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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민중신학, 그리고 공부
우리에게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기본 물음이다. 물론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회 속에서 얼마나 존귀한가를 확인시켜줄 것”이라는 ‘성공회역사연구회’ 발족문의 거창한 문구는 이 특강에 학교 수업의 보조 장치 이상의 의미를 강제한다.
이 물음에 접근하기 위해 나는 우선 ‘지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 지식이란, 내 식으로 말하면, 세계 속에 통용되는 일상적 언어에서 ‘문제를 읽어내는 일’이다. 이것은 자명한 듯이 보였던 것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당연한 듯 여겼던 것에 의심을 던지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의심스러운 것에 이르는 일련의 상징 메커니즘을 색출하는 작업이 바로 지식인 것이다. 요컨대 지식은 자명한 현실 체계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작업이다. 이것은 근대 인문학의 정신이었지만, 오늘날의 학문은 단지 세계의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하나의 테크닉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이러한 지식은 기본적으로 대안을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식은 자명함의 부정이며, 동시에 그 부정의 부정, 끝없는 부정의 연쇄 과정 속에 위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식은 대안을 향해야 한다는 압박 아래 있다. 이것은 지식의 필요불가결의 조건은 아니지만, 지식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안은 기본적으로 정치의 영역이다. ‘정치’란 비판의 정신보다는 현실의 권력 재구성의 최적화 조건을 구축하는 데 초점이 있다. 이때 지식은 ‘정치’의 허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모든 절대적인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바로 지식이라는 얘기다.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근원적으로 상대화시키는 작업이어야 참된 지식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지식은 끊임없이 정치와 만나게 된다. 그래야만 대안을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정치와 지식은 서로 모순적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길항적 관계에 있다.
그런데 지식의 형성 과정에 있어서 내가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식이란 세계와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읽되, 아픔을 간직하면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김수영의 시 <내 몸이 아프다>는 시인의 시적 감수성의 요체가 그의 대상과의 합일에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아닌 듯이 보인 대상에 대해 그 속의 아픔을 읽어내고, 그 아픔으로 인해 시인 자신이 병드는 정서, 이것이 바로 시인의 시적 감수성인 것이다. 나는 민중신학의 공부길이란 바로 이러한 병듦에 핵심이 있다고 본다. 비판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인문학의 정신이 대상에 대한 냉철한 상대화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민중신학과는 무관한 인문학적 공부길이라는 얘기다. 민중신학이 강조하는 ‘희생양의 잊혀진 목소리를 복원이라는 것’, 곧 ‘증언’이라는 것은 바로 이 병듦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공부하는 여러분과 머나먼 공부길을 함께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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