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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그들이 말한다” - 5.18 담론에서 우리가 잊은 것에 대하여(서평: 김상봉의 [철학의 헌정 - 5.18을 생각함])

이 글은 [녹색평론] 143(2015.7-8)에 실린 김상봉 교수의 [철학의 헌정 - 5.18을 생각함]에 대한 서평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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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한다

5.18 담론에서 우리가 잊은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하였다. "그가 ...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마가복음7,37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그해 5, 대표적인 극우언론들은 ‘5.18’의 배후에 북한 간첩의 암약이 있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MB 정부 이후 극우 인사들의 ‘5.18’에 대한 폄훼와 비하적 재규정의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2013년의 이 기사들은 ‘5.18’에 대한 인식의 시간을 1980‘5정권 초기 시대로 되돌려 놓았다는 점에서 가장 수위 높은 반동적 기억의 사례에 속할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극우적 ‘5.18들은 참고할 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생떼에 지나지 않는다. 국무총리 지명자를 비롯한, 이른바 공안에 관한 놀라운 창작의 달인들이 즐비한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시기에 터져 나온 공안론적 의혹제기치고는 너무 저질들이다. 이런 식이라면 ‘5.18’을 축으로 하는 민주화 운동의 도덕적 당위성에 어떠한 상처도 줄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극우는 공부좀 더 해야 한다.

그런데 비판적 시민사회의 ‘5.18이 직면한 문제는, 이런 극우적 생트집이 아니라, 진지한 연구들을 둘러싼 시민사회의 공론화가 너무나 빈약하다는 데 있다. 민주화 정권들이 규정하여 제도화한 정치적 해석들이 마치 정전(Canon)적 진리처럼 군림하고 있고 시민사회는 더 이상의 생각을 멈춰버린 듯, 공론의 장에는 거의 아무런 논의가 다뤄지지 않는 양상이다. 특히 철학이나 신학 분야는 죽어버린 주제가 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다.

하여 철학자 김상봉 선생의 저서 철학의 헌정5.18을 생각함이 시민사회에 주는 의미는 지대하다. 우선 5.18에 관한 철학과 신학적 성찰을 다루는 단행본으로는 거의 첫 번째 저작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주는 가치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부족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행동하는 지성으로 알려진 그에 대한 비판적 시민사회의 신뢰는, 논문 모음집이라는 불친절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독자들의 깊은 관심을 불러 일으킬만하다. 분명 독자 중 일부는 그가 비평한 여러 연구자들의 생각을 더 깊이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독서 리스트에 기재하였거나 혹은 이미 독서를 시작하였을 것이다. 기대하기로는 그의 책은 거의 소멸되고 있던 ‘5.18’을 비판적 시민사회의 공론장 안으로 다시 초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5.18에 관한 그의 신학적 해석에 생각이 꽂힌 이들이 이 문제에 관해서 말하고 싶은 의욕을 갖게 될 것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그랬다. 5.18에 관한 신학적 해석을 본격화한 제4, 계시로서의 역사5.18민중항쟁에 대한 종교적 해석의 시도를 발표한 심포지엄에서 나는 다른 이의 논평자로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때 정작 나는 내가 논평하는 이만이 아니라, 아니 그이보다는 이 글에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의 글 속에서는 민중신학이 배우고 싶은 몇 가지, 그리고 더 토론하고 싶은 몇 가지가 모둠으로 담겨 있었기던 것이다. 이 글은 그때 하지 못했던 얘기를 지금의 시각에서 좀 더 다듬은 것이다.

자 이제, 김상봉 선생의 논지를 얘기해야겠다. 그의 논지는 단순하지 않지만, 그가 명명한 몇 개의 용어를 고리로 하여 연결하면 명쾌히 정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첫 번째 고리는 ‘5.18’, 실재했던 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서 보편적인 진리로서 부활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5.18’이 향후 일어날 사건들의 전거이자 해석의 준거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해방신학자 중에 호세 세브리노 끄로아토(José Severino Croatto)라는,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하지만 이론가로서 매우 탄탄한 논리를 펴았던 이가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제1성서(구약성서) 연구자이고 해방신학계의 구조주의적 해석의 권위자였다. 오래전 그는 김상봉 선생의 ‘5.18’의 의미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건을 일컬어 의미의 저장소(reservoir of meaning)라고 불렀다.

가령 이스라엘 신앙에서 대표적인 의미의 저장소는 출애굽 사건이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 사건의 부활을 갈망했고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또 하나의 출애굽으로 해석하고자 사력을 다했다. 그리고 훗날 그리스도파[각주:1]예수사건을 새로운 출애굽 사건으로 해석하였고,[각주:2] 예수사건은 얼마 후 이스라엘 신앙권에서 독립하여 독자적 종교가 된 그리스도교의 핵심적 의미의 저장소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5.18’을 전태일 사건의 부활로, 궁극적으로는 예수사건의 부활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민중신학도 전태일이 예수다라는 논제를 폈는데, ‘5.18’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생각을 진전시키지 못했다. 반면 선생은 예수-전태일에 이어지는 담론의 계보에서 ‘5.18’의 해석을 시도한다. 이제 민중신학은 미처 못 다한 민중신학적 5.18을 그의 ‘5.18에 기초해서 이야기하면 되게 되었다.

김상봉 선생은 이 보편적 진리사건으로서의 ‘5.18’을 정치학자 최정운 선생이 제안한 절대공동체와 연결시킨다. 여기서 절대공동체, 객관주의적 지표를 함축한 사회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1980518일부터 대략 1주일간 지속된, 밥을 나누고 피를 나누며 함께 투쟁하는 평등과 사랑의 체험적 공동체를 가리킨다. 한데 이러한 일시적인 체험공동체가 가능했던 것은 폭압적 권력에 의한 죽음의 공포를 견뎌내는 과정에서 형성된 타자 배려의 집합적인 초월적 성찰 덕이다.[각주:3] 민중신학은 타자에게 열림으로써 얻는 개체적 성찰을 자기초월이라고 불렀는데, 김상봉 선생의 공동체적 초월 개념은 그 체험이 관계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민중신학이 배워야 할 훌륭한 표현처럼 보인다. 아무튼 그는 이러한 자기 성찰을 서로주체성이라고 명명했다.[각주:4]

하지만 그에 의하면 최정운의 절대공동체라는 표현은 용어로서 한계가 있다. ‘절대공공체라는 말에는 일상적인 욕구들이 억제되고 초월적 공동체성이 발현되었다는 점이 반영되어 있지만, 그 공동체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서 그는 대신 항쟁공동체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물론 초월공동체의 함의를 부정하지 않으니, ‘초월적 항쟁공동체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아무튼 그는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두 개의 용어와 비교한다. 첫째로 항쟁폭동과 구별된다. 이 둘은 현실의 국가와 대립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겹치지만 항쟁은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파괴 자체의 의미가 더 강한 폭동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항쟁내전과도 구별되는데, 후자가 국민 대 국민의 적대를 가정하고 있는 반면, ‘항쟁은 국가의 선재적 폭력이 야기한 저항과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공동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국가의 폭력이 야기하는 공포를 이겨내고 그 과정에서 서로주체적 공동체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초월적 항쟁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나는 그의 논지에 대해 의문에 직면하게 된다. ‘내전과 구별되는 항쟁의 함의를 담지한 초월공동체라는 개념은 민중신학의 민중론에서 핵심 중의 핵심인 오클로스(οχλος, 민중) 대 라오스(λαος, 시민)의 갈등을 너무 쉽게 처리해 버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라오스는 제1성서에서 모세로 인해 야훼의 법을 받은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히브리어 콰할(qahal, קהל)의 그리스어 번역어다. 그러니까 데리다식으로 말하면 법 안의 백성인 셈이다. 반면 마가복음의 용례에 의거해서 민중신학이 이와 대립되는 용어로 해석하는 오클로스법 밖으로 밀려난 자. 좀더 정확히 말하면, ‘법 안에 살지만 법 밖의 존재로 간주된 자이다. 요컨대 우리의 표현대로 하면 전자가 시민이라면 후자는 비시민이고, 민중신학은 이런 자들을 민중의 범주에서 해석한다. 한데 민중은 국가에 의해 배제되지만, ‘법의 안이라는 담론적 틀은 국가와 시민을 연동시키는 장치라는 점에서 시민은 민중의 배제와 무관하지 않다. 해서 서남동은 김지하의 해석을 빌려서 민중의 언어인 ()을 해석하는 자리는 민족이 아니라 라고 주장했다. 라는 담론으로 인하여 민중은 그 사회의 적합한 존재임을 주장할 언어를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5.18’의 항쟁공동체에 참여했던 무장대원들(기동타격대) 대부분은 자장면 배달부, 인쇄공장 직공, 다방종업원, 건들거리는 재수생 등, 평소 칭찬이라곤 별로 듣지 못하고 늘 못난 놈소리를 귀가 닳도록 들어왔던 자들이었다. 한데 이들 배운 것도 없고 변변한 직업도 못 가진 이들에게 가한 일상적 폭력의 가해자는 국가인가, 이웃인가? 주변계층인 이들 ‘5.18’ 당시 광주의 오클로스는 항쟁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국가를 가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데모에 참여해본 적도 없고 데모하는 이들을 가리켜 철없어서 그런다고 생각했던 자들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 그들 자신은 국가를 자신들을 멸시하는 가해자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국가도 오클로스의 가해자인 건 의심의 여지없다. 말했듯이 법은 국가가 제정자요 수호자다. 시민사회는 그런 질서의 수호자인 국가를 지지함으로써 시민으로서 특권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질서에서 법 밖의 존재로 낙인찍힌 이들, 5.18 광주의 오클로스는 그런 배제의 질서에 순응하는 자였다. 그래서 국가에 저항하지 않았고, 시민사회를 전복하려 하지도 않았다.

한데 그들이 항쟁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그것을 그들은 훗날 증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이, 여자들이, 노인들이, 시민들이 군인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폭행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었다. 또한 그렇게 한 감정으로 항쟁공동체에 참여한 이후 그이들은 평생 받아보지 못한 인정과 지지를 받는다. 그런 것에 이들은 고무되었다고 고백했다. 한데 내가 품는 의심은 이들 오클로스에 대한 시민사회의 인정과 지지는 과연 어디까지였을까에 관한 것이다.

편견이란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여전히 저들에 대한 비하는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해 518일부터 일주일 간, 그러니까 일부 학자들이 절대공동체라고 불렀던 그런 나눔과 섬김의 체험공동체가 전형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그 순간에도 편견과 배제의 문화는 충분히 지양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공동체의 균열을 들춰보지 않고 절대공동체라는 어머무시한 용어로 부르는 것은 시민사회의 시선이었을 것이고, 시민사회의 시선에 흡수된 비시민의 하위주체적 자의식의 반영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즉 시민의 인정과 지지는 타자의 입장을 내면화한 결과 편견이 해소된 결과가 아니라, 국가와 시민의 균열이 격렬하게 드러났을 때, 시민의 시각에 흡수된 민중을 향한 정치적 동지의식의 발로였고, 그러는 중에서도 문화적 배타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내가 품는 의문은 이것을 절대공동체라고 명명하든 항쟁공동체라고 명명하든, 그것의 균열에 대해 충분히 성찰하지 않은 채 이야기하는 초월의 체험에 대한 해석은 과잉이며 또한 성찰의 결핍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예수 얘기를 해보자. 예수는 국사범으로 처형당한 세례자 요한의 잔당으로 지목되어 한 곳에 붙박은 예언자 운동 대신 떠돌이 예언자로서 활동했다. 실제로 안티파스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대중은 예수를 부활한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다. 당국은 그런 그이를 요한의 잔당으로 간주, 계속 추격하고 있었다. 이에 예수는 끊임없이 당국의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시골을 전전하며 떠돌이 운동을 펼쳤다. 한데 흥미로운 것은 예수일행은 스승인 세례자 요한이 한 곳에 붙박은 채 사회운동을 벌일 때에 겪지 못하던 새로운 성찰에로 생각이 열렸다. 떠돌이들은 가족도 버렸고 재산도 버렸으며 유랑 자체를 대안적 삶의 모델로 생각했다. 이는 계급도, 성도, 신분도 넘는, 탈장소적 평등공동체에 대한 비전이 예수운동의 하나의 아비투스로 자리잡는 배경이 된다. 그런데 과연 그렇기만 한가? 과연 그들은 충분히 평등했을까?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제자들은 누가 첫째인지를 경쟁했고, 예수는 제자들에게 낮은 자가 되라고 권고해야 했다. 그것은 이들이 평등공동체임에도 충분히 평등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5.18’의 이른바 절대공동체는 안 그랬을까? 그렇다면 마가복음이 드러내는 균열과 그것에 대한 성찰이 ‘5.18’ 담론에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편 예수는 마을에 들어가 활동하는 중에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된 이들과 배제된 이들을 나누는 일상의 권력에 직면하자 그것에 대항하게 된다. 일상 밖으로 사람을 불러낸 세례자 요한 식의 운동에서는 알지 못했던 권력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이다.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니 그 속에 작동하는, 예루살렘이나 왕실, 그리고 로마제국의 권력을 체감했던 예언자들의 각성과는 다른 일상권력에 대한 각성이 예수일행을 깨우쳤다. 하여 바리새인들과 벌인 안식일 갈등은 그런 일상권력과의 투쟁을 배경으로 한다. 그렇다면 예수공동체는 내전적 공동체인가 항쟁공동체인가? 시민사회 내부에서 작동하는 일상권력을 뒤로 하고, 국가의 폭력에만 주목하는 방식이 과연 ‘5.18’에 대한 필요충분한 논점인가에 관한 얘기다. 한데 항쟁 대 내전에 대한 선생의 해석은,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문제제기를 차단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마가복음은 그렇게 마을에서 밀려난 예수일행의 활동에 동화된 대중이 예수사건을 계승하면서 만들어낸 대안적 공동체운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민중신학의 해석에 따르면 마가복음예수전은 오클로스 자신의 성장담을 담은 구술문학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와 오클로스는 분리할 수 없다. 오클로스가 말을 하고 있는 텍스트, 곧 오클로스의 시각에서 재현된 예수, 그것이 바로 마가복음이기 때문이다.

글 서두에 인용한 마가복음7,37의 맥락은 예수의 주요 활동지이고 이후 예수를 추종한 오클로스의 활동지였던 갈릴리에서,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대중이 예수로 인해 말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마을공동체 중심으로 규범화된 사회에서 마을 밖으로 밀려난, 말할 능력도, 듣는 능력도 퇴락한 자들, 그런 대중이 예수로 인해 말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바로 이 텍스트의 저자 집단인 예수파 오클로스의 자기 고백이었다. 그들은 존경했던 예수의 죽음으로, 그리고 그들이 겪어온 온갖 사회적 배제의 체험으로 난도질된 몸과 마음, 그들의 트라우마들로 인해 말할 수 없었던, 말을 강탈당한 자들이었는데, 그런 그들이 예수전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그들 자신의 말하기였다는 것이다.

하여 나는 ‘5.18의 항쟁공동체가 서로주체적으로 성찰한 초월공동체였다는 해석은 보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는 그들을 통합하는 언어만이 아니라 그들을 분해하고 배제하게 하는 요소가 서로 뒤얽혀 있었다는 것, 하나는 서로주체적 초월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그 속에서 트라우마를 더 깊게 새겨넣는 것일 수도 있었다는 문제제기가 담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제기가 후대인들의 5.18 기억의 성찰 내용에 담겨지지 않은 것이, 그 이후 5.18에 기원을 두고 발전한 한국 민주주의 담론의 실패를 낳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게 중요한 하나를 너무 쉽게 양도하였다. 그것은 오클로스를 자본의 희생자로 내어준 것이다. 오늘 한국사회의 양극화, 그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격차화의 배후에는 ‘5.18’ 담론에서 오클로스를 시민의 기억 속으로 회수해버린, ‘실패한 담론이 가로 놓여 있다는 것이다. □ 

  1. ‘그리스도파’라는 용어는 예수운동이 아직 독자적 종교가 되기 이전, 이스라엘 신앙권 안에서 일어난 하나의 개혁운동이던 시절에, 해외로 확산된 예수운동의 한 흐름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특히 예수운동이 팔레스티나를 넘어 디아스포라 영역(해외의 이스라엘 공동체)으로 확산되어 가는 무렵 시리아 중부 내륙 지역의 도시 다마스쿠스와 시리아 북서부 지역의 도시 안디옥은 그리스도파의 거점도시였다. 여기서 다마스쿠스가 동쪽의 아랍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확산되는 포스트였다면, 서쪽의 지중해 지역으로 향하는 그리스도파 운동의 거점은 안디옥이었다. [본문으로]
  2. 예수사건을 제2의 출애굽 사건으로 해석하고, 예수를 새로운 모세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가장 두드러진 텍스트는 〈마태복음〉이다. 이 문서는 이스라엘 신앙권 내의 한 소종파에서 독자적인 소수파 종교인 그리스도교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텍스트다. [본문으로]
  3. 그가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지만, 고전적 신학에서 강조했던 (외재적) 초월 개념(초월적 내재)을 재해석한 현대신학의 ‘내재적 초월’론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김상봉은 최정운의 초월공동체 개념에서 찾아낸 것 같다. [본문으로]
  4. 김상봉 선생은 ‘서로주체성’에 대립하는 것을 ‘홀로주체성’이라고 부르는데, 후자는 서양 근대의 주체에 관한 철학적 해석의 패러다임을 지칭한다. 한데 민중신학도 서양의 이러한 홀로주체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그것에서 배태된 성서해석의 원리를 ‘주-객 이분법’이라고 명명하였다. 하여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서구적인 모던을 극복하는 포스트식민지적 탐구라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의 ‘자기 초월’ 개념은, 김상봉의 용어로 하면, 홀로주체성과 연결되기보다는 서로주체성과 연결된다. 다만 김상봉의 용어가 ‘관계적 함의’를 더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 많은 문제제기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