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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역사의 민주화, 기억의 민주화, 그 가능성의 공간을 첨예화하기

2003930일에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학술단체협의회의 공동주관으로 열린 심포지엄 한국 민주화운동의 쟁점과 전망의 제3부 발제들에 대한, 특히 박승옥(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기획부장) 님의 글 한국 민주화운동과 운동문화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 대한 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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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민주화, 기억의 민주화,

그 가능성의 공간을 첨예화하기

 

 

 

박승옥이 한국 민주화운동과 운동문화에 대한 반성적 고찰에서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는 민주화운동의 시대는 지나갔고 ...... 이제 우리는 그 역사(민주화운동의 역사)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다소 문제적인 문장 속에 함축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시대가 갔고다른 시대가 왔다는 시기 구분에 관한 언명에 있는 게 아니라, ‘성찰에 대한 그의 강한 요청에 있다. 성찰이라는 말 속에는 1960년대 이래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구성되어온 주체성(subjectivity), 그리고 그러한 주체성에 얽힌 운동의 제도 또는 운동문화에 대한 내재적 반성을 언어화하려는 그의 빛나는 고투가 담겨 있다. 글 말미에서 언급된 역사의 민주화’, ‘기억의 민주화라는 표현은 바로 이러한 성찰을 단적으로 요약해준다.

기억경험을 언어화하는 과정이며 결과이다. 그리하여 경험기억을 통해 언어화됨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인식 세계에 포착된다. 그런데 언어에는 그 사회의 인식의 질서가 스며들어 있으며, 그러한 질서의 틀 속에서 개개인은 경험을 기억해 낸다, 또는 경험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기억의 과정은 동시에 망각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하면, 경험을 기억해내는 일은 경험의 어느 측면을 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성찰을 이야기할 때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왜냐면 우리가 무언가를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일이 바로 성찰이며, 그리하여 우리의 기억을 재구성해보려는 노력이 그것에 수반되기 때문이다.

한편 기억이 개체적인 경험의 재현이라면, ‘역사는 공공적인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집합적인 기억으로서의 역사의 대표격은 말할 것도 없이 국사(내셔널 히스토리). 국사는 독재와 예속으로 점철된 한국의 ()식민지적 근대화를 정당화하는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주체화 담론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운동이 한국인의 경험을 재역사화하는 일은 내셔널 히스토리를 해체하는 작업을 통하여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박승옥에 의하면 민주화운동이 구성한 경험의 재기억화, 재역사화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모색되었는데, 그것은 공히, 그가 말한바, ‘모방복사의 방식으로 구체화된다. 하나는 외적 준거에 대한 모방복사의 방식인데, 구체적으로는 북한 체제나 혹은 동구권 체제(특히 소비에트)를 근대화의 전범으로 삼음으로써 실행되었다. 이 과정은 놀랍게도 세계사적인 인식이나 우리의 구체성에 대한 인식의 심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수행되었다. 박승옥의 명쾌한 설명에 의하면, 그것은 금지된 것에 대한 신화화, 우상화 메커니즘이 작동된 결과이다. 한편 다른 하나는, 내적 준거에 대한 모방복사로, 일제 식민지 시대 이래 잘 구성된 국가주의와, 그것에 기반을 둔 한국적 근대성의 발전주의/성공주의에 대한 과도한 몰입이 내면화되어 저항의 영성(spirituality)속에도 틈입해 버린 것을 말한다. 라클라우와 무페가 말한 경계 관계(a relation of frontiers), 즉 경계의 이편에서 저편으로 옮겨갈 뿐 인식의 틀 자체를 극복하지 못한 실천의 한계가 민주화운동의 경험의 재기억화, 재역사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을 문제로 제기하는 것이다.

아무튼 전자는 미래의 전망이 기억화역사화에 개입된 것이며, 후자는 과거의 인습이 개입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외적 준거는 낯섦이 중요했고, 내적 준거는 친숙함이 주효했다. 한데 여기서 우리가 주지해야 할 사항은, 1990년대 이후 북한 체제나 동구권 체제의 근대화가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인식에 직면했을 때, 민주화운동의 재기억화, 재역사화는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혼돈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말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외부의 낯섦에 대한 모방복사의 욕구가 성공주의에 기반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체제들이 또 하나의 배제의 체제였다거나 그러한 배타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통합을 위해 또 하나의 위선적인 내셔널 히스토리를 발명해냈고, 우리가 선망했던 것들이 이러한 은폐의 담론들에 다름 아니었다는 점이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또한 실패한 낯섦의 존재들인 국제이주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편견과 배제의 인종주의적 장벽에 민주화 담론이 그다지 비판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그리하여 지난 민주화운동의 시대가 선사해준 민족민중사는 성찰의 결핍을 드러내고 말았고, 그것이 바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이제 민주화에 주목해보자. 앞서 말했듯이 박승옥은 성찰의 주된 내용으로 기억의 민주화, 역사의 민주화를 이야기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니 하는 정부에 대한 별칭은 반독재민주화 담론의 제도화가 본격화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그것이 불충분하다는 것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나아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도 널리 인지되고 있는 바이다. 수구보수 세력의 저항에서 이 위기를 보려는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박형준이 ‘1987년 체제라는 개념을 통해서 민주화운동의 재기억화, 재역사화의 제도화를 성찰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박승옥이 견지하는 것처럼 위기를 민주화운동에 대한 내재적 성찰을 통해 읽어보려는 시도와 맞물린다.

다큐멘터리 영화 에서 임인애가 도발적으로 문제제기한 남성주의적 노동자 운동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나, 이병훈이 표본 연구를 통해 지적한 비정규노동에 대한 정규노동의 규범적 배제의 담론화 문제, 그리고 서동진이 제기한 이른바 진보 진영의 이성애주의적 편견과 배제의 문화 등은 민주화운동의 재역사화에서 망각된 존재의 반란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난해 월드컵 거리응원은 과거의 전체주의적 동원 문화로는 포착되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비자본주의에 탐닉하는 그들은 새로운 감수성을 가진 존재로서 의미의 세계에 개입해 들어오고 있다. 박형준의 ‘1987년 체제라는 반독재민주화 담론의 제도화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시대착오성을 드러내고 있고, 이들 새로운 존재들의 주체화를 가로막는 배제의 담론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는 역사적으로 왕과 귀족에 대해 자존적인 교섭력을 갖춘 대중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후 민주화 담론은 언제나 정치적 사회적 공동체의 상징적 주체가 누구인가를 둘러싼 경합을 통해 계속적으로 재구성되어 왔다. ‘국민이니 시민이니 하는 개념은 바로 이러한 상징적 주체의 범주 내부에 포함된 이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한데 동시에 이것은 민주화 담론이 항상 외부를 통해 실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경은 그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다. 그런데 주지할 것은 국민이니 시민이니 하는 개념은 국경 내부에도 외부가 존재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즉 국민적 주체화나 시민적 주체화는 내적 국경에서 외부로 밀려난 배제된 존재의 탈주체화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박승옥이 민주화운동의 내재적 성찰의 요소로 언급한 우리 안의 파시즘논의의 문제설정에는 바로 이러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배제주의가 희생양을 향해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담합을, 나치 시대의 유태인 학살에 관한 유럽의 논의에서 참조한 합의독재라는 개념으로 묘사한 임지현의 연구나, 제도화된 5.18의 기념사업이 탈영자들의 기념비가 아닌 영웅들의 기념비로 전화됨으로써 지배담론과의 불편함을 망각하는 것을 고발한 문부식의 주장은 파시즘이 반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인 미치광이()의 폭력의 소산이 아니라 지극히 합리화되고 과()근대적인 이른바 정상인들비정상인들에 대한 폭력의 체제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인 것은 그러한 폭력이 은폐되어 있다는 데 있다. 가해자인 국가-시민사회 자신에게서조차 말이다. 자기 자신의 폭력성을 망각하도록 하는 기억의 체제, 그러한 역사적 지식의 체계, 그래서 그것은, 지그문트 바우먼과 불란서의 사회학자 르 고프가 명명한 바, ‘부드러운 야만의 체제다. 그런 점에서 박승옥이 우리 안의 파시즘론을 소개하면서 제기한 성찰의 개념은, 일상화된 의미의 망, 관습, 무의식적 타성의 체제, 그것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데에까지 그 함의가 확장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비()역사화이다. 그것은 독재체제가 구축한 내셔널 히스토리에 대해 민주화 체제의 히스토리가 아니라, 그러한 경계이동의 역사 만들기가 아닌, 새로운 역사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끊임없이 유동하는 역사, 아니 이야기들(Geschichten)으로서의 역사인 것이다. 박승옥이 아래로부터의 역사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러한 기억하기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그의 표현대로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기억의 표출로서의 복수적인 역사/이야기들인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만약 나의 해석이 맞는다면, 박승옥이 이것이 바로 역사의 민주화, 기억의 민주화의 첫걸음이다라고 말한 것이 그 순서까지 유의미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고 본다. 경험기억역사에 대한 해체 작업은 그것의 역순인 집단적 기억으로서의 역사의 해체에서 개개인의 인습적인 기억의 해체에까지 이르는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자신의 경험을 억압하는 집단화된 역사,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는 것만이 아니라 개체적인 인습적 역사, 그 질서의 체계까지도 문제시하는 퍼스널 히스토리까지도 넘어서는 성찰, 성찰의 성찰, 성찰의 성찰의 성찰, ..., 무한정한 해체적 성찰의 태도가 강조된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 제기할 것이 있다. 그것은 민주화 담론의 제도화가 비록 배제의 장치라는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도 자체가 단순히 해체의 대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기든스 등에 의해 제기된 제도적 성찰성의 문제설정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착상인 것이다. 가령, ‘운동사회 내 성폭력 100인위원회의 활동은, 그 활동의 적실성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운동문화의 남성 중심주의를 드러냄으로써 ‘1987년 체제담론의 참을 수 없는 폭력성을 결정적으로 드러낸 계기였지만, 그것은 민주화 담론이 보다 평등한 소통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요컨대 이 사태로 인해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교섭의 수단을 가지게 되었고, 남성은 그러한 예기된 심판을 통해 자신의 젠더적 폭력성을 성찰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요컨대 성찰은 제도의 해체와 자기 배려적인 개인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도 자체가 기억의 민주화, 역사의 민주화를 향한 재기억화, 재역사화의 무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나는 박승옥의 글을 내 식대로 재정리하고 재평가하였다. 그것은 박승옥의 견해에 대한 나의 지지의 표현이며, 운동가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 전체를 성찰의 대상으로 삼은 그의 용기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의 이야기는 분명 그의 견해를 이야기하면서도 그의 주장 밖으로 너무 멀리 달아나곤 했다. 어쩌면 그가 비명시적으로 설정했을 법한 경계를 월장해 버린 부분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나는 그가 가르쳐준 역사의 민주화, 기억의 민주화로서의 성찰이라는 언표의 가능성의 공간을 극단화하고자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