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민중신학 위기론’은
1
최근 민중계열의 학술진영이 대개 그렇듯이 민중신학 2도 위기를 맞고 있다. 실천지향적 신학으로 출발하여 전개․발전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신학은 현재의 실천을 해석하거나 동력화하는 데 이론적으로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이 점에서 최근 제기되는 민중신학 위기론 3은 민중신학계 외부에서 뿐만 아니라 내부에까지 적지 않은 파급력을 갖는다.
서경석 목사의 글 〈민중신학의 위기〉 4는, 최근 한국 사회운동에서의 그의 입지와 관련하여 특별한 주목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가장 짜임새 있는 논리를 펴는 몇몇 민중신학 위기론자들 5의 논지와 만난다는 점에서 신학이론적의 측면에서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무게를 갖는다.
그들은 민중신학이 사회․역사적 콘텍스트를 강조한 나머지 신학적인 자기반성적 성찰 능력을 상실한 데에 위기의 요체가 있다고 본다. 이런 경향은 서구신학사에서 ‘이미’ 경험/극복된 것이라는 점에서 민중신학의 위기는, 서구의 전통적 신학 흐름에 대한 ‘몰이해/편견’에서 비롯된, 서구신학에 대한 ‘과잉비판’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과잉비판’의 편린들인 민중신학의 ‘걸림돌’들을 제거하고 서구신학과 대화함으로써, 대안적인 신학이론 재구성의 실마리가 마련된다고 본다.
민중신학의 특정 논리가 현재의 위기 극복에 걸림돌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폐기돼야 하며, 서구신학으로부터 대안이 있다면 그것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여야 함은 물론이다. 문제는 그들의 이러한 주장의 내용이 얼마나 타당성을 갖는가에 있다. 이 글은 이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서술될 것이다. 먼저 이들 위기론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민중신학의 ‘걸림돌’을 찾아낸 다음(2), 그들의 논지가 안고 있는 문제를 사회․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의 빈곤(3.1), 민중신학에 대한 몰이해/편견(3.2)이라는 점에서 지적하고, 마지막으로 이들의 주장에 은폐된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밝히는 것으로(4)로 끝맺고자 한다.
2
서경석은 민중신학의 위기는 표면상 ‘시대의 위기’로 드러나지만 그 본질은 “자기반성적 성찰능력의 결여”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6 이것은 민중신학에 내재된 신학논리의 “필연적이고 구조적인” 결과라고 본다. 7 이것은 자기반성적 성찰능력의 신학적 기반인 죄론의 발전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과 관련된다. 8 그리고 “필연적이고 구조적인” 것은 하느님의 절대성에서 출발하지 않고 역사의 모순, 역사의 변혁에서 출발하는 민중신학의 기본논리(‘민중과 민중운동의 절대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논리를 도출해내는 민중신학의 요소가 무엇인지는 다른 위기론자들에게서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비판된다. 김지철 교수는 ‘민중의 눈으로 성서읽기’라는 성서해석학적 명제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이 명제를 통해 민중신학은 성서에서 하느님의 계시사건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사회경제사’적 해석에 의해 도출된 민중당파적 사건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9 그에 의하면 이러한 신학은 사회변혁론일 뿐이지 신학일 수 없다. 10 반면 하느님의 당파성은 민중당파성을 포괄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11
이런 관점은 박순경 교수에게서 더욱 명료하게 드러난다. 그녀에 의하면 민중신학의 ‘사건우위론’은 19세기 자유주의신학의 역사주의적 편향과 기본 전제를 공유하는 것으로, 12 이 점에서 민중신학은 실천적으로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의 편린을 갖으며(안병무/서남동), 그것을 극복코자 해도 불완전한 신학적 장치의 한계에 도달하고 만다는 것이다(강원돈). 그녀는 이런 ‘신학의 빈곤’은 서구신학에 대한 몰이해/편견 13에서 비롯되며, 20세기의 서구신학, 특히 칼 바르트(K. Barth) 신학의 세례를 받은 삼위일체론을 통해서 이 ‘빈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14 요컨대 역사주의의 한계의 한 특징인 ‘케뤼그마 없는 사건’ 개념은 동시에 민중신학 위기의 근원이며, 그것을 근본적으로 넘어서는 ‘하느님의 혁명’과 이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통해 케뤼그마와 사건은 통일되는 것이고, 바르트의 삼위일체 신학은 바로 이것을 밝혀내는 신학적 논술이라는 것이다. 15
임태수 교수는 더 나아가 민중신학의 신학적 위기 근저에 ‘민중 메시아론’이 있다고 본다. 그는 메시아의 민중성은 옳지만 메시아를 민중으로 환원하는 것은 오류임을 입증하려 한다. 16
결국 이들 민중신학 위기론자들은 ‘역사로부터 초월에로’라는 방향에 위기의 핵심이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초월으로부터 역사에로’라는 전면적인 방향전환을 역설하며, 이런 방향전환의 걸림돌들을 폐기하자고 한다. 서경석에게서는 이 걸림돌의 내용이 불명료하지만, 김지철은 ‘민중의 눈’이라는 성서 해석학적 명제 17를, 박순경은 ‘사건우위론’을, 그리고 임태수는 ‘민중 메시아론’을 폐기하자고 한다. 그리하여 그 빈 자리는 서구의 신학적 전통에서 배워온 것으로 메워야 한다는 주장에 이른다.
이러한 논지 배후에는 근현대 서구신학의 사회․역사적 경험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깔려 있다. ‘전(前) 이성의 시대로부터 이성의 시대의 도래’의 신학적 적자(適子)인 ‘자유주의신학’은 ‘역사의 타락’을 해석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 신정통주의신학의 자유주의신학에 대한 지양논리다. 그래서 서구신학의 전통은 인간 중심성에서 신 중심성으로, 역사에서 초월로 강조점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18 그리하여 서구의 선학전통 안에는 ‘하느님의 인간해방을 향한 실천/사건이 인간/민중의 해방실천/사건 보다 앞서 있으며, 따라서 인간/민중의 실천/사건은 바로 하느님의 실천/사건으로부터 동력을 부여받는 동시에 자기성찰의 끊임없는 원리를 공급받는다’는 논리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에 기반해서 위기론자들은 민중신학이 자유주의신학의 ‘인간’의 자리에 ‘민중’을 대입하여 민중에 대한 낙관론에 빠져들었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3
그들의 이런 위기론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문제를 드러냄으로써, 그 설득력을 상실한다. 하나는 위기론을 설명하는 사회․역사적 진단의 측면에서 드러나고, 다른 하나는 민중신학에 대한 이해의 측면에서 드러난다.
3.1
서경석과 박순경은 민중신학의 비판 논거로 사회․역사적 진단을 내린다. 19 여기서는 이들 진단의 정당성을 검토코자 한다. 서경석은 1987년 6월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면서 그 이후 우리의 변화된 사회․역사적 지표를 ①독재 시대에서 민주화 시대로의 변형, ②동구권 몰락에 따른 실사구시 시대의 도래, ③환경문제의 중요성 대두로 정리한다. 20 이것은 상식적이고 초보적인 느낌을 스케치하듯이 나열한 인상을 준다. 그가 이렇게라도 변화된 지표를 지적한 것은, 필시 ‘계급투쟁 중심의 혁명노선의 후퇴’ 및 ‘시민사회의 성숙’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여기서 그는 ‘혁명’과 ‘점진적 개혁’을 대립시킨다. 21 그에게 있어서 ‘혁명’은, “소유관계로 사람을 구분하여 ......”나 “전위정당” 운운 22한 것으로 보건대, ‘전위정당이 이끄는 전면적인 정치투쟁으로서의 계급투쟁’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런 의미의 ‘혁명’은 1970~80년대 한국 사회운동을 나타내는 개념화일 수 없다. 김동춘은 우리의 사회운동은 계급성이 약하고 또 전위적이고 중심적인 정치조직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혁명’보다는 ‘변혁’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고 평가한다. 23 그가 규정하는 ‘변혁’이란, 전위정당이 주도하는 계급적 투쟁보다는 포괄적인, ‘근본적 개혁을 지향하는 사회운동’을 가리킨다. 24 더욱이 민중신학 가운데 계급지향적 신학을 표방하는 ‘물의 신학’도 급진적인 정치적 전면투쟁을 당위적으로 전제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서경석은 한국 민중운동 및 한국그리스도교 민중운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 기초해서 민중신학의 위기를 진단한다.
그는 ‘시민운동’을 변화된 사회의 새 대안으로 제시한다. 25 그 이유는 한국사회의 ‘민주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26 이런 애매한 단언이 시민운동의 대두를 설명한다는 주장은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27 여하튼 그가 최근의 시민운동의 급속한 부상을 강조하고 싶었다는 점이 그의 논지라고 받아들이고 논의를 계속하자.
그는 ‘시민’을 ‘중산층’과 혼용하며, 28 중산층의 인구구성비를 강조함으로써 시민운동의 역할 강화의 필연성을 이야기한다. 29 여기서 그는 ‘시민운동’과 ‘시민들의 운동’을 혼동하고 있으며, 30 ‘시민운동’을 ‘중산층운동’의 맥락에서‘만’ 이해한다. 서구 사회에서 시민운동론은 특히 1960년대말 이후 본격화된 법익박탈대중의 운동 및 신중간계급 중심의 중산층운동 등을 포괄하는 ‘신사회운동들’(New Social Movements)의 이론화로 본격화되는데, 노동조합이나 좌파 정당으로 상징되는 계급운동의 상대개념으로 발전한다. 그러므로 시민운동은 시민들의 운동이라기보다는 ‘반/탈계급적 운동’이라는 관점을 함의한다. 31 한편 서경석은 시민운동의 의의를 ‘공공선’의 추구에서 찾는다. 32 이것은 계급의 ‘당파적 선’의 상대개념으로, 계급적 헤게모니를 넘어서는 다계급/계층의 최다수적 이해관계를 상징하는 윤리적 개념이다. 그런데도 그는 비/탈계급적 박탈대중을 ‘시민운동’ 논의에서 무시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운동에서 지배적이던 기층대중 중심의 민중운동에 대립하는 운동으로 중산층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을 부각시키려는 데서 초래된 혼란이리라.
이런 혼돈은 민중과 시민을, 그리고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을 대립개념으로 보는 데서도 나타난다. 인구구성비로 시민운동을 이야기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보는 시민운동은 사회구성적 차원에서 파악된다. 그러나 중산층이면 당연히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기층대중이면 당연히 민중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처럼 순박한 생각은 없으리라. 사회구성적 차원을 다루는 모순론과 특정 사회구성체에서 모순 담지자들의 사회운동에 동원되는 과정이나 방식을 다루는 변혁 33론은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지만 동일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중신학이 ‘민중은 역사의 주체’라고 했을 때 이는 변혁의 관점에서 말하는 민중이다. 이것은 (이른바 제1세대) 민중신학자들이 종종 민중을 ‘경제・정치・문화적으로 총체적인 소외 아래 있는 자’라고 규정할 때와 대조된다. 후자는 모순의 관점(더 정확하게는 모순론적 모순 34이 아니라 소외론적 모순)에서 말하는 민중인 것이다. 요컨대 민중신학자들 자신이 모순과 변혁을 미분화된 개념으로 인식한 오류가 서경석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편에서 그는 기층대중운동의 대립개념으로 시민운동을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시민운동을 반/탈계급적 함의로써 설명한다. 그는 자신이 편리한 대로 이 두 상이한 관점을 편리한 대로 자유로이 오감으로써, 자신의 논지의 발전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다. 35 결국 그가 민중신학 비판의 논거로 사용하는 사회・역사적 변화의 핵심인 ‘계급운동의 퇴조와 시민운동의 활성화’ 관점은 민중신학 위기론에 활용되기 이전에 자신의 논거의 ‘위기’를 초래한다.
박순경은, 서경석과는 달리, 사회・역사적 변화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연속성을 전제함으로써, 민중주체론을 더욱 확고히 붙잡는다. 그녀는 변혁의 한국적 구체화를 위해서 ‘민족’을 부각시키면서, 36 안병무나 서남동은 그들의 “반공주의적이고 소시민적인 편향” 때문에 통일지향적이며 변혁적인 특성을 결여하고 말았다고 비판한다. 37 또한 강원돈에 대하여는 자본주의적 규정에 경도된 나머지 민족적 특성을 간과한, 구체성을 결여한 일반화에 빠지게 됐다고 지적한다. 38 그녀는 변혁의 한국적 핵심고리로서의 민족의 관점에서 변혁의 ‘주체’인 민중과 여성을 생각한다. 39 그녀의 이러한 논의는 민중신학의 통일신학적 지평을 여는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중요한 기여라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신학적 수사라면 모르되, 그리스도교 사회윤리적 전망을 염두에 둔다면 그녀의 논리는 모호하고 때로는 혼란스럽기까지 한, 단순한 ‘주장’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가령 ‘세계사적이고 총체적인 함의의 변혁’과 ‘이의 한국적 특수 형태인 민족’간의 유기적 관계 규정이 모호하다. 더구나 그녀의 민족 개념은 사회학적으로 대단히 미흡하다. 존재론적으로 전제되는 그녀의 ‘민족’은 민중・여성 등과의 관계규정으로 다소간 개념화되는듯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 실체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40 또한 민족・민중・여성이 변혁의 주체라는 선언만으로는, 통일운동의 주체요 나아가서는 변혁의 주체라는 민족・민중・여성의 다수가 왜 여전히 소극적인 혹은 반해방적인 자리에 서 있는가를 해명할 수 없다.
한편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 주장 41은 민중신학자들의 논의를 넘어선 새로운 것이 아니다. 42 더욱이 ‘제3의 길’이 세계사적 차원과 남북한 차원의 현실 및 발전과 평등이라는 양날을 포괄하는 대안적 정치체제를 고려한 결과라는 것 43은 중요한 지적이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통일 논의의 구체성이 획득되는지는 의심스럽다. 이 문제는 냉전을 통해 구축된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전개만으로 평가될 차원의 것이 아니다. 중국, 동유럽 등에서 각기 특수하게 실험되던 ‘수정된 사회주의’ 시도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 다양하게 실험되던 사회민주주의적 시도들, 및 NICs의 시도들 등에 대한 냉정한 비판을 전제한다.
서경석과 박순경의 이상의 문제제기는 1970~80년대의 민중신학 전통에서 간과된 혹은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부분을 일깨우고, 보다 구체적인 현실에 기반을 둔 대안적 전망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들의 과잉비판의 배경이 되는 사회․역사적 이해의 ‘빈곤’이라는 한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3.2
이제 위기론자들의 민중신학에 대한 이해의 측면을 살펴보자. 서경석은 자신의 글 말미에서 ‘전통적인 개혁신학’과 민중신학의 장점을 살린 대안적인 신학의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44①성령운동과 사회운동의 통일, ②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통일, ③보편성과 당파성의 통일, ④점진성과 혁명성의 통일 여기에서 각각 앞의 것은 소위 ‘전통적인 개혁신학’ 45의 요소요, 후자는 민중신학의 요소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에 투영된 그의 민중신학 이해를 살펴보자.
먼저 민중신학이 ‘사회운동’만을 추구하는 신학이라는 것에 대해 보자. 여기서 ‘사회운동’이란 성령운동의 반대개념으로, ‘개인적인 (초월) 체험 46’에 기초하지 않는 사회적 실천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는 초월 체험의 사회문화적 보편성을 인정하지 않는가? 만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의 ‘영성’ 주장은 그리스도교 배타주의를 의미한다. 반면 이를 인정한다면 민중신학에서 영성적 관점의 발전이 본질적으로 차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47 실제로 민중신학은 고난당하는 ‘민중’을 통해 예수를 체험하고,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과정 자체가 ‘민중의 자기초월사건’이며, 하느님의 성육신을 바로 ‘신의 자기초월사건’으로 본다. 48
둘째, 민중신학이 “개인윤리를 망각하고 사회변혁만을 외치는” 신학이라는 주장 49에 대해서 보자. 박재순은 이런 편향이 실제로 존재했고, 이는 ‘정치주의’를 초래했다고 자성한다. 50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민중신학은 구조(모순)와 변혁의 문제를 분화된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 이르지는 못했다. 구조가 사회적 고찰의 대상이라면, 변혁은 집단과 개인의 관점에서의 윤리적 고찰의 대상이다. 사회적 기능의 측면에서 본다면, 구조의 관점에서 죄는 언제나 ‘구조악’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변혁의 관점에서 죄는 사회윤리와 개인윤리로 나타난다. 민중신학은 구조와 변혁을 동일 차원으로 혼동함으로써, 구조악의 문제와 윤리의 문제를 분화시키지 못했다. 이런 예각화되지 못한 인식이 ‘구조악-사회윤리’만을 강조하는 신학으로 민중신학을 평가하는 오해를 낳았다. 서경석의 평가도 이런 오해에 기초한다.
셋째, 보편성을 결여한 당파적 신학이라는 평가는 박탈대중을 역사의 주체로 보는 것에 문제제기코자 함이리라. 51 그에 의하면 역사변혁의 주체는 중산층이다. 즉 그는 중산층의 실천에 ‘보편성’을 부여한다. 반면 박탈대중의 실천은 비보편적이고 당파적이라고 판정한다. 물론 그의 이런 자의적인 주장은 서구의 시민사회론을 임의적으로 취사선택한 ‘보편-당파’觀에 기초하고 있다. 그의 논거는 탈계급적 함의를 갖는 기층대중으로서의 민중관(제1세대)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전혀 맞지 않으며, 계급동맹으로서의 민중관(제2세대, 특히 ‘물의 신학’)에 대한 비판일 수는 있으나 ‘계급동맹 對 반/탈계급적 대중’이라면 모르되 ‘계급동맹 對 중산층’이라는 대립구도로는 보편-당파의 통일 문제는 자가당착이다.
넷째, 민중신학이 반(反)점진적인 혁명적 신학이라는 평가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교는 ‘본질적’으로 “온건하고 점진적인” 52 사회적 실천을 추구한다. 그는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 ‘희년’, ‘초기 예루살렘 교회’, ‘예수의 비폭력적 실천’ 등에 관련된 성서 본문을 자신의 개인적 신념의 지평에서 일방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성서 텍스트의 해석은 ‘그때 거기’에서의 텍스트 자체의 지평과 ‘오늘 여기’서 그 텍스트를 읽는 해석자 자신의 지평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53 ‘희년’의 경우 그것이 유래하고 전승되던 사회․역사적 자리가 (이스라엘 평등공동체든 왕국시대든) ‘체제내부’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해방을 지향하는 체제내적 시도의 한 실례가 바로 ‘희년 제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제도로서의 희년’은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실천일 뿐이다. ‘희년’에서 실천적 보편성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제도에서가 아니라) 희년이 지향한 에토스에서이다. 마찬가지로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실천도 초기그리스도인의 다양한 실천 가운데 ‘하나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오늘 우리에게 실천적 범례가 되는 것은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실천 방법이 아니라 그들이 추구한 실천적 에토스인 것이다. 서경석의 자의적인 성서 읽기의 극치는 예수의 비폭력 주장에서 드러난다. 예수가 활동하던 시대는 그 어간의 팔레스틴 역사에서 비폭력적 실천이 상대적으로 효용성을 갖던 때다. 54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서경석이 아무런 매개적 설명 없이 예수의 비폭력적 실천을 (방법적 선택이 아니라) ‘본질’로서 단정하는 것 55은 비약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성서 해석에서의 오류에 기초해서 그는 민중신학이 점진성을 폐기한 폭력적인 혁명적 신학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한(恨)과 단(斷)의 변증법’이라는 주장에서 볼 수 있듯이 민중신학은 ‘한’의 해결을 위한 투쟁을 말하면서도 폭력의 악순환을 ‘단’하려는 실천지향을 갖는다. 56
이와 같이 서경석은 편견과 오해에 기초해서 ‘그가 보는 민중신학’을 비판한다. 그의 글은 “시간적 제약 때문에 민중신학에 관한 최소한의 분석도 생략” 57한 채 비판을 가한 무책임함을 드러낼 뿐 아니라, 민중신학에 관한 글을 거의 읽지도 않은 자세로, 어쩌면 여기저기서 귀동냥한 것 정도로 민중신학을 비판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김지철은 민중신학의 성서해석학적 ‘전이해’로서의 ‘민중의 눈’을 “성서 본문에 대한 석의적인 관심보다는 ...... 오늘의 민중해방사를 성서 해석의 출발점과 과정, 그리고 목표로 삼”는 것이라 요약하고, 이로써 성서는 하느님의 계시사건과는 구별되는 민중해방사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58
여기서 그가 ‘전이해’(Vorverständnis)로서의 ‘민중의 눈’을 이야기 한 것은, 불트만(R. Bultmann)의 ‘실존’이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의 눈’으로 전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트만이 전이해로서의 실존을 강조한 것은, 역사적 예수의 재현에 실패한 자유주의신학의 ‘주관 없는 객관’이라는 신화를 도출해낸 역사비평학 만능주의의 위기를 ‘신학적’으로 극복하려는데 있다(‘방법론적’인 한계를 유보하면서). 그리하면 역사적 예수를 재현할 필요 없이, 초기 전승자들의 실존의 반영물인 그리스도교 사신(使信)을 역사비평방법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로 신학적 과제는 충분해지게 된다. 그에게서 실존은 ‘주관 없는 객관’의 지양으로, (‘객관 없는 주관’이 아니라) ‘주관과 객관의 주관주의적 통합’을 지향한 개념인 것이다. 59
그런데 김지철은 이 개념을 ‘민중의 눈’과 결부시키면서 민중신학은 ‘객관 없는 주관주의’적 오류, 그의 표현으로는 ‘독단적 이데올로기’요 ‘우상’인 오류를 범한다고 비판한다. 60
그러나 위와 같이 불트만은 ‘실존’을 내세워 역사비평방법론의 한계를 ‘신학적으로’ 극복하려 하지만, 안병무는 ‘실존’을 사회학적으로 확장함으로써 ‘방법론적으로’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61 바로 이 사회학적 확장 과정에서 ‘민중의 눈’이 해석학적 틀로서 작용한다. 따라서 ‘객관 없는 주관주의’적 오류 가능성을 지적한 김지철의 비판은 불트만 이전의 해석학적 견지에서 민중신학을 바라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그는 ‘민중의 눈’이라는 민중신학의 성서해석학적 관점이 “신학하는 방법의 혁명적 전환”을 이룩했다는 주장 62의 함의를 파악하지 못한 채 민중신학을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통일성을 갖는다. 63 하지만 성서의 통일성에 대한 현대 성서학의 결론은 부정적이다. 64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다고 한다면, 이때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해석 대상이다. 요컨대 그는 이 말로 모든 것을 다 말한 듯이 이야기하지만, 기실 그는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는 셈이다. 반면 민중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민중적 실천의 관점에서 보며, 이것에서 성서의 역동적인 경향적 통일성을 찾고자 한다.
김지철은 ‘민중의 눈’이라는 해석학적 원칙이 민중을 우상화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맥락에서 ‘민중사건론’이나 ‘민중 메시아론’ 등을 비판한다. 이 두 주제는 박순경과 임태수의 주장과 중복되므로, 여기서는 이 두 주제를 따라 이들 비판론자들의 논지를 반비판하는 방식으로 이들의 민중신학에 대한 이해를 다루겠다.
먼저 민중사건론에 대해 보자. 김지철과 박순경은 모두 민중신학의 민중사건론이 ‘민중사건’과 하느님의 사건을 동질적 차원에서 다룸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중의 실천을 절대화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는 김지철의 논리는 이러하다: 안병무의 ‘사건’ 이해는 ‘인격’으로서의 예수를 간과하여, 민중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반응한 예수만을 말한다. 65 그러면 예수의 실천은 주체가 결여된 일반적 사건, 민중사건이 되고 만다. 결국 민중사건론은 민중 우상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민중신학, 특히 안병무의 사건론에 대한 이해의 혼란을 반영한다. 예수 개인에 대한 전기적 재구성의 실패가 불트만 신학이 도달한 방법론적 위기의 요체라면, 안병무는 ‘인격체/개인’에서 ‘사건’으로 전환함으로써 그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다. 즉 사회학적 차원으로의 확장에서 역사적 물음의 방법론적 돌파구가 마련된 것이다.
김지철은 “특히 전승사에 대한 연구”라는 ‘새로운’ 역사적 예수 연구가 인격체/개인으로서의 예수를 재현해 냄으로써 불트만의 ‘한계’를 극복하게 됐다고 하지만, 66 사회・역사적 접근 가능성에 소극적인 이런 연구 경향은 불트만의 한계를 돌파하는 일면적인 성과에 지나지 않는다. 67 사회․역사적 물음은 개인의 인격을 묻는 것이 아니라 개인간, 집단간의 관계의 ‘전형성’을 묻는다. 만약 그 결과로 개인이 묘사된다 해도 그 개인은 관계 속에서의 개인(사회적 ‘전형성’의 표출로서의 개인)이다. 이때 사회・역사학적 패러다임 활용이 필요하다. 안병무의 민중사건 개념은 바로 이 사회학적 패러다임을 ‘민중의 눈’의 관점에서 추구하도록 길을 열어 놓는다. 68 한편 제2세대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적 관점’을 계급론적 패러다임으로 구체화한다.
이런 민중사건적 예수사건 이해는 예수라는 개인이나, 그의 자율성, 주체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단독자적 실존’의 차원에서 도출된 추상적 주체성과 대립개념임을 강조한다. 예수를 ‘사회적 전형성의 표출로서의 개인’으로 볼 때에야 변혁전망과 전술을 고안하고 대중 동원을 기획하는 전략집단(strategic group)의 자율성, 주체성, 그리고 종교적 사회운동의 전략집단의 상징적 중심으로서의 ‘예언자’(예수) 69와 그의 추종자 집단(제자)이라는 차별성도 해석될 수 있다. 70 민중신학의 사건론이 (예수라는) 주체 없는 민중론이라는 주장은 김지철이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한 결과일 뿐이다.
한편 박순경은 ‘주객도식의 극복’이라는, 자유주의신학의 극복을 위한 불트만과 바르트의 명제를 안병무가 도리어 자유주의신학적 차원에서 활용함으로서 불트만과 바르트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고 본다. 71 여기에서 민중사건론은 두 가지 모순된 함의를 갖는다: 한편으로는 불트만적 편향으로, 민중사건을 신앙의 실존적 차원으로 조명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신학적 편향으로, 역사실증주의적 예수사건(민중사건)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중봉기로 환원되는 예수 부활이라는 해석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72
그러나 이런 두 가지 모순된 함의는 기실 박순경이 안병무의 주객도식의 문제설정을 불트만과 동일 지평으로 봄으로써 발생하게 된 오해다. 인격체/개인의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 입증할 수 없었기에 불트만은 실존적인 신앙적 결단으로 역사실증주의의 위기를 우회하려 하지만, 안병무는 예수의 부활을 사회․역사적으로 확장된 사건의 관점에서 묻는다. 사건 개념은 역사실증주의의 한계와 반사회․역사적인 실존주의적 한계를 동시에 넘어 선다. 그리하여 인격체/개인의 관점에서는 분리된, 분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건의 관점에서는 하나로 만난다.
박순경은 ‘하느님의 사건’의 독보적인 우선성을 전제하는 바르트 신학을 통해서 불트만과 민중신학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73 이때 ‘하느님의 사건’은 Historie(‘이야기로서의 사건’)가 아니라 Geschichte(‘해석된 보편적 총체로서의 사건’)다. 74 박순경은 이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사건’으로서의 ‘하느님의 사건’이야말로 역사적이면서도 역사를 초월하는 개념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의 인간주의적 한계’를 넘어 서려는 ‘하나의’ 패러다임일 뿐, 보편적인 패러다임이 아니다. 실제로 서구의 또 다른 경험은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사건/역사관이 권력과 연계된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해 왔음을 보여준다. 75 김용복, 안병무, 서남동 등이 ‘민중의 사회전기’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러한 총체적 역사에서 배제되고 박탈되는 민중의 ‘작은 이야기’를 말하는 데 강조점이 있다. 76 결국 박순경은 바르트식의 총체적 역사관으로 민중사건론을 비판코자 했지만, 도리어 자신의 논리가 비판의 대상임을 그는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민중 메시아론에 대해 보자. 김지철은 민중 메시아론에 접근하기 위해, 민중신학의 민중개념에서 출발해서 예수사건 해석에 이르는 방식을 택한다. 77 김지철은 민중신학의 민중개념이 “사회과학적 실체로서의 ‘민중’”과 “주체성과 자발성이라는 ‘민중성’을 혼돈”함으로써 민중론의 “논리적 전개와 민중운동의 전략”에 있어서 실천(이론)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본다. 78 그리하여 그는 “예수의 민중성”은 올바르나, “민중의 메시아성”은 자가당착이라고 결론 내린다. 79 그리하여 그의 주장은 민중 메시아론의 ‘폐기론’으로 이어진다.
구조만이 사회과학의 대상(‘민중’)이고 인간행위(‘민중성’)는 다른 차원이라는 것은 사회과학에 대한 그의 편협한 이해를 시사하지만, 그가 이 둘의 ‘차이’를 시사한 것은 옳다. 그러나 인간행위에 대한 사회과학적 인식의 부재로 말미암아 그는 양자의 관계성을 몰각하는 오류를 범한다. 가령 그는 “예수의 민중성”은 민중해방적 실천의 관점에서 보고, 민중의 ‘죄’를 말할 때는 구조의 관점에서 본 민중을 상정하는데, 양자간에는 통합 가능성이 단절되어 있다. 반면 그로 하여금 폐기론에 이르게 한 민중신학의 혼란은, 모순과 변혁에 관한 민중 개념의 예각화가 이루어진다면 양자의 ‘차이’와 ‘관계성’이 통합되는, 민중 메시아론의 강화를 가져온다. 80 즉 ‘죄’와 변혁적 실천으로의 가능성을 동시에 갖는 민중 모집단(母集團)으로서의 대중과, 메시아적 실천 주체로서의 민중이 설정되면, 예수의 메시아성은 민중의 메시아적 실천과 통합될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결국 김지철은, 민중신학의 한계와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도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민중 메시아론을 비판하고 있다.
한편 임태수는 두 경로로 민중 메시아론을 비판한다: ⑴예수와 메시아 칭호의 관계 문제를 통해서, ⑵민중 메시아론의 성서적 전거라는 네 개의 본문들의 조사를 통해서.
먼저 메시아 칭호에 관해 보자. 그는 예수의 메시아 자의식 문제에 있어 근본적으로 안병무가 불트만을 따른다고 보면서, 후속 불트만 학파(Post-Bultmannians), 슈틀마허(P. Stuhlmacher), 쿨만(O. Cullmann) 등을 인용함으로써 안병무나 불트만의 입장은 타당성을 잃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81 여기서 그는 세 가지 과잉해석의 오류를 범한다. 첫째로, 후속 불트만 학파가 역사적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적 칭호들로 불렀다는 그의 주장과는 달리, 그들 대다수는 이 칭호들이 거의 전적으로 초대교회의 산물임을 주장한다. 82 둘째로, 그는 예수가 스스로를 메시아적 칭호들로 부른 것이 현대 신약학에서 자명한 양 말하지만, 자명한 것은 이 칭호들이 초대교회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이고, 예수가 이 칭호들을 사용했는지의 여부는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한 형편이다. 83
셋째로, 메시아 칭호 문제에 있어 안병무가 불트만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양자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사상시킨다. 불트만이 예수의 칭호들과 역사적 예수를 구별한 것은 역사적 예수가 메시아임을 문제삼고자 함이 아니고(그에게서 이것은 전제사항이다), 이것들이 역사적 예수의 자기칭호가 아님을 말하고자 함이다. 반면 안병무는 이러한 불트만의 결론을 받아들이지만(안병무에게서는 이것이 전제사항이다), 그는 이를 통해 (불트만에게 전제된) ‘영광의 메시아’상을 거부하고 ‘수난의 메시아’상을 제시함으로써, 예수와 민중의 수난 ‘사건’ 속에서 메시아 ‘사건’을 보고자 한다. 84 요컨대 민중사건은 민중 메시아론의 필수적 요소며, 메시아 자의식에 관한 불트만류 해석의 수용은 이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반면 안병무와 불트만을 유비시킨 임태수의 논리에는 ‘사건’이 탈각된 민중 메시아론이 있다.
다음으로 민중 메시아론의 성서적 전거에 대한 비판을 보자. 그는 《민중신학 이야기》의 진술을 토대로 마태오복음 25장, 히브리서 13장, 요한복음 1장 29절 등이 안병무가 민중 메시아론을 입증하려 제시한 본문이라고 주장한다. 85 그러나 이 본문들의 내용은 민중 메시아론을 입증하기보다는 그 특징을 설명하는 데 초점이 있다.
안병무의 민중 메시아론은 예수와 민중이 더불어 일으킨 사건이 메시아 사건임을 말하는 데 핵심이 있다. 내가 아는 한, 그에게서 이런 견해가 처음 피력된 것은 〈민중신학〉 86에서였고, 〈예수사건의 전승모체〉 87에서 전승사적으로 확립되며,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신학협의회 워크숍의 발표글인 〈예수와 민중〉, 88 및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89에서 극적으로 활용된다.
《민중신학 이야기》의 해당부분이 처음 발표된 시기인 1986년 90에는 민중 메시아론이 이미 전제되어 있었기에 입증할 필요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안병무의 민중 메시아론의 성서적 전거를 논하려면 앞의 두 논문(1981; 1984)에 대한 비평이 시도됐어야 했다. 결국 임태수는 안병무 독해의 과오를 범하고 있다.
임태수는 ‘단독자로서의 예수만이 메시아다’라는 결론을 맺으며, 이에 기반해서 민중신학이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덧붙인다. 91 그렇다면 그는 민중 역사주체론을 부정하는가? 그런데 그는 〈민중・민중연대자・민중지도자〉에서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민중 메시아론’과 ‘민중 역사주체론’은 별개의 개념화인가, 아니면 두 논문 사이에 그의 입장 변화가 있었는가?
이상에서 보듯이 임태수의 민중 메시아론에 대한 이해는 민중사건에 대한 그의 무시 탓에 근본적인 편견을 드러낸다. 여기에 안병무에 대한 오독, 메시아론을 둘러싼 서구의 신학동향에 대한 왜곡 등은 민중 메시아론이 폐기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4
이 글에서 다룬 민중신학 위기론의 근저에는 초월의 회복을 통해 내재주의적 오류를 극복하려 했던 서구의 ‘특정한’ 경험, 바로 이것을 무시간적, 무역사적으로 보편화하려는 신학적 ‘신화’가 개입되어 있다. 지정학적으로 ‘다른 지역’의 모든 신학적 담론들은 바로 이 ‘보편 이데올로기’로 해석된 ‘특정한’ 경험의 맥락에서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에는 모든 지정학적 차이들은, 비록 시간적으로는 동시적이지만, 발전과 저발전이라는 ‘비동시성’(non-contemporaneousness)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단선론적 ‘진보관’이 개재되어 있고, 그리하여 지정학적 의미에서 비서구 세계의 모든 경험들은 ‘진보’의 규준을 제공한 서구의 경험을 ‘필연적’으로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전재되어 있다. 바로 최근 민중신학 위기론에는 서구 중심주의적인 ‘발전이론’이라는 식민주의적 담론이 절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위기론이 서구 중심주의적이요, 그리스도교 배타주의적이며, 식민주의적인 편린을 갖는 ‘닫힌 보편성’과 관련되는 한, 그것은 ‘거짓’ 보편성의 신학일 뿐이다. 민중신학은 서구사회의 특정한 경험과는 다른 맥락에서 발생・발전했다. 즉 민중신학은 탈역사적 초월에 경도된 그리스도교 신앙의 거짓 보편성의 세계로부터의 대탈출에서 출발했다. 이 엑소더스의 계기는 한국의 사회․역사적 콘텍스트와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과거와는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초월이 필요했다. 민중신학은 역사 ‘안’에서 초월을 체험한 것이다. 이것이 ‘민중의 눈으로 신학하기(성서 읽기)’요, ‘민중사건론’이요 ‘민중 메시아론’으로 체현된다. 이런 논리는, 아직 진정한 실천이론다운 발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 자체가 이미 민중신학적 실천이론이며, 발전의 지향점이다.
그러나 위기론자들은 민중신학의 경험을 서구 중심주의적, 그리스도교 배타주의적 시좌에서 평가하려 하고, 부적절한 논리로 민중신학의 실천이론으로서의 내재적 발전 가능성을 선험적으로 부정한다. 이런 논리로는 민중신학의 실천이론으로의 가능성이 폐기되지도 않을 뿐더러 민중신학을 넘어서는 대안적인 실천이론적 재구성도 가능하지 않다. 결국 이들의 위기론은 민중신학의 실천이론으로서의 위기를 되짚어 볼 수 있도록 자극이 되기는 하였으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의 문제제기도 부적절한 논리로 말미암아 실천이론으로서의 한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
-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세심한 자문을 아끼지 않았던 이향명・최형묵 선생께 감사드린다. 또한 이 논문이 게제되기까지 여러 선배 민중신학자들의 도움이 있었음을 밝힌다. [본문으로]
- 민중신학은 실천지향을 신학의 최대 내용적 과제로 삼는다.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은, 소위 ‘강단성’(=이론지향성)을 배제하지는 않으나, ‘현장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론 형성의 직접당사자가 아닌 목회자나 기타 현장 활동가들도 ‘민중신학자’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한국민중신학회 정관의 회원규정을 보면 “‘신학’대학의 교수, 민중신학 연구자, 민중선교지도자, 민중목회자”에게 회원자격을 부여한다). 우리는 이에 동의하지만 이 글에서는 민중신학을 신학‘이론’의 차원에 한정하고자 한다. [본문으로]
- 최근 민중신학의 위기를 논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특정한 경험을 즉자적으로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 논지들의 수렴점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본문으로]
- 《기독교사상》 (1993.9). [본문으로]
- 김지철, 〈민중신학의 성서읽기에 대한 비판적 고찰〉, 《신학사상》 69 (1990 여름); 박순경, 〈민족통일과 민족신학의 문제―새로운 민중신학 전개를 위하여〉, 《신학사상》 80 (1993 봄); 임태수, 〈민중은 메시아인가 안병무의 민중 메시아론을 중심으로〉, 《신학사상》 81 (1993 여름) 등. [본문으로]
- 서경석, 앞의 글, 192쪽. [본문으로]
- 같은 글, 192쪽. [본문으로]
- 같은 글, 191~92쪽 참조. [본문으로]
- 김지철, 앞의 글, 445쪽. [본문으로]
- 같은 글, 465쪽. [본문으로]
- 그는 이 ‘보편성’의 정체에 대해서 사실상 침묵한다. 같은 글, 464쪽. 그러나 민중신학이 비판한 것은 보편성 자체가 아니라 ‘거짓 보편성’이다. 박종천, 〈신학하는 일에서의 보편성과 당파성 문제〉, 《신학사상》 65 (1989 여름), 343쪽. 또한 민중신학은 참된 당파성의 구현을 통해 참된 보편성이 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강원돈, 《물의 신학》 (한울, 1992), 98~99쪽. 그러므로 민중신학의 당파성이 왜 보편적일 수 없는지에 대한 논증 없이, 민중지향은 반(反)보편적이라는 전제를 반복하는 것은 민중신학에 대한 정당한 비판일 수 없다. [본문으로]
- 박순경, 앞의 글, 68・79쪽. [본문으로]
- 김지철도 ‘서구신학=불트만 신학’이라는 민중신학자들의 단순한 이해를 비판한다. 김지철, 앞의 글, 444쪽. [본문으로]
- 박순경, 앞의 글, 80~81쪽. [본문으로]
- 박종천은 박순경의 이러한 신학적 입장을 ‘그리스도교 배타주의적 편린’이라고 비판한다. 박종천, 〈민족통일과 토착화 신학의 미래〉, 《기독교사상》 (1988.9), 126쪽; 박순경, 〈민족통일과 여성신학의 과제〉, 《기독교사상》 (1988.3). 그는 초월과 내재의 (전통적 그리스도교에 따른) 반립보다는 양자의 융합을 통한 ‘하느님나라의 역설적인 현존’을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문으로]
- 임태수, 앞의 글 참조. [본문으로]
- 김지철의 이러한 비판은 구체적으로 ‘민중사건론’과 ‘민중 메시아론’ 등의 성서적 근거를 비판하는 데로도 확장된다. [본문으로]
- 20세기 중반 이후의 신학에서 ‘역사를 배제한 초월’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이들 위기론자들은 한결같이 이런 신학의 흐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제3세계의 해방적 신학들이나 이에 조응한 서구의 급진주의 신학의 흐름, 및 다원주의적 신학의 흐름, 그리고 비판이론이나 이른바 ‘포스트’觀을 수용한 새로운 흐름 등은 ‘신중심주의’에 대한 일정한 비판/반성을 내포한다. [본문으로]
- 반면 김지철과 임태수는 민중신학의 논리 내부의 한계를 밝히려는 데 치중한다. [본문으로]
- 서경석, 앞의 글, 195~7쪽. [본문으로]
- 같은 글, 188・202쪽. [본문으로]
- 같은 글, 202・195쪽. [본문으로]
- 김동춘, 〈남한 사회변혁운동론 연구의 제 문제〉, 《경제와 사회》 6 (1990 여름), 26~27쪽. ‘혁명’과 ‘변혁’ 개념의 이런 차별화가 부득이했던 것은 한때나마 한국의 민중적 사회과학계를 풍미했던 레닌주의적 개념화와 현실 사회운동 사이의 괴리, 즉 이론과 실천상의 부조화를 조절해보려는 의도에서 였으리라. [본문으로]
- 최근 《말》지에 게재된, 한국 민중운동 조직 중 가장 전위조직으로 알려진 ‘사노맹’의 한 지도적 인물과의 인터뷰 기사를 참조하라. 신재필이라고 이름을 밝힌 한 간부에 의하면, ‘사노맹’조차도 무장봉기 노선의 공식적 채택은 없었으며, 단지 이를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단의 분위기가 있었을 뿐이다. 안영배, 〈합법화 선언한 사노맹의 앞날〉, 《말》 (1993.10), 169~70쪽. 한편 여기서 김동춘이 규정하는 ‘변혁’에 홑따음표(‘’)를 붙인 것을 주의하라. 나는 뒤에서 모순의 상대개념으로 변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인데, 이때는 따음표를 붙이지 않을 것이다. [본문으로]
- 서경석, 앞의 글, 198쪽. [본문으로]
- 같은 글, 195~96쪽. [본문으로]
- 예컨대 한국 사회운동의 시민운동론적 입장을 일찍부터 주장해온 한상진은 양극화론에 기초한 계급운동적 성격 자체가 우리의 구체적 상황과는 별개인 ‘외삽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1987년의 변화된 상황 자체가 시민운동 대두의 사회․역사적 배경이 아니며, 우리 역사에서 계급운동 자체가 활성화될 수 있는 사회․역사적 여건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상진, 〈사회변혁운동의 민중성에 관한 이론적 경험적 고찰〉, 《한국사회의 비판적 인식―80년대 한국사회의 분석》 (나남, 1990). [본문으로]
- 서경석, 앞의 글, 198쪽. [본문으로]
- 같은 글, 198쪽. [본문으로]
- 물론 그는 최근 약사회나 한의사회의 운동들과 같은 ‘시민들의 운동’을 시민운동이라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본문으로]
- 양현아, 〈서구에서의 새로운 사회운동들을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운동과 사회개혁론》 (전예원, 1992), 178~84쪽 참조. [본문으로]
- 서경석, 앞의 글, 196족. [본문으로]
- 주 23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 이런 민중관은 제2세대 민중신학자들 일부에서 발견된다. [본문으로]
- 서경석과 마찬가지로, 신사회운동의 중심축을 신중간계급으로 보는 하버마스(J.Habermas)나 오페(C.Offe) 같은 비판이론가들은 1970년대 이른바 ‘복지국가의 위기’를 후기자본주의의 ‘경제적 위기관리의 정치적 (정당성의) 위기’로 해석하며, 이를 각각 ‘생활세계의 식민화’와 ‘국가와 시민사회의 융합’의 개념으로 구체화하여 시민운동 출현을 설명한다. 한편 조절이론가들도 신중간계급을 강조하는데, 이들은 ‘복지국가의 위기’를 포디즘적 자본화와 국가 관료제화의 소산이 시민운동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들 모두에게서 신중간계급의 대두는 명백히 서구의 사회‧역사적 배경을 갖는다. 김호기, 〈포스트 맑스주의와 신사회운동〉, 《경제와 사회》 14 (1992 여름), 120~29쪽. [본문으로]
- 박순경, 《민족통일과 기독교》 (한길, 1984), 411~12쪽. [본문으로]
- 박순경, 〈민족통일과 민족신학의 문제〉, 50~51쪽. 한편 박재순은 1970년대 민중신학에서 ‘민족’이 간과되어 있지 않음을 강변한다. 박재순, 〈민족신학과 민중신학〉, 《신학사상》 81 (1993), 82~83쪽. 하지만 박순경의 주장의 요지는,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이 결여된 민중관이 결과적으로 민족부재의 민중관으로 나타났다는 데에 있다. 그에 의하면 이것은 민중신학이 특히 1920년대 이래의 전통을 상실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박종천은 1920년대의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간의 연대가 ‘실용적 동맹’에 그쳤음을 지적한다. 박종천, 앞의 글, 122~23쪽. 마찬가지로 박종천은 서구의 그리스도교사회주의 운동이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사회주의와의 실용적 동맹에 그친 그리스도교사회주의의 실천이론의 부재와 유관함을 주장한다. 박종천, 〈노동운동과 기독교사회주의―관계유형과 발전단계를 중심으로〉, 《신학사상》 64 (1989 봄). [본문으로]
- 박순경, 앞의 글, 60~62쪽. [본문으로]
- 같은 글, 57쪽. [본문으로]
- 홍근수의 민족, 민중, 여성 개념에 관한 박순경의 논리상의 혼란을 지적한다. 홍근수, 〈사과를 따는 여신학자 박순경〉, 《신학사상》 79 (1992 겨울), 999쪽. 박순경은 이에 대해 자신의 민중 용법은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일관성을 변명하지만(박순경, 〈홍근수 목사의 비평에 대하여〉, 《신학사상》 79. 1992 겨울, 1006~7쪽), 여전히 사회학적 대상을 이야기하는 논리로는 시적이고 선언적이다. [본문으로]
- 박순경, 《민족통일과 기독교》, 496쪽. [본문으로]
- 민중신학자와 사회과학연구자의 공동연구물인 노정선・이종석・정대화・홍근수・강원돈, 〈통일된 민족공동체의 청사진 모색〉, 《신학사상》 71 (1990 겨울)이나 안병무의 〈희년선포과 통일헌법〉, 《신학사상》 76 (1992 봄) 등은 박순경의 ‘제3의 길’이 함의하는 바를 구현한 실례들이다. [본문으로]
- 박순경, 〈민족통일과 여성신학의 과제〉, 126~31쪽. [본문으로]
- 서경석, 앞의 글, 200~3쪽. [본문으로]
- 그의 ‘전통적인 개혁신학’은 ‘성령운동, 개인윤리, 보편성, 점진적 개혁’이라는 특징의 신학이다. 이러한 ‘개혁신학’이 무엇인지는 신학사적으로 곰곰히 찾아볼 일이다. 내 생각으로는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신앙’(신학이 아니라)을 이 용어로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 [본문으로]
- 그는 이것을 ‘영성’이라고 부른다(194쪽). [본문으로]
- 강원돈은 ‘反역사적 초월’을 비판한다. 그의 ‘물의 신학’은 ‘역사적 초월’을 성육신 신학으로써 해석한다. 강원돈, 《물의 신학》, 155쪽. [본문으로]
- 이정희, 〈문화현상에서의 내재와 초월〉 (토착화신학과 민중신학 심포지엄; 1989 미간행). [본문으로]
- 서경석, 앞의 글, 201쪽. [본문으로]
- 박재순, 〈서경석 목사의 글에 응답함―민중신학의 반성과 원칙〉, 《기독교사상》 418 (1993.10), 125~26쪽. [본문으로]
- 서경석, 앞의 글, 202쪽 참조. [본문으로]
- 같은 책, 202쪽. [본문으로]
- 김지철은 민중신학의 성서 읽기가 텍스트를 한국 민중상황/운동이라는 콘텍스트로 환원시켰다고 비판하지만, 김명수가 옳게 지적했듯이 민중신학의 대표자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안병무의 성서해석의 “두 상수”는 “신학의 지평으로서의 ‘오늘 여기의 민중사건’과 신학의 기준으로서의 ‘예수사건, 즉 성서의 민중사건’”이고, “‘민중의 역사성’을 고리로 해석학적 순환작업을 통해” 두 상수(지평)를 융합한다. 김명수, 〈민중신학의 해석학(2)〉, 《기독교사상》 (1992.4), 187쪽. 한편 ‘민중적 성서 읽기’, 또는 ‘복음대화’ 등, 학문적 성서 읽기라기보다는 ‘체험적 성서 읽기’의 경우는 ‘오늘 여기’의 진솔한 삶의 체험과 반성이 성서를 읽는 기축이 된다. 문자를 갓 해독한 니카라과의 솔렌티나베 농민들의 성서 읽기를 채록한 《말씀이 우리와 함께》 (분도), 미국 도시 중산층의 민중적 성서 읽기의 모범형으로 제시된 《뜻밖의 소식》 (한국신학연구소), 그리고 하월곡동의 도시빈민들의 성서읽기를 채록한 《짓눌러도 할렐루야》 (청사) 등은 그 좋은 예이다. 이것은 민중당파적 실천(‘정통실천’)이 참된 보편성의 매개자일 수 있다는 세계관적 전제를 기반으로 했을 때 성립하는 성서 읽기다. 최형묵・조하무, 〈한국그리스도교 민중공동체의 성서해석〉, 《1980년대 한국민중신학의 전개》 (한국신학연구소, 1990); 김진호, 《실천적 그리스도교를 위하여―예수운동의 혁명성 문제》 (나단, 1992), 23~27쪽 참조. [본문으로]
- 타이쎈은 예수 탄생 어간과 그의 처형 이후 시기가 ‘폭력적’ 항쟁의 시기인 반면, 예수 당시의 시기는 ‘비폭력적’ 항쟁이 전술적으로 효용적이던 임을 사료 해석을 통해 증명한다. G. Theißen, 〈폭력포기와 원수사랑에 대한 사회사적 배경―마태복음 5장 38~48절과 누가복음 6장 27~38절의 사회사적 배경〉, 《원시 그리스도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6); P.W. Barnett, “Under Tiberius all was quiet”, NTS 21 (1974-5). [본문으로]
- 이 관점은 1960년대 전투적 혁명관을 가졌던 서구의 급진적 그리스도교 실천가들에 대해 비판적이던 일단의 학자들이 변증하던 예수운동 해석의 관점이기도 하다. 그들은 예수운동의 ‘본질’을 비폭력적 실천에 둠으로써 균형을 잃어버리고 있다(김진호, 앞의 책, 112~6쪽). 그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헹엘(M. Hengel)에게서 볼 수 있다. 자신이 구성한 ‘젤롯데 가설’을 중심으로 전개된 그의 주장은 ‘예수운동 대 젤롯데 운동 = 비폭력운동 대 폭력운동(혁명)’이라는 신화를 창출한다. M. Hengel, Victory over Violence (Philadelphia: Fortress, 1975). 헹엘의 이런 ‘젤롯데 가설’은 요세푸스(Josephus) 책들의 작위적인 독해에 기반한 것이다. M. Smith, “Zealots and Sicarii, Their Origins and Relation”, HTR 64 (1971); R.A. Horsley, 〈젤롯당: 그 기원과 유다 항쟁과의 관련성 및 그 중요성〉, 《예수시대의 민중운동》 (한국신학연구소, 1990); D. Rhoads, 〈젤롯운동의 기원과 역사〉, 《신학사상》 81 (1993 여름) 등 참조. [본문으로]
- 안병무, 〈마가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민중과 한국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982), 184쪽. [본문으로]
- 서경석, 앞의 글, 188쪽. [본문으로]
- 김지철, 앞의 글, 445쪽. [본문으로]
- 김명수, 〈민중신학의 해석학(1)〉, 《기독교사상》 (1992.3), 97~100쪽. [본문으로]
- 같은 책, 446쪽. 한편 하이데거와 불트만 이후의 해석학은 객관과 주관, 텍스트와 콘텍스트 사이의 ‘해석학적 순환’을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느냐(E. Betti; E.D. Hirsch) 불가능하냐(M. Heidegger; R. Bultmann; H. Gadamer)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느 편도 ‘주관 없는 객관’이나 ‘객관 없는 주관’을 주장하지 않는다. 반면 김지철의 민중신학 비판은 그 자신의 해석학적 입지를 양편 어느 곳에도 두지 않으려 한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본문으로]
- 안병무의 ‘오클로스론’의 성립 과정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 가능성을 방법론적으로 찾아가는 과정이다. 김진호, 〈민중신학 민중론의 성서적 기초〉, 《예수・민중・민족》 안병무 박사 고희기념 논문집 (한국신학연구소, 1992). [본문으로]
- 강원돈, 《물의 신학》, 57쪽. [본문으로]
- 김지철, 앞의 글, 451쪽. [본문으로]
- 20세기 중반을 풍미했던 이른바 성서신학운동은 자유주의신학에 대항한 신정통주의적 성서신학 부흥운동으로, 성서의 통일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폰 라트(von Rad) 이래 구약신학의 통일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명제가 되었다. W. Zimmerli, 〈구약성서의 중심점 문제〉, 《신학사상》 12 (1976 봄), 91쪽. 이 전제 위에서 구약성서가 양극적 요소의 변증법적 통일성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브뤼그만은 이 긴장을 ‘구약성서 신앙의 중심적 역동성’이라 부른다. W. Bruggemann, 〈구약신학의 틀 I : 체제 정당화〉, 《기독교사상》 (1993.1), 149쪽. 마찬가지로 케제만도 신약성서의 통일성이 과거와 같이 자명하지 않음을 강변한다.(Käsemann, 1972~73). 한편 제임스 던은 신약성서 그리스도론의 다양성을 이야기한다. J. Dunn, “Christology, New Testament”, A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1990), 115~19. [본문으로]
- 김지철, 앞의 글, 452~3쪽. [본문으로]
- 앞의 글, 453쪽. [본문으로]
- 쾨스터는 ‘새로운 역사적 예수 연구’의 대두를 ‘예수 생애’ 연구를 폐기하고 ‘선포된 케뤼그마’에 집중하게 된 결과로서 설명한다. H. Koester, “Jesus The Victim”, JBL 111 (1992). 홀렌바하(P. Hollenbach)는 불트만 이후의 역사적 예수에 관한 이러한 “새로운 관심”이 낳은 성과가 미미하여, “사실상 토의가 유보된 상태”임을 지적한다. P. Hollenbach, “The Historical Jesus Question In North America Today”, BTB 19 (1989). [본문으로]
- 아직 그에게선 구체적인 패러다임이 활용되지는 못했다. 안병무의 ‘민중신학적 상상력’은 사회학적으로 지평확대가 된 역사비평학으로 보충되어야 한다는 김명수의 지적은 이것을 의미한다. 〈민중신학의 해석학(2)〉, 189쪽. [본문으로]
- 이는 천년왕국운동의 지도자라는 의미에서 사용한 개념으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신탁중개자’라는 개념보다는 광의의 용어이다. [본문으로]
- 나는 안병무의 민중사건 개념을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전략집단(제자단) 및 상징적 중심으로서의 예언자(예수)의 자율성을 조명하였다. 김진호, 《실천적 그리스도교를 위하여》, 116~34쪽. [본문으로]
- 박순경, 〈민족통일과 민족신학의 과제〉, 68쪽. [본문으로]
- 같은 글, 80~81쪽. [본문으로]
- 박순경, 앞의 글, 66・79쪽. [본문으로]
- 같은 글, 66쪽. 또한 그는 “역사성”(Geschichtlichkeit; 71・72쪽), “류적・역사적(Gattungsgeschichtlich; 80쪽) 사건”이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본문으로]
- 푸코는 이런 역사관이 어떻게 권력과 교묘한 연계를 이루어 왔는가를 서구 근대의 역사궤적을 따라 마치 ‘고고학’적 유물을 발견해 내듯이 탐구하고 있다. M. Foucault, 《광기의 역사》 (인간사랑, 1991). [본문으로]
- 〈한국신학연구소 창립 20주년기념 국제신학심포지엄: 민중신학과 코이노니아〉 (1993.10.4~6)에서 순더마이어(T. Sundermeier)가 전통적 신학과 민중신학을 각각 근대성과 포스트근대성을 특징짓는 신학적 접근으로 본 것은 바로 이러한 민중신학의 ‘해체’적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T. Sundermeier, 〈삶과 증언으로서의 민중신학〉, 《신학사상》 83 (1993 겨울). [본문으로]
- 김지철, 앞의 글, 454~59쪽. 이점에서 박순경도 마찬가지다. 박순경, 앞의 글, 71쪽. 실제로 민중 메시아론은 민중사건론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다. [본문으로]
- 김지철, 앞의 글, 456쪽 [본문으로]
- 같은 글, 455~60쪽. [본문으로]
- 나는 〈역사 주체로서의 민중―민중신학 민중론의 재검토〉, 《신학사상》 80 (1993 봄)에서 구조와 행위의 차이와 관계성의 문제를 고려하면서 민중을 후자의 관점으로 개념화함으로써, 실천 주체로서의 민중 개념화를 시도하였다. [본문으로]
- 임태수, 앞의 글, 57~59쪽. [본문으로]
- 후속 불트만 학파 우파의 대표격인 보른캄은 불트만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도래할 인자’(이때 예수는 ‘인자’가 아니라)만을 역사적 예수의 말로서 보며, 좌파의 케제만(E. Käsemann), 콘첼만 등은 일체의 메시아적 칭호를 초기 그리스도교 산물로 본다. G. Bornkamm, 《나자렛 예수》 (대한기독교서회, 1985), 172~82쪽; H. Conzelmann, 《신약성서 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982), 151~61쪽 등. [본문으로]
- F.H. Borsch, “Further Reflections on ‘The SON OF MAN’: The Origins and Developement of the Title”, The Messiah (Minneapolis:Fortress Press, 1992); N.Perrin, Rediscovering the Teaching of Jesus (NY:Harper & Row, 1967), 154~206쪽; J.R. Donahue, “Recent Studies on the Origin of ‘Son of Man’ in the Gospel”, CBQ 48 (1986) 등 참조. 한편 문헌 정보를 통해 조명된 메시아적 칭호들의 개념은 적어도 예수시대까지는 일관성이 없었음이 확인된다. M. de Jonge, “The Use of the Word ‘Anointed’ in the Time of Jesus”, NovT. 8 (1966). 와이즈먼은 문헌 자료의 다양한 메시아관이 공식적 지배 이데올로기적 경향을 갖는 반면, 문헌자료에서 추론된 ‘소전승’(little tradition)의 대중적 메시아관이 이와 분리된 채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Z. Weisman, “Anointing as a Motif in the Making of the Charismatic King”, Bib. 57 (1976). 홀슬리는 이런 대중적 메시아상이 예수시대 민중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밝혀낸다. R.A. Horsley, 〈예수시대의 대중적 메시아 운동〉, 《예수시대의 민중운동》 (한국신학연구소, 1990). 그는 예수가 이러한 대중적 메시아상에 상응하는 존재라고 본다. 같은 저자, Jesus and the Spiral over Violence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7). [본문으로]
- 안병무, 《민중신학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1987), 89~95쪽. 수난당하는 메시아의 ‘집단성’은 바로 이런 맥락과 연관된다. [본문으로]
- 임태수, 앞의 글, 57쪽. [본문으로]
- 《신학사상》 34 (1981). [본문으로]
- 《신학사상》 47 (1984). [본문으로]
-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한길, 1986). [본문으로]
-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한국신학연구소, 1987). [본문으로]
- 〈민중 예수〉, 《신학사상》 55집. [본문으로]
- 임태수, 《구약성서와 민중》 (한국신학연구소, 1993), 236쪽. 이 글은 원래 도미사카 크리스찬 센터와 일본 성서학연구소 공동주최의 공개강좌 발표글(1991)이다. [본문으로]
'논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의 예수’ 담론과 교회주의 비판 (0) | 2011.07.27 |
---|---|
실천적 그리스도인과 종말신앙 - ‘1992년의 열풍’과 성서의 묵시적 종말신앙 (0) | 2011.07.27 |
단(斷)과 공(公)의 변증법 - 지구적 자본 시대의 위기와 민중신학적 실천 담론의 모색 (0) | 2011.07.27 |
한국사회의 근대화와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를 위하여 (0) | 2011.07.27 |
‘한국의 근대’와 민중신학, 회고와 전망 <한글본 & English Version> (0) | 2011.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