 민주적 제도화 시대의 국민이며, 국가의 욕망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위해 국가와 거래, 교섭하는 존재다. 하여 이제는 국가와 시민은 서로 어떤 형식으로든 연계된다.

그러므로 민주화 시대 민중은 시민의 외부, 곧 비시민이 된다. 그것은 국가의 형성을 위해 개입할 자원을 상실한 존재가 곧 비시민으로서의 민중이라는 의미이다. 이제 국가 대 국민이라는 대립의 선은 국가+시민 대 비시민이라는 새로운 대립의 틀로 재편되기 시작한다.

한편 한국의 민주화는 소비사회와 시기적으로 맞물려 시작하며, 특히 보다 진정한 민주정부가 집권한 시기는 지구화의 소용돌이에 사회가 급격하게 편입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소비사회는 욕망을 정치화할 수 있는 주요 자원이 소비능력인 사회이다. 즉 소비사회의 시민은 끊임없이 국가의 욕망이 아닌 자기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을 실현하라고 속삭이는 자본의 호명에 직면한다. 즉 이 시기 시민은 시장화된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매우 급속한 소비사회화를 체험한 한국의 시민은 성찰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소비적 주체로 호명되었다. 이것은 한국의 시민은 천박한 소비주의적 시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천박한 소비사회와 그 주체들의 사회에서 비시민은 배제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 배제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처럼 국민으로부터 격리해야 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시민 자체가 그 배제의 체제에 어떤 형식으로든 적극적 동참자이기 때문이다. 하여 경제학자인 정건화와 공간지리학자인 박배균은 우리 시대 배제의 메커니즘을 제거의 정치가 아니라 잊어버림의 정치(politics of forgetting)라고 명명한다.[각주:5]

이때 잊어버림은 그 대상의 탈주체화와 관련된다. 그것은 망각의 주체가 단순히 그들을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탈주체화라는 것은 그들 자신의 존재가 끊임없이 파산의 위기에 놓인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극빈층 지역은 시민의 지역보다 더 폭력적이고 더 범죄적이다. 또한 알콜릭, 마약중독 같은 자기통제상실의 상황이 더 심각하다. 바로 그곳에서 김길태가 성장했고, 무수한 범죄자들이 자라났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들을 희생자로 보는 게 아니라 실패자로 본다. 왜냐면 그들은 노동능력을 상실한 무능력자이고, 부도덕하고 폭력적이며 범죄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잊어버림의 실태가 있다.

그렇다면 선생이 강조하고 있는 지식노동자이 중심이 된 다중적 네트워크에 의한 운동, 다중주의적 담론화는 이러한 민중의 잊어버림을 다시금 기억해내는 독법을 갖고 있는가? 내가 말하는 시민 대 민중의 분화를 가로지르는 시민적 성찰의 담론을 생산하고 있는가?

단언할 수 없지만 쉽지 않음을 얘기하는 것은 그리 과장된 주장이 아닐 것이다. 가령 선생은 2008년의 촛불집회나 4대강 파괴저지운동은 공공선을 위한 다중적 네트워크의 긍정적 산물이라고 평한다. 이 주장에 근본적인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가치를 평하는 것은 충분히 중요하다. 하지만 시민적 공공선으로부터 망각된 민중은 이러한 공공선을 위한 다중적 네트워크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추상적 논리로, 결국에는 하느님나라처럼 모두에게 좋다는 주장이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하는 망각의 체계에 의해 사라진, ‘죽은민중에게 시민적으로 옳은 가치는 민중적으로도 옳은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암울한 상상은 4대강 파괴저지운동이 성공적이어서 MB 정부가 그 토건주의적 정책을 포기하게 되었다고 해도, 지식기반사회적 제도화가 민중 배제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현실을 시민적 공공선은 그다지 문제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시민과 민중의 연대라고 하든, 민중의 다중적 연대라고 하든, 그것이 민중의 잊어버림을 문제제기하고 개선하는 담론적 성찰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시대의 교회 현실을 보자.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성장논리와 부합하는 성장주의로 채색된 교회주의, 그 대형교회적 꿈은 아직도 우리사회의 추한 신앙제도의 몰골로 도처에서 파괴적인 몸짓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민중신학은 물론이고, 시민사회 일반도 그러한 교회의 행패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사회의 구기득권세력의 그것처럼 이들 철 지난대형교회도 여전히 막대한 자원을 독과점하고 하고 있기에, 그 권력을 해체하는 일이 요원하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시민적 담론에서 그들은 정당성을 상실한,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다.

한데 몇몇 교회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대형교회들이 그 시대착오적 성장주의에 대한 자기개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나는 이런 현상을 후발대형교회라는 이념형을 통해 문제제기한 바 있는 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런 자기 청산의 담론이 시민사회의 공공선의 가치와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가령, 몇몇 대형교회가 주도하고 있는 새로운 자기 갱신의 담론 속에 풍요의 신학이라는 담론 요소가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과거에는 빈곤에서 탈출하여 부자가 되고자 하는 국민적 욕구를 교회는 삼박자축복같은 축복신앙으로 통해 표현하였는데, ‘풍요의 신학에서 풍요는 새로 얻을 가치가 아니라 이미 누리고 있는 현존적 조건이다. 하여 여기서 축복은 그 풍요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문제시한다. 검약한 소비, 사회적 기부, 봉사형 선교 등의 담론이 여기에 덧붙여진다. 풍요를 활용하는 아름다운 태도를 풍요의 신학은 강조하는 것이다.

시민적 공공선의 가치는 이것을 어떻게 문제제기할 것인가? 실제로 우리사회의 공공적 비판담론은 교회의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 교회들이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일 때 시민적 공공성을 대변하는 매체들은 크게 문제시했다. 한데 풍요의 신학 속에 빈곤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이들 대다수는 별로 주시하지 않는다. 신학자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에 빈곤은 풍요라는 꿈을 통해 신앙 속에 제도화되었는데, 이제 빈곤은 아예 신앙제도 속에 자리가 없다. 과거의 성장주의적 축복론은 우리에게 왜곡된 주체화담론으로 비판을 받았는데, 오늘의 풍요주의는 매우 폭넓게 교회의 자기갱신담론으로 회자되고 있음에도 그것을 민중신학자들조차 연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형교회들의 자기 갱신적 프로그램, 시민적 공공성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하는 다양한 시도들을 누구도 비판적으로 읽어내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프로그램이 활성화된 교회에 많은 청년들이 몰려들고 있다. 또한 지식노동자층의 교양 있는 신앙인들이 모이고 있다. 신앙제도는 시민적 공공선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그 변화의 이면에 문화적 보수주의가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소수자에 대한 배제의 담론이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의 생각을 구성하는 데 개입한다. 이미 사형제, 성적 소수자 문제, 낙태 등에 대해 교회는 매우 단순화된, 교양 있는 중산층 중심의 가치로 기독교도들의 몸속에 편견의 기억을 제도화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시민의 공공선을 지향하는 운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공공선의 가치가 곧 민중해방을 내포하고 있다고 단언하는 주장에 이견을 말하고자 함이다. 우리 시대 민중운동은 진보적 연대 담론으로 쉽게 대체될 수 없을 만큼 너무 망각,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식노동자들의 네트워크적 담론형성의 중심성에 대해, 그것이 보수주의적이든 진보주의적이든,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의심을 떨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을 포함한 민중담론은 여전히 연대보다는 차이를 강조하는 게 필요하고, 그 소수자성을 정치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자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선생이 글 서두에서 얘기한 성서의 용어로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의 차이를 강조한 것에 대해서 같은 방식의 이견을 말하고자 한다. 선생은 해방신학이 프토코스(가난한 사람)를 얘기한 반면, 민중신학은 오클로스를 강조했다고 주장한다. 선생은 이것을 자신의 민중신학의 다중론적 해석 가능성의 성서 해석적 징후로 활용한다. 즉 민중신학은 가난 자체를 신학화하기보다는 다중으로서의 민중적인 정치적 연대를 신학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오클로스는 오늘의 다중으로 번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주장은 사실관계에서 잘못된 주장을 담고 있다. 민중신학자들 가운데 오클로스론을 신학담론으로 중요하게 활용한 사람은 안병무와 나 외에는 없다. 반면 민중신학자들 가운데서 프코코스를 신학 해석의 중요한 실마리로 다룬 이들은 적지 않다.

또한 민중신학의 오클로스론은, 2성서 여기저기에서 사용된 오클로스의 용례를 해석한 것이 아니라, 단지 마가복음에서 사용된 용례를 해석한 것이다. 마가복음의 오클로스는 세리나 매춘여성, 악령 들린 자와 같이 민족 혹은 종교공동체의 범주 속으로 소환되지 못하는 존재들, 이른바 기타 등등의 배제된 자들이라는 점에서는 다중적이지만, 그들 속에는 지식인이나 소자산가와 상응하는 바리사이 같은 이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아니 바리사이로 대변되는 사회적 통합의 틀에서 그 외부의 존재들이 오클로스에 가까운 존재다. 그것은 민족적 호명의 대상도, 노동자 대중 같은 계급적 호명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시민적 호명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프토코스를 강조하고 있는 이들은 이 용어가 극빈자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오클로스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오클로스의 용례는 극빈이라는 경제적 함의보다 배제라는 사회적 함의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다르다. 극빈과 배제는 서로 연관되기도 하지만 때로 갈등관계에 있다. 왜냐면 배제는 해체된 주체라는 함의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주체의 해체를 폭력적으로 체감한 이들은 흔히 언어 박탈현상을 겪는다. 요컨대 자기 묘사에 실패한다. 자기의 현실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지 못함으로써 그들은 침묵의 존재가 된다. ‘실어증에 들리게 하는 악령에 사로잡힌 아이와 같은 것이다. 이들은 타인에 의해 대상화됨으로써만 존재한다. 한편 가끔 박탈된 언어는 다른 형식의 언어로 표출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폭력성이다. 가정폭력의 많은 경우는 폭력의 가해자가 겪고 있는 피해의 경험이 적절하게 발설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다. 그런데 그러한 폭력의 전가/와전 현상은 가해자 자신에게서 은폐된다. , 가정폭력의 가해자는 아내나 자식이 맞을 만해서 때린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익명의 만만한3자에게 테러를 가하는 행위 같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의 행위는 범죄이고 처벌의 대상이다. 한데 시민사회의 처벌은 그러한 범죄들의 상당수가 해체된 주체가 무의식적 과정을 통해 폭력적인 존재로 재주체화된 결과임을 고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민사회의 공공선은 그러한 범죄로부터 사회를 정화시켜야 한다는 과제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민중신학의 오클로스 담론은 이러한 배제를, 그 배제의 과정과 현상을 주목하고, 그 배제로 인해 해체된 주체가 어떻게 성찰적으로 재주체화할 수 있는지를 묻는 데 초점이 있다. 권진관 선생이 다중론자의 틀을 빌려와서 새로운 형식의 민중적 연대를 말하고자 할 때, 오클로스는 그러한 구상에 제한적으로만 의미 있는 담론적 요소인 것이다.

나는 선생이 중진국 상황에서 민중신학을 하는 것에 관한 고투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한 신학적 서사를 위해 다중론자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도, 세세한 부분에서 이견이 있지만, 그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향후 더욱 완성도 높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그것은 나에게 더 큰 배움의 기회가 될 것이기에 그렇고, 더욱 좋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될 것이기에 그렇다.

  1. 여기서 나는 ‘이론의 이론’이라는 표현을, 이론 형성에 있어 주요변수를 선행이론들에 두고 있는 학문적 경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때 선행이론은 연구자에게서 경험세계 자체로 인식된다. 즉 ‘이론의 이론’ 연구자는 이론이 경험세계 자체를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고 봄으로써, 경험적 데이터를 찾는 대신 그것들에 대한 선행이론을 독서하는 데 몰두한다. [본문으로]
  2. 나의 글 〈한국사회의 근대성과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를 위하여〉, 《시대와 민중신학》 7(2002) 참조. 이것은 지난 1996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주관한 심포지엄에서 내가 제기한 ‘제3세대’에 관한 주장(〈민중신학의 계보학적 이해〉, 《시대와 민중신학》 5(1997))을 최형묵이 제안한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해석방식에 따라 신학적 비판의 계보학으로 풀어낸 것이다. 최형묵, 〈그리스도교 민중운동에서 본 민중신학〉, 《신학사상》(1990 여름). 최형묵이 제기한 세대론적 분류법의 핵심은, 민중신학자 세대의 분류가 아니라 민중신학적 경향의 차이에 따른 분류라는 데 있다. [본문으로]
  3. 김원, 〈박정희 시대 도시하층민: 부마항쟁을 중심으로〉, 이상록 장문석 엮음, 《근대의 경계에서 독재를 읽다: 대중독재와 박정희 체제》(그린비, 2006). [본문으로]
  4. 조희연, 〈‘급진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본 광주 5.18〉, 조희연 정호기 엮움, 《5.18 민중항쟁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시선》(한울, 2009). [본문으로]
  5. 박배균 정건화, 〈세계화와 ‘잊어버림’의 정치: 안산시 원곡동의 외국인 노동자 거주지역에 대한 연구〉, 《한국지역지리학회지》 10/4(200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